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농민의 눈으로, 학생의 눈높이에서

충남 홍성의 <마을>, 마을에서 만드는 잡지가 전국 잡지가 된다는 것
등록 2022-04-19 15:19 수정 2022-04-20 02:26
마을학회 일소공도 제공

마을학회 일소공도 제공

펴내는 곳 마을학회 일소공도
창간호 발행일 2017년 12월17일, 9호까지 발행
가격 1만5천원
홈페이지 (회원 가입 신청 안내와 신청서 다운로드)
https://m.cafe.naver.com/oolocalsociety.cafe

국어사전은 한자어에서 유래한 ‘동네’(洞內)를 자기 집 주변이라고, 마을은 여러 집이 모여 사는 곳이라고 정의한다. 반년마다 발행하는 잡지 <마을>은 마을을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진실을 공감하면서 시작되는 곳이라고 말한다(창간호 잡지 설명). 한 마을의 잡지가, 전국의 사람들이 읽는 잡지가 된 것도 이런 공감에서 시작됐을 것이다.

도깨비와 소, 중간의 삶

잡지 <마을>은 충남 홍성군 홍동면과 장곡면 일대의 농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잡지를 내는 곳은 마을학회 ‘일소공도’이다. 혀에 이물감 없이 붙지만 ‘마을학회’라는 이름부터가 새로운 말인데, 2017년 지역을 연구하는 학회를 창립하자고 뜻을 모은 이들이 붙인 이름이다. ‘일소공도’란 일만 하면 소가 되고 공부만 하면 도깨비가 된다는 말의 줄임이다. 이 말은 다석 류영모 선생이 만든 말이라고 한다(창간호, 울림 ‘21세기의 일소공도 정신, 진리에 바탕한 사랑의 실천’).

홍성군에 있는 풀무학교는 이 말 뒤에 한 문장을 더 써놓았다. ‘일과 공부가 조화를 이루어야 사람이 된다.’ 그것은 “공부하는 사람 따로 있고 일하는 사람 따로 있는 근대적 분업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마을학회 ‘일소공도’ 창립선언문)이고 “일과 공부가 어울리는 삶, 몸과 마음으로 이어지는 앎, 그 삶과 앎이 모두에게로 되돌려지는 21세기 농(農)의 마을을 다시 상상”(창간호, ‘열며’)하는 말이다.

2022년 3월25일 홍성의 밝맑도서관에서 만난 박영선 <마을> 편집위원장은 금방 인쇄돼 나온 9호 잡지를 들고 왔다. 9호는 트임(특집) 기획 주제가 ‘돌봄과 직접민주주의’다. 박 위원장은 “어떻게 이 잡지를 아셨느냐”고 묻는다. 묻지만 농촌 관련 논문에서의 인용도가 높아져가는 것, 주변에서 읽고 주는 리뷰가 많아지는 점에서 영향력이 늘어났다는 것은 감지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2010년 한국연구재단의 인문학 대중화 사업의 일환이었던, 마을 아카이브 작업을 통해 홍성과 인연을 맺었다. 2015년 무렵 홍성에서는 마을학회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마을에서 펴내던 잡지 <지역과 학교>가 휴간돼 아쉬워하고 있었다. 2017년 마을학회가 창립된 뒤 잡지는 겨울에 첫 호를 냈다.

1호 잡지 주제는 ‘농촌에서 공부하다’였다. 2호 ‘마을, 교육, 마을교육공동체’ 등에 이어 6호 ‘코로나 이후 사회와 농촌의 가능성’, 7호 ‘21세기 농촌 마을 문화의 재구성’, 8호 ‘마을을 살리는 먹거리 운동’ 등을 펴냈다. 주제가 ‘마을’ 밖으로 점점 더 넓어지고 있다. “농촌 마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폐쇄적이어서는 안 된다. 도시 문제가 농촌 문제가 되고 농촌 문제가 도시 문제가 된다. 온라인 시대에는 특히 모든 문제가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농촌 사람들을 주어 자리에 놓고

잡지 구성도 “연구까진 아니지만 다른 잡지 구성을 유심히 보게 되면서” 형태를 다듬어갔다. 첫 호에 ‘트임-울림-이음-스밈-번짐’으로 나누던 꼭지명은 특집기사 ‘트임’과 좌담인 ‘벼림’, 농촌에서 전하는 소식인 ‘스밈’ 등으로 남거나 이동했다. 장정일(시인·소설가)과 함성호(시인·건축가) 등의 지속적인 기고 덕분에 읽을거리도 다채롭게 마련됐다. 농촌 문제와 연관성이 높은 주제를 다룬 전시와 사진·그림 작업을 소개하는 화보도 중간에 집어넣어 숨통을 터준다. ‘농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주어의 자리에 세우고, 당사자의 위치와 시선에서 현실을 성찰하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노력은 창간호와 같다.

