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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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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같이 돌자, 진부 한 바퀴

‘진부 사람 다 된’ 김에 풀어놓는 진부의 숨은 매력
등록 2022-03-02 16:26 수정 2022-03-05 07:13

진부는 평창군의 1개 읍, 7개 면 중 가장 접근성이 뛰어나다. 영동고속도로 진부IC로 나오면 바로 진부 시내인데, 차가 밀리지 않으면 서울 동쪽 고속도로 IC 기준으로 2시간 남짓 걸린다. KTX 역도 있다. 진부역, 평창올림픽역, 오대산역, 무려 이름이 3개다. 서울에서 1시간30분, 강릉에서 17분 걸린다.

그런데! 진부역에 내린 사람들은 대관령호텔에서 픽업 나온 대형버스를 타고 순식간에 사라지고,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도 삼삼오오 택시를 타고 떠난다. 마지막으로 열차 시간 맞춰 정선군에서 운행하는 ‘정선 와와’ 버스가 와서는 몇 안 남은 사람을 홀랑 태워 떠난다. 아, 어떡하지 우리 진부ㅠㅠ

기껏 진부까지 와서는 곧바로 진부 패싱이다. 크게 알려진 유명 맛집이나 볼거리가 없으니 이해하기로 한다. 그렇지만 소문난 맛집엔 줄을 서야 하고 알려진 관광지에선 피곤한 일이 발생할 확률도 높은 법. 때로는 기대하지 않았던 조그만 동네에서 발견하는 깨알 재미와 소박한 맛집이 주는 기쁨이 더 클 때도 있다. ‘진부 사람 다 된’ 김에 진부의 숨은 매력을 소개할까 한다.

진부IC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1.5㎞ 정도 가면 상점과 주택가가 모여 있는 진부 시가지가 나온다. 이 길을 걸어가다 처음 만나는 맛집은 ‘진부화로구이’이다. 고추장삼겹살을 숯불에 구워먹는다. 달고 진한 고추장 양념과 고소한 삼겹살이 조화롭다. 막걸리가 술술 들어간다. 조금 더 걸어가면 ‘순용이네곱창집’이 나온다. 손가락처럼 얇은 한우곱창구이를 기름장에 찍어 부추와 함께 먹는다. 다 먹고 잘게 썬 김치와 함께 밥을 볶아 먹으면 이것만으로 한 병 더 마시게 된다. 예전에 친구와 소주 각 2병을 하고 왠지 부끄러워 다 마신 4병째에 물을 절반 채워놓고 온 적도 있다. 사장님이 살짝 현빈을 닮았다. 여기서 길을 건너면 산채정식을 파는 ‘부일식당’(사진)이 있다. 각종 건나물과 감자조림, 두부조림, 막장찌개가 나온다. 꽁치조림 한 토막을 제외하면 완전 풀밭이라 나물 마니아는 신난다. 스무 가지 넘는 나물반찬을 하나씩 클리어하고 다 먹은 접시를 차곡차곡 쌓아놓고 나온다. 나물을 뜯어 씻고 말리고 다시 불려 요리한 수고를 생각하면 싹싹 비우지 않을 수 없다. 오대천 다리를 건너면 한정식을 하는 친정엄마가 있다. 돌솥밥에 각종 나물과 마른반찬, 생선구이가 나온다. 부일식당이 건나물 위주라면 ‘친정엄마’는 제철 나물이 주재료다. 싱싱한 재료 맛을 잘 살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딱 좋다.

3일과 8일에는 농협부터 L슈퍼까지 이어지는 골목에 장이 선다. 신선한 지역 채소와 곡식, 과일을 살 수 있다. 옷도 팔고 농기구도 팔고 살림살이도 파는데,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기서 꽃무늬가 그려진 양은 밥상을 사다가 막걸리 마실 때 펼치는데, 왠지 더 술맛이 난다. 메밀부치기와 올챙이국수, 수수부꾸미 등을 파는 집이 두 군데인데 둘 다 맛있으니 자리가 남은 집에 잽싸게 들어가서 얼른 먹어야 한다. 장날이라 예쁘게 입고 나온 할머니들이 막걸리 한잔하시고 술자리 파하기 아쉬워 친구들 불러내는 전화 통화를 엿듣는 것도 재밌다.

장이 서는 골목 주위로 아파트와 빌라와 주택이 모여 있는데, 사이사이 빈터는 텃밭이다. 대체로 감자와 옥수수를 심는다. 프라이빗 감자밭 하나씩은 갖고 사는 삶이랄까. 골목길을 따라 산 쪽으로 걸어가면 진부초등학교가 나온다. 효자 소년 정재수군의 동상이 있다. 눈밭에 쓰러진 아버지에게 옷을 벗어 덮어주고 함께 동사했다고 한다. 효자가 아니면 또 어떠리. 운동장에 뛰어노는 아이들이 반갑고 고맙다. 스탠드에 앉아 조용한 오후를 흘려보내면 소란스러운 마음이 조금 잠잠해진다.

글·사진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농사꾼들: 주말농장을 크게 작게 하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한겨레> 김완, 전종휘 기자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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