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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세계인의 주자학

박은식의 숙명과도 같은 일신이생 <유학자 겸곡 박은식>
등록 2021-08-16 18:53 수정 2021-08-17 02:23
노관범 지음, 도서출판 이조 펴냄

노관범 지음, 도서출판 이조 펴냄

메이지 일본의 사상가이자 교육자인 후쿠자와 유키치는 〈문명론의 개략〉에서 자신의 세대를 가리켜 “한 몸으로 두 인생을 산다(一身二生)”고 술회했다. 유교 경전을 외우던 독서인으로 살다 서구의 낯선 지식과 사상을 전파하는 계몽운동가로의 변신을 감내해야 했던 그의 고뇌가 압축적으로 드러나 있다. 비단 후쿠자와뿐 아니라 같은 시기 동아시아의 지식인이라면 누구라도 전통적인 유교 세계관과 서구의 새로운 세계관 사이의 긴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점에서, ‘일신이생’은 어쩌면 숙명과도 같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이 칼로 자른 듯 둘로 말끔히 나뉠 수 있을까? 완전히 새로운 두 번째 삶을 사는 것처럼 보여도, 마음속 깊은 곳에는 첫 번째 삶이 여전히 콸콸 흐르고 있지 않을까? 노관범의 〈유학자 겸곡 박은식〉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지은이는 근대로의 전환에 가장 앞서나갔다던 서북 지역 출신이요, 실천적인 양명학을 받아들일 것을 주장한 개신유학자인 박은식에게서 천하를 근심한 전통적인 주자학자의 면모를 되살려낸다. 널리 알려진 호인 ‘백암’ 대신 〈주역〉에서 딴 호인 ‘겸곡’을 제목에 붙인 건 그러한 이유에서다.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에 남아 있는 조선왕조의 잔재를 청산하자는 ‘후조선론’에 대한 반론으로도 읽힌다.

지은이가 치밀한 사료 조사를 통해 새로이 그려낸 박은식의 삶은 한국사에 대한 그간의 통념을 뒤흔든다. 황해도 시골의 이름 없는 선비인 겸곡은 경기도 광주로 올라와 경화학계의 선비들과 폭넓게 교유하는데, 그에게 깊은 영향을 준 건 정약용 가문으로 대표되는 남인의 실학이 아니라 노론의 낙학이었다. 주자학을 심화해 중화와 오랑캐, 인간과 금수의 본성이 같음을 주창한 낙학의 보편주의는 겸곡이 세도가 민병석의 문객으로 평양과 한성에서 활동할 때도, 대한제국기 한성사범학교 교관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대한매일신보〉 주필로 필봉을 휘두를 때도 생생히 살아 있었다.

박은식의 보편주의는 러시아혁명과 3·1운동을 거치며 세계주의로 발전한다. 1917년 7월 발표한 ‘대동단결선언’에서 겸곡은 아일랜드, 핀란드, 폴란드, 인도 등 약소민족의 독립운동이 세계적 대세임을 근거로 한국 독립운동 세력의 대동단결을 촉구했다. 1920년 12월 책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서는 세계사적 관점에서 일본의 식민통치를 야만으로, 한국의 독립과 혁명을 보편이자 공리(公理)로 규정했다. 지은이의 말마따나 “박은식은 세계인이었고 그의 역사서는 세계사였다”.

물론 주자학과 세계주의만으로 박은식의 삶을 오롯이 설명하기엔 어려워 보이기도 한다. 어찌 됐건 그는 국망을 앞두고 주자학 대신 양명학을 국민도덕으로 삼을 것을 역설했다. 서간도 망명 시절에는 한반도에 중화 문명을 전해주었다고 여겨지는 기자 대신 민족의 시조 단군을 역사의 시작으로 삼는 역사서 〈대동고사론〉을 집필했다. 앞서 살펴본 세계주의 역시 주자학보다는 당대를 풍미한 개조론과 국제협조주의의 영향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 책이 매력적인 이유는, 이른바 ‘근대’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하게끔 북돋아주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말한다. “박은식처럼 유학자가 언론사 주필도 되고 정부 대통령도 되는 시기가 근대”였다고. 그런 만큼 근대는 유학의 황혼기가 아니라 “새로운 유학의 여명”이었다고 말이다. ‘전통’과 ‘근대’를 가르는 거대한 의식의 단절을 넘어 둘 사이를 넘나들며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려는 지은이의 노력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유찬근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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