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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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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놀고 뭐하니? 방에서 놀아요!

‘집콕 생활’ 시대, ‘방구석 몸놀이’로 어린이 놀이권을 보장하라
등록 2020-05-02 07:02 수정 2020-05-07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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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놀면 뭐 하니?’

엄마와 아빠의 잔소리. 언제까지 방구석에서 놀기만 할 거냐고 매일 타박이다. “공부해.” “숙제해.” “책 봐.” 말로, 카카오톡으로, 눈빛으로 끊임없이 무언가 하기를 지시한다. 엄마와 아빠의 불안한 마음을 읽었는지, 요즘엔 희한한 광고도 많아졌다. ‘홈스쿨링 서비스’ ‘방구석 시사퀴즈 이벤트’. 우리의 학습 손실을 줄이고 ‘슬기로운 집콕 생활’을 시키라는 교육업체들의 말에 엄마 아빠의 눈동자는 급격히 흔들린다.

역대급 긴 방학, 역대급 지루함

우리라고 집에서 노는 게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처음엔 코로나19로 개학이 “1~2주 연장될 때까지만 해도 좋”(홍지효·초6)았다. 실컷 늦잠 자고, 온종일 학교·학원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되고, 엄마 아빠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방학이 두 달을 넘어가면서 이렇게까지 지루해본 적은 처음”(홍서림·초4)일 정도로 무척 심심해졌다.(사진❶ 참조)

역대급으로 기나긴 방학을 끝내고 온라인 개학(1~3학년 4월20일, 4~6학년 4월16일)을 해도 ‘집콕’ 생활은 똑같다. 넉 달 넘게 학교를 못 가니, 집콕이 좋다던 친구도 “친구들이 보고 싶은 마음”(손재인·초2)이 굴뚝같아졌단다. 학원 친구는 만나도, 학교 친구는 못 만나는 삶의 아이러니라니.

우리, 5월에는 학교에 갈 수 있을까. 돌아가는 모양을 보니 틀렸다. 잘해야 5월 중순 넘어 중·고등학교 3학년부터 등교한다고 하니 말이다. 이때 학교 돌봄이 필요한 초 1, 2학년도 함께 등교시키자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반대도 많다고 한다. 모든 사람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억울한 기분이 자꾸만 든다. 언젠가 코로나19가 지나가더라도 또 다른 ‘집 밖 위험’이 생기겠지, 미세먼지 같은.

‘코로나 뉴노멀(시대 변화에 따라 떠오르는 새로운 표준)’ 시대가 열린다던데, ‘놀이 뉴노멀’도 필요하다. ‘집에서 뭐 하니, 놀아야지.’ ‘집콕 생활까지 슬기로워야 하나, 재밌으면 되지.’ 장기 집콕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어린이들이 이제 집에서라도 ‘놀이 본능’을 충족할 수 있도록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

1시간도 못 노는 ‘비어린이적인 현실’

어린이들의 놀 권리를 명시한 ‘유엔 아동권리협약 제31조’(놀이권)의 적용 범위에는 집 안과 밖의 경계가 없다. 9~17살이 평일에 집에서든 밖에서든 취미·여가로 보내는 시간이 1시간이 채 안 될 정도인 우리나라의 ‘비어린이적인 현실’(201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아동종합실태조사>)은 이제 끝낼 때가 됐다.

그럼 집에서 무얼 하고 놀까. 지금까지 게임, 유튜브 동영상 시청,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은 집 놀이의 평균치이자 최대치였다. 혼자서도 재밌게, 오랫동안 시간을 보낼 수 있으므로. “숙제 다 하고 마음 편히 유튜브 볼 때”(차승우·초5)의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학습과 놀이의 균형을 찾아가는 놀이 뉴노멀 시대에는 우리도 ‘손가락 놀이’와 ‘온몸 놀이’의 균형을 찾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게 부모와 세상으로부터 놀이권을 인정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니 말이다. 집에서 휴대전화와 TV를 좀 덜 보고 몸으로 좀 더 놀겠다는 ‘방구석 몸놀이’의 다짐을 우리 스스로 해야 한다.

