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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도 사면이 되나요?

국정농단 박근혜 전 대통령 특별사면… 법조계에선 ‘탄핵 사면은 위헌’ 논란도
등록 2021-12-31 19:03 수정 2022-01-01 02:33
2021년 7월30일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입원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7월30일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입원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국정농단 사건 등으로 징역 22년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신년 특별사면으로 2021년 12월31일 0시 석방됐다. 2017년 3월31일 구속된 지 4년9개월 만이다. 정부는 박 전 대통령 등 3094명을 특별사면·감형·복권한다고 12월24일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통합이라는 대의, 박 전 대통령의 건강 상태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특별사면은 형이 확정된 특정인에게 그 형의 집행을 면제하는 것으로,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권한이다.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면·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헌법 제79조)

하지만 헌법에 따라 탄핵된 박 전 대통령을 사면한 것은 위헌이라는 논란이 이어진다. 대통령의 사면 권한 남용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법권과 삼권분립 무력화 우려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탄핵된 이를 특별사면하는 게 법적으로 가능할까.

미국은 대통령의 권한을 규정하는 연방헌법 제2조 2항에서 “대통령은 합중국에 대한 범죄에 관하여 탄핵의 경우를 제외하고, 형의 집행유예 및 사면을 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고 명시한다. 이석민 전 헌법재판연구원 연구관은 ‘사면권의 한계에 대한 헌법적 검토’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2019년)에서 “미국 연방헌법에서와 같이 명시적 언급이 없더라도 사면의 대상에서 탄핵 사건은 제외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탄핵은 예외적이고 중요한 헌법 보장 수단이라서 이미 탄핵된 자에 대해 대통령이 사면권을 행사한다면 국회와 헌재의 헌법적 권한 행사를 무력화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한민국 법에선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를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펴낸 <헌법재판실무제요>를 보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탄핵결정을 받은 사람에 대하여는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가 제한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에 관하여는 견해의 대립이 있으나, 명문의 규정이 없더라도 탄핵제도의 취지에 비추어 대통령의 사면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반론도 있다. 이번 특별사면은 탄핵결정에 따른 파면에 대한 것이 아니라 별도의 유죄판결(국정농단 사건 등)에 대한 사면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탄핵결정에 대해서만 사면할 수 없는지, 아니면 탄핵 사유와 같은 사실관계로 형사재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것에 대해서도 사면할 수 없는지는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이석민 전 연구관은 “형사재판의 대상이 된 것과 동일한 사실관계를 이유로 된 탄핵이 이뤄졌다면, 탄핵제도는 예외적이고 중요한 헌법 보장 수단이기 때문에 국회와 헌법재판소의 탄핵에 대한 권한을 직간접적으로 형해화할 수 있어 이러한 자들에 대한 사면은 어렵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해석한 바 있다.

반면 헌법재판연구원 연구관 출신의 노희범 변호사는 “현행 헌법에서 사면권의 한계를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면 대상에서 탄핵 사건을 제외해야 한다고 볼 수 없고, 형사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것에 대해 사면했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문제될 것이 없다”며 “다만 탄핵됐다는 것은 헌법과 법률을 중대하게 어겼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그런 사람을 사면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해석과 비판은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가 2021년 12월27일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특별사면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가 2021년 12월27일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특별사면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일반사면 아닌 특사는 국회 동의 불필요

현행 대통령의 사면권은 제헌헌법에서부터 인정됐다. 사면법도 1948년 제정되고 나서 큰 변화 없이 유지됐다. 현행법상 사면은 크게 일반사면과 특별사면으로 나뉜다. 일반사면은 대통령령으로 사면 대상이 되는 죄의 종류를 정해서 이뤄지고 일괄적으로 실시되기 때문에 범죄인 개개인을 따지지 않는다. 일반사면이 시행되면 기결수에 대해서는 형 선고가 효력을 상실하게 되고, 미결수에 대해서는 공소권이 없어져서 처벌할 수 없게 된다. 일반사면은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헌법 제79조 2항과 제89조 9호, 사면법 제8조).

반면 특별사면은 원칙적으로 형이 확정된 특정인에 대해 그 형의 집행을 면제하는 것이다(헌법 제89조 9호, 사면법 제9조와 제10조, 제10조의 2항). 일반사면과 달리 국회 동의가 필요하지 않아, 대통령이 결정하면 시행된다. 법무부 장관 소속 사면심사위원회가 적정성을 심사하도록 규정됐지만, 위원회가 단순 자문기구에 불과해 실질적으로 대통령의 사면권을 반대하거나 막기 힘든 구조다. 전체 위원 9명 중 법무부 소속 내부위원이 5명이어서, 견제 기능을 맡기엔 무리라는 지적이다.

