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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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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아파트 옆 섬이 된 학교

분당 한 초등학교 30년, ‘차별’에서 ‘고립’으로 천천히 변해온 시간 100매 르포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과 학교명은 모두 가명입니다.
등록 2020-03-16 15:11 수정 2020-10-31 09:59
복도 창문 너머로 본 중학교 교실 모습. 방준호 기자

복도 창문 너머로 본 중학교 교실 모습. 방준호 기자

1장 차마 하지 못하는 말

친구의 이름을 크게 부른다. 쫓고 쫓긴다. 잡고 나면? “이제 너 술래” 외쳐놓고 다시 달리면 그만이다. 10명 남짓 아이들, 뛰고 웃고 소리 지르는 것만이 세상 전부인 양 활기차다. 2020년 2월, 따뜻한 겨울이래도 쌀쌀하다. 자그마한 점퍼는 모두 벗어 구령대에 모아뒀다. 대개 눈부신 원색이다. 아이들 달리는 곳은 경기도 성남 분당구 구름 초등학교 운동장이다. 아이들은 구름초 근처 지역아동센터에 다닌다. 6개 학년 합쳐본댔자 학생 수 180여명, 작은(과소) 학교다. 학교는 여느 분당 학교들처럼 빽빽한 아파트 숲에 둘러싸여 있다.

분당 아파트 한복판. 작은 학교. 나란히 적어두니 역시, 어색하다. 구름초와 이웃한(반경 1㎞ 이내) 다른 두 초등학교의 학생 수는 각각 1240여명, 810여명이다. 무릇 이쯤 돼야 겹겹 아파트로 채운 분당 풍경에 어울릴 법한 학생 수다. 약간의 설명을 덧붙일 수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 구름초에 아이 보내는 아파트 단지 가운데 1200여가구 영구임대아파트(이하 영구임대) 단지가 끼여 있다.

동네의 아픈 손가락, 통학로의 위험

운동장을 질주하던 아이들이 채 끝내지 못한 장난의 여운을 자기들끼리 자제하며 돌아온다. “그만해.” “야, 장난치지 마.” 마스크 쓴 5학년 민희가 군기 반장이다.

이제 자못 진지해질 시간이다. 먼 훗날 가물거릴 테지만 아직은 생생한 지난해 작별의 기억을 이제 6학년 올라가는 경석이 붉어진 얼굴로 먼저 떠올린다. “우리 반은 완전 눈물 폭풍을 하고갔어요. (다른 친구: 갬성(감성)이 너무 심한 거 아니니?) 나는 안 울었어.” 한 살 어린 주호가 이어 말한다. 한 문장 내뱉을 때마다 가슴 들썩이며 숨 몰아 들이켜는 모습이 예쁘다. “우리 학교 애들이 다 나가가지고, 합반되기 시작해가지고 아쉬운데.”

친구들이 떠난다. 아이들 다니는 구름초에서는 흔한 일이다. 지난해 구름초에서 28명이 전학 갔다. 한 해 전에는 30명, 2017년에는 34명이 떠났다(성남교육지원청,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실 자료). 작은 학교라 한명 한명 떠나는 아이들 존재는 소중하다. 학교는 지금도 많아야 두 개 정도인 반을 한 반으로 합쳐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3학년 합반되고, 4학년도 5학년도 한 반이고, 1학년은 한 반일 거고. 제가 아는 건 그래요.”(민희)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같이 웃으며 달릴 몇 안 되는 친구 한 명이 빠지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번에 한꺼번에 세 명이나 전학 가서 엄청 썰렁해졌거든요.”(민우)

친구들은 어디로 간 걸까? 정확히는 몰라도 대충은 안다. 형, 누나, 엄마들이 하는 이야기를 곁에서 들었다. 아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설명할 말을 곁눈질해 찾아낸다. “원래 우리 초등학교 애들이 엄청 많았는데 하늘초 생기면서 확 없어졌어요. (다른 친구: 네가 어떻게 알아?) 우리 엄마의, 그으… 고모의 형들이 말해줬어.”(주호)

어느 정도 사실에 근접했다. 2000년대 중반 길 건너 800m 거리에 하늘초가 생겨나며 학생 수가 급속히 줄었다. 지금 하늘초 학생 수는 어느새 구름초의 7배 가깝다. 완전한 역전이다. “우리 학교 졸업하면 중학교는 무조건 구름중 가야 하는 게 있는데, 거기 가기 싫으니까 그래서 할머니 할아버지 집 주소로 해서 다른 데로 가는 애들도 있어요.” 제법 어른스러운 민우가 자기가 아는 상황을 설명한다. 맞는 말이다. 친구들은 멀리 가지 않았다. 지난해 그래 봐야 분당 안 다른 초등학교로 전학 간 아이가 13명이다. 이사하며 학교를 옮겼다기보다 학교 때문에 이사하거나 주소만 옮겼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완전한 설명은 아니다. 더 알지만, 말 못하는 무언가 있다는 듯 아이들 표정은 조심스럽다.

조심스럽게 채 못한 말들 가운데 ‘구름마을 영구임대 아파트’가 있다. 아이들 다니는 지역아동센터장은 부모와 아이들에게 이미 신신당부해둔 터다. “절대 영구임대단지가 문제라는 이야기 아이들 앞에서 하시면 안 됩니다. 입버릇이 생각으로 굳습니다.” 부모들은 수긍했고 아이들은 말을 잘 듣는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어른들끼리 흔히 짚는 이유가 영구임대단지다. “동네의 아픈 손가락”이라고 “통학로에 놓인 위험”이라고 주민들은 일렀다. 그리고 “위험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말끝 흐리며 착잡한 영구임대단지 사람들이 있다.

