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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패자여도 괜찮은 세상

등록 2020-09-05 01:21 수정 2020-09-05 02:11
연합뉴스

연합뉴스

미래통합당은 이제 국민의힘이 됐다. 행동주의 단체를 연상케 하는 이름이다. 언론 보도를 보면 ‘좌파단체’ 이름 같다는 볼멘소리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이름을 바꾸는 데 성공한 것은 당명개정안이 부결될 경우 악화할 여론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 덕분일 거다.

이게 과연 오래갈 당명인지는 의심스럽다. 내부 반발도 여전하고 ‘아스팔트 우파’와의 단절 등 과제 역시 산적해 있다. 이런 한계에도 보수야당의 최근 시도는 긍정적이다. 국민이 본 최근 정치권은 자기를 돌아보며 반성하기보다는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자기정당화에만 몰두해왔다. 당대표 격인 80대 노인이 광주에서 무릎을 꿇고 정강정책 맨 앞자리에 기본소득을 넣은 일은 적어도 변화 의지를 보여주려 노력한다는 인상을 준다.

여당도 변화의 기로에 섰다. 전당대회는 예상대로 이낙연 대표의 탄생으로 귀결됐다. 6개월짜리라지만 해야 할 일이 만만치 않다. 먼저 코로나19 피해 극복을 위한 실질적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야당과 협력이 가능한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개혁 과제의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당청관계가 변화해야 한다. 청와대를 적대하라는 게 아니라 정책 로드맵을 만들고 실행하는 과정에 당이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낙연 정치’의 실체를 보여줘야 대권 주자로서 당당하게 평가받을 수 있다. 전당대회는 핵심 지지층에 잘 보이려는 후보들의 강경론과 충성 발언으로 뒤덮였는데 앞으론 다를지 궁금하다.

24살 대학생 박성민 당 청년대변인이 지명직 최고위원(사진 왼쪽)으로 지도부에 입성한 것은 좋은 신호라고 본다. 물론 ‘젊은이’에게 한자리 주는 걸로 생색내는 정치는 이제 식상하다는 반응도 있다. 이런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가 중요하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국민의힘에도 젊은 주자들이 있다. 이번에 정강정책을 바꾸는 데 앞장선 김병민 비대위원(사진 오른쪽)은 우리 나이로 39살이다. 30대라고 하면 언론 노출이 잦은 이준석 전 최고위원도 있다. 이들의 주장에 고개를 갸우뚱할 때도 있으나 적어도 보수야당의 변화를 촉진하는 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지도부가 이들이 실제 일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권한을 맡긴 덕분이다. 여당도 당내 젊은 세대를 단지 ‘알리바이’로 활용하는 걸 넘어서야 한다.

젊은이에게 역할을 맡기는 것 이상의 정치도 있어야 한다. 가령 최근 젊은 의사들의 반발은 의사의 엘리트적 지위를 지키는 게 한 축이다. ‘전교 1등 의사’ 논란은 엘리트 권력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실력’이지 ‘정치’가 아니라는 서사에 대한 집착을 보여준다. 의사들만 이러는 게 아니다. 뭔가를 쟁취하기 위해선 공정이니 실력이니 하는 명분을 들이밀지만,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게 요즘 사람들의 생각이다. 이 세계관에선 오직 승자만 남는다.

하지만 공동체의 바람직한 변화를 위해서 정치가 주목해야 할 대상은 패자들이다. 패자여도 괜찮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거대 양당은 바쁜 듯하니 진보정당이라도 이 과제를 감당해야 하는데 총선 이후 아직도 자기 자리를 못 찾는 듯해 유감이다.

김민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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