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대통령 지지율’은 지지율이 아니다

‘대통령이 일을 잘하고 있나요’가 ‘지지율’로 둔갑하는 여론조사
등록 2021-05-16 15:55 수정 2021-05-20 02:15
문재인 대통령이 2021년 5월1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 질의할 기자를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021년 5월1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 질의할 기자를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은 매주 선거를 치른다.’

일주일마다 발표되는 대통령에 대한 여론조사를 두고 나온 말이다. 대통령 권한은 헌법으로 정해져 있어 고정불변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책 <대통령학>을 쓴 폴 라이트는 대통령의 3가지 주요 자원으로 △의회 내 여당 의석수 △당선 득표율 △대통령 지지율(Approval Rate)을 꼽았다. 이들 자원에 대통령 권력은 영향받는다.

‘지지’와 ‘일 잘한다’가 일치하지 않는 36.6%

많은 대통령이 임기 후반부에 지지율이 흔들리면 으레 연연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국정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의회와 밀당해야 하는데 그때 주요한 무기가 국민적 지지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많이 신경 쓰게 된다. 또 ‘대통령 지지율’이 변하면 속보 경쟁하듯 쏟아지는 언론 기사들도 부담이 된다. 수치가 낮아지면 ‘대통령 지지율 폭락’ ‘대통령 지지율 붕괴’ ‘대통령 지지층 등 돌려’ 등의 기사가 포털을 도배한다.

그러나 우리가 익숙하게 쓰는 ‘대통령 지지율’은 잘못된 표현이다. 실제로 대통령 지지율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에서 ‘다음 중 어느 정당을 지지하십니까?’ 묻고 답을 얻는 것을 ‘정당 지지율’이라고 부른다. 반면 ‘대통령 지지율’은 ‘대통령을 지지하십니까?’라고 묻지 않는다. ‘대통령이 (최근에) 일을 잘하고 있다고 보십니까?’라거나 ‘대통령의 직무수행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묻는다. 들여다보면 그 어디에도 ‘지지’라는 표현이 없다.

‘일 잘한다’고 말하는 게 ‘정치적으로 지지한다’와 같은 의미일까. 정치적으로 지지하지만 대통령이 일을 잘못한다고 답할 수 있다. 그 반대도 가능하다. 임기 초반 어떤 대통령은 70% 이상의 지지율 수치를 보이기도 한다. 이때 70%는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게 아니다. 사생결단의 선거에서 반대편 후보에게 강력한 지지의 행동인 투표까지 한 사람들 상당수가 불과 몇 개월 만에 정치적 지지가 바뀐다는 건 현실에선 없는 일이다. 정치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도 처음에는 대통령의 개혁 방향에 호응하며 ‘일 잘한다’고 응답하기 때문이다.

2011년 이명박 정부 때, 대통령이 일을 잘한다고 평가하는 것과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이 같은지 확인하는 설문조사를 해봤다. 보기 문항은 4가지로 구성했다. ①일도 잘한다고 보고, 정치적으로도 지지한다 ②일은 못한다고 보지만, 정치적으로는 지지한다 ③일은 잘한다고 보지만, 정치적으로는 지지하지 않는다 ④일도 잘못한다고 보고, 정치적으로도 지지하지 않는다. 만약 기존 시각이 맞는다면 ②번과 ③번 응답이 유의미하게 나와서는 안 된다. 결과는 ①번 24.8%, ②번 10.7%, ③번 25.9%, ④번 35.6%로 나왔다(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2011년 2월20일 자료). ②번과 ③번을 합치니 무려 36.6%나 됐다. 대통령 업무평가와 정치적 지지는 다르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대통령 잘한다’가 60%였지만 승리하지 못한 여당

현재 여론조사에서 사용하는 ‘(최근에) 일을 잘하고 있다고 보십니까?’라는 질문은 상대적 평가 속성이 크다. 따라서 임기 초반 평가가 매우 좋았다면 그것이 기준점이 돼 이후에는 그보다 높아지기 어렵다. 반대로 이명박 정부 초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때처럼 민심 이탈이 있었다면 기준점이 낮아 이후에는 실제보다 더 높게 나온다. 선거 결과를 예측하는 데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특정 수치 이상이면 여당 승리, 미만이면 야당 승리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예측력이 없을 때도 있다. 가령 2000년 4월 총선에선 김대중 대통령이 ‘잘한다’는 응답이 60%를 넘기도 했지만 여당은 승리하지 못했다. 또 대통령 당선시 득표율과 국정수행 평가의 긍정비율을 직접 비교하기도 하는데 엄밀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을 지지하는지 직접 묻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지’라는 것은 선거와 어울리는 물음이지, 임기가 정해진 대통령에게는 자연스럽지 않은 면이 있어서다. 영미권에서도 대개 ‘approval or disapproval’이라는 표현을 쓰고 이를 ‘approval rate’라고 한다. ‘지지하다’는 의미의 ‘support’와는 다르다. ‘approval’은 누군가에 대해 긍정적 생각을 갖는 마음의 상태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적확한 한국어가 없다. 한국의 여론조사 1세대가 이 지표 문항을 들여오면서 마땅한 표현을 찾지 못해 일을 잘하고 있는지를 묻게 된 것이다.

프랑스는 자유의 나라답게 다양한 질문 표현을 쓰고 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 사용한 설문 문구를 기재한다. 좋은 대통령이라고 보는지, 대통령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대통령에 대해 만족하는지, 대통령의 행동에 찬성하는지, 신뢰하는지, 대통령에 대해 어떤 판단을 하는지 등 여러 가지로 묻는다. 독일에선 주로 만족(zufriedenheit) 여부를 묻는다. 일을 잘하는지 묻기도 하지만 이를 지지율이라 하지 않는다.

지지하는지 직접 질문하는 나라가 없는 건 아니다. 일본에서는 ‘총리/내각을 지지하십니까?’라고 묻는다. 그리고 지지율이라 표현한다. 이는 내각제라는 정치시스템과 관련 있다. 지지율에 따라 내각 불신임과 의회 해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사용 문구 기재, 독일은 만족 여부 질문

대통령의 업무평가를 지지율이라 하는 건 부정확할 뿐만 아니라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시각을 과도하게 정치화하는 문제를 야기한다. 사람들이 대통령을 지지 여부 관점에서만 바라볼 것이라는 인식을 확산한다. 일처리 평가를 정치적 지지 여부로 과장해 해석하고 정치적 공방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조사 결과의 유통자인 미디어의 책임이 크다.

또한 대통령 평가 지표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에게 호감이 있는지, 신뢰하는지, 정책 방향에 동의하는지, 만족하는지 등 여러 각도의 질문을 활용해 입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업무수행에 대해서만 묻는 획일성과 업무평가를 지지율이라 하는 부정확성으로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

*‘윤희웅의 여론 읽기’는 여론조사의 허와 실을 파헤쳐 정확하게 여론 읽는 법을 전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