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연동형 비례대표제, 독일 것? 베네수엘라 것?

선거법 개정안 통과 위해 농성장 꾸린 녹색당, 정의당, 평화당…

민주당은 정당 득표율 5% 주장, 한국당은 ‘좌파 장기집권’ 음모론
등록 2019-12-07 06:17 수정 2020-05-02 19:29
‘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여야 의원들이 12월4일 국회에서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 법안 처리 문제 등을 논의하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선임기자

‘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여야 의원들이 12월4일 국회에서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 법안 처리 문제 등을 논의하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선임기자

딱 1년 전이다. 2018년 12월 국회 본청 로텐더홀은 정의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농성으로 야단법석이었다. 이정미 당시 정의당 대표와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의 단식이 더해지면서 농성 분위기는 고조됐다. 두 야당 대표의 단식 열흘째, 당시 여야 5당 원내대표가 구체적인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합의하면서 국회의 ‘농성정치’는 일단락됐다. 그리고 이듬해 4월30일 우여곡절 끝에 지역구 225석에 비례대표 75명, 연동형 50%를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이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으로 지정됐다.

“독일은 0.6% 득표율에도 국고보조금 나와”

1년이 지난 지금, 정당의 농성천막이 국회 안팎에 다시 등장했다. 11월13일 녹색당을 시작으로, 같은 달 28일 정의당과 민주평화당이 선거법 개정안 통과를 목표로 농성장을 다시 꾸렸다.

이들은 정치성향(진보·보수), 지역주의(영남·호남) 등 한국 정치지형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음에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깃발 아래 모여 만만찮은 결속력을 드러냈다. 12월4일 더불어민주당이 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등과 손잡고 ‘4+1’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연동률 조정, 석패율제 변경, 대선거구제 도입 등 판을 흔들 만한 카드를 꺼내들었음에도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원래 취지를 지키자는 소수정당 사이의 공감대엔 균열이 보이지 않았다.

“연동형이란 틀을 무너뜨리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이정미 정의당 의원)

소수 정당의 암묵적 연대를 오히려 더 단단하게 한 것은 ‘연동률’이다. 민주당은 협상을 시작하면서 연동형 비율을 30%까지 낮추는 안, 준연동형 비례제를 적용할 의석수를 25석 또는 30석으로 정하는 안, 비례대표 의석으로 제시된 75석을 대선거구제 15곳에서 5명씩 뽑는 안 등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4+1 협상에 정의당을 대표해 참가하고 있는 이정미 의원은 “1천만 표 사표를 보정하자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것이다. 민주당에서 제시한 여러 안은 원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다”며 “이대로라면 현재 50%의 준연동형이라는 원칙은 흔들리게 된다”고 주장했다. 녹색당 하승수 공동운영위원장도 “연동형 비율을 흔드는 이면에 민주당이 자유한국당과 함께 비례 의석수를 하나라도 더 확보하려는 거대 정당의 꼼수가 숨어 있다”고 말했다. 실제 두 거대 정당을 제외한 정당들은 현재 비율(50%)을 낮출 이유가 없다는 게 공통 의견이다. 민주평화당이나 대안신당도 농어촌 대표성만 보장되면 연동형 취지를 살리는 게 맞다고 본다. 소수 정당 쪽에서는 연동형에 배수진을 치는 대신 225:75, 240:60, 250:50까지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수의 구성비를 둘러싼 논의는 해볼 만하다고 입을 모은다.

물론 연동형이 지켜진다고 해도 소수 정당의 의석 확보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 일부에서 독일처럼 정당 득표율이 5% 이상(현재 3%)인 정당에만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자는 봉쇄조항 얘기가 흘러나온다. 녹색당 등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기반으로 원내 진입을 노리는 원외정당은 3% 벽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지난 20대 총선을 기준으로 총 유권자 수는 4205만3278명으로, 기존 3%만 해도 126만여 명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5%라면 210만 표 이상을 얻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 위원장은 “독일의 예를 들어 봉쇄조항을 도입하겠다고 하지만 정당 득표율이 0.6%만 돼도 국고보조금이 나오는 등 소수 정당의 활동을 보장하는 독일의 정치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며 “(독일처럼) 온전한 연동형이 아닌 반쪽짜리 연동형을 도입하면서 봉쇄조항만 독일의 기준으로 높이겠다는 것은 이번 개혁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공화당은 공식 반대 입장

내년 총선에서 원내 진입을 노리는 녹색당과 달리 이미 원내정당임에도 협상 테이블에 초대받지 못한 이들도 있다. 민중당과 우리공화당이다. 이상규 민중당 대표는 와 한 통화에서 “창당도 하지 않은 대안신당이나 원내대표의 권한도 불분명한 바른미래당까지 묶어서 협상력을 높이는 마당에, 진성당원 3만7천 명을 보유한 정당법상 공당인 민중당은 그림자 취급을 한다.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민중당은 선거제도 개혁과 관련해 이미 패스트트랙에 지정된 225:75 비율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찬성을 표했다.

조원진·홍문종 의원이 공동대표로 있는 우리공화당은 정의당과 함께 연동형 비례대표제 혜택을 받을 것이라는 예상이 있음에도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11월22일 두 의원은 자유한국당에 우파 정책 연대를 제안하며 연동형 비례대표제 폐지를 주장했다. 정치권에선 이들의 속내가 따로 있다고 본다. 통합이라는 명분 속에 보수 진영의 지지를 얻는 동시에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수혜까지 얻으려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변수는 역시 자유한국당이다. 정의당, 녹색당 등은 자유한국당의 여론전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좌파 장기집권’ 또는 ‘좌파 개헌선 확보’ 음모론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 실제로는 어떨까.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국가인 독일에서는 보수정당인 기독민주당이 15년째 집권하고 있다. 뉴질랜드에서도 2017년 진보정당인 노동당이 연정을 통해 총리를 배출하기 전까지 9년 동안 보수정당인 국민당이 집권당 지위를 누렸다. 최근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와 같은 당 최교일 의원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베네수엘라의 독재정부나 채택한 제도”라는 주장도 베네수엘라가 2010년부터 한국처럼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따로 뽑는 형태의 비례대표제를 시행했다는 점에서 사실과 다르다.

거대 양당 결정으로 개혁안 바뀔 수도

소수 정당 입장에서 자유한국당을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있다. 나경원 원내대표 후임이 결정된 뒤 전열을 정비해 선거법 등의 협상에 나서게 됐을 때 정치 일정이 어떻게 전개될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벌써 민주당 내에서는 자유한국당과의 협상 없이 선거법 등을 통과시켰을 경우 내년 총선에서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역사적으로 되짚어봐도 거대 양당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지금까지 유지한 선거제도 개혁안(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행로를 바꿀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박지원 의원과 하승수 위원장이 정치적 결을 달리하면서도 민주당을 향해 “자유한국당과의 협상 가능성을 배제하고 패스트트랙 협상에 임하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