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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고용 위기에 민주노총은 무얼 했나

집행부 리더십 부족에 고질적 정파 갈등… 직접 제안한 노사정 대타협서 빠져
등록 2020-08-01 05:47 수정 2020-08-05 08:37
7월1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 위원장실에서 노사정 합의에 반대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김명환 위원장을 둘러싸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7월1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 위원장실에서 노사정 합의에 반대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김명환 위원장을 둘러싸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다시 사회적 대화판의 ‘외톨이’가 됐다. 한 달 넘게 정부·사용자 쪽과 협상해 그 결과물로 들고나온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안’이 7월23일 대의원대회에서 부결되면서다. 이로써 노동조합이라는 몸통을 떠받치는 투쟁과 교섭의 양 날개 가운데 22년 동안 꼭꼭 접혀 있던 교섭의 날개를 펴보려던 민주노총의 몸풀기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직선제 지도부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무기력한 지도력을 노출했을 뿐만 아니라 정파 싸움이라는 조직 내부의 오래된 갈등마저 표면으로 불거졌다. 2019년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을 제치고 사상 처음으로 국내 최대 노총 자리에 오른 민주노총이 앞으로 투쟁의 날개를 제대로 펼 수 있을까.

김명환 위원장이 들고나온 이번 합의안을 부결한 이들이 주로 제기하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합의안 내용이 부실하다는 점이다. 애초 김 위원장이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의 목표로 제시한 ‘해고 금지’는 이번 합의안 문구에서 빠졌고, 애초 정부가 하겠다고 한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과 ‘사회안전망 확충’ 등도 민주노총의 성과라고 할 만한 게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고용보험에서 소외된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와 관련해선 합의안이 “(정부 입법 추진 과정에서)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특성을 고려하며 노사 및 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한다”고 돼 있어 추후 입법 과정에서 이른바 전속성(한 사업주에 속한 정도) 문제가 불거져 특고의 고용보험 가입이 난관에 부딪힐 것이란 우려가 강하게 제기됐다.

대타협 내용·절차 모두 문제였다지만

절차상 문제도 지적된다. 김 위원장이 대화 추진 과정에서 조직 내부의 활발한 공론화 단계를 거치지 않는 등 소통에 소극적이었다는 지적이다. 또 김 위원장이 내부적으로 민주노총의 지나친 코퍼러티즘(Corporatism·조합주의) 행보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민주노총 최대 정파로 이번에 현장파와 함께 합의안 반대 목소리를 낸 전국회의 쪽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어떻게 내부 투쟁을 조직해 이번 미진한 합의 내용을 이행 과정에서 바꿔낼지에 대한 생각과 설득이 부족했다”고 짚었다.

그러나 반대파 쪽이 합의안 내용의 문제를 들어 집행부를 ‘자본의 하수인’ ‘노동자의 삶을 송두리째 자본에 팔아먹었다’ 등의 표현을 써가며 비난한 것에 대해서는 민주노총에 우호적인 전문가 사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민주노총 정책자문위원장을 맡은 조돈문 가톨릭대 명예교수는 “3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합의안과 비교하면 이번 합의안은 민주노총이 개입해서 많이 친노동적으로 이끈 게 사실이다. 반대파 쪽은 김 위원장이 소통을 못했다고 비판하지만, 막상 민주노총이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연 공개 토론회에 아무도 반대 토론자로 참석하지 않아 찬성 토론자 3명만 참석한 채 토론회가 진행된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도 “다소 미흡하다 해도 노동 쪽에 결정적으로 해악을 미칠 만한 내용은 없어 보인다. 대의원대회에서 일단 통과시키는 게 맞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트라우마만 남긴 사회적 대화 시도

되레 반대파 쪽이 논의 과정에서 보인 정파적 행보는 혼란을 가중했다. 노동계 얘기를 종합해보면, 6월29일 열린 10차 중앙집행위원회(중집) 회의 때까지만 해도 합의안 최종안을 놓고 대략 4가지의 핵심 쟁점이 제기됐다. ‘전 국민 고용보험’에서 특고 전속성을 따지는 대목, 합의안 이행 점검과 후속 조처를 이미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한 경사노위에서 하도록 한 대목 등이다. 김명환 위원장이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을 만나 담판하겠다며 중집 회의를 정회하고 간부들과 회의하는데 전국회의 소속 한 부위원장이 찾아와 “전국회의와 현장파는 합의안을 받지 않기로 했으니 사회적 대화 협상을 중단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전국회의와 현장파는 전체 대의원 1500여 명 가운데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이 사실을 유튜브 동영상으로 공개한 김 위원장은 “직선 선출된 위원장의 대표성마저 거부당한 느낌이었다. 너무 당황하고 참담했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민주노총 직선제 2기 집행부가 시도한 사회적 대화는 모두 실패한 셈이 됐다. 김명환 위원장은 기존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노사정위) 대신 청년, 비정규직, 여성 등의 대표성을 보강한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로 바꿀 것을 요구해 관철했으나, 2019년 1월 대의원대회에서 민주노총의 참여 자체가 부결됐다. 이번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는 중집 결정에 이어 중앙위원회 추인까지 거쳐 시작됐으나 결국 합의안이 대의원대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와 관련한 세 번째 트라우마를 안게 됐다. 첫 번째인 1998년 외환위기 땐 근로기준법에 정리해고제를 도입하고 파견노동을 합법화하는 파견법을 제정하는 등 노사정위 합의안에 합의했다가 격심한 내홍 끝에 지도부가 총사퇴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엔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에 복귀하는 안을 놓고 반대파들이 소화기를 뿌리며 대의원대회를 방해하는 폭력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이 대목에서 이번 사회적 대화가 무산된 데 정부 쪽 책임론이 불거진다. 민주노총에 깊이 남은 사회적 대화 거부 정서를 넘어서려는 노력이 있었느냐는 비판이다. 22년 전 민주노총 쪽이 정리해고제 도입 등에 동의한 배경엔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공무원노동조합 합법화 등의 ‘당근’이 있었으나, 박근혜 정부 때 법외노조가 된 전교조는 문재인 정부 3년이 지나도록 법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이번 합의안 내용 가운데 민주노총이 노동 몫으로 따냈다고 볼 만한 대목이 눈에 띄지 않은 데엔 정부의 무신경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는 비판이 노동계에서 나온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결국 정부가 사회적 합의라는 사진을 찍기 위해 민주노총을 이용만 한다는 내부 강경파 목소리에 힘을 싣게 됐다”고 짚었다.

