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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뭐야구] 나비효과 0.001

공인구 반발계수 0.0037 이상 높아진 2021 프로야구, ‘장타 풍년’ 될까
등록 2021-04-12 07:19 수정 2021-04-14 01:54
2021시즌 프로야구 공인구의 반발계수는 2020년보다 높아져 ‘장타주의보’라는 말이 나온다. 연합뉴스

2021시즌 프로야구 공인구의 반발계수는 2020년보다 높아져 ‘장타주의보’라는 말이 나온다. 연합뉴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4월1일 단일 경기 사용구(공인구) 1차 수시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프로야구 시즌 개막에 앞서 으레 하는 일이다. 공 둘레나 무게는 변함이 없다. 한 가지는 궁금했다. 지난해와 비교해 반발계수 변화가 있는지다. 반발계수는 두 물체가 충돌할 때 되튀어나가는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다.

2021시즌 프로야구 공인구(스카이라인스포츠 AAK-100) 반발계수는 평균 0.4190으로 조사됐다. 합격 기준(0.4034~0.4234)을 충족한다. 2020년 1차(0.4141), 2차(0.4153) 조사와 비교하면 0.0037~0.0049 정도 높아졌다. 타고투저(타자의 타율과 홈런 개수는 증가하고 투수의 자책점은 높아지는 현상)를 완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공인구 반발계수 합격 기준을 낮춘 2019시즌 마지막 3차 검사(0.4105) 때보다는 0.0085 더 높아진 수치다.

내친김에 2018시즌 공인구 반발계수도 찾아봤다. 2018년은 타고투저가 절정에 이른 시즌이었다. 당시 1차 검사(3월 말) 때는 0.4198, 2차 검사(6월 말) 때는 0.4176, 3차 검사(9월 말) 때는 0.4286이었다. 2018시즌 반발계수 기준치는 0.4134~0.4374. 경기구로 쓸 수 없는 불량 공은 없었지만 이른바 ‘탱탱볼’ 논란은 있었다. 빗맞았다 싶은 것도 넘어가고, 방망이가 부러져도 넘어가는 공이 많았다. 오죽하면 엉덩이를 빼고 엉거주춤 쳤는데도 넘어가는 타구가 있었을까.

반발계수 0.001 늘면 타구 비거리 20㎝↑

2018시즌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올해는 공인구가 하나로 통일된 2016년 이후 반발계수가 두 번째로 높은 시즌이다. 반발계수는 타구 비거리에 영향을 미친다. 보통 야구공의 반발계수가 0.001 높아지면 타구 비거리는 20㎝가량 더 늘어난다고 한다. 단순히 올해와 지난해의 공인구 반발계수 조사만 놓고 보면 0.6~1m가량 비거리가 더 늘어난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지난해 담장 앞에서 잡힌 공이 올해는 담장을 넘기는 홈런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장타주의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당장 SSG 랜더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개막전(4월4일)만 보더라도 펜스 거리가 짧은 인천 SSG 필드에서 양 팀 합해 총 6개 홈런이 터졌다. 에이스 맞대결이었는데도 결과가 그랬다.

물론 타고투저를 섣불리 예단할 수는 없다. 타고투저 현상은 복합적 결과물이다. 심판들의 스트라이크존도 한몫한다. 바깥쪽 공을 안 잡아주거나 상하 폭을 좁게 잡아주면 투수들의 공은 한복판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타자들의 타격 기술과 힘이 좋아진 요즘이라면 영락없이 넘어간다.

앞서 언급한 2018시즌은 ‘타자는 살고 투수는 죽는’ 극강의 타고투저 시즌이었다. 반발계수는 물론이고 스트라이크존, 그리고 발사각도와 어퍼스윙(배트를 올려 치듯이 휘두르는 것)이 만들어낸 ‘장타 풍요 시대’였다. 당시 리그 장타율은 0.450으로, 1982년 KBO리그 출범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리그 홈런 수(1756개)도 역대 최다였고, 40홈런 이상 친 타자만 5명이었다. 이 또한 종전 기록(1999년 4명)을 갈아치웠다.

