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크린 채 비스듬히 옆으로 누운 유골이 무시무시했던 학살 순간을 말해주네요.”
2020년 11월12일 대전 동구 낭월동 13번지 골령골.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에 나선 조사단원이 조심스럽게 붓으로 흙을 쓸어가니 땅속에서 유골이 드러났다. 70년 만에 햇빛을 본 유골은 앞으로 다리를 모아 구부린 채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1950년 7월 어느 날, 감당하기 어려운 죽음의 공포와 맞닥뜨린 ‘사람’들은 이를 증언하려는 듯 70년 동안 그대로 굳어 있었다. 등에서 녹슨 엠(M)1 소총 탄피가 함께 나왔다. 당시 상황을 직접 본 사람에 따르면, 학살자는 사람들의 등을 군화로 밟고 땅에 엎드린 희생자 뒤통수에 조준사격을 했다.
골령골에서 참혹한 학살이 자행된 ‘죽음의 구덩이’ 중 가장 긴 곳은 무려 100여m로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으로 불린다. 이곳에선 1950년 6월28일부터 수차례 국민보도연맹원과 대전형무소 수감 정치범의 대량학살이 있었다. 충남지구 방첩대(CIC), 제2사단 헌병대, 대전 지역 경찰이 어떤 법적 절차도 없이 최소 1800여 명을 살해하는 일이 벌어졌다. 두 곳의 대규모 집단학살 암매장지를 비롯해 모두 여덟 곳에 주검이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이 9월21일부터 50여 일 동안 제1학살지 안 280㎡(14m×20m)를 발굴한 결과 주검 250구가 나왔다. 특정 구역에선 40~50구가 겹겹이 쌓여 서로 엉겨붙은 채 발견되기도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땅속에서 뼈가 부서지고 섞여 형체를 잃어가고 있었다.
발굴된 유해들은 비좁은 매장지 안에서 희생자들이 잔인하게 집단 사살됐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대부분의 주검이 엎드린 상태로 무릎이 접혀 있었다. 뒷머리에 총알 구멍이 뚫린 유골도 여러 구 나왔다. 당시 목격자 증언과 미군이 기록한 학살 사진 속 모습 그대로다. 18살 이하 청소년의 것으로 보이는 치아와 여자의 유골도 여럿 발굴됐다. 여성과 청소년을 가리지 않고 휘두른 전쟁의 광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대전=사진·글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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