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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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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저울 위 교실은 흔들린다

‘선거에 영향 미친다’며 규제 위주 가이드라인, 교사들 움츠러들게 해
등록 2020-03-07 06:28 수정 2020-05-07 01:38
제7회 지방선거가 열린 2018년 6월13일 전북 군산시 청소년들이 전북도지사와 교육감을 뽑는 모의투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7회 지방선거가 열린 2018년 6월13일 전북 군산시 청소년들이 전북도지사와 교육감을 뽑는 모의투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선거에 영향을 미칠”.

현행 공직선거법에서 ‘선거에 영향을’이란 표현을 찾아보면 15번이 나온다. 선거는 공정해야 하고 “선거에 영향을 미치면 안 된다”는 표현이 법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건 얼핏 당연한 이야기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유권자의 표현 자유나 활동 폭을 광범위하게 옥죈다. 이 표현이 붙은 조항은 유권자가 선거일 전 180일 동안 정당·후보자의 이름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을 인쇄물이나 사진, 문서, 광고에 담아 배포할 수 없도록 한다.(법 제90조, 제93조) 선거기간에는 법이 보장하는 토론회 외에 시국강연회·좌담회·토론회 등을 열 수 없고,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반상회도 열 수 없다.(법 제101조, 제103조)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는 모호한 표현은 선거 때마다 논란이 됐고, 그때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의 ‘유권해석’이 늘 시시비비를 가렸다.

‘18살 선거권’ 후속 입법 미뤄져 선관위에 기대야

‘18살 선거권’이 보장되면서 전국 53만 명(고3 유권자 14만 명 포함)이 이번 총선부터 투표권을 가지게 됐다. 선거법은 사실상 숫자만(19살 이상→18살 이상) 바뀌고 그 후속 입법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두 건의 후속 법안(곽상도·박인숙 미래통합당 의원)이 발의됐는데 해당 법안은 “학교가 선거운동의 장으로 변질될 위험 있다”며 학교 안 선거운동을 제한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와 빠듯한 총선 일정 때문에 20대 국회에서 후속 입법이 이뤄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학교에서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발언과 행위를 가리는 일은 자연스레 선관위의 저울에 올라갔다.

선관위는 늘 하던 대로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에 무게를 두고 유권해석을 내리고 있다. 아무래도 생애 첫 투표를 앞두고 들뜨게 될 고3 학생들보다 위에서 내려온 ‘유권해석’과 ‘지침’으로 어깨가 눌릴 교사들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한국 학교에서 ‘교복 입은 유권자’에 대한 선거 교육은 이제 걸음마 단계라서 다양한 교육과 프로그램이 필요한데, 현재 유권해석에 따르면 교사들은 교실 안에서 매 순간 멈칫할 수밖에 없다. 개학 연기로 아직 선관위·교육청 등의 구체적인 지침이 학교에 전달되지 않아, 교사들은 18살 선거권이 교실에 불러올 변화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한다. 교사들은 적어도 선거 교육만은 학교에서 다양한 교육과 체험활동, 토론 등이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18살 선거권이 보장되며 일부 보수 단체와 언론은 ‘학교의 정치화’에 우려를 쏟아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선 18살 선거권에 ‘마음의 준비’는 한 상태다. 많은 나라가 이미 18살 이하 청소년에게 투표권을 주고, 한국 사회에서도 18살 선거권 도입 요구가 오래전부터 있었다. “과거 두발 자유화와 체벌 금지 등이 이슈가 될 때보다 선생님들의 반대 정서도 적고, 논란도 덜 되는 것 같아요.”(조영선, 서울 고교 국어 교사) “밖에선 예민하게 반응하지만 정작 교실은 덤덤해요. 아무래도 (2002년) 1~4월이 생일인 학생들에게만 해당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온도차가 있어요.”(안태일, 경기도 고교 일반사회과 교사)

대신 교사들은 학생들이 현행 정치제도와 입법 과정 등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정치적 판단력을 기르는 경험이 없었다는 것을 우려한다. 3월에 관련 교육이나 활동을 하기에도 빠듯한데 개학 연기로 이런 걱정이 더 커진다. “입법부·국회의원의 권한과 기능이 뭔지, 정당이 뭔지 이해가 좀 부족하죠. 연동형 비례제도도 생소해하고요. 이런 걸 다루는 과목이 ‘정치와 법’인데 이를 일부 선택한 학생들만 공부하는 상황이니까…. 법은 통과됐지만 사전 준비는 좀 안 된 것 같아요.”(김종한, 경기도 고교 일반사회 교사) “학생들의 첫 선거가 대선이면 설명하기 명확하고 쉬울 텐데… 학생들 교육을 준비하면서 가장 고민되는 부분이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을 뽑는 의미를 어떻게 전달할까예요. 학생들은 법을 만들거나 고칠 수 있다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어요. 정치적 효능을 어떻게 느끼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이에요.”(조영선 교사)

