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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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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살도 유권자, 그러니 들어라

‘18살 선거권’ 가진 청소년들이 말하는 ‘우리의 선거, 우리의 투표’
등록 2020-03-07 06:23 수정 2020-05-07 01:39
2017년 12월26일 국회 앞에서 청소년 참정권 운동의 주역인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소속 (왼쪽부터) 이은선·김윤송·김가을길씨가 손바닥 위에 국회를 올려놓은 듯한 포즈를 취했다. 이정우 선임기자

2017년 12월26일 국회 앞에서 청소년 참정권 운동의 주역인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소속 (왼쪽부터) 이은선·김윤송·김가을길씨가 손바닥 위에 국회를 올려놓은 듯한 포즈를 취했다. 이정우 선임기자

전화받은 이들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학생은 개학과 입학으로, 학교 밖 청소년은 봄 맞을 채비로 정신없고 바쁜 하루를 보내야 할 시간이지만, 코로나19는 이들에게 3월의 활력을 뺏은 듯했다. ‘코로나19 안부’를 나누며 원래 물으려 했던 ‘18살 선거권’ 이야기를 꺼냈다. 전화기로 들려오는 목소리 톤이 조금은 올라간다. “올해 첫 투표를 하게 됐다는 소식에 기뻤어요.” “다음 대선에나 첫 투표 할 줄 알았는데….” “반갑죠!” 일부 어른이 ‘학교의 정치화’ ‘교실이 정치판이 된다’고 우려한다는 이야기를 건네자 다시 어조가 낮아진다. “정말 그런가요?” “그게 왜 문제가 돼요?”라고 심드렁하게 되묻는다.

응답자 44% “우리 이야기 들을 것” 기대

<한겨레21>은 올해 총선이나 2022년 대선에서 유권자가 될 청소년들의 생각을 엿보기 위해 청소년 참정권 운동을 해온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와 공동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했다. 2월21일~3월4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모바일 메신저 등으로 진행한 조사에 청소년 146명(고등학생 104명, 학교 다니지 않는 이 22명, 중학생 17명, 대학 신입생 3명)이 응답했다. 응답자 가운데 올해 총선에서 첫 투표를 하는 이는 29명(2001년~2002년 4월16일 출생)이다. 인터뷰를 원하는 이들의 연락처를 받아 8명(올해 첫 투표 6명)과 추가로 전화 인터뷰도 했다. 8명은 별다른 활동에 참여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부터 학생회 활동, 지방자치단체 청소년 의회, 청소년 참정권·학생인권 운동에 참여하는 이들까지 다양했다.

선거 때마다 투표소로 향하는 성인의 마음은 보통 기대·실망·분노 가운데 하나이거나, 두세 가지 감정이 뒤섞인다. 청소년들에게 ‘18살 선거권’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정당이, 정치인이 들어줄 것이라는 ‘기대’다. “청소년에게 선거권이 생기면 어떤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나요?”라는 질문에 “정치인이 청소년의 의견을 더 많이 반영할 것이다”란 응답이 43.8%로 가장 많았다. “더 많은 청소년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28.1%), “청소년이 선거에서 정치인을 심판할 수 있다”(15.1%), “이전과 별 차이 없을 것이다”(7.5%)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기타 의견으로 “정치인이 청소년을 공약에 이용만 하고, 의견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다” “학교 내에서 정치 공론화(갈등)가 심화될 것이다” 같은 답변도 있었다.

‘18살 투표’에 대한 기대는 지난해 경기도교육연구원이 경기도교육청 소속 고등학생 1228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2019년 10월28일~11월3일)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경기도교육연구원, ‘민주주의 실현 조건으로서 청소년 정치 참여 확대 방안’ 연구보고서). 선거연령이 낮아지면 기대되는 효과를 묻는 말에 “청소년의 요구가 사회에 더 많이 반영될 것을 기대한다”(33%)는 응답이 가장 많이 나왔다. 물론 “별다른 효과가 없을 것”(21.4%), “청소년 간 정치적 의견 갈등이 심화될 것”(5.2%) 같은 부정적인 의견도 있었다.

