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뉴노멀] 정권은 바뀌어도 검찰은 영원하다

등록 2020-08-01 04:54 수정 2020-08-01 07:08
연합뉴스

연합뉴스


고위 검사들끼리 압수수색을 하다 말고 치고받는 흥미로운 세상이다.
변호사에게 전화하려고 했는데 달려들더라는 쪽과 증거인멸을 하려는 것 같아 제지하다가 접촉이 일어난 것뿐이라는 쪽의 주장이 엇갈린다. 후자를 주장하는 사람이 병원 침대에 누운 모습은 뒷목부터 잡는 ‘접촉사고’의 전형 같아 보이기도 한다(오른쪽 사진).

이런 일은 왜 일어났을까? 내 추측으로는 “검사장님 (잠금 해제로) 페이스 아이디(얼굴 정보를 카메라로 읽어 사용자를 인식하는 보안 수단) 쓰는 것 다 안다”고 했다는 거로 볼 때, 휴대전화 유심(USIM·가입자 식별 모듈) 추가 압수는 이미 압수된 한동훈 검사장(왼쪽 사진)의 스마트폰(애플사 제품) 자체 또는 내부의 특정 프로그램을 열어보는 데 필요했을 것 같다. 그런 상황에 동일 아이디로 로그인됐을 가능성이 있는 스마트폰을 조작하니 일단 막고 보자는 심정이지 않았을까 한다. 전직 채널A 기자의 구속 기한이 다가오는데 법원의 압수수색 취소 결정으로 휴대전화와 노트북에서 얻은 증거를 못 쓰게 될 수 있어 무리한 거로도 보인다. 애초에 수사심의위가 수사 중단을 권고한 사안이고 보수언론이 KBS 오보 유도설까지 제기해, 수사 동력이 떨어지는 건 불가피해 보인다.

반면 수사 대상인 한동훈 검사장은 멋진 말솜씨와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다 탄압당하게 됐다는 이미지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검찰을 미워해왔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엘리트 ‘특수통’들의 편이 된 사람도 많은 듯하다. 수사에 협조해 혐의가 없음을 적극적으로 증명하는 방법도 있는데, 그러지 않는 건 더 이상 문제도 아닌 분위기다. 검찰총장 권한을 제한하는 개혁안은 ‘특수통’들의 칼날에서 권력을 지켜주기 위한 도구처럼 보이게 됐다. 정권이 바뀌어도 검찰 권력은 유지되는 전형적인 스토리다.

의아한 것은 이 상황을 만든 게 권력 그 자체라는 점이다. 정권과 가까운 사람들은 종종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말한다. 검찰총장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므로 선거로 뽑힌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법무부 장관도 선출직은 아니고 검찰총장도 대통령이 임명한다. 검사가 군인인 것도 아니다. 검찰에 문민통제는 어불성설이다. 애초엔 견제와 균형이었다. 검찰이 가진 권력이 비대해 분산이 필요하다는 명분이 대통령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둔갑한 이유는 무엇인가?

‘민주적 통제’라는 말은 감사원장을 비판하는 일에도 동원됐다. 박범계 의원은 국회 법사위에서 감사원 내에 민주적 통제가 작동하느냐고 물었다. 감사원을 민주적으로 운영하느냐는 것과 미묘한 차이가 있는 말이다. 최재형 감사원장은 “내부 규칙과 규정에 의해 적절히 통제되고 있다”고 했다. 못하게 돼 있는 걸 한 일은 없다는 뜻이겠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는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감사원장이 탈원전에 반대 의견을 가졌다면 유감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법이나 규정을 어긴 게 아닌 이상 이게 감사원장으로서 결격 사유가 될 순 없다. 여당 사람들이 최재형 감사원장에게서 과거 이회창 전 총리의 모습을 보는지는 모르겠으나 정부와 생각이 맞지 않으면 그만두라고 호통칠 일은 아니다.

개혁하려면 지킬 것을 다 지키면서도 추진력을 잃지 말아야 한다. 이게 어렵다보니 우격다짐으로 나오는 기분도 이해는 된다. 그러나 그 태도가 한동훈 검사장과 같은 사례를 만드는 것 아닌가? 소탐대실이라는 말도 있다. 개혁의 대의명분을 크게 생각해야 한다.

김민하 칼럼니스트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