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방에 누워서 멍때리다가, 책장으로 쓰던 마켓비 브랜드의 3단 화이트 철제 선반이 못생겨 보였다. 가구 브랜드 이케아의 ‘국민 선반’ 상품을 베낀 버전이었다. 카피 제품인 만큼 본래 제품보다 저렴하지만 그만큼 기품이 모자랐다. 상품명부터 그렇다. 스웨덴의 광산 공원 이름을 딴 이케아의 ‘레르베리’(LERBERG)와 아무리 ‘사다리’라는 뜻의 독일어를 빌렸어도, 마켓비의 ‘레이터’(LEITER)는 우아함의 간극이 크다. 물론 둘 다 ‘메이드 인 차이나’지만. 왠지 책장에서 책을 잘 꺼내 읽지 않는 것도 선반 탓 같았다. 결국 당근마켓에서 며칠 발품을 판 끝에 원목 책장으로 갈아탔고 그제야 내 맘이 놓였다.
‘누구나 예쁜 집에 살 수 있어’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인테리어 플랫폼 ‘오늘의집’을 처음 알았을 때의 작은 충격감을 기억한다. ‘체리색 몰딩/노란 장판/꽃무늬 포인트 벽지’라는 공식이 구린 건 알았지만, 그래서 어떻게 방을 꾸며야 할지 아는 바 없었다. 당연했다. 패션과 달리 인테리어는 누군가의 집에 초대될 자격을 얻고 나서야 볼 수 있는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의집’에선 클릭 한 번으로 누군가의 집을 몇천 곳 이상으로, 그것도 커튼이나 조명 하나하나의 가격까지 세세히 알 수 있었다.
동시에 조급해졌다. ‘아니, 옷 예쁜 거 살 돈도 모자란데 방 예쁜 것까지 신경 써야 한단 말이야?’ 계약 만료가 되면 더 작은 평수로도 이사 갈 일을 대비해 디퓨저 하나 들이는 것에도 벌벌 떨었기 때문이다. 포스터나 액자 정도면 몰라도 조명이나 벽지, 가구 같은 건 먼 훗날 전셋집을 얻은 다음의 일 아니었던가? 하지만 사람들은 5평 원룸에도 모듈선반(가구의 부분을 구매한 뒤 레고처럼 조립과 변형을 거쳐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만드는 선반)이나 가전형 식물재배기 하나쯤은 집에 들이면서 데스크테리어(Deskterior·책상을 중심으로 업무 공간을 꾸미는 인테리어)나 캠테리어(Camterior·화면에 보이는 방 배경을 꾸미는 인테리어), 플랜테리어(Planterior·식물을 소품처럼 활용하는 인테리어)를 넘어 홈파밍(Home Farming·집에서 채소 키우기) 같은 말까지 만들어내며 집 꾸미기에 열심인 것 같았다.
사람들은 왜 인테리어에 이렇게 ‘진심’이 된 걸까. 흔한 설명은 있다. 코로나19가 확산되자 재택근무 등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고, 그만큼 공간에 신경 쓰게 됐다는 거다. 하지만 열심히 벌어도 자가는커녕 전셋집 구하기조차 더 어려워졌고, 법적으로 보장된 임대차계약 기간이 충분히 길어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내 집 마련을 포기했기에, 집 구매보다는 저렴한 인테리어에 더 신경 쓰는 것처럼 보였다. 누구나 좋은 집은 살 수 없어도, 누구나 예쁜 집에 사는 건 좀더 쉬우니까.
그 중심에는 ‘오늘의집’이 보여주는 집 이미지들이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가구=소모품’이라는 공식과 ‘인테리어 성경’으로 불리는 카탈로그를 배포하는 이케아가 있다. (계속)
글·사진 도우리 작가
*언론에서 청년문화를 다루는 방식이 ‘봄’이라면 이 칼럼은 ‘겨울’입니다. 지금, 여기, 청년이 왜 데이트앱, 사주, 주식 등에 빠지는지를 서른이 된 도우리 작가가 풀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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