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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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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다!

1·2층을 도시 공급 가스보일러로 바꿨네
등록 2021-04-12 07:25 수정 2021-04-14 01:55
마을회관 앞에 새로 설치된 액화석유가스(LPG) 저장소. 이곳에서부터 가스 배관을 따라 집집이 가스가 공급된다.

마을회관 앞에 새로 설치된 액화석유가스(LPG) 저장소. 이곳에서부터 가스 배관을 따라 집집이 가스가 공급된다.

읍 근처 마을로 이사 오기 전, 우리 부부가 가장 크게 기대한 변화는 바로 가스보일러였다. 이곳 남해에는 2020년부터 읍 지역을 중심으로 액화석유가스(LPG·엘피지) 배관 설치와 가스 공급 사업이 진행돼, 현재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다. 기름보일러를 쓰던 집들이 이제는 엘피지 가스보일러를 쓸 수 있게 됐다. 보일러 교체를 원할 경우 가구당 자부담금은 최대 100만원. 새로 이사 온 마을도 읍 외곽인지라, 다행히 해당 사업 범위에 포함됐다. “드디어 기름보일러에서 벗어날 수 있다니!” 별다른 고민 없이 우리도 가스보일러로 교체 신청을 했다.

도시를 떠나 시골로 이주한 뒤 불편함 중 하나는, 더 이상 도시가스를 쓸 수 없고 기름보일러를 써야 하는 것이다. 기름보일러는 도시가스보다 훨씬 난방비 부담이 크고, 기름이 떨어질 때마다 주유소에 전화해야 한다. 남해에 내려와 처음 보일러에 기름을 넣은 날, 한 통을 가득 채우지도 않았는데 30만원이나 드는 것을 보고 충격받았다. 그날 채워둔 기름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악몽마저 꾸었다. 집 안에서도 패딩점퍼를 입고 생활할 정도로, 남해에서 보낸 지난 두 번의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그러니 100만원을 기꺼이 내고서라도 무조건 기름보일러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우리 집 차례가 됐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우리 집은 이층집이라, 각 층의 보일러를 교체해야 하니 200만원을 내야 한다고 했다. 게다가 2층 보일러 교체에는 추가 비용이 들었다. 예상치 않게 배로 커진 금액에 보일러를 교체할지 말지 고민이 들었다. 보일러 기사님 말을 들으니, 기대한 만큼 난방비 절감 효과가 그렇게 크진 않아 보였다. “이건 도시가스가 아니에요. 도시에서처럼 편하게 쓰시면 안 돼요. 요금 폭탄 맞아요.”

정말로 그랬다. 2층에는 개별 엘피지 가스통을 쓰는 가스보일러가 이미 설치됐는데, 기름보일러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사를 오고 나서 한동안 일몰 뒤 한두 시간 보일러를 돌렸더니 겨우 열흘간의 난방요금이 10만원 넘게 나왔다. 당연히 기름보일러보단 가스보일러가 더 저렴하고 좋다고만 생각했는데, 그건 우리가 익숙하던 도시가스를 기준으로만 생각한 것이었다. 비싼 고지서를 받고서야 부랴부랴 인터넷 검색을 했다. 생각한 것과는 반대로, 기름보일러가 가스보일러보다 효율·비용 측면에서 차라리 더 낫다는 의견이 더러 보였다.

고민 끝에 결국 1·2층 보일러를 모두 새로운 가스보일러로 바꿨다. 오래된 보일러는 어차피 새로 바꿔야 하고, 군에서 진행하는 엘피지 배관망 사업이 끝난 뒤 별도로 가스보일러를 설치하려면 더 큰 비용이 든다고 했다. 대신 보일러 설정 온도를 아주 많이 낮추고, 장롱 안에 넣어둔 전기장판과 라디에이터를 다시 꺼냈다. 그래도 ‘급탕’ 버튼을 누른 뒤 10여 분은 기다려야 온수가 나오던 기름보일러 시절과 달리, 이제는 매일 언제든 따뜻한 물이 나온다. 전기주전자로 물을 끓여 머리를 감던 남편은 이제 온수로 편하게 샤워하게 됐으니, 시골에 내려온 뒤 가장 호화스러운 때라며 호들갑을 피웠다. 새로운 가스계량기가 가동된 지 한 달, 떨리는 마음으로 첫 번째 고지서를 기다리고 있다.

남해=글·사진 권진영 생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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