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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이낙연, 새 이낙연...이낙연 대표의 193일

민주당 대표로 주어진 여섯 달 동안 민주당 대선 후보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등록 2020-09-05 08:14 수정 2020-09-09 02:23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0년 9월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을 만나 인사말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0년 9월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을 만나 인사말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최장 193일이 주어졌다. 아직은 불확실한 민주당 대선 후보 자리를 확실한 자기 자리로 바꾸는 ‘전환의 시간’이 될 것이다. 이 대표는 이 시간 동안 당심과 민심, 둘 다 잡아야 한다.

시작은 좋다. 8·29 전당대회에서 당원과 국민은 60.77%로 그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2018년 이해찬 전 대표는 42.88%, 2016년 추미애 전 대표는 54.03%를 득표했다. 앞서 6월30일 민주당은 당대표가 중도에 사퇴해도 최고위원의 임기 2년은 보장하도록 이 대표를 위한 ‘맞춤형 당헌 개정’도 해줬다. 당대표 임기는 2년이지만, 민주당의 당권-대권 분리 당헌·당규에 따라 이 대표가 대통령 후보로 나선다면 내년 3월 초에 대표직을 사퇴해야 한다. 하지만 최고위원들의 임기는 그대로 유지되도록 규정을 바꾼 것이다. 또 전남 영광 출신인 이 대표는 ‘호남대망론’을 등에 업고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 기반인 호남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이 대표는 당대표 경선 기간에 “국무총리는 이인자이지만 당대표는 일인자다. (당대표가 되면) 새로운 이낙연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대선을 향해 직진하는 ‘새로운 이낙연’을 바라볼 포인트 몇 가지를 짚어봤다.

대통령과 동조화된 지지율

먼저 코로나19 위기 국면에서 이 대표는 자신의 강점을 강화하는 전략을 취했다. 이 대표가 당 국난극복위원회를 확대 재편하고 직접 위원장을 맡기로 한 것이다. 국무총리 시절 메르스 등 감염병이나 산불·태풍 같은 자연재해에 대처한 일을 국민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이 대표는 보고 있다. 이러한 강점을 살려 극난극복위 위원장을 맡아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는 리더십을 보이겠다는 복안이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이 대표가 당·정·청을 총괄적으로 관리하며 코로나19는 본인이 직접 책임지고 해결해내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당·청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도 주요 관전 포인트다.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에서 역대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운 이 대표의 대선 후보 지지율은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과 동조화 현상을 보였다. 이 상황에서 이 대표가 대선 주자로 독자적인 자기 목소리를 내며 청와대와 얼마나 차별화할 수 있을지와, 청와대는 얼마나 이 대표에게 ‘룸’(공간)을 줄 것인지가 관건이다. 2012년 대선(이명박→박근혜)과 2002년 대선(김대중→노무현)은 대선 주자가 청와대와의 차별화에 성공했기에 정권 재창출이 가능했다. 반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재임 때 여당에 룸을 주기는커녕 차기 대선 주자군이던 김무성 대표를 압박하고 유승민 원내대표를 찍어낸 바 있다.

그런데 이 대표가 차별화를 꾀하기 위한 여건은 녹록지 않다. 이 대표가 당내에 자기 세력이 취약해 민주당 최대 주주인 친문재인계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이 대표가 청와대와 다른 목소리를 낼 때 친문이 반발하면, 그의 입지가 흔들릴 수 있다. 반대로 청와대 눈치만 보고 입을 닫고 있으면 대선 주자로서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이 대표가 기본적으로 이런 딜레마 상황에 처해 있어서 운신의 폭이 좁아 보인다”고 말했다.

그런 한편, 호남대망론을 등에 업고 있는 이 대표는 민주당의 전통 지지층인 호남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다는 강점이 있다. 이에 따라 청와대와 이 대표 사이에 튼튼한 동아줄이 형성된다. 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 대표는 “호남의 지지는 민주당과 청와대의 전국 지지율을 떠받치는 실체이기 때문에 청와대도 (이 대표와) 전략적 동맹관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문재인 대통령이 당대표 후보로 나선 2015년 전당대회에서 호남 당원들의 표심이 경쟁자인 박지원 후보에게 쏠렸을 때와 2017년 대선 때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후보를 바짝 따라붙었을 때 위기에 처한 문 대통령 쪽이 당시 이낙연 전남도지사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이 지사가 두 번 다 큰 도움을 줬다고 알려져 있다. 이 대표가 자기 목소리를 낼 룸을 청와대가 열어줄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볼 만한 대목이다.

이낙연은 민심을, 이재명은 당심을

민주당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이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여론조사 양강 구도 속에 벌이는 박빙 경쟁도 초반부터 달아오르는 양상이다. 첫 쟁점은 2차 재난지원금 지급 범위가 됐다. 정치권에서 보편지급과 선별지급 주장이 엇갈린다. 그런 가운데 경선 승리 직후 이 대표는 “더 많이 고통받는 분들께 맞춤형으로 긴급 지원해드리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며 사실상 선별지급 쪽으로 가닥을 잡고 추석 전 지급을 목표로 당·정·청 협의에 나섰다. 그러자 이재명 지사는 자신의 보편지급 주장에 대해 “무책임하다”고 비판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반박하는 페이스북 글에서 “선별지급을 주장하는 보수 야당과 싸우며 민주당이 쟁취해온 보편복지와 공평의 가치에서 이번에는 왜 벗어나려는 것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겉보기엔 홍 부총리를 향한 것이지만 사실상 선별지급으로 결론을 낸 이 대표를 겨냥한 주장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두 대선 주자는 정책에서뿐 아니라 최종적인 민주당 대선 후보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길도 엇갈린다. 대권을 거머쥐려면 먼저 당내 경선(당심)에서 승리해야 하고, 다음 단계로 본선(민심)에서 이겨야 한다. 이 대표는 이 지사에 견줘 당심에서 강하다. 민심에서는 이 지사와 박빙 상황이다. 윤태곤 실장은 “이 대표가 ‘인에서 아웃’(당심에서 민심으로 확장)해야 한다면, 이 지사는 ‘아웃에서 인’(민심에서 당심으로 확장)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두 주자는 모두 ‘친문 적자’가 아니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에 따라 8월처럼 민주당 지지율이 떨어지고 국민의힘(미래통합당의 새 당명) 지지율이 상승하는 정국이 도래하거나, 두 주자 모두 확장성을 보이지 못할 때는 여당 내에서 제3후보론이 불거져나올 수도 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친문 당원들 사이에서 ‘두 주자 가운데 누구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불안하다’, 이런 판단이 내려질 때는 제3후보론이 분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2021년 보선이 마지막 주요 시험대

이 대표의 전환의 시간 중 2021년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는 마지막 주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이 대표는 보궐선거 전인 2021년 3월9일 이전에 사퇴해야 하지만, 사퇴 전에 민주당 후보를 출마시킬지 결정해야 하고, 후보를 내는 경우 공천 작업은 1~2월에 진행된다. 이때는 여전히 이 대표의 시간이라 보궐선거 결과는 오롯이 이 대표의 책임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대표의 대선 주자로서 입지가 선거 결과에 따라 좌우되는 셈이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부산시장 선거에선 민주당이 쉽지 않을 수 있는데, 서울시장 선거까지 완패하면 이 대표에겐 상당한 타격이 될 것이다. 내년 보궐선거에서의 선전이 이 대표의 최대 과제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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