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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언론중재법, 한 달 뒤에는

등록 2021-09-04 02:48 수정 2021-09-04 07:54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와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오른쪽)가 2021년 8월31일 박병석 국회의장(가운데)과 함께 언론중재법 개정안 본회의 상정 등을 협의하기 위해 만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와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오른쪽)가 2021년 8월31일 박병석 국회의장(가운데)과 함께 언론중재법 개정안 본회의 상정 등을 협의하기 위해 만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국회 본회의 통과를 향해 돌진하던 더불어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8월31일 가까스로 멈춰섰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정지 시한은 9월26일까지로 한 달도 채 되지 않는다. 여야가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하고, 개정안을 9월27일 본회의에 상정해 처리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날짜를 못박은 것은 여당의 강경파를 설득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이 길지 않은 시간에 논의해야 할 언론중재법은 기대보다 우려가 앞선다. 그동안 논의 과정에서 170석 민주당이 보여준 일방적인 태도 때문이다. 국민의힘, 정의당 등 야당을 비롯해 시민단체, 국내외 언론단체, 언론 등이 숙의가 더 필요하다며 즉각적인 처리에 반대했음에도 민주당은 꿈쩍도 안 했다. 특히 7월27일 개정안이 통과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 회의 첫머리에 민주당이 “언론인들은 나가라”고 하고, 국민의힘은 “언론에 공개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며 실랑이를 벌인 장면은 상징적이다. 민주주의와 개혁을 강조해온 민주당이 민주적 가치인 투명성·개방성을 막은 반면 국민의힘은 그 반대의 주장을 한 이 모습은 기묘하게 비쳤다. 아니면, 이제는 이런 장면을 여당이자 기득권이 된 민주당의 ‘뉴노멀’로 바라봐야 하는 것일까.

민주당의 직진은 청와대와 국제사회의 우려 탓에 겨우 제동이 걸렸다.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 등 독소조항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우려가 8월30일 민주당에 전달됐다. 인권단체 전환기정의워킹그룹이 유엔에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세계인권선언과 자유권규약을 위반했다는 진정서를 낸 것에, 유엔 특별보고관이 한국 정부에 이 사안에 대한 입장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고 외교부가 이를 8월31일 접수했다. 민주당뿐 아니라 수정안 등 언론개혁을 위한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않은 국민의힘의 모습도 협의체 실효성에 대한 우려를 키운다.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낮다는 점에서 언론개혁은 필요한 과제다. 그러나 민주당의 언론중재법은 많은 이들의 우려처럼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이기보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축소시킬 가능성이 크다. 개정안에 담긴 허위·조작 보도 개념의 모호성, 고의·중과실 (입증이 아닌) 추정 조항 등의 핵심 문제는 ‘위축 효과’(Chilling Effect)를 부른다는 것이다.

한국 법원이 언론의 성실한 취재·보도에 대해서는 법리적으로 강하게 보호하고 있으므로 소송이 제기됐을 때 언론이 결과적으로 승소하더라도, 수년씩 걸리는 소송 과정 자체의 괴로움은 고스란히 언론이 떠안아야 한다. 또 소송 과정에서, 보도에 유죄로 ‘추정’되는 고의·중과실이 없음을 입증하기 위해 기자가 취재원과 취재 과정 등을 밝혀야 하는 사례가 쌓여가면 권력에 대한 언론의 ‘감시견’ 역할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소송의 승패와 관계없이 소송 자체의 괴로움, 그 괴로움에 대한 두려움이 언론과 표현의 자유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다. ‘가짜뉴스’ 잡으려다 ‘진짜뉴스’를 잡게 되는 것이다.

여야 협의체는 가짜뉴스로부터 피해자를 구제하면서도 언론 자유를 위축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개정안을 잘 논의해나가길 바란다. 이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인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도 다뤄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력이 방송을 장악하는 고질적인 병폐를 끊어내는 것 또한 언론개혁의 주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여야가 기싸움만 벌이다 9월27일 다시금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국면이 펼쳐지는 불행한 사태만큼은 발생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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