타자들의 환성이 곳곳에서 터지는 가운데 투수들의 곡소리가 울려 퍼졌다.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 중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선수가 단 한 명(두산 조시 린드블럼 2.88)에 불과했다. 블론세이브(세이브 상황에 등판한 투수가 상대 팀에 동점이나 역전을 허용하는 것)는 188회로 역대 제일 많이 나왔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이어진 타고투저 효과는 단순 ‘기록 풍년’으로만 국한되지 않았다. 자유계약(FA) 선수의 몸값을 올리는 요인이 됐다. ‘커리어 하이’(가장 잘했던 시즌) 성적을 찍는 선수가 많아진 데 따른 나비효과였다. 좋은 성적표를 받아든 타자는 타자대로, 타고투저 속에서도 빛난 투수는 투수대로 몸값이 치솟았다. 리그 흥행을 위해 공인구 반발계수를 일부러 높인다는 의혹마저 있던 터에, 의도치 않게 구단들 부담만 가중된 꼴이 됐다. 더불어 1~2점을 귀하게 여기는 세밀한 작전 야구도 사라지면서 리그 다양성이 실종됐다. 물론 3년 연속(2016~2018년) 800만 관중이라는 과실은 땄지만 말이다.

거물급 새내기 투수, 잘 버텨낼까

안팎의 우려 속에 KBO리그는 2019시즌 반발계수를 낮춤으로써 타고투저 완화를 시도했다. 2019년 리그 장타율은 2013년(0.388) 이후 처음으로 3할대(0.385)를 기록했다. 전년보다 14.4% 줄어든 수치. 리그 홈런 수는 1014개로 전년과 비교해 무려 42.2% 줄었다. 1년 만에 타자들의 기술이 퇴보했을 리 만무. 다분히 ‘고의로’ 공인구 반발계수를 줄인 영향이라고 하겠다. 코로나19로 개막이 늦었던 2020년 리그 장타율은 다시 4할대(0.409)로 돌아왔다.

투고타저 분위기 속에 2019년 정우영(LG 트윈스), 2020년 소형준(KT 위즈) 등 신인왕은 고졸 새내기 투수 몫으로 돌아갔다. 비로소 신인 투수들이 뿌리내릴 토양이 만들어졌다고 하면 과한 해석일까. 2021년에는 장재영(키움 히어로즈), 김진욱(롯데 자이언츠), 이의리(KIA 타이거즈) 등 2002년생 거물급 고졸 신인들이 등장했다. 2018시즌 이후 제일 높아진 반발계수가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경기가 계속 진행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2021시즌 반발계수를 줄인 공인구를 사용한다. 코로나19로 단축 시즌(60경기)을 치른 2020년은 예외로 치고 2019시즌 무려 홈런 6776개가 터지면서 ‘탱탱볼’ 논란이 거셌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한 독립 연구기관에 의뢰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1년 공인구로 타격하면 종전보다 비거리가 1~2피트(30~61㎝)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포츠 전문 매체 <애슬레틱>은 “미미한 차이 같지만 비거리가 3.3피트(1m) 늘 때마다 홈런이 10% 증가하는데 새 공인구를 사용하면 예년보다 홈런을 약 5% 줄일 것”이라고 했다.

뜬공이 홈런 되고, 질 경기를 이기는

<애슬레틱>의 예측을 2021년 KBO리그에 적용하면 홈런이 5~10%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가능하다. 2020년 KBO리그 총 홈런 수는 1363개(경기당 1.89개). 1차 조사 때와 같은 반발계수가 유지되면 리그 홈런 수가 1500개(경기당 2.08개) 가까이 치솟을 수 있다. 2018년까지는 아니더라도 2016년, 2017년과 비슷한 현상이 빚어질 수 있다. 메이저리그에 앞서 대만 프로야구(CPBL)도 2020시즌 도중 공인구 반발계수를 낮췄다.

단지 0.001 혹은 0.002~0.003의 차이일 뿐이다. 그런데도 뜬공과 홈런의 투타 희비가 갈리고 경기의 승패를 바꿔버릴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리그 전체의 본성마저 뒤흔들 수 있다. 국가 정책도 비슷할 것이다. 소소한 변화를 기대한 시장 개입이 의도치 않게 큰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것을 우리는 많이 봤다. 그래서 0.001, 0.002의 미세한 변화도 신중해야만 한다. 야구든 삶이든 예측을 벗어나는 불규칙 바운드는 제법 많고, 어느 순간에는 통제마저 불가능한 지경까지 몰리니까.

김양희 <한겨레> 문화부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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