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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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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뛰는 보수’의 탄생

2016년 등장한 ‘스윙보수’와 변화 많은 윤석열 지지율, 뒤에는 보수의 구조적 분화
등록 2022-01-28 00:34 수정 2022-01-28 01:00

20대 대선은 여러 측면에서 이전 선거와 사뭇 다르다. 그중 하나는 보수정당 후보 지지율이 널뛰기하듯 움직인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정례조사 기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지지율은 2021년 12월13일(공표일 기준) 42.0%에서 2022년 1월9일 35.5%로 꺼졌다. 일주일 만인 1월16일 41.4%로 뛰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지지율은 같은 기간 2.8%→15.1%→9.6%로 정확히 반대였다.

여론조사기관마다 편차가 상당하긴 하지만, 롤러코스터 같은 지지율 변화는 보수 정치 블록이 유동적임을 시사한다. 물론 대선 캠페인에 따라 지지율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고, 윤 후보가 직업정치인으로 검증받은 시간이 짧아 그만큼 세평이 쉽게 바뀔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지지세가 한 달 동안 급속히 와해하다 다시 결집하는 양상은 ‘보수 성향 유권자가 국민의힘에 대한 충성도가 낮다’는 해석에 무게를 싣게 한다. 2007년과 2012년 대선에서 이명박, 박근혜 후보는 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여러 악재와 빗발치는 네거티브 공격에도 지지율이 굳건했다.

2016년부터 등장한 ‘스윙보수’

정한울 한국리서치 여론분석전문위원과 강우창 고려대 교수는 2016년 총선을 기점으로 전통적 보수 정치 블록에 균열이 생기고, 투표장에 나타나지 않거나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스윙보수’층이 출현했다고 설명한다. 2017년 5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최순실 게이트’ 직전 새누리당 지지층 가운데 17.1%는 그 이후 무당파가 됐고 바른정당, 국민의당, 민주당으로 각각 13.2%, 10%, 16.8%씩 이동했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2017년 대선에서 전통적인 ‘찐보수’들과 달리 박정희 향수가 없고, 대북 강경 노선에 거리를 두며 복지정책에 우호적인 이들이 바른정당으로 이탈했다고 분석한다. 국민의당으로 갈아탄 사람들도 비슷한 특징을 보였다. 이렇게 분화된 보수 정치 블록 내 소집단들이 현재 넓게는 정권심판론, 좁게는 윤석열 후보 지지로 결집했다.

그렇다면 보수 지지층 내부의 분화는 왜 일어났을까. 이를 명확히 규명한 연구는 없지만 경제적 요인을 주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한국 경제, 특히 노동시장은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소득분배 방식과 양상이 바뀌면, 유권자 집단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그에 기반한 정치의식도 바뀔 수밖에 없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노동시장의 특징 중 하나는 사회복지 일자리의 폭발적 증가다. 2008년부터 스윙보수가 등장한 2016년까지 ‘보건업 및 사회복지’(산업 대분류 기준) 취업자는 85만1천 명에서 186만1천 명으로 101만 명 늘었다. 전체 취업자 증가의 38.3%에 이른다. 제조업 취업자 증가(51만6천 명)의 두 배 수준이다. 2008년 시행된 노인장기요양보험과 2012년 어린이집 누리과정 등 여러 사회복지 서비스가 도입되면서다. 늘어난 관련 일자리는 중장년 여성에게 집중적으로 돌아갔다.

그 결과 주소득자인 남성이 민간에서 일하고 부소득자인 여성이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가계가 대거 나타났다. 이들이 복지 확대에 더 긍정적으로 반응할 것으로, 다시 말해 전통적인 시장주의적 보수에서 이탈하리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2018년 논문에서 박선경 인천대 교수는 복지패널 자료를 이용해 세금은 내기 싫지만 복지 확대를 원하는 ‘비용회피적 복지 지지자’ 비율을 계산한 결과 2010년 37.1%에서 2016년 43.3%로 늘어났다고 보고한다.

