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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결국 ‘균형 발전’ 포기하나?

청와대, 행정수도 이전 발 빼고 공공기관 2차 이전엔 부정적 판단
등록 2020-09-12 12:06 수정 2020-09-18 01:21
2020년 7월20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국회와 청와대를 모두 세종시로 옮겨서 행정수도를 완성하자”고 제안했다. 한겨레 강창광 선임기자

2020년 7월20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국회와 청와대를 모두 세종시로 옮겨서 행정수도를 완성하자”고 제안했다. 한겨레 강창광 선임기자

7월20일, 문재인 정부가 균형발전 정책과 관련해 ‘대전환’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감이 부풀어올랐다. 이날 국회에선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국회와 청와대를 세종시로 옮겨 행정수도를 완성하자”고 제안했다. 또 청와대에선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혁신도시(1차 공공기관 이전) 정책 평가와 2차 공공기관 이전 방안에 대해 보고했다. 행정수도 세종시 이전과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균형발전 정책의 쌍두마차였다. 정·관계에선 총선 대승을 거둔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값 폭등이라는 위기 상황을 맞아 ‘균형발전’이란 강력한 카드를 꺼낸 것으로 이해했다. 행정수도 이전과 공공기관 2차 이전이 함께 추진되면 상당한 상승효과가 나타날 것으로도 예상됐다. 정부 관계자들도 “이번에는 할 것 같다”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 았다.

청, “국회에서 논의” 원론적 태도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행정수도 이전 정책을 논의할 국회 특별위원회가 야당의 비협조로 구성되지 못한데다, 애초 계획한 전국 순회 토론회도 코로나19 확산으로 9월10일에야 처음 서울에서 열렸다. 국민의힘(당시 미래통합당) 일부 의원까지도 공감을 표한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청와대는 “개헌이 필요한 문제”라며 “국회에서의 논의를 지켜보겠다”는 원론적 태도를 보였다. 애초 김태년 원내대표가 제안한 국회와 청와대 이전 가운데 청와대 이전은 초장부터 빠진 것이다. 앞서 청와대는 2018년 대통령의 개헌안에 수도 조항을 포함하고, 2019년엔 세종시에 대통령 제2집무실을 설치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청와대는 2차 공공기관 이전 문제에 대해서도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 대해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의 보고를 들은 문 대통령은 2차 이전 때 생길 문제점 등에 대한 추가 검토를 주문했다고 한다. 추가 보고가 있었지만 결론을 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인 정부가 2018년 발표한 혁신도시 시즌2도 기존 혁신도시의 문제점을 일부 보완하는 수준에 그쳤다. 2019년 내놓은 균형발전을 위한 대규모 예비타당성 면제 사업은 대부분 토목 사업으로, 균형발전과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어 국토교통부는 국토연구원에 1차 공공기관 이전 평가를 맡겼고, 이 결과에 따라 2차 이전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혁신도시 성과평가 및 정책지원’ 보고서가 이미 5월에 나왔고 대통령은 7월에 보고받았으나, 현재까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문 대통령에게 보고된 국토연구원의 ‘혁신도시 성과평가 및 정책지원’ 보고서를 보면 기존 균형발전 정책의 성과와 개선점을 잘 알 수 있다. 이 보고서는 혁신도시(1차 공공기관 이전) 정책의 성과로 인구와 경제에서의 균형발전 효과를 꼽았다. 먼저 인구 부문에선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인구가 역전되는 시점이 8년 정도 늦춰졌다고 평가했다. 2005년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를 보면, 수도권 인구는 2011년 전체 인구의 5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실제는 8년 늦은 2019년에 50%를 넘어섰다.

7월31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경선 후보였던 이낙연 의원이 세종시의 밀마루전망대를 방문하자, 이춘희 세종시장이 원수산과 전월산 사이에 있는 국회와 청와대 후보지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7월31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경선 후보였던 이낙연 의원이 세종시의 밀마루전망대를 방문하자, 이춘희 세종시장이 원수산과 전월산 사이에 있는 국회와 청와대 후보지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혁신도시, 수도권 인구 증가 속도 늦춘 ‘성과’

전국 10개 혁신도시로의 수도권 인구 유입은 2013년께부터 늘어나 2015년 1만909명으로 정점을 찍었고, 그 뒤엔 유입 규모가 계속 줄었다. 2013~2018년 6년 동안 수도권에서 전국 혁신도시로 순이동한 인구 규모는 2만8749명이었다. 그러나 혁신도시로 이주한 인구 가운데 수도권은 16%에 그쳤고, 혁신도시 주변의 모도시가 51%를 차지한 점은 고질적인 문제로 꼽혔다.

지역내총생산(GRDP)의 증가 규모는 더 커졌다. 혁신도시 입주 전인 2010~2013년 해당 지역에서 늘어난 총생산 규모는 4조1237억원이었으나, 입주 뒤인 2013~2016년엔 7조5516억원으로 83%가량 늘었다. 혁신도시 지역에 입주한 기업 수도 혁신도시 건설 이후 크게 불었다. 혁신도시 입주 전인 2007~2012년 해당 지역에 증가한 기업 수는 1만3204개였는데, 혁신도시가 들어선 2012~2017년엔 2만2617개로 1.7배 늘었다. 특히 광주전남은 200개에서 2007개로 10배 넘게 커졌고, 경북은 240개에서 1303개로 5.4배나 됐다.