“역사 긍정·부정 평가도 ‘편향’ 오해받을 것”

입시 위주의 한국 교육 특성상 학생이 수업 시간에 현행 정치제도와 입법을 배우는 시간은 선택과목인 ‘정치와 법’을 수강하는 경우다. 민주주의와 선거제도를 학습할 수 있는 유일한 과목이지만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필수과목이 아니라서 전국 약 10%의 학생만 선택하고 있다. <한겨레21>과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가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2월21일~3월4일 146명 조사) 결과를 보면 약 92%의 청소년이 “학교에서 정치·선거에 관한 구체적인 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학교가 정치판이 된다’는 시선과 이를 의식한 선관위의 유권해석은 학교 현장의 교사들을 움츠러들게 한다. 선관위에서 논란을 피하기 위해 규제 위주의 가이드라인을 내리면, 현장 역시 논란을 피하기 위해 책임질 만한 일은 하지 않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선관위 자료를 보니 규제 위주로 해석하고 있는데 이러면 대다수 학교에서 선거 관련 교육이나 활동이 금지될 확률이 높아요. 학교에 가이드라인이 내려오는 순간 교장 선생님은 ‘대부분 하지 말라’고 할 가능성이 커요. 교사는 선거법 위반으로 100만원 이상 벌금을 받으면 해직까지 될 수 있어요. 교사 처지에선 모호한 것은 하지 말자고 생각할 듯해요. 학생들에게 너희 권리가 확장됐다고 이야기하기보다, ‘하면 안 돼’ 같은 말을 할 것 같아요.”(조영선 교사) ‘수업에서 특정 정당·후보자에게 유불리한 발언을 하는 행위’ ‘학생에게 특정 정당·후보자를 지지·추천·반대하도록 강요하는 행위’, 교사들이 의식할 수밖에 없는 선관위의 해석(‘18세 선거권 부여에 따른 정치관계법 운용 기준’)이다. 당연히 금지해야 할 행위지만 실제 교실 현장으로 들어가면 간단치 않은 문제다. “선생님들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은 당연히 안 하죠. 하지만 사회·정치 수업에선 난감할 수 있어요. 역사적 사실에 대해 부정·긍정 평가를 할 수 있는데, 일부 학생에게서 편향됐다고 오해받을 수 있죠. 교사의 발언이 맥락이 제거된 채 SNS에 올라가거나 학부모 귀에 들어가면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요. 결국 교과 이야기밖에 할 수 없을 것입니다.”(수도권 고교 일반사회 교사) “논란이 자꾸 되다보니 한참 전부터 정치 얘기는 자기검열을 한 뒤 조심해서 합니다. 흔히 농담으로 고교 교사는 ‘정치적 금치산자’라고 해요. 계속 조심할 수밖에 없죠.”(안태일 교사)

선관위 가이드라인은 “선거와 무관하게 교육의 일환으로 특정 정당·후보자에 관하여 보편적으로 승인된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는 행위는 할 수 있다”고만 명시한다. 선관위 관계자는 <한겨레21>에 “선거법 위반은 전체적인 의도나 맥락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한다. 개별 사안에 따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미국 대선이 열린 2012년 11월6일, 아이오와주 캐롤의 한 초등학교에서 열린 모의투표 풍경. 학생들이 당시 후보인 민주당 버락 오바마(완쪽), 공화당 밋 롬니 가면을 쓰고 다투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국 대선이 열린 2012년 11월6일, 아이오와주 캐롤의 한 초등학교에서 열린 모의투표 풍경. 학생들이 당시 후보인 민주당 버락 오바마(완쪽), 공화당 밋 롬니 가면을 쓰고 다투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국외에선 모의선거도 하는데…

