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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로 외치다

건보공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세종시 노동부에서 서울 광화문까지 160여㎞를 걸은 이유

제1380호
등록 : 2021-09-10 02:57 수정 : 2021-09-10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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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 비정규 노동자들이 세종시 고용노동부 앞을 출발해 청와대를 향해 걸은 지 8일째인 2021년 9월2일, 드디어 서울에 들어섰다. 이날 아침 경기도 안양에서 출발해 서울 금천구 시흥동 폭포공원에서 점심을 먹은 뒤 잠시 다리를 뻗어 쉬었다. 이들의 발은 물집이 잡히고 발톱이 빠지기도 하는 등 상처투성이다. 하루 평균 20㎞를 걷다보니 관절에 무리가 와 노동자 2명은 행진을 이탈해 병원으로 갔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 고객센터에서 상담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이 2021년 8월26일 세종시 고용노동부 앞을 떠나 9월4일 서울 광화문 도착까지 160여㎞를 걸었다. 건강보험료 등 건보공단 주요 서비스를 고객에게 안내하는 일을 하는 이들은 건보공단이 업무를 위탁한 11개 민간업체에 간접고용돼 있다. 건보공단 입찰이 있을 때마다 위탁업체가 바뀌어도 회사만 바뀐 채 같은 일을 계속하는 이들은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 신분이다. 위탁업체들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횟수가 가장 적고 상담 처리가 빠른 상담사에게 보상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노동자를 압박한다. 노동자들은 “건보공단이 책정한 노무비 가운데 일부만 기본급과 수당으로 받고 나머지는 ‘콜 수’에 따라 차등 지급받다보니 화장실 갈 시간도 줄여서 일하고 상담전화도 빠르게 끊는다”고 말한다.

이런 민간업체들의 쥐어짜기 운영과 중간착취 구조에 지친 노동자들은 건보공단에 직접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연금공단과 근로복지공단은 2019년 고객센터 상담사를 직접고용했다. 건보공단 고객센터 상담사들이 속한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지부는 2020년부터 이어진 공단과의 교섭이 결렬됐다고 2021년 2월 선언한 뒤 세 차례 파업을 벌였다. 단식농성도 했다. 8월3일에는 건보공단 본사가 있는 강원도 원주를 출발해, 8월9일 청와대 들머리까지 걸었다.

이번에는 세종시 고용노동부를 출발해 조치원~천안~평택~오산~수원~안양~여의도 국회를 걸었다. 정부와 여당이 문재인 대통령의 ‘비정규직 제로화 공약’을 이행할 것과 건보공단 고객센터 상담사를 직접고용할 것을 요구하며 걸었다. 애초 청와대까지 가려 했지만, 경찰이 막아 광화문에서 멈췄다. 불과 보름여 만에 다시 나선 길이지만, 뭐라도 해야 하니 상처투성이 발을 반창고로 동여매고 그저 걸었다.

8월30일 경기도 평택에서 오산을 향하는 노동자들.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지키느라 거리를 둔 채 걷고 있다.

한 참가자가 쉬는 동안 발에 난 상처에 약을 바른 뒤 반창고를 붙이고 있다.

행진 중 간격이 좁아지면 경찰이 뒷사람의 출발을 막아 거리를 벌린다.

띄엄띄엄 걷다보니 쉬는 시간이 돼야 동료와 이야기할 수 있다.

9월4일 행진이 서울 중심부로 들어서자 노동자 한 명에 경찰 한 명이 붙어 광화문 거리를 함께 걷고 있다.

아시아나케이오 해고노동자, 공공기관 공무직 노동자,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 등이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 거리에서 청와대에 전달할 사발통문에 ‘비정규직 철폐’ ‘임금차별 해소’ 등을 쓰고 있다.

열흘간의 행진을 마친 건보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9월4일 광화문 거리에서 그동안의 수고를 서로 격려하며 끌어안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일하는 이들은 이 자리에서 각각 자신의 일터로 흩어졌다.

사진·글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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