구름마을 유일의 학교에서 임대아파트 학교로

1994년 구름초가 문 열었다. 영구임대단지를 비롯해 갓 입주가 시작된 구름마을 유일한 초등학교였다. 1999년 이르면 한 학년 300명 이상, 전 학년 56개 학급에 이르렀다. 북적였다. 그저 빛나는 왕년은 아니다. “임대단지 아이들을 향한 차별은 그 시절 정말 노골적이었다.”(26년차 영구임대 주민 강성연) 20여 년 시간이 흘렀다. 차별의 말들은 이제 다만 사붓사붓하다. 친한 사람들끼리 조심스레 수군대기는 해도, 2020년 신도시 사는 ‘교양 있는 중산층’이 덮어놓고 가난을 혐오하는 일은 “지금은 흔치 않은 것 같다.”(강성연) 그저 학교가 존재마저 희미해질 정도로 줄었을 뿐이다.

학교 떠나는 부모의 이유 속에도 혐오보다는 ‘분당의 평균’에 속해야 한다는 초조함이 더 크게 나타난다. 톱 클래스는 아니어도 학원 두어 개쯤은 다니는 평범한 분당 친구들, 낯선 가난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통학로, 최소한 네댓 개는 되는 학급 수를 바란다. 둘러보니 무더기로 다른 애들도 학교를 떠난다. 구름초는 더 줄어든다. 발걸음은 다급해진다.

도심 속 과소학교 구름초·중이 보여주는 건, 그래서 혐오와 차별이라기보다 혐오와 차별 ‘그 후’다. 30년차 신도시, 26년차 영구임대 단지와 학교는 굳이 누가 큰 소리로 혐오를 드러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고 당연히 “섬이 돼 있다.”(분양단지 주민)

영구임대 주민이자 구름중 학부모인 김성미(43)가 그렇게 섬이 된 동네를 걷는다. 단지 후문을 지나가며 잠깐 걸음을 멈춘다. 구름초 후문과 맞붙어 있다. “여기.” 손가락 가리킨 곳에는 문에 자물쇠를 채운 테니스장이 있다. 철조망 사이 들여다보면 잡풀이 무성하다. 네트는 없고, 녹색 네트 걸이는 녹슬었다. “그리고 여기.” 테니스장 옆에는 정자가 있다. “뭔가 으슥한 느낌을 주잖아요. 이 정자에서 아저씨들이 술을 마시는데” 잠깐 말을 멈춘다. “노상방뇨를 하시는 모습을 보기도 했어요. 싫죠. 싫겠죠. 바로 학교 후문이랑 붙어서 애들이 볼 수도 있는데.” 뭔가 으슥한 ‘느낌’을 근심한다.

작고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아이들과 주변 사람들 목소리를 모사하기도 하며, 김성미는 끊김 없이 말한다. 문득 “어머 내가 너무 말이 많죠” 잠깐 멈추지만 이내 다시 말을 이어간다. 긴 머리와 갈색 눈빛, 조용한 목소리가 풍기는 차분한 첫인상과 달리 시원시원한 성격이다. “할아버지들이, 딴에는 자기들끼리 말한다면서 ‘통장 년이…’ 이러세요. 그럼 제가 그러죠. ‘다 들려 아버님. 막 욕해도 돼. 건강하기만 하셔.’” 그런 성격 아니면 이 동네 통장 못 한단다. 영구임대단지에서 통장을 맡고 있다. 통장인 엄마를 애들이 자랑스러워해서다. 둘째 첫돌 무렵부터였으니, 영구임대단지 살기 시작한 지 벌써 10년 훌쩍 넘었다.

아이 둘 자연스레 구름초를 졸업시켰다. 첫째가 올해 구름중 3학년, 둘째가 2학년이다. 통학구역이 구름초로 정해졌고, 구름초 졸업한 아이들은 당연히 구름중으로 간다. 달리 어디를 가겠는가. “8시50분 헐레벌떡 집 문 나서면 9시에 지각 않고 도착할만한 학교인데.” 그런데 대개 당연하지 않다. “제가 영구임대단지 사는지 모르고 어떤 엄마가 ‘너 같으면 구름중 보내겠냐’고 ‘영구임대단지 너무 위험하다’고 하는 거예요. 속상했죠. 우리 전염병 걸린 사람들 아니거든요.” 고개를 돌려 김성미는 영구임대단지를 본다. 그 뒤로 겉으론 낡아 보여도 값을 알고 나면 주눅 드는 아파트 단지들이 쫘르륵 펼쳐진다.

두 학교 중 선택, 당연한 결정

○○역 동쪽, 1990년대 지어진 구름마을 아파트가 시계 반대 방향 순서로 단지 번호를 받아 늘어서 있다.

분양단지 중대형 아파트 가격은 11억원을 넘어간다. 작은 아파트도 5억원에 가깝다. 남쪽에는 ○○코아, ○○프라자 따위 이름 붙인 대형 상가 건물과 오피스텔이 대로를 끼고 들어섰다. 그저 심상한 신도시 풍경이다. 천당 밑에 분당, 그것도 서울 강남과 20분이면 통하는 신분당선 수혜를 입은 역 주변 단지다. 이름은, 값을 한다. 여기까지. 정상적이라면 여기 7살은 오로지 구름초로만 입학할 수 있다.

