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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검’은 언론 관행 속에 숨어 있다

현직 법조기자 18명 심층 인터뷰… 피의사실 공개하지 않는 데 모두 동의하지만,
공론화 통해 가치규범 일거에 바꾸지 않는 한 잔인한 ‘눈치 게임’은 계속돼
등록 2020-07-04 05:37 수정 2020-07-05 02:45
4월28일 검·언 유착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서울 종로구 채널A 본사 압수수색에 나선 가운데, 한 직원이 채널A 건물의 출입자를 지켜보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4월28일 검·언 유착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서울 종로구 채널A 본사 압수수색에 나선 가운데, 한 직원이 채널A 건물의 출입자를 지켜보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요즘 뜨는 시장이 있다. 정치인과 지식인, 전직 기자들까지 앞다퉈 뛰어든 ‘핫’한 사업 아이템은 ‘기레기 때리기’다. ‘취재는 하지 않고 권력에 빌붙어 가짜뉴스를 조작하는’ 기자들을 꾸짖으면 인기를 끌 수 있다. 논리나 증거가 없더라도 기자를 욕하고 조롱하면 ‘사이다’라며 열광할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기자는 혐오의 대상이다.

기자를 ‘쓰레기’에 비유하는 ‘기레기’라는 단어는 언론의 모든 문제를 기자 개인의 부도덕과 무능력 탓으로 돌린다. 공격의 화살은 기자들을 향한다. ‘언론이 문제’라는 비판은 타당하고, 한국 언론에는 개혁이 필요하다. 언론 개혁에 성공하려면 언론의 환부를 정확히 찾아내야 한다. 그래서 궁금하다. 기자들이 무능하고 부패해서 언론이 문제가 된 것인가.

뉴스는 기자가 만들지만 기자가 혼자서 만드는 것은 아니다. 기자는 자신이 속한 언론사의 지시와 감독을 받는다. 이러한 구조를 방치한 채 기자만 욕하고 조롱하는 것은 속은 시원할지 몰라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법조기자 대부분 “‘친검’은 존재한다”

무엇이 평범한 기자를 ‘기레기’로 만드는가? 언론을 공부하고 분석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연구자로서 최근 이 질문의 답에 다가갈 밀도 높은 데이터를 구할 기회를 얻었다. 18명의 현직 기자를 만나 장시간에 걸쳐 경험과 인식을 청취하는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나이는 20~50대, 남성`12명·여성 6명, 매체는 신문·방송·통신·인터넷 등을 아울렀다(인터뷰 분석 결과는 6월 발간된 <한국언론정보학보> ‘법조 뉴스 생산 관행 연구: 관행의 형성 요인과 실천적 해법’이라는 논문에 실렸다).

인터뷰 대상자들의 공통점은 현재 법조에서 취재하거나 과거에 취재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검찰과 법원을 아우르는 법조는 청와대, 국회와 더불어 언론사의 핵심 출입처다. 대법원, 대검찰청, 서울중앙지검, 서울중앙지법에 있는 기자실로 약 300명의 기자가 매일 출근하며 뉴스를 생산하고 있다. ‘정치의 사법화’가 심화된 한국 사회에서 법조는 정치를 대신해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특히 검찰은 정치와 경제를 포괄해 모든 사회 분야를 다루며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권력기관이다.

검찰 출입기자는 이 권력과 부적절한 공생관계라는 비판을 받는다. 이른바 ‘친검’ 기자 논란이다. 검찰 출입기자가 최소한의 사실 확인조차 거치지 않고 검찰 발표를 무비판적으로 받아쓴다고 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 채널A 기자와 검사장의 검·언 유착 논란을 거치며 ‘친검’ 기자의 존재는 기정사실화되고, 검찰 출입기자들은 어느새 ‘공공의 적’이 됐다.

‘친검’ 기자가 실제 존재하는지 기자들에게 물었다. 인터뷰에 참여한 기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렸지만, 검찰의 논리에 동화되거나 검찰에 취재를 의존한다는 의미에서 ‘친검’은 존재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상당수 기자는 검찰 출입기자들이 보도할 때 검찰에 편향적이거나 과도하게 의존한다는 지적을 인정했다. 검찰이 진실의 심판관인 양 검찰에 최종 판단이나 확인을 구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검찰 발표는 따로 검증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받아쓸 만큼 신뢰를 보냈지만, 검찰 수사를 받는 피의자 쪽 주장은 아예 반영하지 않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확인되지 않아도 ‘지르는’ 기사들