처음엔 유치해 보여도, 하다보면 몸놀이는 무척 신난다. “아빠가 일찍 들어와서 코코밍 놀이랑 악당 놀이 할 때”(이지민·초1), “종이에 단어를 써놓고 그것을 내가 몸으로 표현하고 가족이 맞히는 게임을 할 때”(손병찬·초3) 큰 재미를 느낀다는 친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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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 번만 엄마 아빠와 몸으로 놀아보자

유익한 점도 많다. 놀이는 어렵게 표현하면, ‘일상에서 벗어나 목적 없이 자발적인 활동을 하며 재미를 얻는 과정’이다. 지식과 경험을 얻기 위한 ‘체험학습’이나 규칙에 따라 반복 훈련하는 ‘운동’과는 전혀 다르다. 자유롭게 모험하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는 역동적인 과정에서 우리의 몸과 마음과 뇌는 행복해진다. 즉 활발한 몸놀이로 우리 신체는 고르게 발달하고, 지능과 감성지수는 올라가며, 창의성·사회성·도덕성·윤리성 등은 커진다.

“엄마 아빠랑 노는 게 별로”(김지혁·초5)라는 ‘혼놀족’도 있지만, 방구석 몸놀이의 ‘찐재미’는 가족과의 뒤엉킴에서 나온다. 어색함을 딛고 엄마 아빠와 한 번만 몸으로 놀아보자. 우리 마음이 하늘을 나는 것처럼 고조됐다가 땅으로 푹 커지는 듯한 감정 변화를 엄마 아빠와 함께 겪으면서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또 신체·감정을 조절하고 규칙을 지키는 법을 알려주는 엄마 아빠의 말도 평소처럼 일방적인 훈계로 들리지 않는다.

이유가 있단다. “아이들은 몸으로 부모와 부대끼며 애착 관계를 경험하게 되고, (비언어적인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기도 해요. 그럴 때 아이들은 안정감과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아요. 이렇게 몸으로 겪은 긍정적 체험은 ‘회복탄력성’을 만들어 아이가 나중에 커서 (힘들 때) 비교적 쉽게 회복하게 돕지요.”(박지성 ‘굿네이버스 좋은마음센터’ 연극·표현예술 치료사)

슬슬 방구석 몸놀이로 몸이 달아오를 때쯤, 엄마 아빠는 찬물을 확 끼얹는다. “위험해” “하지 마” 하며 더 이상의 모험을 허락하지 않는다. 물론 다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지만, 놀이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데는 ‘거친 신체놀이’도 아이에겐 좋다.(사진❷ 참조) 대신 엄마 아빠가 곁에서 안전하게 같이 놀아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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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라고 몸놀이를 더 잘하진 않지만

특히 여자아이도 활발한 몸놀이를 좋아하고, 필요로 한다. “(신체 공격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남자아이들과 달리) 여자아이들은 서로 흉보거나 일부러 못되게 구는 ‘관계적 공격’을 한다. (중략) 이런 패턴을 깨는 데 신체놀이가 도움을 줄 수 있다.”(<아이와 몸으로 놀아주세요>, 앤서니 T. 디베네뎃 외)

아빠와의 몸놀이가 재밌을까, 엄마와의 몸놀이가 재밌을까. “아빠 몸놀이 효과는 엄마 몸놀이의 3배 이상”(<아이의 모든 것은 몸에서 시작된다>, 김승언)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아빠와 몸으로 놀 때 더 에너지가 끓어오른다. 힘이 더 세고, 엄마처럼 살살 봐주지도 않는 아빠는 도전하고픈 대상이다. 물론 아빠라고 몸놀이를 다 잘하는 건 아니다. 엄마와의 몸놀이가 더 흥미진진할 때도 많다.(사진❸·❹ 참조)