이 지역에 아이 둔 가족은 이례적으로 적은 편이다. 초등·중학교 다닐 7~15살 아이는 314명(2020년 1월31일 기준)뿐이다. 이 구역 아파트 단지 전체 인구(9788명)의 3%에 그친다. 이유는 추정만 할 뿐이다. 아이 키울 만한 젊은 부부가 들어오기에 애초 집 값 수준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아무래도 대형 평수인 단지는 오래살던 분들이 그냥 눌러앉으면서 전세 물량이 많은 편도 아니고요.”(8단지 주민) 아이 키우는 집들이 들어오지 않을 수 있다. “5년 전에 제가 이 동네 들어올 때 집 알아보러 부동산 갔어요. 그런데 아이 키울 거면 여기는 임대단지 있어서 안 된다고 옆 동네를 추천하더라고요.”(구름중 학부모) 그저 주소만 옮겼을 수도 있다. “다른 학교 보내고 싶은 엄마들은 입학하기 전에 먼저 주소를 옮길 수도 있죠.”(동사무소 관계자)

상가들을 지나 서쪽으로 대로를 건너면 또다시 아파트 단지가 나온다. 여기 사는 7살 부모들은 선택할 수 있다. 구름초와 하늘초, 두 장의 취학통지서를 받는다. 둘 가운데 하나를 집어들고 내키는 학교 예비소집일에 나간다. ‘공동통학구역’이라서다. 하늘초가 만들어지던 때 구름초에 보내기 꺼리는 학부모들 요구로 공동통학구역이 됐다. 구름초와 이 지역 단지 사이 10차선 대로의 위험성이 표면적인 이유였다. 구름초를 피하는 마음은 17년 후에도 면면이 이어진다. 올해 두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아이들 108명 가운데, 하늘초를 택한 아이들이 94명이다. 구름초에 입학하기로 한 아이는 3명이다. 나머지 아이들은 다른 곳으로 이사하거나 해외에 머물렀다.(박용진 의원실) 하늘초는 2000년대 중반 만들어진 경부고속도로 옆 주상복합단지 속에 있다. 동네에는 “잘 사는 애들 많은 학교”로 알려져 있다.

화려한 도시 속 어정쩡하게 영구임대단지는 놓여 있다. 치솟는 분당 집값과 무관한 곳. 그저 처지에 맞춰 월세와 보증금이 결정된다. 생계·의료급여 수급자일 경우 300만원 정도 보증금에 월 5만5천원 정도 낸다. 복지급여를 받지 않는 일반 가구라도 1300만원 정도 보증금에 20만원 안 되는 월세를 낸다. 소형 평수이고 들쭉날쭉하긴 해도 보통 보증금 2억원에 월세 50만원 하는 바로 옆 분양 단지만 나란히 두고 봐도 격차가 크다.

단지와 학교 사이 ‘초록색 안전망’

주변 단지가 아무나 살 수 없는 수준으로 가격이 치솟고, 아무나 아닌 누군가로 채워지는 동안 영구임대단지 모습은 한층 도드라졌다. 복도식, 10평 남짓, 주방-거실(겸 안방)-작은방과 화장실 구조, 무엇보다 단지 앞 큼직하게 자리잡은 복지관은 1989년 주택 200만 호 계획에 따라 건설된 영구임대 단지의 전형이다. 가난을 모아 쉽고 효율적으로 복지를 전달한다. 정책적 야심을 전시하듯 드러낸다. 당시에는 꽤 괜찮은 생각으로 여겨졌을 터다. 구름마을을 품은 ○○동 전체 기초생활보장 수급 823가구 중에 754가구가 영구임대단지에 몰려 산다.(2020년 1월 기준)

그리고 그곳에, 김성미와 아이들이 산다. 영구임대단지가 풍기는 위험한 느낌부터 짚었지만 사실 자랑할 거리가 많다. 김성미가 걷는 아파트 단지 사잇길은 아름답다. 차가 다니지 못하는 널찍한 길을 따라 소나무 사이사이 산수유 꽃망울이 곧 터질 듯 멍울져 있다. 길은 학교와 구름마을 단지들을 휘감으며 자연스럽게 아이들 통학로 구실을 한다. “이런 아름다운 길을 낀 학교가 내가 사는 단지 때문에 애들 없어졌다는 얘기를 들으면 정말 마음 아파요.”

구름초 후문에서 시작한 걸음은 지금 아이들이 다니는 구름 중학교와 영구임대단지 쪽으로 향한다. 구름중 통학로와 영구임대단지를 가르는 초록색 안전망이 하늘을 가리며 차양처럼 늘어져 있다. 영구임대 단지 주민이 통학로 쪽으로 병을 던지는 것을 우려해 설치한 안전망이라고 한다. 실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위험은 소문으로 떠다니다가 사실로 굳는다. “단지 분위기가 분당 다른 데랑 비교해보면 많이 낯설고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지면 일단 영구임대단지를 생각해요. 저조차 그럴 때가 있고요.”(김성미) 인정하고 만다. 그래도 아쉬워 덧붙인다. “정작 알고 보면 좋은 어르신도 많은데.” ○○동사무소 쪽 설명도 비슷하다. “동사무소까지 민원이 들어온 사건은 지난해 한두 건 정도였어요. 보기에 좀 불편한 모습이 있기는 해도 실제 사건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다른 단지보다 두드러지게 많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동장)

무엇보다 걱정인 건 그 위험한 듯한 느낌이 그대로 아이들을 향한 낙인이 될 때다. “영구임대단지에 살면 위험한 아이들이라고 너무 쉽게 생각하지만 우리 애들 가난해도 정말 바르게 크고 있거든요. 공부도 성실히 하고 있고요. 저도 엄마예요. 애들이 말도 안 되는 일로 상처받을 상황이면 파르르 해요.”

그래도 잘 버텨내고 있다. “우리 강하거든요.” 생긋 웃으며 김성미가 말한다. 그는 주민 자치 방범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고, 사회복지관에서 봉사활동도 한다. 마을을 좀더 따뜻하게 만들면 활로가 생길 것도 같아서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만난 한 영구임대단지 아이는 정말 사고뭉치 반항아였어요. 제가 혼도 내고 그랬어요.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어느 날 와서 그러는 거예요. ‘아줌마가 우리 엄마였으면 좋겠어요.’”

