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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그들은 종교인이 돼가는가

등록 2020-09-19 00:52 수정 2020-09-19 01:23
박상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 강창광 기자

박상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 강창광 기자

KBS가 개그콘서트를 폐지했을 때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다. 뉴스가 더 재미있는데 뭐 하러 공영방송의 코미디 방송 프로그램을 시청하겠는가. 더불어민주당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의혹에 안중근 의사를 언급한 걸 보고 이런 생각을 다시 했다.

추미애 장관 아들이 무릎 수술을 받기 위해 병가를 낸 게 과연 ‘위국헌신군인본분’이란 말을 몸소 실천한 결과일까? 이런 논리는 세상만사를 성경의 가르침과 연결하는 종교인의 태도를 연상케 한다. 종교인의 설교는 일체감을 유지하기 위한 것일 텐데, 여당이 느닷없이 안중근 의사를 끄집어낸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 한다.

친일이냐 독립운동이냐는 이 정권이 정파적 정당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즐겨 꺼내 드는 구도이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의혹을 제기하는 보수야당을 향해 “민간인을 사찰하던 쿠데타 세력이 국회에 와서 공작을 한다”고 했는데, 이 역시 결국 독재냐 민주냐의 구도에 편승한 것이다.

이런 구도 설정은 보수정치도 즐겨 한다. 가령 개천절에도 집회를 강행하겠다는 ‘광화문 집회’ 세력을 보라. 공산주의냐 시장자유냐, 미국이냐 중국이냐, 전체주의냐 민주주의냐라는 내용이 다를 뿐이다. 이 정권이 친일과 독재를 말하는 것은 이런 고전적 구도를 같은 방식으로 받아치려는 시도이기도 한 셈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본인이 순흥 안씨라며 안중근 의사를 욕되게 하지 말라고 한 것 역시 여당의 논리를 같은 방식으로 돌려준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치인이 족보를 꺼내 드는 모습은 그만 보았으면 한다. 참여정부 때도 열린우리당 주요 인사들이 친일파 후손이라는 논란이 있었지만 적어도 그때는 친일진상규명법 등이 현안이었다. 지금은 2020년이다.

친일 청산이나 군부독재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것은 의미가 없지 않다. 하지만 지금이 해방정국이나 1980년대가 아닌 이상 모든 현안에 이런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똑똑한 국회의원들이 비웃음을 감수하며 이런 일을 하는 이유는 ‘우리 편’에 제공할 대응논리가 마땅치 않기 때문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기성 정치의 또 다른 기술은 본질을 ‘의도’에 가둬버리는 것이다. 황희 민주당 의원 등이 이번 의혹을 제기한 당직병의 배후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한 게 그렇다. 하지만 오직 순수한 의도로만 제보나 폭로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따라서 배후세력 색출이 아니라 제보 혹은 폭로를 근거로 새로 드러난 사실을 따져보고 문제의 진단과 해결에 나서는 게 먼저다. 황희 의원 등의 시도는 이 책임을 외면하는 게 될 수 있다.

언론이 똑똑하고 합리적인 인물로 평가했던 윤희숙 국민의당 의원이 방역 당국의 코로나19 진단검사와 항체검사가 정치적 목적에 의해 임의로 되고 있다고 주장한 것도 유사한 시도이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이런 주장이 제기된 데 대해 “저로서는 좀 충격”이라고 했는데, 정치인이 충격적인 일을 굳이 한 의도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윤희숙 의원은 서울시장감으로 평가된다. 내년에는 재보궐선거 말고도 여당 대표를 새로 뽑는 일정이 예정돼 있는데, 최근 언론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그때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라면 재미일 것이다.

김민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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