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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 과반은 아직 확고한 지지 후보가 없다

‘확고한 의견’ 가진 응답자는 가정일 뿐… 현실에선 당시 정보와 상황이 응답 좌우
등록 2022-01-05 16:32 수정 2022-01-06 01:11
선거를 앞두고 한 여론조사기관에서 전화 여론조사를 벌이고 있다. 류우종 기자

선거를 앞두고 한 여론조사기관에서 전화 여론조사를 벌이고 있다. 류우종 기자

‘지지율이 출렁였다’ ‘지지층이 이탈해 다른 후보로 이동했다’는 표현을 여론조사 보도에서 종종 본다. 또 ‘찬성 여론, 반대로 돌아섰다’ ‘반대층, 대거 찬성으로 이동’ 등의 분석도 어렵지 않게 만난다. 여론조사 결과에 변화가 나타나면 이런 제목은 여지없이 등장하며 대중의 이목을 끈다.

이는 모든 사람이 어떤 이슈에 찬성 또는 반대라는 확고한 의견을 늘 갖고 있음을 전제한다. 또한 모든 사람이 누군가에 대해 항상 지지한다는 것을 기반으로 한다. 중간에 상황이 변화해 사람들의 생각이 바뀐다고 보는 것이다.

여론조사 10% 수준인 ‘모름/무응답’

실제 여론조사에는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을 유보하는 ‘모름/무응답’이 존재한다. ‘모름/무응답’은 대개 10%가량 나오는데, 이를 제외한 나머지 80~90%는 찬성이나 반대, 또는 지지 여부에 답했으므로 모집단의 80~90%도 확실한 의견을 갖는다고 여긴다. 대선 주자들의 지지율 조사에서 A후보와 B후보가 각각 40%의 지지율을 얻고 ‘모름/무응답’은 20%라고 하면 대한민국 국민 중 80%는 어느 후보든 지지하고 있다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정말 대부분 사람은 매번 특정 사안에 대해 또는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에 대해 확고한 의견을 갖고 있을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아직 어떤 의견이 없거나 특정 후보 지지를 결정하지 않은 부동층(浮動層, Swing/Floating Voter)은 이보다 훨씬 규모가 크다. 얼마 전 발표한 조사를 보면, 이번 대선에서 투표할 후보를 정했는지 물었는데 ‘아직 정하지 않았다’는 응답이 50.9%로 나왔다. ‘이미 정했다’는 응답은 48.8%였다.(문화일보-엠브레인, 2021년 11월29~30일 조사) 대선 주자들의 지지율을 합하면 80%를 넘나드는 조사들이 나오는 상황에서 절반 이상이 아직 후보를 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거가 끝나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른바 ‘선거 사후 조사’를 한다. 치러진 선거에 대한 유권자의 종합적 인식을 살펴본다. 여기에는 투표자에게 지지 후보를 언제 정했는지 묻는 항목이 있다. 2017년 제19대 대선 직후 조사에서도, ‘대선일 3주 이상 전에 후보를 정했다’는 의견이 48.3%였지만 이보다 더 많은 51.6%는 ‘대선일 3주 이내에 정했다’고 답했다(투표 당일 6.7%, 투표일 1~3일 전 8.1%, 투표일 1주 전 12.8%, 2주 전 12.5%, 3주 전 11.5%). 그러니까 투표자의 절반 이상이 선거일 3주 이내에 들어서야 지지 후보를 정했다는 것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현재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지지 후보를 정하지 않았다고 하고, 투표자의 절반 이상이 선거일이 임박해서 후보를 정했다고 하는데, 선거가 수개월 남은 시기의 여론조사에선 후보들의 지지율 합이 80%나 나온다. 아직 지지 후보를 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후보들의 지지율 합도 50% 안팎에 그쳐야 하는데 말이다.

이는 분명한 입장을 지니고 있지 않음에도 질문받으면 그때까지 보유한 정보와 당시 상황을 고려해 답하는 특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동일한 시점에 전체 유권자에게 질문하면 결과는 여론조사와 유사하게 나올 것이다. 선거일의 투표가 개별적으로 질문하는 구실을 한다.

하지만 질문받지 않은 많은 사람이 막연한 생각을 할 수는 있지만 분명한 의견이 없을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추가 정보를 얻고, 상황 변화를 고려하며, 선거일 같은 자신의 입장을 정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면서 차츰 의견을 정하는 일이 많다.

실제 대선에서 51.6%는 3주 전 표심 굳혀

주변에는 사회적 이슈가 있더라도 해당 사안에 어떤 입장이냐는 질문을 받기 전까지는 찬성과 반대라는 분명한 의견을 지니지 않은 사람이 많다. 또 아무리 대선이더라도 많은 사람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마음을 진즉부터 갖는 건 아니다. 물론 특정 사안의 이해관계자이거나 사회문제에 관심이 아주 많거나 선거를 비중 있게 바라보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일찍 분명한 의견을 갖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개별적으로 질문받는 여론조사의 특성상, 대부분 사람이 의견을 확실하게 가진 것처럼 보이는 효과가 있다.

새로운 여론조사에서는 새로운 응답자가 변화된 상황에서 답하게 된다. 만약 유권자에게 전달되는 후보들의 정보가 그사이 달라지거나 상황에 변화가 있으면 응답 결과에서도 이전 조사와 차이가 생길 수 있다. 선거조사에서 흔히 나타나는 일이다.

이러한 설명은 여론조사에 대한 전통적 관점에 들어맞지 않는 면이 있긴 하다. 하지만 여론조사의 메커니즘을 차근히 살펴보면 여론조사의 가정이 현실과 불일치하는 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여론조사에선 ‘모름/무응답’으로 답변을 거부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사람이 어떤 이슈에 입장을 갖고 있다고 가정하는데 이것에는 빈틈이 있다. 여론조사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도 여론조사에 응답한 사람과 같은 비율로 해당 사안에 분명한 의견을 가졌다고 보는 것도 전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지지율 출렁’ 보도는 신중해야

만약 사람들이 어떤 사안에 분명한 의견을 갖고 있다면 단기간에 20% 이상이 자기 의견을 바꾸는 일은 현실에선 쉽게 나타나기 어렵다. 또 지지하겠다고 마음먹은 후보를 단기간에 바꾸는 일도 현실에선 흔히 있는 일이 아니다. 여론조사 결괏값이 이전과 다르게 나오면 원인이 무엇인지 살피는 일은 중요하나, 모든 사람이 기존 의견이 있었는데 그것을 바꾸었다거나, 어느 후보를 지지하다가 다른 후보로 지지를 갈아탔다고 섣불리 표현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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