마을이 따뜻해지고, 아이들이 마음 둘 데를 찾으면 아이와 학교에 대한 인상도, 영구임대단지에 대한 생각도 바뀔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순진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떠날 데 없는, 그저 이만한 집이면 감사한” 그가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2장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김성미의 둘째 딸 현희가 같은 영구임대단지 친구인 미래, 분양단지 사는 나희와 나란히 앉았다. 구름초부터 함께 지냈고, 이제 함께 구름중 2학년이 된다. 현희는 말수가 적지만 일단 말을 시작하면 다부진 표정이다. 초콜릿을 오물거리는 미래는 “활발한 편”이라고 얘기했지만 사실 남몰래 좀 예민한 편이다. 그림 그리기 좋아하는 나희는 말썽꾸러기 남자애들 얘기를 할 때 “어휴” 하고 크게 한숨을 내쉰다. 작아진 학교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엄마 왜 나 구름중 보냈어”

“어릴 때부터 알던 애들이니까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건 좋은데요, 단점은 애들이 저를 너무 잘 알아요. 그게 좀 그래요.” 현희가 작은 학교의 장단점을 생각해본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건너오며 세계가 더 넓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좋지만 또 나쁘다. 사정 다 아는 친구들이라 숨길 것도 없고 편하기는 하다. 그래도 ‘중학교에서는 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몰라’, 그 나이대 품을 법한 환상이 실현되지 않는 학교는 “좀 그렇다”.

구름초와 구름중은 뗄 수 없는 관계다. 구름초를 졸업한 아이들은 대개 구름중으로 가야 한다. 중학교 배정에는 집과의 거리가 가장 중요하고 졸업한 초등학교가 어디냐도 중요한 배정 원칙이다. 구름중으로 와야 할 구름초 아이들 수가 계속 줄고 있다. 애초에 구름중에 보내기 싫어 구름초로 아이들이 오지 않거나 다른 학교로 전학 가기도 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강화영 구름중 졸업생 학부모)고 보는 게 적당하다. 구름중 학생 수는 88명이다. 이웃한 하늘중 학생 수는 641명이다.

‘친구 관계가 좁아진다, 중학교에 가도 나아질 가망이 없다’는 점은, 학교가 축소되기 시작한 이후 전학한 엄마들이 짚는 가장 큰 구름초·중의 약점이기도 하다. 이미정(46)은 지금 고3 올라가는 아이를 초등학교 3학년 때 구름초에서 근처 다른 초등학교로 전학시켰다. 전세 기간이 끝날 시점에 맞춰 이사했다. 벌써 10년쯤 된 이야기이지만 그때도 초등학교 2학년까지 세 반이던 학급 수가 3학년 들어 두 반으로 줄었다. 학교를 떠나기로 한 결정적인 이유다.

그는 “공부만 강조하는 스타일의 엄마는 아니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아이를 예체능 학원에만 보냈다. “아이가 노는 친구들이 너무 한정적이었어요. 두 반 남자애들 해봐야 너무 적으니까. 고학년 되고 중학교 가서까지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죠.” 그때는 생각하지 않았던 전학의 또 다른 이점을 아이가 고3 되는 지금은 하나둘 덧붙여 생각해본다. 구름초-구름중 아이들은 아이가 전학한 학교 아이들에 견줘 공부에 대한 열의가 낮아 보인다. 전학한 학교도 “분당 학구열의 핵심”으로 불리는 내정중이나 수내중보다 경쟁이 치열한 편은 아니다. 다만 영어학원, 수학학원 두 개 정도는 “웬만하면 다닌다”. 구름중에는 학원 안 다니는 애도 많다.

졸업생 엄마들에게도 구름중과 다른 분당 학교들 사이 격차는 아쉬운 점이다. “우리 애는 구름중 졸업하고 회오리바람 몰아 치는 것 같은 고1을 보냈어요. 얘는 그 작은 공간에서 아는 애들이랑만 지내다가 갑자기 넓은 바다로 나온 거예요. ‘엄마, 나 바보 같아. 이렇게 공부 많이 하고 학원 많이 다니는 애들이 있는 줄 몰랐어. 왜 나 구름중 보냈어.’ 그러더라고요. 구름초·중에 참 착한 애들이 가족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긴 한데.”(이선정 구름중 졸업생 학부모)

교과교실제, 혁신학교, 중국어 교육…

그러니까, 구름초·중을 떠났거나 졸업시킨 학부모들이 생각하는 학교 이미지는 대개 이렇다. ‘정작 아이들이 특별히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긴 했는데, 전반적인 교육열은 아무래도 다른 분당 학교보다 부족한 것 같다.’ 올해 38명 구름중 졸업생 가운데 9명이 특성화고등학교로 진학했다. 특수목적고 간 아이는 1명이다. 이웃한 하늘중이 특목고·자사고 12명을 보낸 것(2019년 기준)과 대비된다. 다만 지난해 학교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아이 수는 하늘중학교가 4명인 데 비해, 구름중은 1명뿐이다. “정해진 학업만 경쟁적으로 좇는 학부모가 아니라 아이가 잘 어울리며 자유롭게 자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에게는 구름초·중이 최고의 학교예요. 그런 부모가 이 동네에 얼마 없다는 게 문제죠.”(이미정)

2000년대 중반 이후 시작된 학생 수 감소를 극복하기 위해 학교도 나름대로 노력했다. 구름중은 2010년 혁신학교로 지정됐고 교과교실제도 시작했다. “홈베이스라는 데가 있어요. 각자 큰 사물함이 모여 있는 곳인데, 사물함에 교과서 같은 걸 다 넣어두고, 홈베이스랑 교실을 왔다갔다 하면서 과목에 따라 교실을 찾아가는 거예요.”(예지) 혁신적인 교과교실제를 운영해도 학생 수 감소는 막을 수 없었다. 2010년 640여명이던 구름중 학생 수는 7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중학교 아이들은 꾸준히 중국어 교육도 받는다. “수업 시간에도 시키고 방과후 수업으로도 중국어를 가르치고, 학원 따로 안 보내도 되니까 메리트(이득)가 있죠. 그런데 그 메리트만 보고 다른 학부모들이 학교를 이리로 보낼 리는 없으니까요.”(강화영 구름중 졸업생 학부모)

역시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외국으로 수학여행 비슷한 체험활동을 보내는 ‘글로벌 리더십 캠프’도 학교의 자랑거리였지만 학생수가 줄면서 한 명당 드는 비용과 학부모 부담이 너무 커져 그만뒀다. 외국 학교와 자매결연을 하려던 시도도 흐지부지됐다.

