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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입성 이후의 예고편

‘장남 도박 의혹’ 이재명 후보와 ‘배우자 김건희씨 허위이력 의혹’ 윤석열 후보가 대처하는 방식
등록 2021-12-24 16:55 수정 2021-12-25 01:27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12월17일 서울 영등포구 당사에서 배우자 김건희씨의 허위이력 의혹과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12월17일 서울 영등포구 당사에서 배우자 김건희씨의 허위이력 의혹과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선거 시기엔 후보의 가족이 화제의 중심에 서는 시점이 온다. 이번에도 그런 때가 왔는데 파급력은 과거보다 훨씬 커 보인다. 후보의 자식이나 형제가 아니라 배우자가 의혹의 한가운데 서 있기 때문이다.

최근 언론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배우자 김건희씨 허위이력 의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장남 문제를 같이 묶어 다뤘다. 양당 모두 ‘가족 리스크’를 안고 있는 후보로 선거를 치른다는 것이다.

‘영부인 공적 업무’ 배우자 검증 시험대 당연

과연 어디까지 후보자 가족을 검증해야 하느냐는 의문이 있지만, 적어도 자식은 배우자와 다르다. 후보자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자식은 자식일 뿐이다. 반면 배우자는 청와대에 입성하면 ‘영부인’이란 호칭으로 불리며 공적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후보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에 걸맞은 ‘검증’의 시험대에 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자식 문제를 소홀히 다뤄도 상관없다는 건 아니다. 과거 정권에서 대통령 자식이 문제를 일으킨 사례가 분명 있었다. 김영삼 정권에서 ‘소통령’이라 불린 김현철씨가 그랬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들인 이른바 ‘홍삼트리오’가 그랬다. 이들은 대통령이라는 아버지의 지위를 이용해 호가호위하다 비리에 연루됐고, 청와대와 사정기관은 그런 사태를 미연에 막지 못해 레임덕(지도력 공백)을 자초했다. 이런 예로 보면 자식 문제라도 그게 후보자의 도덕성과 이어질 경우 검증 대상이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전 대선에서 제기된 의혹도 이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과거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이 그렇다. 후보 자신을 포함한 가족 중 누군가가 대법관과 감사원장, 국무총리를 지낸 이회창 후보의 위세를 빌려 압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면 병역 비리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당 제보 조작 사건으로 이어져 역풍이 된 문준용씨 채용 비리 의혹도 마찬가지다. 청와대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지낸 부친의 영향력이 과연 없었을까? 결국 자식과 관련된 의혹 제기는 후보의 도덕성을 묻는 말로 이어졌던 게 지금까지의 선거다.

이재명 후보의 장남은 불법 도박과 성매매를 상습적으로 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는데, 후보 본인의 도덕성과 직접 맞닿는 지점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건 아직까지 ‘속 썩이는 아들’을 둔 부모의 문제다. 다만 이재명 후보는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역임했기에, 장남이 그런 아버지의 직위를 이용해 자금을 조달하는 등의 일을 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국민의힘과 윤석열 후보 쪽이 집요하게 장남의 재산 문제를 거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021년 12월16일 서울 영등포구 당사에서 아들의 도박 의혹과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021년 12월16일 서울 영등포구 당사에서 아들의 도박 의혹과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김건희씨 감싸며 문제 키워

그러나 윤석열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와 관련된 ‘처가 리스크’의 무게감은 사뭇 다르다. 김씨의 허위이력 의혹은 개인 도덕성에 관한 문제다. 언론에 내놓은 해명과 지금까지 윤석열 후보의 대응을 보면 김건희씨는 문제가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비 영부인’의 윤리적 감수성은 국민 평균에 미달하는 모양이다.

더 큰 문제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이나 윤 후보의 장모인 최아무개씨의 잔고증명서 위조, 경기도 양평 공흥지구 개발 특혜 등 윤 후보 처가의 다른 의혹들 성격이 ‘이권’ 문제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대로 윤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주변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윤석열 대통령’은 본인이 주장하는 바처럼 검사 시절에 했던 그대로, 처가와 그 주변에 꼬인 ‘파리떼’에 공명정대한 처분을 내릴 수 있을까?

의혹만큼 대응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족 리스크’에 대한 현재 후보자의 태도는 청와대 입성 이후를 보여주는 ‘예고편’이다. 그런데 윤 후보는 김건희씨 편을 들고 감싸면서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아 문제를 키웠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선거에서 손을 떼겠다고 선언한 것도 조수진 최고위원과의 충돌이 촉발한 사태라기보다는, 후보자의 비협조로 김건희씨 의혹 대응을 선거대책위원회 차원에서 제대로 하지 못한 게 원인이 됐다고 봐야 한다.

윤석열 후보자의 ‘제 식구 감싸기’는 검사 시절 일화에서도 드러나는 바다. 검찰총장 시절 ‘정직 2개월’ 징계의 사유로 인정된 채널A 사건에 대한 부적절한 처리(감찰 중단)도 결국 자신과 가까운 검사를 보호하려 한 결과로 해석된다. 의혹이 제기되면 일단 부인하고, 부인할 수 없게 되면 법적으로 문제가 안 된다고 하고, 별것 아닌 문제가 이렇게 커진 이유는 여당과 정권의 공작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윤 후보의 대응 방식은 청와대 권력과 사정기관의 자정능력 상실을 예고한다. 김건희씨 관련 의혹이 지지율 하락의 계기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견주자면 이재명 후보는 장남의 도박 의혹에 대해 책임질 일은 책임지고 중독 치료 역시 받겠다는 취지로 신속하게 사과했다. 당장은 장남 문제가 지지율에 일부 악영향을 주는 거로 보이지만 제대로 사과한 것은 결국 득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재명, 반성 메시지 내놨다면

물론 아쉬운 부분은 있다. 성매매 의혹에 대해서는 장남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고 한 것이다. 본인이 부인하는 성매매 사실을 밝혀내기란 쉬운 일이 아닌 건 맞다. 하지만 이 후보의 장남이 인터넷 공간에 남겼다는 글들을 보면 적어도 여성에 대한 비뚤어진 가치관의 소유자라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난다. 그렇다면 이 점에 대해 이 후보 자신의 평가가 있어야 한다. 아들의 잘못된 가치관 때문에 국민에게 심려를 끼친 점을 사과하고 이런 식으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것에 명확히 반대한다는 입장 표명이 있었다면, 나아가 혹시 아들의 이런 생각이 부모의 어떤 잘못된 모습에서 온 게 아닐지 되돌아보겠다는 반성의 메시지를 내놨다면 어땠을까?

중도층 유권자는 문재인 정권 사람들이 서로 끼리끼리 봐주는 바람에 민생 문제 해결의 방법을 찾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재명 후보는 부동산 정책에서 정권과의 차별화에 몰두하는데, ‘장남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는 ‘차별화’ 노력을 무위로 돌릴 수 있다. 오히려, 차별화는 이런 대목에서 더 적극적이어야 했다. 아쉬운 일이다.

김민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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