가뜩이나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학교에 선관위는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사실상 모의선거 불허 방침을 내리고 선거 교육의 손발을 묶었다. 많은 나라에서 진행되는 모의선거는 학생들의 정치 지식 수준을 높이고, 선거 참여를 높이며, 후보자와 정책을 판단하는 정치적 판단력을 키우는 선거 교육으로 평가받는다. 미국·캐나다·영국·스웨덴 등에선 법이 보장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민간단체, 학생·학부모 단체가 실제 선거와 유사한 모의선거를 진행하는데 교사와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다. 실제 정당과 후보를 두고 정책과 공약을 비교하며 토론하고 실제 투표소와 똑같은 환경을 체험하면서 자연스레 유권자 교육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한국YMCA전국연맹, 징검다리교육공동체 등도 2017년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에서 전국 단위로 19살 미만 청소년 모의선거를 진행했다. 4천여 명이 참여한 지방선거 모의선거(징검다리교육공동체) 참여자 가운데 264명에게 진행한 설문조사(서울시교육청 정책연구 보고서 ‘학교 민주시민교육 활성화 방안 연구-학교 모의선거 교육을 중심으로’, 2019년 11월)를 보면, ‘미래에 투표권이 생기면 투표를 하겠다’ 문항에 94.3%가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응답자들은 “정치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됐다” “후보들 공약을 보게 됐다” 같은 소감을 남겼다.

하지만 선관위는 지난 2월 서울시교육청 등이 추진하던 모의선거 등에 대해 “교육청 주관의 초·중·고 모의선거 교육은 선거법 위반”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선거권이 없는 학생을 대상으로 하더라도 선거가 임박한 시기에 교원이 교육청의 계획에 따라 모의투표를 실시하는 것은 행위 양태에 따라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한 행위에 이른다”는 게 선관위의 판단이다. 선거권이 없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모의선거까지 일종의 사전 여론조사로 본 것이다. 대신 일반 시민단체가 교육청·학교·교사를 배제하고 학생을 모집해 비용을 자체 조달할 경우 모의선거가 가능하다고 판단한다. 교육청이 주관할 경우 실제 정당과 후보자가 유추되지 않는 가상 정당과 후보자를 놓고 진행하는 모의선거는 허용한다. 현장에서는 가상의 정당과 후보자로 모의선거를 하는 것은 교육 효과가 없다고 본다. “가상의 후보로 한다고 하면 1번 뽀로로, 2번 펭수라고 할 수도 없고… 실제 공약이나 정책을 두고 이야기하기 어렵잖아요. 장난처럼 진행될 가능성이 커요.”(수도권 고교 일반사회 교사)

정치적 중립성에 매몰돼 제한만 한다면…

앞으로 ‘18살 투표권’이 제 의미를 찾으려면 학교 안의 정치·선거 교육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이루고 규제 위주의 접근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번 총선뿐만 아니라 계속 돌아오는 선거 때마다 같은 상황을 반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생님 촛불집회 가셨어요? 무슨 당 싫어하죠? 누구 뽑으실 거예요? 이렇게 물어보는 학생들도 있죠. 각종 사회 이슈에 대해 교사의 의견을 물어보기도 하고요. 교사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 선에서 교사의 생각과 그 반대쪽 견해를 균형 있게 전달해주는 노력이 필요해요. 양쪽 의견을 존중하는 자세가 교사들과 학생들의 기본이 돼야겠죠. 너무 경직돼서 다들 ‘아무 말 못한다’고 하는 건 웃기잖아요.”(김종한 교사)

“학생도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정치인도, 정당도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설명하는 게 좋겠지요. 다르다고 해서 틀리지 않음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토론 등의 활동으로 옳은 길을 찾으려고 노력해야죠. 교과 수업, 타인의 정치적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면 최대한 자유를 보장하는 게 민주주의의 산교육이 아닐까요. ‘정치적 중립성’이란 말에 매몰돼 엄격하게 제한만 한다면, 애초에 18살에게 투표권을 주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경기도 고교 국어 교사)

이는 단순히 18살만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단단하게 만들고 정치의식을 높이는 우리 사회의 문제로 연결된다. “개헌, 이원집정부제, 연동형 비례제를 물었을 때 선뜻 대답할 수 있는 성인이 얼마나 될까요? 민주시민이고 유권자라고 하면 여야 지지와 상관없이 기본적인 내용을 알아야 하잖아요. 가짜뉴스 문제도 이런 데서 나오는 게 아닐까요. 주눅 들지 말고 정치 교육을 바라봐야 할 것 같아요.”(안태일 교사)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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