투표 기준은 ‘정책, 경력, 정당’ 순서

청소년들은 투표함에 어떤 마음을 접어 넣고 싶을까? 두발·복장 규제같이 학교에서 느끼는 학생인권 문제, 세월호 참사, 탄핵 촛불, 입시제도 모순 등을 겪으며 차곡차곡 마음속에 쌓아온 이야기를 유권자로서 하고 싶어 한다. “제 경우 대학 정시 모집이 불리해요. 사교육을 받기 어렵거든요. 수시가 서울 강남권 아이들을 위한 거라고 하는데, 실제 그렇지 않잖아요. 수시 전형, 학생부가 유지됐으면 해요. 그래서 정당의 교육정책을 관심 있게 보고 있어요.”(익명·서울·만 18살 고3) “부산에선 학생인권조례가 추진되다가 안 됐어요. 서울과 경기도는 안 그렇잖아요. 저희는 야간자율학습이나 두발 규제가 아직 있는데… ‘투블록’(두발) 금지는 과하지 않나요!”(이재호·부산·만 18살 고3) “학칙 보면 웃긴 게 많아요. 단발머리는 되지만 숏컷은 안 되고, 빨간색 운동화는 안 되고…. 경남은 학생인권조례가 부결됐어요. 서울·광주는 있잖아요. 거기 사는 애들은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지만 저희는 그렇지 못하잖아요.”(조민정·경남 창원·만 18살 대학 신입생)

설문조사에서 9개 정책 분야(학교·교육, 어린이·청소년 권리 보장, 노동·일자리, 복지·안전, 생태·환경, 사회적 소수자, 문화 등)를 제시하고 관심 있는 것에 복수 응답을 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응답자들은 학생인권, 대학입시 등 학교·교육을 가장 많이(112건) 꼽았다. 사회적 소수자(여성·장애인·성소수자·노인)가 97건, 어린이·청소년 권리 보장이 88건으로 뒤를 이었다.

응답자 86.3%가 “학교에서부터 일상적으로 청소년들의 정치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는 주장에 ‘그렇다’고 했다. 동시에 “고령층이 늘어나면서 복지정책도 같이 늘어나잖아요. 청소년 유권자가 늘어남으로써 청소년의 요구를 더 듣지 않을까요”(엄주명·전남·만 18살 고3), “청소년 선거권이 없으니까 청소년 정책이 없는 거예요. 공약을 안 내잖아요”(김해담·경기·만 17살 고3)라며 ‘투표의 힘’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이런 기대는 ‘후보자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후보자의 정책 공약”을 가장 많이 보겠다는 답변(47.3%)으로 드러난다. “후보자의 과거 언행·경력”(26.0%), “소속 정당”(17.8%)은 그다음이었다. 자신들의 요구가 반영되길 바라는 청소년들은 당연히 총선과 앞으로의 선거에 참여할 생각(95.2%)이고, 지지하거나 호감을 가진 정당·정치인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있다’ 75.3%, ‘없다’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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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정보는 언론에서, SNS나 유튜브는 낮아

기성세대는 ‘학교의 정치화’를 우려하지만 많은 청소년이 ‘정치 무관심이 더 크다’고 이야기한다. “정치 기사를 보는 걸 친구들이 신기해해요” “공부해야 하는데 투표 꼭 해야 하나 이런 친구들도 많아요” 같은 반응이 많다. “뉴스에선 학교가 선거판이 될 거라고 하는데 애들이 평상시에 서로 누구 뽑겠다고 싸우지 않아요. 앞으로도 안 그럴 것 같고요. 어디서 그런 일이 생겼나요?”(익명·서울·고3) 경기도교육연구원 조사에서도 46.8%의 고등학생이 “정치에 관심 있다”고, 46.1%가 “선거에 관심 있다”고 답했다. 절반에 못 미치는 수치다. 당시 진행된 면담조사에서 경기도 고등학생들은 “‘정치는 모르면 약’ ‘○○○이 또 정치 이야기 하네!’ 이런 말이 나오는 분위기예요.” “대입 준비, 취직 준비를 하다보면 정치 이야기는 줄어들어요”라고 교실 분위기를 전했다.

첫 투표권을 가진 이들의 정치적 무관심은 낮은 투표율과 ‘깜깜이 선거’로 연결될 수도 있다. ‘학교에서 정치나 선거에 관한 구체적인 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91.8%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는 “학교에서 정치·선거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 응답(81.5%)과 짝을 이룬다.

