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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마력의 흑탕색 음료”

제627호
2006.09.13
등록 : 2006-09-13 00:00

한국전쟁 때 이 땅을 밟은 뒤 60년대 후반에 본격 진출한 콜라 …80년대엔 도시문화의 필수품이자 미국 자본주의와 반미의 상징

▣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콜라는 1950년대 초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의 손을 잡고 처음 이 땅을 밟았다. 코카콜라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미군 PX에서만 살 수 있는 ‘부자들의 음료’이자 ‘귀한 음료’였다. 1950년대 판매되던 청량음료는 1950년 5월 태어난 칠성사이다 등 국내에서 자체 생산한 음료가 전부였다. 국산 콜라도 있었다. 칠성사이다를 만들었던 동방청량음료 합명회사는 1957년 ‘스페시코라’라는 이름의 콜라를 만들어 팔았다. 스페시코라는 1966년 백마부대의 파병과 함께 베트남으로 수출되기도 했다.

민중가요 <코카콜라>를 아시는가


국내 청량음료 시장에 빨간불이 켜진 것은 코카콜라가 정식으로 상륙하던 1968년 5월24일이었다. 두산산업의 계열사인 한양식품은 미국 코카콜라사에서 국내 독점생산 판매권을 얻었고 본사로부터 원액을 받아 코카콜라를 만들었다. 코카콜라의 시판을 막아달라는 국내 청량음료조합의 건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민중미술가 신학철씨의 그림 <모내기>에서 미국식 자본주의의 상징인 코카콜라는 신랄한 풍자 대상이다.

1968년 5월23일치 <조선일보>는 ‘세계에 뻗치는 미국 자본의 상징, 코카콜라 상륙’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상한 마력으로 공산권까지도 지배하고 있다는 이 흑탕색 탄산음료의 상륙은 국내 콜라업계에도 큰 충격을 주고 있는 것 같다. 신비한 제조 방법과 경영 방식으로 이름 있는 코카콜라니까 우리나라 시장을 쉽게 독점 지배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들이다”라고 썼다. 코카콜라 한 병의 가격은 30원선이었다.

그보다 수개월 늦은 1969년 코카콜라의 영원한 라이벌 펩시콜라도 국내에 진출했다. 동방청량음료는 미국 펩시사와 제휴해 펩시콜라 생산에 들어갔다. 동방청량음료는 자사 콜라 제품인 스페시코라가 펩시콜라와 발음이 비슷하다며 스페시코라를 칠성코라로 이름을 바꾸면서까지 펩시콜라 제조에 힘을 기울였다. 120여 군소 음료업체가 관전하는 가운데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라이벌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970년대는 청량음료 시장의 격변기였다. 1980년대 들어 탤런트 심혜진의 이미지로 대표된 콜라는 도시문화의 필수품이자 세련된 서구문화의 대표선수로 자리잡았다.

콜라는 미국 자본주의와 반미의 상징이기도 했다. ‘코카콜라 한 병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7동 몇 호실로 배달되더니…’로 시작되는 시인 곽재구의 시 ‘송지:장터’에 노래패 ‘노찾사’ 김제섭씨가 곡을 붙인 민중가요 <코카콜라>는 이를 잘 보여준다. 성공회대 김창남 교수는 “노래운동이 시작되던 1984년 무크지 <노래>에 곽재구의 시를 노래로 만든 이 곡의 악보를 실었고 1987년 노찾사의 공연에서 합창으로 이 노래를 불렀다”고 말했다. 곽재구 시인이 ‘오월시’ 동인 활동을 하며 쓴 이 시는 코카콜라로 대변되는 미국식 자본주의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민중미술가 신학철씨의 1987년작 <모내기>에도 코카콜라가 등장한다. 신씨는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풍년을 축하하는 농부들과 코카콜라, 수입 담배 등을 써래질하는 농부들을 함께 담았다. 이 그림으로 신씨는 1989년 국가보안법 위반(이적표현물) 혐의로 기소된 뒤 1999년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 논란을 빚기도 했다.

2000년대 월드컵과 스포츠 마케팅

거센 웰빙 바람이 몰아친 2000년대, 콜라업계는 스포츠 마케팅으로 맞서고 있다. 코카콜라와 펩시콜라는 최고의 축구선수들을 광고모델로 쓰면서 남녀노소의 관심사인 축구와 콜라의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한-일 월드컵이 있던 2002년은 국내 콜라업계에 잊지 못할 해로 남아 있다. 월드컵 공식 후원사인 코카콜라는 2006년 월드컵에서 색다른 화제를 낳았다. 코카콜라 광고에 나온 차두리와 이동국의 월드컵 출전이 나란히 좌절된 것. 누리꾼들은 이를 두고 ‘코카콜라의 저주’라는 새로운 징크스를 만들어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