사회복지 일자리 100%↑ 보수정당 득표율 0.9%↓

시군구별 보수정당 득표율 변화를 분석한 결과도 사회복지 일자리 증가가 보수정당 지지율을 떨어뜨렸다는 것을 시사한다. 고용보험 가입자 중 ‘사회복지 서비스’ 종사자 증가율(2009~2016년)과 2008년과 2016년 총선에서 보수정당(한나라당·자유선진당·친박연대·새누리당)의 비례대표 득표율 변화를 산포도로 그리면 <그림>과 같다. 투표 참여 자체가 정치적 의사 표현이기 때문에 득표율의 분모로는 유권자 수를 사용했다. 사회복지 일자리가 더 많이 늘어난 곳에서 보수정당 득표율이 더 떨어지는 경향이 관찰된다. 꽤 거친 방법이지만 두 변수만 가지고 회귀분석을 했을 때 사회복지 일자리가 100% 늘어나면 보수정당 득표율이 0.9% 하락(유의수준 5%)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값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려면 추가 분석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회복지 확대가 노동시장을 통해 정치 성향에 영향을 주었음을 짐작하는 데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자영업자의 퇴조도 눈여겨봐야 한다. 취업자 중 자영업자(무급가족종사자 포함) 비중은 2008년 31.2%에서 2016년 25.5%로 줄었다. 2021년 비중은 23.9%다. 한편 취업자 중 대졸 이상 비중은 같은 기간 36.9%에서 44.7%로 늘었다. 특히 서울은 45.0%에서 54.1%로 뛰었다. 자영업자가 감소하면서 시장 상인을 근간으로 하는 보수의 ‘골목길 정치’ 능력은 약화했다. 반면 대도시에서 기존 보수 가치에 공감하지 않는 고학력 화이트칼라 노동자 비중은 늘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새 보수 지지층 가운데 다수는 ‘사회경제적 피해 대중’이라 할 만한 이들이다. 반페미니즘 언행에 가려졌지만 20~30대 남성의 불만에는 경제적 불만이 있다. 2018년 하반기와 2021년 하반기의 25~34살 고용보험 가입자(월평균) 추이를 분석했다. 이 기간 남성 가입자는 8만2천 명(4.8%) 늘어난 데 그쳤다. 반면 여성은 14만 명(10%) 증가했다. 남성 가입자 감소폭이 큰 산업은 전자부품·컴퓨터·통신장비 제조업(-1만400명), 도매 및 상품 중개업(-8900명), 자동차 및 트레일러 제조업(-5500명) 등이었다. 여성 가입자는 보건업(2만8천 명), 출판업(2만800명), 전문서비스업(1만5200명) 등에서 많이 늘어났다. 20~30대 남성의 정치 정서에 깔린 거대한 불만에는 그들이 노동시장 변화의 타격을 집중적으로 받는다는 하부구조가 깔려 있는 셈이다. 이들의 보수정당 지지가 유동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보수의 ‘가치 전쟁’이 노리는 것

국민의힘의 당비 납부 당원은 2020년 34만7천 명으로 새누리당 시절인 2013년 19만 명보다 82.6% 늘었다. ‘이준석 돌풍’을 계기로 2021년 당원이 큰 폭으로 늘어난 건 사실이지만, 보수정당이 대중정당으로 바뀌는 양상은 몇 년 전부터 계속됐다. 문제는 확대된 지지 기반이 상당히 이질적이라는 점이다. 최근 보수의 정치 언어가 일종의 ‘가치 전쟁’을 지향하는 듯 보이는 것은 이질적인 집단을 묶기 위한 시도로 보이기도 한다.

조귀동 <전라디언의 굴레> 저자·<조선비즈> 기자

*경제유표란 경제를 보면 표심, 민심이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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