<마을>의 장점은 학술지의 ‘난해함’ 없이 시간만 들이면 처음부터 끝까지 술술 읽히도록 문장이 매끈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읽고 알게 되거나 깨닫는 것이 만만찮다. 좋은 잡지의 미덕이다. 농촌 먹거리의 현실을 생산, 유통, 공동체 관점에서 살펴보거나(8호), 마을의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을 홍동면의 예로 들여다본다(9호). 박 위원장은 잡지를 만들기 위해 인쇄 전 두 달 정도 꼬박 주제 기획과 정리, 전체 원고를 편집하는 일에 매달린다. 주로 하는 일이 다양한 외부 필자들을 찾아 새로운 주제를 기획하고 들어온 원고를 독자 눈높이에 맞게 다듬고 풀어 쓰는 일이다. <마을>의 주 독자층은 농민, 농촌 주민, 농촌활동가, 농촌연구자, 농촌과 생태 문제에 관심을 가진 전국의 일반 시민들이다. 특히 “마을에 있는 풀무고등학교 학생들도 이 잡지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므로 이들이 읽을 수 있을 정도가 되도록 문장에 신경을 많이 쓴다. 필진으로 종종 참여하는 전문 연구자들에게도 논문 투의 지나친 전문적 용어와 내용을 쉽게 풀어 써달라고 요청하고 외국어 참고 문헌 역시 모두 한국어로 번역해달라고 한다.”

한 마을이 아이를 키운다는데, 한 마을이 잡지를 키운다. 풀무고등학교 학생들도 읽지만, (홍동면의 재 너머) 장곡면에도 마을 사람들이 매주 모이는 ‘마을 읽기 모임’이 구성돼 있다. “처음에는 서너 명이 시작했는데 지금은 열 명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마을> 잡지를 읽으면서 엄청 재밌어한다는데, 그런 말이 듣기 싫지는 않더라.”

마을학회는 월간 웹진 <일소공도>도 펴낸다. 웹진 <일소공도>를 만드는 일에 참여 중인 김세빈씨는 밝맑도서관 사서다. 풀무학교를 졸업하고 사서로 일하며 “‘정착’은 아니고 홍성군에서 오래 살고 있다”. 사서 일에 덤으로 일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원래 일이었다고 (편하게) 생각하려고 해요. 홍성에서 일이 그래요. 일이 있어서 사람들이 그 일을 하러 오기보다는 사람이 오니까 일이 만들어지거든요.” 월간 웹진은 현재의 소식지 형태에서 ‘취재 기사’가 곁들여지는 격월간지로 변신을 생각 중이다. 세빈씨의 일이 더 많아진다.

일하고 강의 듣고, 잡지가 매개하는 공동체

홍동면에서는 ‘일소공도’의 풍경이 자주 잡힌다. 책이 고고하게 있지 않고 사람들 손에 잡히고 흙 속에 잡지가 잡힌다. 안내해준 마을학회 간사 오선재씨는 농사꾼의 손끝을 하고 있었다. 금방 밭일하다가 돌아온 듯했다. 도서관 앞에 탑을 쌓았던 책을 마을 주민이 와서 정리하고 그것을 도서관 사서가 구경한다. 손님에게 내준 커피와 에그타르트·앙버터빵은 동네 빵집에서 구운 것이었다.

마을학회는 회원 후원금으로 꾸려진다. 1년에 학회 회원과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두 번 강의 수업을 하는데,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쉬다가 2022년 2월 ‘기술 자본주의와 우리의 삶’이라는 주제로 6시간씩 이틀간의 수업을 진행했다. 학회 회원이 되면 후원 정도에 따라 마을 잡지를 무료로 우송받을 수 있다. 회원이 아니어도 전자우편으로 신청하면 절판된 창간호의 피디에프(PDF)를 받을 수 있다.

홍성(충남)=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요즘, 잡지: 개인의 취미와 취향으로 흩어져가는 요즘 잡지를, 잡지 <한겨레21> 속에서 만납니다. 부정기 연재.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