“크로스체크를 안 해요. 그게 되게 많아요. 왜냐하면 그 소스(검찰)가 신뢰도가 높다고 생각하거든요. 헛된 거짓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보니까 그 사람이 자료를 읊어주는 걸 그냥 쓰는 거죠. 그런데 사실 그건 되게 부적절하다고 생각하거든요.”(6년차 기자, 방송사)

그러나 기자들은 검찰 권력과 결탁해 일방적으로 검찰 편만 든다는 의미에서 ‘친검’의 존재는 부정했다. 예외적 일탈 사례는 있을지 몰라도, 대다수 기자는 검찰과 적절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비판과 견제를 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기자들 간에도 엄격한 평가가 이뤄지기 때문에 검찰 입맛을 맞춰주며 검사가 던져주는 정보를 ‘받아먹기만 하는’ 기자들은 내부에서 도태된다는 주장도 있었다.

“외부에서 보듯이 기자들이 맨날 검사들하고 술 먹고 어깨동무하면서 친해가지고 견제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다? 그런 건 아니고. 옛날처럼 검사들 주장만 일방적으로 쓰는 기자가 많이 없고, 의외로. 왜냐하면 기자들도 상당한 부담을 느끼거든요. 언론사 내부에서도 욕먹어요. ‘너는 친검 아니냐.’”(14년차 기자, 신문사)

기자들은 ‘친검’이 아니라 하는데 대중이 ‘친검’으로 받아들이는 뉴스가 생산되는 모순의 해답은 왜곡된 관행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악마가 디테일에 있다면 ‘친검’은 관행 속에 숨어 있다. 법조 출입기자들은 일상적 업무 수행 과정에서 당연한 것처럼 반복되는 관행의 구속을 받는다. 이 관행은 낙후한 뉴스 생산 환경에 뿌리를 둔다. 관행을 별다른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순간, 누구라도 ‘친검’ 기자가 될 수 있다.

기자들에게 법조는 단독 기사 경쟁이 유난히 치열한 출입처다. 여론에 큰 영향을 미치는 뉴스가 쏟아지는 곳이기에 매일 언론사 간에 자존심을 건 승부가 벌어진다. 과도한 경쟁과 특종을 향한 집념은 기형적인 보도 관행을 양산한다. 압수수색, 소환조사, 영장 청구 등 수사 과정을 단계별로 생중계하는 보도, 피의자의 인권을 훼손하는 무분별한 피의사실 보도는 모두 극심한 단독 경쟁의 산물이다.

6월1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입구에서 시민단체 민주언론시민연합이 검·언 유착 의혹 추가 고발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합뉴스

6월1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입구에서 시민단체 민주언론시민연합이 검·언 유착 의혹 추가 고발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합뉴스


정보 독점 검사와 기자의 ‘갑을관계’

법조에는 확인되지 않아도 ‘지르는’ 기사가 많다. 다른 출입처와 비교할 때 기사에 담을 수 있는 ‘사실’의 문턱이 상대적으로 낮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오보도 많다. 역시 경쟁에서 앞서 나가려는 욕심이 낳은 병폐다. 손톱만 한 팩트에 살을 붙여 부풀리는 ‘침소봉대형’ 기사가 나오는 것도, ‘알려졌다’ ‘전해졌다’ 같은 주체 없는 피동형 서술어를 남발하는 기사가 쏟아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왜 법조에는 이렇게 단독 경쟁이 심할까? 언론사 조직의 부추김 때문이다. 기자들은 회사로부터 명시적·묵시적으로 특종을 요구받고 있었다. 낙종이 반복되면 “국장은 데스크를 쪼고, 데스크는 현장을 쪼는” 식으로 군대식 위계를 따라 압력이 하달됐다.

“‘출입한 지 얼마나 됐는데 제대로 된 괜찮은 단독 한 번이라도 한 적 있냐’ 직설적으로 얘기한 경우도 많이 있고. 어떻게 해서든 만들어 와라. 약간 이런 지시도 많이 받았고.”(10년차 기자, 신문사)

조직의 노골적 압력을 받은 기자들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바탕으로 피의사실을 담은 단독 기사를 쓰는 경쟁에 동참한다. 법조는 다른 출입처에 비해 취재원과 기자 간 정보의 비대칭성이 크다. 수사는 본질적으로 보안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정보를 독점한 검사와 정보를 얻으려는 기자 사이에 ‘갑을관계’가 형성된다. 단독 압박에 시달리는 기자들은 기꺼이 검사의 ‘을’을 자처한다. 이렇게 서초동에 ‘친검’ 기자가 하나 추가된다.

검찰의 말만 받아쓰는 기사가 나쁘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기자들도 외곽취재를 나가 사실관계를 충분히 확인한 뒤 완성도 높은 기사를 쓰기 원한다. 그러나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기자들은 입을 모아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할당된 기사는 많고 일할 기자는 부족한 탓이다.