그래도 혁신 교육이 원활한 작은학교라 얻는 이점은 분명히 있다. 교사와 학생 사이에 교과 교육을 넘어 인간적인 관계 맺기가 가능하고, 한 아이 한 아이 신경 쓰며 교실 분위기를 만들어갈 수 있다. 수업 방식도 다양하게 구성한다. 학교 안에서 별다른 불화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이유다. 학교에서 수업 이상의 관계를 쌓아온터라, 학교 구성원들이 학교에 느끼는 소중함이나 애착은 여느 곳보다 크다.

“신경 안 쓴다” “괜히 자존감이 낮아진다”…

‘쪼그라들다 마침내 학교는 사라지게 될지 몰라.’ 그런데도 불안은 매년 반복된다. ‘교육청의 폐교 리스트에 올라 있다더라,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합치기로 했다더라’ 하는 소문이, 사실이 아닌데도 끊임없이 돈다. 경기도 성남교육지원청 쪽은 “학교가 계속 작아져 고민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가당치 않은 소문일 뿐 아직 아무것도 결정한 건 없다”는 입장이다. 교육청도 그저 답답하다. “공립학교이니까 교사들 수준도 다를 바 없고, 오히려 학생당 예산으로 치면 훨씬 더 많은 혜택을 주는 학교인데도 학생 수가 줄어드는 상황이 안타깝습니다.”(박현미 경기도 성남교육지원청 과장) 사실 교육여건만 따지면 구름초·중은 훌륭한 편이다. “공간도 넉넉하고, 선생님들이 학급 분위기를 세세하게 챙길 수 있다. 특별히 모난 아이가 있지도 않아 전반적으로 만족스럽다”고 학교 보내고 있는 부모들은 말한다.

아이들도 폐교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학교가 남아 있어야 가장 좋죠. 없어져도 저 졸업은 하고요. 지금 다른 학교에 가면 난감하잖아요.”(현희) 그저 멀쩡히 정해진 학교에 갔고, 그 학교에 다닐 뿐인 이들이 느끼는 불안은 어디서 유래했을까? 부동산 격차, 교육 격차, 학령인구 감소 같은 어른들의 단어를 떠올리는 건 아이들에게 쉽지 않다. 얼핏 스치는 건 내가 사는 집, 영구임대 단지다. 정작 친구들은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그냥 같이 노는 애들”(나희)이라고 말해준다. 그래도 “영구임대단지 살면 가난한 애들”(미래)이라는 얘기를 어느 틈엔가 들어버렸다. 그런 얘기를 듣거나 떠올렸을 때 현희는 “그냥 신경 안 쓴다”. 미래는 “괜히 혼자 자존감이 낮아진다”.

“그래도 엄마한테 얘기하진 않아요. 부모님 속상할 것도 같고 그냥 아무 말도 하기 싫어져서요.”(미래)

자료: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실, 학교알리미

자료: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실, 학교알리미

3장 다 잊어버린 기억

1996년 강성연(34)은 구름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영구임대 단지에 엄마와 살았다. 아직 뚜렷이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어느 날 학교에 등교하는데 아줌마들이 학교 앞에 몰려 서 있더라고요. 한 아줌마가 그러는 거예요. ‘너 영구임대단지지? 집에 가.’ 그래서 집에 돌아갔어요. 그랬더니 엄마가 ‘왜 왔어?’ 해서, ‘아줌마들이 집에 가래’ 그랬어요. 우리 엄마가 바쁘기도 해서 학교에 온 적이 별로 없었거든요. 근데 그날은 ‘따라와’ 하더니 제 손을 붙들고 학교로 갔어요. 싸움이 크게 났죠.‘ 당신이 뭔데 애를 가라 마라 하냐’고. 그때 풍경이 기억나요.”

매일 아이를 데리러 학교로

벌써 26년째 영구임대단지에 살고 있다. 지금은 딸이 구름초 3학년이 된다. 엄마와 아이가 같은 초등학교다. 한 동네 오래 살다보니, 집 앞 카페에 나오는 5분 새 “4명이나 아는 분을 만났다”. 그 말을 하는데 옆자리 앉은 사람들이 또다시 강성연에게 아는 체를 한다. “저 정말 무슨 정치라도 해야 할까봐요.” 호탕하게 웃는다.

그날, 왜 어른들이 갑자기 집에 가라고 한 것인지 자초지종은 아직도 정확히 알 수 없다. “분위기가 그럴 만하긴 했어요. 계속 임대단지 애들이랑 학교 같이 보낼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오던 때였어요.” 차별의 기억은 차고 넘친다. “선생님이 분단을 나눠줘서 앉고 보면 임대단지 애들끼리 모여 있었고요.” 풀어놓는 이야기는 들을수록 황당하다. “다툼이 있을 때 임대단지 애가 끼여 있으면 ‘너네가 그렇지, 뭐’ 하는 거예요.” 그렇게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돌아보면 억울한 일투성이인데, “성격이 ‘그래? 그럼 뭐 말아’ 하는 편이라 무던히 넘겼다”. 그렇지 못한 영구임대단지 애들은 싸움을 벌이고 과격해졌다. 학교에 찍혔다. 그때 같이 영구임대단지살던 동갑내기가 9명 정도 된다. 그 친구들은 이제 대부분 동네에서 보이지 않는다.