민주주의와 선거를 가르치지 않는 학교에서 청소년들은 정당이나 정치인을 판단할 때 무엇을 참고할까? 포털 뉴스 등 인터넷(28.8%), 방송(26.7%), 신문(10.9%) 등 기존 언론에서 정보를 얻고 정치적 판단을 한다고 답했다. SNS는 15.1%, 유튜브는 4.1%였고 친구와 가족은 각각 3.4%, 2.1%였다. 18살 선거권과 투표에 관심이 많은 청소년들이 설문조사에 많이 응답한 것을 고려하더라도 SNS와 유튜브의 비율이 낮게 나온 것이 눈에 띈다. 추가 인터뷰에 응한 청소년들은 평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SNS와 유튜브를 즐겨 보지만, 정치와 관련해서는 ‘가짜뉴스’와 편향된 정보에 휩쓸릴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어쩔 수 없이 기존 언론 기사를 보는데 이 역시 온전히 믿지 못했다. “편향된 뉴스도 있고, 인터넷 기사가 진짜 맞는지 의심이 들 때도 있어요. 그런 걸 가려낼 능력을 길러야겠다고 생각하죠.”(이재호) “언론사 사이트를 찾아가 기사를 읽어봐요. 다양한 시각을 가지려고 여러 기사를 보는데 언론사마다 관점이 다른 것 같아요. 어디를 믿어야 할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죠.”(김해담) “여러 뉴스를 보려고 해요. 다른 시각의 기사를 읽다보면 제 주관도 생기고 종합해서 판단하게 되는 것 같아요.”(엄주명)

가짜뉴스나 편향된 정보에 대한 경계심은 부모나 교사를 향하기도 한다. 18살 첫 투표자들이 부모의 정치 성향을 따라갈 것이라는 시각이 있지만, 청소년들은 “부모님과 정치 이야기를 잘 나누지 않고, 영향을 받지도 않을 것 같다”고 말한다. “부모님 (정치 성향을) 따라가는 친구들은 많이 없는 것 같아요. 교사나 부모님에게 휘둘릴 걱정은 안 하는데… 어른들이 청소년이 정치하면 부모님·선생님의 꼭두각시가 될 거라고 말하는데, (어른들의) 자의식 과잉 아닌가요?”(조민정)

미성년이 미성숙한 건 아니다

학교에서 정치 교육이 필요하고 “모의투표는 선거와 정치를 배울 수 있는 방법”이라는 답변(긍정 75.3%, 부정 10.3%, 잘 모름 14.4%)이 많았지만, 교사들의 편향을 우려하는 청소년들도 있다.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발언은 아니지만, 정치색을 드러내는 분도 있죠. 정치 교육을 한다면 이런 점도 고려해야 할 것 같아요.”(이재호) “모의투표나 정치 교육은 외부 전문가가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조민정) 경기도교육연구원 조사에서 부모와 정치 문제에 대해 “대화한 적이 없다”는 답변은 20.5%였고,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한 달에 1~2회(25.9%), 한 주에 1~2회(23.0%) 정도였다. 교사와는 고등학생 응답자의 54.4%가 “대화한 적 없다”고 했다.

설문조사에 응한 청소년들은 정치 현안을 자신의 시각으로 판단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어줄 정치인과 정당에 투표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어른들은 여전히 학교와 학생 사회의 혼란을 우려하며 이들을 불안한 눈으로 본다. 이런 시각을 접할 때마다 청소년들은 되묻는다. 대학도, 회사도 정치판이 됐냐고. “대학생에게 다 투표권이 있는데 대학교가 정치판이 되나요? 미성년자와 성인이라는 잣대로만 18살을 너무 미성숙하게 보는 것 아닌가요.”(박채연·경기도·만 18살 고3) “학교의 정치화가 될 수 있죠. 그런데 그게 큰 문제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근거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거죠?”(이재호) “고3 학생이 투표권을 가진다고 교실이 정치화한다면 투표권을 가진 어른들이 다니는 회사도 정치화가 됐나요? 그렇게 우려 안 하셔도 될 것 같은데….”(엄주명)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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