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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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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데이트] 노인 사망자 많은 코로나, 이전과 다르다?

과거 감염병은 노동자 대규모 사망했지만 코로나19는 노인층에 사망자 집중돼, 과연 불평등 분배에 영향 없을까
등록 2020-07-04 13:08 수정 2020-09-10 01:12

시작하며_ 국가 정책, 기업 경영 그리고 우리의 일상생활까지 데이터는 파고들었지만 가볍게 날아다니는 앙상한 숫자에 현혹되거나 허우적대기 십상이다. ‘데이터와 데이트하는 남자’는 데이터의 속내를 분석함으로써 세상을 판단하는 나만의 지혜를 키우고자 한다.

코로나19로 인명 피해와 경제적 충격이 커지면서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먼저 과거에 유행했던 감염병 사례부터 살펴보시죠.

이탈리아 보코니대학의 귀도 알파니 교수에 따르면, [그림1]에서 보듯 1300년 이후 500년 동안 부자(상위 10%)의 재산 비중은 지속해서 상승했는데(‘피케티 현상’이 자본주의에만 고유한 것이 아닙니다), 예외적으로 흑사병이 생겨난 1347~51년에 급락했습니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 다른 유럽 지역에서도 이와 유사한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 시기 흑사병으로 생산의 주축이던 농노의 25~45%가 사망해 노동 공급이 부족해졌고, 이 때문에 임금이 오르고 부의 분산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2000년 이후 5가지 감염병 분석

그러나 많은 학자가 코로나19는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코로나19 사망자의 절대다수가 노동시장 바깥에 있는 노인층에 집중돼 노동 공급에 큰 차이를 일으키지 못하리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사실 노동자의 대규모 사망과 그로 인한 불평등 완화는 그 자체로도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라는 책의 저자 조너선 오스트리는 최근 논문에서 현재와 경제환경이 비슷한 2000년 이후에 발생한 사스, 메르스, 신종플루, 지카, 에볼라의 영향을 분석해 팬데믹 발발 후 5년간 불평등이 계속 악화했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그림2(A)]는 계층별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주는데, 부유할수록 상승했고 가난할수록 하락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실직 효과가 계층별로 다르게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림2(B)]는 교육 수준별로 전체 인구에서 취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을 표시한 것입니다. 고학력자 그룹에선 팬데믹으로 취업인구가 줄었지만 그 정도가 크지 않았고 이른 시일 안에 극복했습니다. 반면 저학력자 그룹은 6%에 가깝게 큰 폭의 하락을 보였고 5년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저학력 저소득층은 팬데믹에 먼저 희생됐고, 회복기에도 실직에서 벗어나기 더 힘들었다는 것이죠.

이제까지 과거 팬데믹이 불평등에 미친 여러 연구 결과를 살펴봤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늘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통계청이 5월21일 발표한 2020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전국 2인 이상으로 구성된 도시가구 중 상위 20% 가구의 소득은 하위 20% 가구 소득의 5.41배였습니다(이를 ‘5분위배율’이라고 합니다). 2019년 1분기 5분위배율이 5.18배인데 불평등이 꽤 악화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적극적인 일자리 정책이 필요한 이유

앞서 말씀드린 대로 감염병이 불평등을 악화하는 가장 큰 고리는 일자리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3개월간 100만 개 일자리가 사라졌고, 일시 휴직자도 사상 최대로 늘었습니다. 가장 큰 피해는 임시직과 일용직에 집중돼, 저학력 저소득층이 먼저 피해를 보는 전형적인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우리 사회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 열악한 제도권 밖의 노동자를 고용안전망에 포함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아직 역부족인 듯합니다. 무엇보다 한번 노동시장에서 탈락한 저학력 저소득층이 코로나19 이후 영원히 배제되지 않도록 하는 적극적인 일자리 정책이 절실합니다.

미국 시카고대학은 4월 미국과 유럽의 저명한 경제학자들로 구성된 패널에게 코로나19와 불평등의 관계에 대한 의견을 조사했습니다. [그림3]을 보면, ‘저소득층이 상대적으로 더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의견이 86%였고, 반대하는 의견은 전무했습니다. 또 코로나19 대응 정책에서도, 불평등이 악화되지 않도록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를 표한 경제학자와 동의하지 않는 경제학자의 비율은 각각 76%, 17%였습니다. 경제학자들이 얼마나 불평등 악화를 우려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4월 영국 작가 데이미언 바는 “우리 모두 같은 폭풍을 지나고 있어요. 하지만 모두가 같은 배를 타고 있지는 않아요. 튼튼한 요트를 타고 있는 이도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조각배에서 표류하고 있어요”라는 시를 발표해서 화제가 됐습니다. 코로나19 폭풍우가 지난 뒤, 수많은 작은 배가 난파한 처참한 모습이 될지 아니면 연대의 힘으로 위기를 함께 극복하고 희망으로 나아가는 세상이 될지는 지금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을까요?

신현호 경제분석가·<나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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