상처 준 사람들 대부분 지웠을, 그 역시 그냥 무던히 넘겼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다시 떠오른 건 아이를 구름초 보내기 직전이었다. “큰애가 1학년 들어갈 때 그 생각을 다시 많이 하게 됐어요. 여기저기 ‘구름초 엄마들이 영구임대단지 애들을 아직도 경계하느냐’ 물어보기도 하고요.” 혹시나 아이한테 무슨 일이 생길까 싶어 학교 일을 적극적으로 떠맡는 엄마가 됐다. “무슨 일이 있으면 제가 바로 옆에 있어줘야 할 것 같았어요. 내가 어릴 때 못 받은 것 주고 싶기도 하고요.” 강성연은 매일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간다. 열성적으로 아이를 돌본다.

다행히 2020년 학교에 눈에 띄는 차별은 사라져 있다. 분단을 가르고, 끊임없이 낙인을 찍는 선생님은 없다. 아직 구름초-구름중에 남아 있는 부모들은 “그래도 아이들은 함께 커야 한다는 의식을 가진 분이 많다”. 거친 차별이 사라진 학교에서 지금 당면한 정말 큰 문제는 임대단지에 아이들이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다. 중학교는 아직 한 학년 당 30% 정도가 영구임대단지 아이들이지만, 초등학교는 한 해가 다르게 입학할 만한 영구임대단지 아이들 수 자체가 줄어든다. 영구임대단지에 사는 구름초 입학 대상 학생(취학통지서 배부 인원)은 2018년 4명에서, 지난해 3명, 올해 1명으로 줄었다.

자료: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센터, 각 학교 누리집 제공

자료: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센터, 각 학교 누리집 제공

차라리 교육열 낮은 지역으로

영구임대의 역사와 관련 있다. 저출산 고령화와 학령인구 감소야 어느 곳이든 마찬가지지만, 속도의 차이는 확연하다.

“1994년 영구임대단지가 들어섰을 때는 굳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수준이 아니라도 소득 수준이 낮은 일반 가구도 많았어요. 아이 있는 가구도 흔했고. 그렇게 들어온 아이들이 나이 들어 집을 나가면, 자연스럽게 노인 부부 가구나 노인 독거 가구가 되죠. 더 큰 원인은 초기 들어온 일반 가구가 빠져나간 자리에 들어오는 대기자 가구가 대개 노인 가구라는 점이에요.”(구름종합사회복지관장) 빈곤이 노인을 중심으로 급격히 쏠리는 한국 사회 전반을 생각해보면, 이해되는 설명이다. 영구임대 단지는 한국 사회 빈곤을 반영한다. 가파른 고령화는 당연하다. 구름마을 영구임대단지 1253가구 가운데 홀몸노인 가구가 409가구에 이르고, 노인 부부 가구가 83가구(2020년 1월 기준)다.

강성연도 ‘이제는 정말 떠나야 할 때인가’ 생각할 때가 있다. 방향은 다른 학부모들과 반대다. 아예 교육열이나 부동산 격차가 덜한 지역으로 이사하고 싶다. “애가 가끔 물어요. ‘엄마 우리 집에는 애들 초대하면 안 돼?’ 안 된다고 말하죠, 집이 너무 좁아서. 근데 애는 다른 단지 친구들 집에 가서 본단 말이에요. 화장실 두 개에 방 서너 개짜리 집들. 우리 애는 학원을 전혀 보내지 않는데, 그게 또 여기서는 되게 이상한 일이잖아요. 애가 저처럼 무던한 편이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하나 하나 상처받겠죠.” 노골적인 혐오의 말들이 그쳐도, 그저 눈앞에 확연히 놓여 있는 격차가 아이에게 상처가 될 것을 강성연은 걱정한다.

“그래서 제가 제일 불편해하는 프로그램이 <슈퍼맨이 돌아왔다>예요. 애들 너무 귀여운데, 나오는 집이며 가구며 전자제품이며 제가 보기엔 다 비싼 것들인데, 그저 평범한 것처럼 나오잖아요. 그리고 우리 집을 보면 한숨 나오는 거죠.” 열 평 남짓, 26년째 그의 집. 긴 시간 쌓아온 세간을 걷어본댔자 여전히 좁다. 평범하다는 것들의 기준이 높아가는 세상에서 집은 점점 더 초라해진다.

4장 ‘지옥 아동센터’라 불리는 곳

구민선은 2010년 구름초 선생님으로 교사 생활 마지막 한 해를 마쳤다. 이미 “아이들은 많이 떠났고 영구임대단지 아이들과 무던한 학부모들 정도가 남아 있던 학교”였다. 학교 선생님이기도 했지만, 그 와중에 틈내어 지역아동센터를 차렸다.

2003년 구름마을 영구임대단지 상가에 자리를 잡았다가 “사실상 쫓겨나” 영구임대단지 아이들이 그나마 걸어서 올 수 있는 근처 ○○프라자 건물에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했다. 2011년 그 자리에서도 밀려나 지금은 아예 다른 동네로 건너가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한다. 이 지역에도 또 다른 영구임대 단지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 시끄럽다, 음식 냄새 난다’ 민원 넣는 상가들 틈바구니에서 영구임대 단지 가까운 틈새 공간을 찾아 다닌다. 그저 꽤 잘사는 동네로만 알려진 이곳에 오히려 더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곳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여기 아이들, 부모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더 심해요. 한 엄마는 ‘여기가 물리적인 환경이 좋은 건 맞지만 차라리 구시가지 반지하 살 때가 더 행복했다’고 얘기하더라고요.” 보라색 패딩을 껴입고 흰 머리칼을 되는대로 묶은 수수한 모습으로, 쉴 새 없이 전화를 주고받다가, 기억을 들려주다가, 아이들을 맞는다. “○○ 어서 와.” “원장님 어제 제가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가지고 집에 갔는데 그래서 다 못했….” “알았어. 어제 못한 거 오늘 다 할 수 있지?”

