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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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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창이 좁다

BTS 멤버들이 ‘칼군무’를 시작할 때 가슴이 두근거렸다
등록 2021-08-17 13:23 수정 2021-08-17 23:54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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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소심하게 밝히자면, 이것은 입덕기가 아니라 입문기다. 어찌 2021년에야 방탄소년단(BTS)에게로 미끄러진 내가 감히 ‘입덕’을 말할 수 있겠는가.

시작은 <채널 십오야>였다. 이미 TV에서 잘나갈 만큼 잘나가는 나영석 피디는 왜 굳이 유튜브 채널을 열어서 또 나를 늪에 빠뜨린 건지, 불평 아닌 불평을 해본다.(역시 멈추지 않아야 성공하는 건가.)

<채널 십오야>에서 제작한 서브 코너 ‘출장 십오야’는 각종 야외 게임으로 예능프로그램을 만들어온 나영석 사단이 출장 가서 직접 게임을 진행해주는 ‘출장 예능 서비스’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1이 끝나고 출연 배우들의 캠핑장에 난입해 ‘출장 예능프로그램’을 만들더니, 최근 유재석이 합류한 유희열 대표의 소속사 안테나에 갔다가 급기야 BTS의 유튜브 채널 <달려라 방탄>과 협업해 BTS에 예능 배달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그동안 숱하게 예능을 찍어온 BTS와 아미(BTS 팬덤)에게는 여럿 중 하나일 수 있으나, 나에게는 ‘첫 만남’이었다. 게임의 압권은 ‘너 지금 뭐하니’. BTS 멤버 7명이 비밀리에 뽑은 각자의 미션을 수행하는 게임이다. 상금은 문화상품권 70만원. 성공한 자가 적을수록 상품은 많아지는 법. 다른 멤버의 미션을 추측해 방해하면서 자신은 성공해야 한다.

이 게임에서 드러난 것은 7명이 각자의 개성을 지키면서 어우러진다는 점이었다. 더벅머리로 출연한 ‘월드와이드 핸섬’(worldwide handsome) 멤버 진은 메추리알 100개 까기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시골집 할아버지처럼 허리를 숙이고 열심히 메추리알을 깠다. 묘하게 아재력이 높았다. 미션을 방해하기 위해 다른 멤버들은 자꾸 까놓은 메추리알을 주워먹었다. 김치전을 만들어야 하는 멤버 제이홉에게선 부침가루와 김치통이 차례로 사라졌고, 도미노 300개를 세워서 쓰러뜨려야 하는 멤버 RM의 도미노는 방해 공작으로 39개를 세운 게 최대치였다. 티키타카 속에 선을 넘지 않는 것은 이들이 8년을 잡음 없이 유지해온 비결일 것이다. <아이돌> 안무를 마무리해야 하는 뷔와 이를 방해하는 지민과 정국은 남다른 ‘춤선’을 보여줬다. 이 와중에 ‘아티스트’ 슈가는 30분 명상 미션을 성공했다.

숱한 ‘빌보드 석권’ 소식에도, BTS의 유엔 연설 영상이나 ‘BTS ○○○ 뮤직비디오 리액션’ 영상이 자꾸 뜨는데도 그들의 ‘세계적 영향력’에 크게 호응되지 않던 나는 BTS의 퍼포먼스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튜브와 친구가 된 뒤 거의 처음으로 ‘내 손안의 휴대전화 창’이 비좁다고 느꼈다. BTS가 미국 방송에 처음 데뷔한 무대인 2017년 아메리칸 뮤직어워드 ‘DNA’ 공연(사진)에서, 멤버 7명이 육면체 무대에서 전주에 맞춰 ‘칼군무’의 시작을 예고할 때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무용학도이던 멤버 지민이 근육질 나비처럼 날아들어 몸을 움직일 때는, 아 이건 100인치 화면으로 봐야 하나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19인치 노트북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BTS 무대는 거의 모두가 한 편의 공연이다. 조각 미남에 가까운 2명은 3~4분 퍼포먼스에서 연기를 하고, 댄서 3명은 예술적 춤을 선보이며, 래퍼 2명은 세상을 향해 부르짖는다.

이제 막 입문한 나조차 할 말이 너무 많아 지면이 모자라지만, 월드와이드 스타가 된 BTS가 2018년 곡 <아이돌>에서 외쳤던 노랫말이 변함없길 초보 팬으로서 바라본다.

“뭘 어쩌고저쩌고 떠들어대셔. 난 내 할 일을 할게. 그니까 넌 너나 잘하셔. 당신들은 내가 날 사랑하는 걸 멈출 수가 없을 거야.” 계속 그렇게 자신을 사랑하는 BTS이길.

리담 칼럼니스트 dorisleewal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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