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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 “목표는 대통령 권한 내려놓는 대통령”

새해 메시지로 ‘정치개혁’ 내건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
등록 2022-01-10 01:54 수정 2022-01-11 01:32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2022년 1월5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2022년 1월5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제20대 대통령선거는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유권자의 선택지는 거대 양당인 169석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106석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벗어나기 어렵다. 소수당인 6석 정의당 심상정 후보와 3석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선택지’보다는 ‘단일화 대상’으로 주로 언급된다. 거대 양당 중심의 ‘기울어진 운동장’인 현재의 정치제도가 만들어낸 풍경이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대선을 두 달여 앞둔, 2022년 1월3일 새해 첫 메시지로 “미래로 가는 정권교체, 다당제 책임연정의 시대를 여는 첫 대통령이 되겠다”며 ‘정치개혁 비전’을 발표했다. 정치의 중심이 제왕적 권력을 가진 ‘슈퍼 대통령’이 있는 청와대에서 대의기관인 의회로 옮겨져야 한다는 내용이 뼈대다. ‘대통령중심제’에서 ‘의회중심제’로 정치체제가 전환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국회의 총리추천제 실시 △청와대 수석제도 폐지 △행정부의 법안제출권 폐지 △행정부의 예산편성권과 감사원 기능을 국회로 이관 △국회의 다양성과 비례성 강화를 위한 선거제도 개혁 추진 등을 공약했다. 이번 대선에서 정치개혁 의제를 내놓은 후보는 지금까지 심 후보가 유일하다.

2004년 제17대 총선에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한 고 노회찬 전 의원은 ‘거대 양당 50년 썩은 삼겹살 판갈이론’을 내놓으며 정치개혁 화두를 던진 바 있다. 이후 민주노동당-정의당을 거치며 노 전 의원과 함께 정치활동을 이어온 심상정 후보는 2013년 펴낸 저서 <실패로부터 배운다는 것>에서 “정치개혁이 없으면 변화는 오지 않는다”고 썼다. 심 후보는 2017년 대선에 출마했을 때 △의원내각제로 개헌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의 정치개혁 공약을 제시했다. 20대 국회에서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위원장을 맡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의 핵심 역할을 맡았다. 2021년 8월29일 20대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첫 일성도 “이제는 (민주화 이후) 34년 묵은 낡은 양당체제의 불판을 갈아야 한다”였다. ‘정치개혁 전문가’ 심상정 후보를 2022년 1월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2022년 1월1일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 고 노회찬 전 의원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정의당 제공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2022년 1월1일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 고 노회찬 전 의원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정의당 제공

자기 권력 지키는 일도 벅찬 대통령

새해 첫 메시지로 정치개혁 의제를 제시한 이유는.

“정치가 바뀌지 않고는 다른 변화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내가 대통령이 돼서 많은 문제를 다 해결하겠다’는 자세로 임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지금 같은 승자독식, 거대 양당 체제하에서 대통령은 결국 자기 권력 지키는 일도 벅차다. 실제 역대 많은 대통령이 불행해지지 않았나. 이번 대선은 지금까지처럼 거대 양당의 ‘기득권 지키기’ 선거가 돼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의 경제 선진국이다. 나라는 부자이지만 국민은 가난하다. 이처럼 누적된 불평등과 기후위기라는 지구적 과제 등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존’ 체제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이번 대선이 그 어느 때보다 혼탁하고 비호감 선거가 돼서 대선이 갖는 중요성과 의미가 실종되고 있다. 시민의 삶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여는 대전환의 선거가 돼야 한다.”

심 후보가 제시한 정치개혁은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5천만 국민의 삶이 골고루 반영되는 정치가 돼야 한다. 34년간의 거대 양당 정치에서는 (거대 양당 진영 외에) 제3의 시민의 의견이 반영될 구멍이 없었다. 그동안 기득권 양당이 격렬하게 반응한 것은 양당의 이해득실에 대한 것이었을 뿐, 시민의 삶에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그런 폐해가 누적돼 지금의 극단적인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그 결과 청년들은 미래를 빼앗기고 지방은 소멸 위기에 처한 것 아닌가. 기득권 양당 정치를 넘어서려면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시민을 골고루 대표하는 정당체제가 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슈퍼 대통령, 곧 제왕적 대통령제의 핵심 문제는 뭔가.