건지지 못한 아이

초등학교 교사로 살면서 왜 지역아동센터까지 열었을까? 젊은 교사 시절 놓친 아이들 때문이다. “1990년대 초에 보육원 아이들 많은 학교에 발령이 났어요. 정말 공들였고 아이들도 저를 엄마라고 부르면서 따랐어요. 그렇게 애정을 쏟았는데 아이들이 중학교 가고 제 품을 떠나자마자 비행의 길로 접어드는 거예요.” 학교에 묶인 선생으로 한 아이 한 아이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는 자괴감이 컸다. 무력했다. 그때 깨달은 게 또 한 가지 있다. “돌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것도 그때 알았어요. 저를 떠나는 순간 애들은 그냥 세상의 기준에 맞닥뜨려요. 공부요, 학습이 안 되면 결국 문제아로 낙인찍히고 자신감을 잃고 버티질 못하는 거예요.”

아이들 독하게 공부시켰다. 주변 학원 원장들에게 부탁해 센터 아이들 몇몇을 무료로 학원에 보낸다. 문제집과 학습지를 한 꾸러미씩 담아 아이들 손에 쥐여준다. 부모에게 아이를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 매일 메시지를 보내고 상담한다. “저 나름 몸부림치는 거예요. 조기교육, 영재교육 받는 애들 수두룩한 동네에서 이건 너무 힘든 게임이잖아요. 어떤 애들은 우리 센터가 공부 많이 시킨다고 ‘지옥 아동센터’라고 부르기도 한다네요.” 웃지만, 사실은 절박해서 그런 얘기를 버틴다. “그런데 이렇게 발버둥 쳐봐야 아이들 다 건져내지 못해요.”

건지지 못한 영구임대단지 아이를 떠올린다. 할머니랑 같이 사는 ○○. 똘똘한 아이였다. 집에는 늘 동네 노인들이 모여서 술을 마셨다. 안타까워서 책상을 사서 집에 배달해줬다. 사는 풍경을 보고 배달기사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도 한 3~4년 센터를 열심히 다니던 아이가 고학년이 되면서 자기 의지가 생기자 점점 발길을 끊었다. 종일 붙잡아두고 공부시키는 센터보다 동네 형들과 어울리는 게 재밌을 나이였다. 지역아동센터 다닌다는 사실 자체를 부끄럽게 느꼈을 수도 있다. 할머니에게 전화하면 “우리 애 센터 안 보내요”를 협박하듯 말했다. “제가 돈 버는 건 줄 아셨나봐요.” 유일한 보호자마저 등 돌린 상황에서 손쓸 수가 없었다. 아이는 게임에 빠져들고 폐인이 되어갔다. 가장 큰 절망을 느낄 때가 그런 때다. “딱 어떤 순간이 있어요. 할머니든 부모든 아니면 다른 누군가라도 잡아주면 좋겠는데. 그냥 그 순간 잡아주면 우리가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구센터장 표정이 일그러진다.

놓친 아이만 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개천에서 용 난다”는 믿음을 놓을 수 없는 건 용이 되는 아이들이 정말 있기 때문이다. 자랑하고 싶은 친구들을 떠올린다. 할머니와 함께 사는 한 아이는 센터에 오기 전 구름초에서 왕따를 겪기도 했다. 그런 아이가 센터에 오고 공부를 시작했다. 학원을 공짜로 연계해주고 계속 공부시켰다. 대학생이 됐다. “할머니가 은인이라고 하시는데 할머니도 좋은 분이시거든요. 아이가 워낙 성실하다고 소문이 나서 지금은 자기가 공짜로 다녔던 영어학원, 수학학원에서 아르바이트 일감 주겠다고들 난리예요.” 불화로 쪼개진 식구를 가족 최초의 대학생이 되며 화목하게 이어 붙인 아이, 저 혼자 아르바이트해가며 장학생까지 된 아이 이름을 하나하나 짚어 부른다.

자료: 사회복지관

자료: 사회복지관

학교, 마을, 정책이 함께 키운다

“그러니까 결국 아이는 온 마을이 함께 키우는 거라는 말이 흔해도, 맞아요. 학교의 역할, 마을복지의 역할, 정책의 역할이 진짜 잘 어우러져야 해요.” 이가 들뜰 정도로 발버둥 치는 하루하루, 놓치고 붙잡은 아이들 사이에서 30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며 구 센터장이 깨달은 바다. 학교는 공식적으로 아이를 붙들 수 있고 아이들에게는 다른 어른, 다른 친구들의 삶을 관찰할 수 있는 공간이다. 다만 교사의 역할은 지속적이기 어렵고, 관료 조직의 한계를 벗어나기 쉽지 않다. 엄마들조차 학교 선생님에게는 자기 처지를 드러내기 힘들어한다. 지역아동센터 같은 복지기관은 조건만 허락한다면 한 아이를 10년 넘게 지킬 수 있고 한층 밀착해 힘든 가족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다만 아무런 공식적인 권한이 없다.

그리고 정책. “제가 임대단지만 찾아다니지만, 정말 이렇게 모아두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애들이 사는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을 보고 배울 기회 자체를 박탈해요. 그나마 학교가 있는데, 학교마저 고립되면 아이들은 어디서 다른 삶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까요.”

자료: 동행정복지센터

자료: 동행정복지센터

5장 상처가 되고 위로가 되고

영구임대단지 학부모 김성미가 다시 구름초로 시선을 돌린다. 남들보기 우스운 학교라도 이 학교에서 아이 자라는 걸 보면서 뭉클했던 순간이 많다. 그중 하나. 첫째가 구름초 3학년 다닐 때다.

