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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국가전략’, 중국은 ‘도덕’ 잣대

‘혐중’의 실태와 역사적 배경을 짚은 김희교의 <짱깨주의의 탄생>
등록 2022-05-05 05:57 수정 2022-05-07 02:59

짱깨. 중국(인)을 멸시하는 대표적 혐오 표현이다. 송나라 시절 환전상이 돈을 넣어둔 손금고를 ‘짱꿰(掌櫃·장궤)라고 했다. 한국에선 중국음식점을 속되게 일컫는 말로 쓰이다가 중국을 비하하는 멸칭으로 뜻이 확대됐다.

중국사 및 국제관계 전문가 김희교 광운대 교수는 신간 <짱깨주의의 탄생>(보리 펴냄)에서, 한국에서 중국 인식의 주류 프레임이 되어버린 혐중의 실태와 역사적 배경을 진단하고 ‘평화 체제’라는 관점에서 대안적 담론을 모색한다.

1894년 청일전쟁 전까지 한국에서 중국은 혐오의 대상이 아니었다. 승전국 일본은 청을 내쫓고 조선을 장악하면서 중국인을 열등하고 미개하고 국민으로 선전했다. 조선인도 일제의 식민 담론에 포섭됐다. 해방 뒤 미군정, 한국전쟁과 중국 참전, 반공주의 확산은 중국 혐오와 적대감을 증폭시켰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혐중은 멈칫했지만, 21세기 들어 중국의 급부상과 격렬한 미-중 대립은 다시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지은이는 “미-중 충돌 시기 한국의 안보 보수주의가 중국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을, 서구의 ‘차이나포비아’나 ‘중국 때리기’ 개념과 구별해 ‘짱깨주의’로 지칭한다. “짱깨라는 개념은 서구의 인종주의가 지니는 혐오를 그대로 품고 있”으며, “그 밑바닥에는 20세기 전후(戰後) 체제의 위기와 미국의 신냉전 회귀의 기획이 숨어 있다.” 여기서 전후 체제는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인 샌프란시스코조약(1952년 발효)과 1979년 미-중 수교로 이어진 키신저 시스템의 복합체다.

냉전 체제의 적대적 동맹인 샌프란시스코 체제와 경제·통상의 단일 시장을 지향하는 키신저 체제는 균열의 단층대 위에 공존했다. 한국을 포함한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선택한 ‘정치·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프레임은 충돌할 수밖에 없다. 미국 단일 지배체제가 흔들리고 미-중 대결이 본격화하면서, 한반도 남쪽의 짱깨주의도 더 거칠어진 모양새다.

지은이는 짱깨주의를 △유사 인종주의 △신식민주의 체제 옹호 △자본 문제를 중국 문제로 치환 △신냉전체제 구축 등의 프레임으로 조목조목 분석한다. 혐중에는 언론 보도의 책임이 크다. 코로나19가 확산하던 2020년 초, 한국 언론 상당수는 중국인 일부의 야생동물 식습관을 부풀리며 ‘미개한 중국’ 이미지를 퍼뜨렸다. 중국 정부가 천산갑 등 야생동물 거래와 사육까지 엄격히 금지한 사실은 주목받지 못했다.

2020년 8월, 한 신문은 북극해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개발과 영유권 경쟁 소식을 전하면서 미국·캐나다·덴마크 등 서구에는 ‘분쟁’ ‘개발’이라는 중립적 표현을, 중국의 가세에는 ‘알박기’라는 혐오 표현을 썼다. 대만과 남중국해 일대에서 미국과 중국이 대립한 군사 위기를 두고 “한국의 보수언론들은 미국의 행위는 국가전략의 문제로, 중국의 행위는 해서는 안 될 도덕적 문제로” 다뤘다.

2017~2020년 외국인의 한국 아파트 취득 현황 자료(국세청)가 나오자 많은 언론사가 “중국 자본이 국내 아파트 3조원 쓸어갔다”는 식의 선정적 보도를 쏟아냈다. 그러나 통계를 자세히 보면 과장이거나 왜곡이다. 미국인의 구매액이 약 2조2천억원으로 뒤를 이었는데, 한국 체류 중국인이 미국인보다 7.7배나 많으며 그중 70%가 조선족이라는 사정은 무시됐다.

지은이는 “한국 진보 진영의 과도한 이상주의와 탈현실주의적 세계 인식”도 ‘혐중’에 눈을 감았다며, 짱깨주의에 대한 진보적·실천적 대항담론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수직적 위계 관계에 있는 신식민주의적 국가 간 체제를 평등하고 평화로운 협력적 다자주의 체제로 만들어가는 것이 핵심이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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