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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시경의 지성미를 내가 왜 몰랐지

10년 만에 음반 《ㅅ(시옷)》 낸 날, ‘그에게 가는 길’에 훅 미끄러져 들어가다
등록 2021-07-04 11:48 수정 2021-07-05 01:46
유튜브 갈무리

유튜브 갈무리

“한잔할까요?”라고 말하더니 페트병을 흔들어 뚜껑을 땄다. 벌컥벌컥 들이켜는 우유 빛깔 음료는 막걸리. “아, 시원하다.” 막걸리의 걸쭉한 목넘김이 그대로 느껴졌다. 댓글창을 보면서 동시 접속자 4천여 명과 족발식당 품평만으로도 30분이 물 흐르듯 흘렀다. 이 ‘지성미’를 내가 왜 몰랐지.

‘버터왕자’ ‘성발라’ 등으로 불리는 발라드 본좌 가수 성시경에 최근 입덕했다. 성시경이 새로 시작한 유튜브 채널 ‘성시경’을 구독하고 그가 ‘라이브방송’(사진)을 열면 같이 술을 준비하고 깔깔댄다. 사실 성시경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똑똑한데 똑똑한 척한다고 생각했다. 소신인데 까칠하다고 느꼈다. 그가 노래 <내게 오는 길>로 데뷔한 지 20년이 지난 2021년 5월21일 이후, 나는 그에게로 훅 미끄러졌다.

5월21일은 그가 10년 만에 음반 《ㅅ(시옷)》을 낸 날이다. 음반만 내면 상위권에 진입하던 ‘성발라’는 10년 만에 새 음반을 내고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감 떨어졌다. 음반시장을 전혀 모르겠다”며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음원만 발매되는 시장에서 음반을 발매하느라 막대한 돈을 쓴 자의 걱정이었다.

2년간 준비해 모아 담은 14곡은 새삼 좋았다. 첫 타이틀곡을 댄스곡으로 정한 의외의 선택이 사실 입덕 계기가 됐다. 출퇴근길 동반자 유튜브 메인 화면에 핑크색 슈트를 입은 성시경이 춤추는 듯한 모습에 ‘뭐 하는 거지?’ 의아함으로 클릭했다. 엇, 입을 틀어막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봤다. BTS 같은 춤은 아니었다. 그의 말대로 “멈추지 않고 계속 노력하는” 사람의 진심, ‘작전주로 음반을 흥하게 하리라’는 20년차 가수의 수줍은 작심 같은 것이 느껴져 응원하게 되는 춤이랄까.

하나를 봤더니 계속 추천 영상이 떴다. ‘댄스가수 변신 과정’을 찍은 예능 프로그램 클립에서는 운동화가 아프다고 투정하며 열심이다. 20년간의 히트곡을 이어 부르는 ‘딩고’ 동영상에서는 군복무 시절에 불렀던 군가까지 끼워 넣는 센스. 성시경의 레시피 설명은 묘사는 차지고 내용은 실용적이다. 재료를 얼마나 넣을지에 대해 전분 3숟갈이 아니라 “끈적끈적 뻑뻑한 느낌이 들 때까지 넣으세요” 한다. 떡국에 넣을 소고기는 아껴서 다음 요리에 넣는다. 뭐랄까, 이렇게까지 버릴 것이 없는 남자였다니.

‘관련 동영상’의 세계는 끝이 없어서 나는 그가 데뷔한 2001년부터 2021년까지 20년을 넘나들며 최근 그의 뛰어난 성인지 감수성까지 조우했다. “술 취한 여자사람친구를 데려다주는데 자꾸 모텔 거리로 왔다갔다 하는데 이거 그린라이트인가요?”라는 질문에, 모든 패널이 “당연히 모텔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와중에 “그건 상대방에게 정확히 물어봐야 한다”고 답했다. 정답이다.

라이브방송에서 “인간적으로 존경한다”는 한 청년의 댓글에 그는 덤덤하게 말했다. “○○씨, 방송에서 보여지는 모습으로는 제 인간적인 모습을 알 수 없어요.” 그렇지. 옳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보여지는 모습’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일상에서 부족한 설렘을 보충하며 오늘도 ‘존버’한다.

리담 칼럼니스트 dorisleewal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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