고용 규모도 2007~2012년(입주 전)에 7만6996명, 2012~2017년(입주 후)엔 18만1057명으로 크게 바뀌었다. 혁신도시의 상용 노동자 수는 6만1584명(입주 전)에서 13만9024명(입주 후)으로 불었다.

이번 연구의 책임자인 강현수 국토연구원장은 “수도권의 좋은 일자리를 분산해 수도권 인구 증가를 억제했다는 점은 의미가 컸다. 지역의 총생산이 증가하는 데도 기여했다. 앞으로 2차 이전을 추진한다면 공공기관과 함께 민간기업의 이전을 이끌어내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전 방식에서도 기존 신도시 방식만이 아니라, 모도시의 재생 방식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사열 위원장은 “2차 이전 정책에는 지방 국공립대학의 발전 방안이 포함돼야 한다. 당장 전국적인 국공립대 통합이 어렵다면 부산경남권, 대구경북권, 호남권, 충청권 등 광역별로라도 먼저 국공립대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 지방 국공립대의 교수 인력을 늘려야 연구 경쟁력을 높일 수 있고 중앙정부의 예산 지원도 더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마강래 중앙대 교수는 “지방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행정구역을 17개 광역 시도가 아니라, 그보다 더 큰 광역으로 통합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해당 지역의 역량을 통합해야 하고, 지역의 산업과 대학도 현재의 작은 행정구역을 넘어서야 한다. 그래야 지방이 수도권과 세계와 경쟁하는 역량을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2022년 대선까지 미루나

그러나 청와대는 꿈쩍하지 않는다. 민주당에서 주도한 행정수도 이전에서는 발을 빼고, 행정부가 권한을 가진 공공기관 2차 이전에 대해서는 부정적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민원 전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수도권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 따라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지방선거(2018년)나 총선거(2020년)를 이유로 2차 이전을 계속 미뤄왔다. 현재 상황을 보면, 2021년 보궐선거와 2022년 대선까지 미룰 수 있겠다는 우려마저 든다”고 말했다.

이런 청와대의 태도 때문에 균형발전 정책 전체가 길을 잃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가 사실상 임기 안 균형발전 정책 추진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의 의지가 부족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최근 총선과 부동산값 폭등은 정부가 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할 좋은 기회인데도 대통령이 결정하지 않는다. 아마도 공공기관 이전을 추진할 때 생길 야당의 반대나 지역 간 갈등, 노조의 반대 등이 부담스럽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균형발전 같은 큰 이슈를 추진하기엔 이미 시기를 놓쳤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의 다른 고위 관계자는 “임기가 1년 반 정도 남았는데, 공공기관 이전은 시간이 오래 걸려서 이제 추진하기는 쉽지 않다. 초기엔 남북관계 개선, 중기엔 일본과의 무역 갈등, 조국 사태와 검찰 개혁 등으로 다른 일을 할 수 없었다. 현재도 부동산값과 코로나19 사태에 붙잡혀 있다. 균형발전 정책은 이번 정부에서 준비라도 해서 다음 정부에 넘겨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근 민주당에서 추진하는 행정수도 이전을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두영 충북경제사회연구원장은 “민주당에서 9월10일 행정수도 완성 관련 전국 순회 토론회를 시작했다. 행정수도는 주로 세종시에 관련된 일이니 다른 지방에선 공공기관 이전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이제 청와대보다는 민주당이 나서야 하고, 균형발전 시민단체들도 나설 것이다”라고 말했다.

10개 혁신도시 가운데 규모가 크고 공공기관 이전 효과도 잘 나타난 전남 나주의 광주전남 혁신도시의 모습.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10개 혁신도시 가운데 규모가 크고 공공기관 이전 효과도 잘 나타난 전남 나주의 광주전남 혁신도시의 모습.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기초지방정부 46% 소멸 위기

민주당에서는 공공기관 2차 이전이나 행정수도 이전에 의지가 강했던 이해찬 전 대표에 이어 이낙연 대표도 균형발전 의지를 밝혔다. 이 대표는 9월7일 국회 연설에서 “균형발전은 더 미룰 수 없다. 행정수도 이전은 국회 특위가 조속히 가동돼 결정해주기 바란다. 2단계 공공기관 이전과 혁신도시 추가 지정(대전·충남)은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2019년 11월1일 기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수도권 인구가 전체 인구의 50%를 넘어섰고, 2020년 5월 기준 기초지방정부의 46%가 소멸 위기에 놓여 있다. 또 2019년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이 0.92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을 기록했는데, 17개 광역 시도 가운데 서울시가 0.72명으로 전국에서 최저였다. 현재 지방에서 서울로 이주하는 인구의 80%가량은 청년층이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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