“애가 발달장애가 있는 친구를 무척 챙겼어요. 구름초에는 장애아동이 다니는 특수학급이 있거든요. 밥 먹을 때도 뛰노는 시간에도 그 친구 옆에 짝꿍처럼 붙어 다녔는데, 선생님이 우리 애힘들까봐 걱정할 정도였죠. 그래도 그냥 두고 보기로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집에 울면서 왔어요. ‘왜 그래?’ 놀라서 물었죠. 알고 보니, 발달장애 있는 친구가 밖에서 놀다가 조금 늦게 들어온 모양이에요. 그러니까 다른 아이들이 ‘왜 그 친구 제대로 못 챙겼느냐’고 우리 딸한테 뭐라고 했나봐요. ‘애들이 너한테 뭐라고 해서 속상했구나. 그러니까 그 친구 하는 거 다 책임질 필요는 없어’ 하고 제 딴에는 토닥여주려고 했어요. 근데 애가 그러는 거예요. ‘아니야, 엄마. 나는 애들이 그 친구를 이해 못해준 게 슬퍼. 그 친구는 그냥 머리가 조금 아플 뿐이야. 다 같이 친구야.’”

“다 같이 친구야” 한 번 더 읊조리고 김성미가 덧붙인다. “애들은 어른을 그렇게 가르쳐요. 어른들이 상상도 못한 걸 다른 친구랑 어울리면서 배운 거예요.”

애들은 어른을 가르친다

발달장애가 있는 셋째를 구름초에 보내는 박민영에게 학교는 특별히 소중하다. 그 역시 “아이 키우려면 다른 곳으로 가라는 부동산 얘기를 듣고” 첫째와 둘째는 근처 ◇◇초등학교에 보냈다. 장애 있는 늦둥이 셋째에게는 여지가 없었다. ◇◇초에는 특수학급이 없다. 아이 상태와 다른 아이들에게 미칠 영향을 고루 고민하고 상담한 끝에 장애인 학교가 아닌 일반 학교인 구름초에 보내기로 했다. 아이는 올해 구름중으로 간다. 구름중도 특수학급을 운영한다. “아이가 다른 친구들 보고 모방하고 배우면서 좀더 나아지기를 바랐어요.”

그에게도 뭉클한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짓궂은 남자애가 제 아이를 괴롭힌 적이 있었어요. 애들을 혼내려는 생각보다는, 그래도 옳고 그른 행동을 알려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았죠. 선생님과 상의해서 편하게 설명해줬어요. 좀 재미도 섞어서 아이들 언어로요. 그냥 그렇게 그 일은 지나갔죠. 근데 학년 마치고 나서 선생님께 듣고 알았어요. 그때 아이 괴롭혔던 애 중에 리더 격인 아이가 그날 이후 우리 애를 누구보다 잘 챙겨주고 있었다는 거예요. 다른 남자 애들도 그 친구 따라서 다 제 아이 친구 하겠다고 나서주고. 아, 정말 여기 애들은 순수하고 착하구나, 뭉클했어요.”

박민영의 아이는 올해 중학교에 올라간다. 그때 그 친구들과 구름중에 입학하게 돼 마음이 놓인다. “학교라는 게 가고 싶고 즐겁고 행복하고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서 살아가는 걸 배우는 곳 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박민영에게, 영구임대단지 토박이 강성연은 오래전 상처를 얘기한 적이 있다. 1990년대 구름초에서 겪었던 영구임대 단지를 향한 노골적인 차별의 기억을 평소 말투처럼 대수롭지 않게 읊었다. 사는 곳으로 분단을 가르던 선생님, 영문 모른 채 집으로 쫓겨오던 날… 같은 구름초 학부모래도 첫아이 학교 보내는 강성연에게 늦둥이 엄마 박민영은 스무 살 가까이 나이 차이 나는 왕언니다. “그냥 그런 말을 생각나서 했는데, 언니가 너무 깜짝 놀라는 거예요. 그러더니 그러시더라고요. ‘내가 미안하다. 그때 내가 여기 부모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대신 사과하고 싶다.’ 사실 지금 다른 임대 단지 사는, 언니보다 살짝 나이 많은 어른들이 그때 저한테 그렇게 하셨던 부모들이에요. 그걸 언니가 알고 대신 사과하신 거예요. ‘다 괜찮다, 다 잊었다’ 생각했는데, 저도 그게 아니었나봐요. 언니한테 사과받는 순간 오랫동안 꾹 참고 살아왔던 게 한꺼번에 위로받는 느낌이었어요.”

각자에게, 상처였지만 또한 위로의 공간인 곳도 다만 학교다.

기억하고 풀어놓고 위로하는 이들이 선 도시에 어스름이 찾아든다. 지하철 역 주변 상가 건물 학원과 스터디카페를 쫓기듯 걸어 들어가는 아이들이 눈에 띈다. “상급반 수준이면 초등학교 때 토플을 시작하고, 고등학교 수학을 푼다”는 엄마들 얘기가 아이들 발걸음 위로 겹쳐 떠오른다. 신분당선 개통 호재와 2019년 부동산 가격 급등 속에 한층 업그레이드된 동네 집값은 다행히 아직 그 수준을 유지한 채 부동산 곳곳 붙어 있다. 강남 가는 버스가 수시로 멈추고 출발하는 정류장 뒤편 과일가게에서 하나라도 더 싱싱한 과일을 집으려는 주민들이 무리 지어 허리를 숙인다. 앞선 쪽을 따라잡고 뒤처진 쪽에 따라잡히지 않기 위해 모두가 부지런하다. 평범히 부지런한 일상이 맞부딪혀 빚은 더할 수 없이 평범한 신도시 풍경 속에, 아파트 숲 한복판 과소학교만이 생뚱맞고 기이하게 놓여 있다.

평범한 신도시 풍경 속 기이한 학교

떠나는 아이들, 작아지는 학교, 고립되는 단지. 구름마을만 겪는 유난히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다. 하천ㄹ 건너 △△마을에도,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인 ○○마을에도 같은 고민을 하는 임대단지 옆 학교가 있다. 서울에는 이미 그런 채 사라진 학교가 있고, 새로 지어진 신도시에서는 구름초의 30년 굴곡을 단 몇 년 만에 압축해서 겪는 학교가 나타나기도 한다. 전국 곳곳 저마다 긴 고민과 한숨을 담은 구름초·중이 펼쳐져 있다.

성남=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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