“슈퍼 대통령제는 약한 의회를 파트너로 삼는다. 우리 정치의 민주화는 1987년 ‘대통령을 내 손으로’에서 멈춰 섰다.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아놨지만, 정작 그 대통령은 거대 양당 간의 격렬한 승자독식 정치체제로 인해 자기 권력을 지키기 위해 청와대 권력을 점점 비대하게 만들어왔다. 그래서 지금 청와대 수석제 같은 경우 어떤 법적 근거가 없음에도 헌법의 권한과 책임을 가진 내각의 국무위원들을 사실상 컨트롤하는 그림자 내각처럼 돼 있다. 대통령이 국무총리를 임명함으로써 헌법에 보장된 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 등이 무력화돼 있다. 그래서 나는 대통령은 국가 비전을 제시하고 그 방향을 국민에게 설득하고 통합하는 역할을 중심으로 하고, 민생경제와 시민의 삶과 관련된 일은 시민을 대변하는 각 정당이 의회에서 타협 과정을 거쳐 해결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총리추천제로 대통령 인사권 분산

이번 대선 과정에서도 슈퍼 대통령제의 문제가 드러났다고 말했는데.

“정당은 시민들의 정책 노선과 비전을 담는 정치 결사체다. 그런데 슈퍼 대통령제하에서 정당은 그런 현대적인 정당 개념이 아니라 대통령을 배출하기 위한 선거캠프 조직처럼 돼버린다. 지금 내홍을 겪는 국민의힘의 윤석열 후보가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대선 후보가 정당을 좌지우지한다. 그리고 선거 뒤에 여당은 청와대의 여의도 분소가 돼버리고, 통법부(행정부가 만들어준 법을 통과시켜주는 역할만 하는 기관)로 전락해버린다.”

정치개혁 공약의 핵심 중 하나는 국회의 총리추천제다. 이를 통해 어떤 변화가 가능한가.

“슈퍼 대통령제를 유지하는 핵심이 바로 대통령의 ‘인사권’이다. 그런데 국회가 총리추천권을 갖게 되면, 장관 인사 추천권을 총리가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총리를 국회에서 선출했기 때문에 국회의 다수파를 형성할 수 있는 연합정치, 연합정부 구성이 가능하다. 이렇게 국회의 총리추천제를 통해 대통령의 인사권을 분산시킬 수 있다.”

총리추천제와 관련해 이재명 후보는 2021년 12월30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토론회에서 “만약 국회가 (총리를) 추천하는 제도를 만들면 여소야대일 경우 국정 마비 사태가 올 수 있다. 제도로 만드는 것은 조심하더라도 (국회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과) 협의하는 것은 바람직하겠다. 일종의 협치체제, 크게 말하면 통합정부 등은 괜찮다고 본다”고 말한 바 있다.

이재명 후보는 총리추천제 제도화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제도화 문제는 어떻게 보나.

“이 후보의 정치개혁에 관한 생각을 아직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 총리추천제는 현행 헌법에 보장돼 있다. 그래서 대통령이 의지만 가지면 얼마든지 시행할 수 있다. 하지만 제도화까지 나갈 수 있으면 좋다고 본다. 총리추천제는 거기서 그치자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대통령 권한을 의회로 이관하면서 궁극적으로 의회중심제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심 후보가 2021년 10월21일 서울 여의도동 하우스카페에서 열린 청년정의당 라운드테이블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심 후보가 2021년 10월21일 서울 여의도동 하우스카페에서 열린 청년정의당 라운드테이블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총리추천제 거쳐 다당제, 의회중심제로

공약한 내용의 실행 로드맵은.

“대통령에 당선되면 국회에 총리를 추천해달라고 요청할 것이다. 그러니까 청와대 수석실 폐지 등 비서실 개편과 총리추천제는 대통령의 의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권한을 내려놓으면서 실행하면 된다. 그리고 행정부의 예산편성권과 감사원의 기능을 의회로 보내는 것 등은 헌법 개정 사항이다. 2024년 총선에서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다. 요컨대 내 기조는 능동적인 대통령의 권한 분산을 매개로 명실상부한 다당제로 정치가 재편되고, 그 토대 위에 책임연정으로 나아가도록 정치적 협상과 합의를 도모하는 과정을 만들어가겠다는 것이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제를 채택하지만 △국무총리직의 존재 △국회의원의 장관 겸직 가능 △국회 동의에 의한 국무총리 임명 등 의회중심제적 요소도 담겨 있다. 심 후보는 “만약 심상정이 대통령이 된다면 ‘더 이상 양당 체제로는 안 된다’는 시민의 결단 아니겠나. 그러면 자연스럽게 다당제로의 정치 재편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총리추천권을 국회에 부여함으로써 다당제를 바탕으로 한 책임연정을 추동해나가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궁극적으로 의회중심제로 정치체제가 전환돼야 한다고 보지만, 단숨에 전환될 수는 없으니 총리추천제 등 우리 헌법의 의회중심제적 요소를 활용해, 국정을 대통령이 좌지우지하는 방식이 아니라 의회가 연합정치를 통해 운영하는 방식으로 바꿔나가겠다는 것이다. 심 후보는 이어 “그런 과정을 거쳐 2024년 총선 때 명실상부한 4당, 5당 다당제를 형성하는 것이 목적이다. 내가 4선으로 정치 경험이 많고, 거대 양당이 아닌 소수정당 출신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다당제 책임연정을 이뤄갈 수 있는 적임자”라고 강조했다.