방구석 몸놀이는 나이가 중요하다. 근력, 순발력, 유연성, 규칙 이해도에 따라 할 수 있는 놀이가 다르다. 연령 발달에 맞춰 “내 몸으로 할 수 있을 듯 말 듯, 내가 규칙을 이해할 듯 말 듯”(이수정 ‘놀이하는 사람들’ 대표)한 놀이를 정하는 게 진리다. 너무 시시하거나 어려우면 흥미가 안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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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아이들은 가벼워 잘 다룰 수 있고 형형색색 예쁜 ‘풍선놀이’를 좋아한다. 풍선을 실로 거실에 매달아 샌드백처럼 치기, 바람 빠지는 풍선 쫓아가기, 보자기로 풍선 띄우기 등이 대표적이다.(사진❺ 참조)

전래놀이인 ‘여러 가지 씨름’도 좋은 맨몸놀이다. 손가락으로 힘을 겨루는 손가락씨름만으로도 흥겹다.(사진❻ 참조) 엉덩이씨름, 눈씨름, 머리카락씨름, 손바닥씨름 등으로 발전시킬 수도 있다.

‘신체 자 놀이’는 초등 1·2학년이 흥미를 느끼는 놀이다. 아이의 손뼘을 엄마나 아빠의 손뼘에 대고 “3배” “4배” 하고 크기를 비교한다. 그러고 나서 서로의 손뼘에 맞는 물건 구해오기 내기를 한다. 리모컨, 밥주걱, 인형 등 모든 물건이 가능하다. 머리, 다리, 발 등으로 신체 부위를 바꿔가며 놀면 된다.

상상력이 풍부해지는 초등 3·4학년은 ‘상상의 공놀이’로 한나절을 즐겨보자. 아이가 무게와 크기, 모양을 상상해 엄마 아빠에게 던진다. 공뿐 아니라 텔레비전, 의자 같은 물건을 주거니 받거니 한다. 놀이에 흠뻑 빠진 아이들은 무거운 물건을 받을 때 자기도 모르게 소리 지르기도 한다. 던지는 동작만으로 물건을 맞히는 놀이를 할 수도 있다.(사진❼ 참조)

우리가 좋아하는 몸놀이부터 맞혀봐

주도권을 쥐려는 초등 5·6학년은 ‘어둠 속 여행’을 즐긴다. 눈을 가린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거실, 주방, 안방 등 집 구석구석을 여행시킨다. 엄마 아빠가 물건을 만지게 하며 어느 곳에 왔는지 맞히게 한다. 역할을 바꿔도 아이들이 좋아한다.

신체 변화가 시작된 뒤 부모와 눈맞춤도 힘들어하는 고학년 여자아이에게 천천히 다가가는 몸놀이도 있다. 서로 의자에 마주 보고 앉는다. 아이가 편안함을 느끼도록 무릎은 닿지 않도록 한다. 종이를 아이 얼굴 앞에 두고 매직펜으로 아이 얼굴을 그린다. “내가 이렇게 못생겼어?”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아이도 곧 긴장을 푼다. “내가 한번 그려볼게” 하며 엄마 아빠의 얼굴도 그려보겠다고 나서면 대성공이다.

글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사진·모델 이승준 기자 가족
몸놀이 할 때 주의할 점은
시작과 끝은 ‘야옹’ ‘멍멍’



❶ 방에 위험한 물건이 없는지 놀이 전 점검한다.
❷ 무한 반복의 늪에 빠지지 않게 시작과 끝을 알리는 구호를 만들라.
❸ 승부욕 강한 고학년과 놀 때는 과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규칙을 정한다.
❹ 아이의 놀이 흐름은 30~60분이다. 식사 직전, 자기 직전은 피하라.
❺ 짧게 5분씩 여러 번 놀기보다, 한 번에 30분 이상 ‘푹’ 놀아라.
❻ 아이 호흡에 맞춰 천천히 분위기를 고조한다. 갑자기 아이를 덮치지 말라.
❼ 아이가 괴로워할 때까지 간지럽히지 않는다.
❽ 아이가 부모의 배 위로 뛰어오르지 않도록 한다. 몸의 장기는 약하다.
❾ 아이가 좋아하는 동작을 반복해서 계속 웃게 하라.
❿ 엄마 아빠도 놀이를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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