“한국 언론 시스템에서는 어떤 얘기를 들으면 그걸 충분히 확인하고 쓸 만한 시간을 개별 기자들한테 주지 않아요. 그런 현실적인 문제도 꽤 있어요. 나한테 마감 시간이 두 시간만 남았으면 내가 이러이러한 부분도 좀더 확인해보고 쓸 텐데 너무 시간이 없어서.”(20년차 기자, 신문사)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 취재된 게 아무것도 없더라도 뉴스룸은 무조건 톱뉴스를 비워놓는다. 어쨌든 주어진 시간과 지면을 메꿔야 하니 현장에서는 무리한 기사라도 쓸 수밖에 없다. 회사는 과중한 업무 부담을 지우면서도 충분한 인력을 제공하지 않는다. 선진국 언론에 비해 턱없이 기자 수가 적은 한국 언론은 언제나 일손이 부족하다. 시간에 쫓긴 기자들은 두 번 물어볼 일은 한 번만 물어보고, 외곽취재를 나가야 하는 일은 검찰에만 물어 기사를 완성한다.

더 큰 문제는 언론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모든 조직이 똑같은 관행에 따라 동일한 선택을 하고 동일한 결론에 이른다는 것이다. 모든 언론사가 검찰 수사 중계와 단독 경쟁에 몰두하고 있을 때 한 언론사만 전체 흐름에서 혼자 이탈하는 모험을 선택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기자와 언론사는 내부적으로 언론계 전체가 공유하는 관행에 따라 성과를 평가받기 때문에 위험 부담을 느낀다.

“남들이 다 쓰니까 안 쓸 수 없다”

개인은 상식적으로 사고할 수 있지만 집단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인터뷰에 응한 거의 모든 기자는 언론이 무분별한 피의사실 보도를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대다수가 피의사실 보도 경쟁에 반대하는데도 결과적으로 경쟁은 계속되는 상황이다. “남들이 다 쓰니까 안 쓸 수 없다”는 이유였다. 공론화를 통해 기자 집단 전체가 공유하는 가치와 규범을 일거에 바꾸지 않는 한 잔인한 ‘눈치 게임’은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친검’ 기자를 양산하는 구조와 관행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이미 오래전부터 마련돼 있다. 검찰 수사 보도에서 벗어나 법원 공판 보도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것이다. 인터뷰에 응한 대다수 기자도 법조 보도가 법원 공판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언론사들이 검찰 수사 보도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단독 경쟁도 완화되고 기자들이 검찰에 의존할 필요성도 사라질 것이다.

문제는 법원 공판 기사에 대한 무관심이다. 언론사가 검찰 수사와 관련된 단독 기사를 요구하는 이유는 돈벌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 보도는 포털에서 인기가 높다. 특히 대형 수사가 벌어질 때 ‘단독’ 말머리를 붙인 기사는 클릭을 유도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검찰 기사를) 쓰면 조회 수가 많이 나와요. 진짜 많이 나오고. 수요가 충분히 있는 것 같아요. 물론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9년차 기자, 신문사)

반면 법원 공판 기사에 대한 관심은 현저히 낮다. 검찰이 ‘거악’을 때려잡는 선명한 내러티브의 수사 중계와 달리 법원 공판은 대개 양쪽이 법리를 다투는 입체적이고 심층적인 구도다. 따라서 지루하거나 난해하다. 클릭도 없고 댓글도 없으니, 언론사들이 기사를 만들어낼 동기가 없다. 근래 <한겨레>를 비롯한 몇몇 언론사가 사법농단 재판을 꾸준히 추적 보도하는 이례적인 시도를 해왔지만, 들인 공에 비해 반응은 미지근하다.

“공판 중심으로 가야 한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재판 기사를 잘 안 봐요. 다들 조국 기사만 보고, 검찰 기사만 보고. 이런 상황에서 기자들보고 너네 공판 중심으로 왜 안 하냐 이런 얘기가 과연 현장 기자들을 얼마나 설득할 수 있느냐.”(12년차 기자, 인터넷언론)

클릭을 먹고 자라는 막장 드라마

검찰 수사 보도는 욕하면서 보는 막장 드라마와 같다. ‘친검’ 기자는 막장 드라마에 중독된 시민들의 클릭을 먹고 자란다. 뉴스 소비자가 자극적인 수사 보도에서 벗어나 심층적인 공판 보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만 그들이 발붙일 토대를 잃게 된다. 언론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려면 평범한 기자에게 ‘기레기’가 될 것을 강요하는 열악한 구조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박영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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