7월28일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협약식’에 노사정 대표들과 참석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7월28일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협약식’에 노사정 대표들과 참석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노사정 관계에서 ‘영향력 축소’ 불 보듯

코로나19 위기 속 기업 도산과 대량해고 등이 닥쳐오지만 전국 단위 사회적 대화 자리에서 제1노총인 민주노총을 보긴 어려울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7월28일 서울 종로구 경사노위 대회의실에서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등과 함께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협약식’을 치렀다. 민주노총이 대화 테이블에서 빠진 상태에서 코로나19 관련 사회적 대화와 협약 점검은 모두 경사노위에서 이뤄진다.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은 다음날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스스로 사회적 대화를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않는 한 (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에 (참여가) 적절하지 못하다고 판단한다. 어제 대통령을 모신 회의에서 민주노총 없이 앞으로 사회적 대화를 확실히 한다는 것으로 현 정부에선 합의를 이뤘다”고 말했다.

조돈문 교수는 “내용이 미흡하거나 구체적이지 않은 것은 사회적 대화 후속 논의 과정에서 더 구체화하고 그 집행 과정도 감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번 대의원대회 부결로 민주노총은 그 기회를 포기한 게 됐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도 “민주노총이 코로나19 이후 정책적으로 개입하고 목소리를 내는 데 실기하며 고립을 자초하는 격이 됐다”고 했다. 전국 단위뿐만 아니라 하부 단위 사회적 교섭 자리에서 민주노총의 영향력 축소도 우려된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이런 상황에서 지역별 노사정 교섭 자리에 민주노총을 부르기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김명환 위원장과 김경자 수석부위원장, 백석근 사무총장 등 지도부가 사퇴함에 따라 12월에 치르는 3기 직선제 집행부 선거 때까지 공백기를 맞게 됐다. 7월27일 중집 회의에서 강성파로 분류되는 김재하 부산본부장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출했으나, 비대위 체제가 사회적 대화 재개 같은 조직의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이병훈 교수는 “민주노총 간판 걸고 하는 사회적 대화에 참여해 주체로 나서기는 상당 기간 어려워 보인다”고 전망했다. 다만 민주노총은 올해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노동계가 힘을 싣고 있는 이른바 ‘전태일 3법’(△5인 이하 사업장 근무 600만 노동자한테 근로기준법 적용 △특고 230만 명에 노동삼권 보장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도입) 등을 중심으로 하반기 투쟁을 벌여나갈 것으로 보인다. 또 12월 선거 과정에서 후보들 사이에 사회적 대화 방향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리라고 점쳐지지만, 민주노총의 구체적인 방침은 2021년 2월 열릴 대의원대회에서야 정해질 예정이다.

이번 논의 과정에서 드러난 민주노총의 지도력 문제를 어떻게 개선할지를 두고도 선거 국면에서 치열한 논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6년 전 직선제를 도입할 때 위원장의 권한과 책임을 제대로 정비하지 못한 탓이다. 조돈문 교수는 “위원장이 산별노조와 정파의 결재를 받아야 할 자리라면 직선제는 자원의 낭비다. 직선제로 계속 가려면 위원장 권한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동운동 내부에서도 이런 문제의식이 적지 않다.

민주노총은 어떤 조직인가 물을 때

“위원장을 직선으로 뽑은들 민주노총이 무엇을 하는 조직인지 합의하지 못하면 리더십이 형성될 수 없다. 민주노총이 총자본을 상대로 교섭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지, 아니면 단지 현장 투쟁을 지원하는 공동투쟁체일 뿐인지, 총자본에 대한 교섭이 필요하다면 그 형식과 내용은 무엇인지, 공동투쟁체라면 왜 위원장을 직선으로 선출하는 것인지 등을 토론해야 한다.”(사회진보연대)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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