일반사면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7차례 행해졌으나, 1996년 이후부터는 실시되지 않고 있다. 특별사면은 당시의 정치 상황에 따라 범위와 대상에 차이가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25차례나 특별사면을 했다. 그다음은 전두환 대통령 13회, 김영삼 대통령 9회, 노태우 대통령 8회, 이명박 대통령 7회 순서였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6회, 박근혜 대통령은 3회 특별사면을 했다. 문재인 정부에선 총 5차례였다. 취임 첫해인 2017년 12월 말 특별사면으로 6444명, 2019년 2월에는 3·1절 100주년 사면으로 4378명, 같은 해 12월 신년 특별사면으로 5174명, 2020년 12월엔 3024명을 특별사면했다.

한국에서 특별사면의 역사는 늘 논란과 함께했다. 특히 정치인과 재벌에 대한 대통령의 특별사면에서 논란이 불거졌다. 정치인과 재벌에 대한 특혜로 악용된다는 것이다.

정치인·재벌 단골 특혜… 평등권 논란

대표적 사례가 전두환·노태우다. 김영삼 대통령은 임기가 끝날 무렵인 1997년 12월, 내란죄·뇌물죄 등으로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을 선고받은 두 사람에 대해 특별사면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9년 8월 알선수재와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를 사면해 논란이 됐다. 이명박 대통령 때는 재벌 총수들이 대거 사면됐다. 2008년 8월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2009년 12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사면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8월 최태원 SK그룹 회장, 2016년 8월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사면했다.

특별사면이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헌법소원도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전부 각하됐다. 2015년 8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특별사면되자 ㄱ씨 등 청구인은 “최 회장의 특별사면이 대한민국 국민의 행복추구권, 평등권,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뿐 아니라, 권력분립의 원칙 및 법치주의 원리에도 위배되어 대통령의 특별사면권 규정은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며 헌법소원을 냈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헌법재판소는 “청구인 자신의 법적 이익 또는 권리를 직접적으로 침해당한 피해자라고는 볼 수 없다”며 각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이와 유사한 헌법소원 사건에서도 “(청구인이) 헌법소원을 낼 자격이 안 된다”며 구체적인 심리를 하지 않았다.

사면권 오·남용 막으려면

여러 논란에도 이미 박 전 대통령이 사면된 이상 이를 되돌릴 방법은 없다. 이황희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는 “사후 구제 절차로 헌법소원과 권한쟁의심판이 가능하겠지만 현실적으론 어렵다”며 “다른 사람을 사면함으로써 소송을 제기하려는 사람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점이 인정되기가 어렵고(헌법소원), 유죄판결을 내린 법원의 권한을 대통령이 침해했다고 인정하기도 쉽지 않다(권한쟁의심판)”고 설명했다. 노희범 변호사도 “대통령의 사면은 ‘통치행위’이자 ‘정치적 결단’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결국 사후적 구제가 아니라 사전에 대통령의 권한 남용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셈이다. 2021년 12월30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사면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며 안을 내놨다. △사면심사위원회 위원을 대통령·국회·사법부에서 3명씩 지명 △유기징역의 경우 형기의 3분의 1이 경과하도록 사면 대상자 조건 강화 △사면 심사 과정에서 범죄 피해자와 법원의 입장 청취 반영 등의 내용이 개정안에 담겼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뇌물·알선수재·알선수뢰·배임·횡령 등 ‘5대 중대 부패 범죄’는 사면하지 않겠다고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2018년 문 대통령은 대통령이 특별사면을 하려면 반드시 사면심사위원회 심사를 거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헌법 개정안을 내놓기도 했다. 개정안은 폐기됐지만 대통령의 특별사면에 대한 절차적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는 형성됐다. 이황희 교수는 “현재 사면심사위원회는 형식상 존재하는 자문기구라 실질적인 별도 기구나 위원회를 만들어 심사를 강화하고, ‘5대 중대 부패 범죄’는 사면에서 제한하는 등의 입법화가 선행돼야 대통령의 특별사면 남용을 사전에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참고 문헌
‘사면권의 한계에 대한 헌법적 검토’, 이석민,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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