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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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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같이 축구할래요?

등록 2021-10-09 16:55 수정 2021-10-10 01:46

9월25~26일 ‘위밋업스포츠’를 취재하러 가는 길에 긴장을 많이 했습니다. 직접 축구와 배구 수업에 참여해보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학창 시절 체육시간에 해본 공놀이라고는 피구와 발야구가 전부인데다, 그마저 썩 훌륭한 재능을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공이 무서웠고) 체육 점수는 늘 좋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있던 체육 수업도 고등학교 1학년 1학기가 지난 뒤에는 완전히 사라졌고요.

이후 성인이 되어 시작한 운동은 목표가 명확했습니다. 다이어트죠. 그러니 운동은 늘 ‘자신과의 싸움’이었습니다. 헬스, 복싱, 수영, 요가, 달리기, 춤 등 여러 운동을 배웠고 끝내주는 재미를 경험한 운동도 더러 있었지만, 그래도 ‘운동은 나 홀로 악전고투하는 것’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죠. 결국 질리거나 지쳐서 관두곤 했습니다.

이러니 왠지 모르게 걱정되고 무섭고 스스로에게 의심이 들 수밖에요. “다들 잘하는데 나만 못하면 어떡하지?” “설마 처음 배우는 자리인데 시합하겠어?” “만약 진짜로 하면? 내가 할 수 있을까?” 이런 의구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하지만 ‘위밋업스포츠’의 축구 수업 100분 동안 이런 마음에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합니다. 분명 패스도, 드리블도, 슛도 어설픈데 함께한 여성들이 그저 “나이스”라고 외쳐줍니다. 시합 전·후반 10분 동안 무작정 뛰어다녔는데, 공을 쫓거나 찬 시간보다 서로를 격려하기 위해 박수 친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분명 힘든데, 무언가 쾌감이 몰려옵니다. 수업 전 어색했던 수강생들 사이에선 찐∼한 동지애가 샘솟습니다. “아, 이런 재미구나.” 태어나 33년 만에 처음으로 팀 스포츠의 매력을 배운 셈입니다.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SBS)과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운동을 매개로 함께 뭉치는 여성이 늘어났습니다. “일단 축구공과 배구공부터 사고 본다”는 여성부터 나름의 팀을 꾸려 강사를 초청하는 여성까지 다양합니다. 구기 종목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사회적기업 ‘운동친구’에서 자기방어 훈련을 함께 배우는 여성도, 신지민 기자가 취재한 ‘스트롱걸즈’처럼 파워리프팅에 도전하는 여성도 있습니다. 정인선 기자가 인터뷰한 ‘오네요’(오후 네시의 요가·연분홍TV)처럼 다양한 체형의 여성이 자신의 몸을 중심에 두고 수련할 수 있도록 돕는 콘텐츠도 생겼습니다. 그저 ‘미용’ 목적이 아니라요.

<한겨레21> 제1382호는 이처럼 삶에서 운동을 새롭게 인식하고 이를 매개로 연결되는 다양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고자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나만의 장점을 찾거나, 여성들의 진한 우정과 연대를 느끼거나, 강한 근력으로 한계를 넘어서거나, 내 몸을 오롯이 나의 시선으로 마주해보는 이야기를 더 널리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여전히 ‘여성의 몸’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제약은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지만, 요즘 가장 ‘핫’한 배구선수 김희진의 말처럼 “지금은 2021년”이니까요.

더 많은 여성이 자신의 몸에서 자유로워지고, 운동의 또 다른 재미를 한껏 느껴보길 바랍니다.

덧붙임 하나. 김희진 선수 인터뷰 기사에는 “여성 선수에게만 짧고 달라붙는, 불편한 유니폼을 입히지 말라”는 댓글이 잔뜩 달렸습니다. 한국배구연맹(KOVO)과 프로배구 구단들의 결단(!)이 이어지길 바라봅니다.

덧붙임 둘. 저는 지난 주말 농구공과 축구공을 하나씩 샀습니다. 함께 배우러 가실 분은 연락 주세요.(웃음)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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