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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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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의 노동, 임금의 밥상

두 끼만 먹던 한국인의 예외는 농부, 농부여서 다행
등록 2022-05-15 15:32 수정 2022-05-17 01:52
어느날 포천에서 먹은 삼시 세끼.

어느날 포천에서 먹은 삼시 세끼.

사람은 왜 삼시 세끼를 먹어야 하는가. 어려서부터 늘 궁금했지만 누구에게도 묻진 못했다. 그러다 언젠가 ‘하루 세끼를 먹는 이유’를 인터넷에 검색해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지식 정보를 공유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인류가 하루에 세끼를 먹게 된 이유가 발명왕 에디슨의 음모 때문이고 시기적으론 고작 1910년대 시작된 풍습이라는 것이다. 전기토스터를 막 발명한 에디슨에게 한 기자가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머리가 좋으냐.’ 이에 에디슨은 천연덕스럽게 “하루 세끼”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발명한 전기토스터를 더 팔아먹기 위해 전 인류에게 ‘한 끼’를 더 발명해줬다는 것이다.

이 믿거나 말거나의 진실은 조상들의 기록에서도 거듭 확인된다. 식사를 뜻하는 단어는 조석(朝夕)이다. 아침과 저녁이란 뜻이다. 조선시대 임금은 하루 다섯 번 수라를 받았다는데, 그 가운데 12첩 정식이 들어오는 때는 오전 10시와 오후 5시 두 번뿐이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가 쓴 <청장관전서>라는 책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침과 저녁에 5홉을 먹으니 하루 한 되를 먹는다’고 쓰였다. 삼시 세끼가 인류 보편의 문화적 습속이 된 지 100여 년밖에 되지 않았고, 우리 민족의 유구한 역사 속에 삼시 세끼의 개념은 없었던 것이다.

다만, 예외적 계급이 있었다. 농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농부는 오래전부터 세끼를 먹어왔다. 우리는 그걸 ‘새참’이라고 불렀다. 농부들은 오전 10시와 오후 4시 사이에 감자, 국수 같은 음식을 먹었다. 왜냐고? 아침부터 일하면 당연히 낮에 배고프니까! 참으로 현명하고 간결한 진리다.

농사의 역사는 대개 아침에 이뤄진다. 장모님은 동트기도 전에 일어나 하루를 준비한다. 새벽 6시부터 아침을 먹는 9시 전까지 잡초 뽑고, 열매 따고, 물 주고, 약 치는 행위 대부분이 이뤄진다. 시골에 가면 느긋하게 늦잠을 즐기고 오전에 간단하게 브런치로 커피를 마셔야겠단 계획은 야무졌지만, 실제 그랬던 날은 손에 꼽는다. 그것은 농부의 삶이 아니다.

지난주 아침 8시, 밭에 나가 이제 막 일하려는데 농달은 이미 그 넓은 밭에 물을 다 주고 집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인사하니 “좀 있으면 날 뜨거워져서 이제 들어가야겠다”고 받았다. 이것은 해 뜨면 일어나 일하는 불문율을 너는 왜 지키지 않고 이제야 부스스한 머리로 밭에 나왔느냐는 말일까. 아침 8시부터 밭에 물을 주고 제멋대로 자란 잔디를 정리하고 마당으로 번져나간 잔디를 파냈다. 주중에 알코올에 절여 있던 근육에 앉았다 일어났다, 당겼다 폈다의 형벌을 2시간여 주곤 아침 일을 끝냈다.

아침 일이 끝난 오전 10시쯤, 조선시대 임금이 12첩 정식을 먹었다는 그 시간에 밥을 먹었다. 김밥이나 샌드위치가 아닌 동태찌개에 갓 구운 김을 곁들인 푸짐한 밥을. 그러며 점심엔 뭐 먹을지 고민했다. 에디슨 때문이 아니다. 농부이기 때문이다.

글·사진 김완 <한겨레> 영상뉴스부 팀장 funnybone@hani.co.kr

*농사꾼들: 주말농장을 크게 작게 하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한겨레> 김완, 전종휘 기자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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