다당제 전환의 핵심 변수는 선거제도다. 심 후보가 지난 20대 국회에서 정개특위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민주당과 함께 만들어낸 준연동형 비례제는 21대 총선에서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설립하면서 무력화됐다. 총선 패배와 민주당과의 공조 실패 등의 책임을 지고 당시 정의당 대표이던 심 후보는 대표직에서 사퇴했고, 정의당은 격랑에 휩싸였다. 위성정당과 관련해 이재명 후보는 2021년 12월12일 “위성정당 창당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살리지 못한 데 대해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위성정당 방지 제도화와 준연동형 비례제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21대 총선에서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 설립은 한국 민주주의의 오점이다. 이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번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다당제로의 분화는 불가피하다고 본다. 선거제도(준연동형 비례제)가 그대로 존치되든 아니면 새로운 형태로 되든 간에 다원화된 정당 구조로 나가는 흐름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 흐름을 복원하고 더 강화하는 것이 내 역할이다.”

‘목표 득표율’이 없는 이유

2017년 대선에서 심 후보는 6.2%를 득표했다. 21대 총선에서 정의당의 정당득표율은 9.6%였다. 이번 대선에서 목표 득표율은 얼마인가.

“목표 득표율보다 심상정으로의 정권교체를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비호감 대선이지만, 심 후보가 이재명·윤석열 후보의 지지율을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엔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이 겪은 극심한 내홍 속에 제3지대 후보인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 국면을 맞았다. 반면 심 후보의 지지율은 반등하지 않고 있다. 왜 그렇다고 보나.

“하나는 21대 총선 (패배) 이후 좌절감과 리더십 교체 과정에서 국민께 보여드린 실망스러운 모습 등 정의당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점이 있다. 또 하나는 소수당이다보니 사표 방지 심리가 작용하는 측면이 있고, 우리의 의지와 비전을 보여드릴 기회가 아직 충분히 열리지 않은 원인도 있다. 하지만 내가 대선 후보가 된 뒤 지난 두 달 동안, 민주당 2중대론이나 페미니즘 의제에만 집중하는 당이라는 이미지와 관련해선 편견과 오해가 많이 불식되는 등 새살이 돋고 있다고 생각한다.”

심 후보는 “다음 대통령이 해야 할 불평등과 기후위기 문제 해결에 대해 깊은 인식과 의지를 갖고 대안을 준비하고 있다. 이제 텔레비전 토론 등 후보들끼리 서로 마주 보고 검증하는 기회가 빨리 열리길 바라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이 네 번째 대선 도전이다. 진보정당으로서 정의당이 새로운 정치인을 키워내지 못해 또 심 후보가 나왔느냐는 평가가 있다. 정의당의 세대교체에 대한 생각은.

“그래도 지금 우리 당에 청년 정치인들이 성장하고 있다. 사실 청년 정치인이 성장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길은 공직 기회의 확대다. 교섭단체가 돼야 그 안에서 협력하고 경쟁해서 대중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기틀이 마련되는데, 21대 총선에서 선거제도 개혁이 결국 좌절됐다. 그러나 어느 당보다 정의당은 청년 정치인의 비중이 높고 청년정의당이 잘 성장하고 있어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미래의 리더십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반을 닦아주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2030세대가 큰 관심을 받고 있는 대선이다. 청년에 대한 전략은.

“지난 34년간 양당 정치의 최대 피해자가 청년이라고 본다. 지금 청년들을 만나보면 거대 양당의 선심성 공약에 별로 관심이 없고, 내가 열심히 살면 앞날을 개척할 수 있도록 기회의 창을 열어달라고 말한다. 세습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청년에게 최대한 출발선을 동등하게 해줘야 하고, 기득권 재조정을 통해 청년에게 기회의 창을 열어줘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이 세 가지와 관련한 정책을 이미 내놨거나 준비 중이다.”

가장 묵직한 쓴소리 ‘또 심상정이냐’

최근에 들은 말 중 기억에 남는 쓴소리는.

“‘또 심상정이냐’라는 말. 심상정이 진보정당인 정의당을 제대로 궤도에 올려놓지 못했다는 질책으로 받아들여져서 가장 묵직한 쓴소리로 들렸다.”

‘정의당을 찍으면 사표가 된다’는 유권자에게 한 말씀 해준다면.

“설사 당선이 안 된다 해도 사표는 없다. 심상정에게 주는 표야말로 이후에 개혁을 촉진하기 위해 살아 움직이는 한 표가 될 것이다.”

윤석열-안철수 단일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이후 보수 진영 후보와 이재명 후보의 승부가 박빙으로 흐르면서 심 후보에게 후보 단일화 압박 국면이 펼쳐진다면.

“양당 체제를 강화하는 단일화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끝까지 완주할 것이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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