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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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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앞둔 지심도…평생 산 섬에서 나가라니

15가구 사는 경남 지심도에 불어닥친 강제이주 ‘위기’
거제시, 생태관광공원 조성 추진하며 불법 단속 압박
등록 2020-08-08 06:18 수정 2020-08-15 08:15
지심도 전경.

지심도 전경.

조용하던 섬이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반갑지 않은 손님 22명이 느닷없이 들이닥쳤다. 비수기인데다 며칠째 내리는 비에 섬을 찾는 관광객의 발길마저 거의 끊긴 지난 7월29일 낮 12시45분께, 경남 거제시 지세포항을 출발한 뭍사람들이 15분 만인 오후 1시께 지심도 입구인 선착장에 발을 디뎠다. 예고 없는 방문엔 이유가 있었다. 거제시청 소속 환경과·건축과·산림녹지과 등 7개 과 소속 공무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민박집을 하는 주민들이 가스와 보일러를 쓰는지, 가스경보기와 비상등, 실내 방향지시등을 설치했는지는 물론 정화조 위치 등을 꼼꼼히 들여다봤다.

같은 시각 선착장에서 오르막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야 하는 새끝마을. 지심도 최고령자인 박계아(85) 할머니가 마당 한쪽 평상에 앉아 유일한 가족인 고양이 ‘이쁜이’와 함께 아랫마을 쪽을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섬의 양 끝을 마끝과 새끝이라 하는데, 그는 새끝에 살아 섬사람들이 ‘새끝할머니’라고 부른다.

“단속이 처음 있는 일은 아이다. 2017년 땅 주인이 바뀌고 나서 시에서 내 밭에서 키워놓은 죽순도 다 베어버리라카데. 인자 자기네 땅이니까 농사하지 말라는 거지. 우리 ‘양반’이 고성에서 한 대에 만원 주고 사와서 심은 거였는데…. 그 죽순이 이제 200대, 300대 나온다꼬 내가 절대 안 된다 카니까 갸들도 ‘할매가 그러니까 못 베겠다’ 하데.”

이날 단속반원들은 두 시간 만에 섬을 떠났다. ‘거제시가 설마 우릴 쫓아낼까’라는 주민들의 의구심은 이제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경남 거제 지심도 최고령자인 박계아(85)씨. 박씨는 스무 살이던 1955년 결혼하면서 지심도에 들어왔고, 이후 65년 동안 섬을 떠나본 적이 없다.

경남 거제 지심도 최고령자인 박계아(85)씨. 박씨는 스무 살이던 1955년 결혼하면서 지심도에 들어왔고, 이후 65년 동안 섬을 떠나본 적이 없다.

65년 동안 섬을 떠나 산 적 없다

새끝할머니가 이 섬에 들어온 건 스무 살이던 1955년, 결혼하면서다. 시부모는 식민지 조선이 해방되던 1945년 이 섬에 들어왔단다. 할머니는 4남1녀를 낳고 키웠다. 65년 동안 지심도를 단 한 번도 떠나 산 적이 없다. “장승포에서 가마 타고 시집왔어. 양반이 너거 집이 원래 잘살았는데, 왜 여기로 왔노 하더라꼬. 내가 국민학교 때 글짓기해서 1등 한 사람이야. 마산이나 부산으로 중학교 보내달라고 했는데 엄마가 아파 갖고 못 갔지. 그러다 엄마가 죽었고, 엄마 죽은 지 3년 만에 아버지도…. 야간학교라도 가고 싶었는데 6·25가 나서 못 댕겼지. 시집 안 올라꼬 많이 울었는데, 오고 보니까 양반이 똑똑해. 일본에서 학교 선생 했다 하데.”

‘양반’은 35년 전에 세상을 떠났고, 10년 전까지 ‘시어마시’(시어머니)랑 함께 살았다. 자식들은 각각 거제, 부산, 대전에 나가 산다. “밀감(귤)하고 유자 농사했다 아이가. 우리 외삼촌이 진주농대 나와가지고 일본 책으로 공부했는데 ‘황 서방, 밀감 농사 되것더라’ 하더라고. 그래서 까꾸막(비탈길)에 나무를 심었지. 그 농사 갖고 시누꺼정 고등학교 다 마쳤지. 막냉이(막내)는 지 중학교 때 아빠가 돌아가셨고, 지가 대학 장학금 받고 공부했지. 밀감나무는 깨끌(해수)이 많이 올라오는데 그걸 씻어줘야 하는데, 양반 죽고 나니까 애들은 할 줄 모르더라고. 그래서 다 죽어삐따.”

지심도 주민들은 농사와 민박으로 생계를 이어왔다. 이 섬에 사람이 많이 살 때는 17가구 70명까지도 살았다. “동백꽃 필 때 손님이 많이 온다. 인자는 코로나 그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안 오지. 지금은 내가 민박을 한다고 할 순 엄꼬. 우리 집은 개조를 하나도 안 해서 젊은 사람들이 오기는 불편하잖아. 아는 사람들이나 오지. 몇십 년 댕기던 낚시꾼들이 오긴 온다.”

자식들이 앞다퉈 모시고 살겠다고 하는데도 새끝할머니는 지심도에서 나갈 생각이 없다. “평생을 요 살아놓응게 육지 나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우리 큰아들이 집에 방도 만들어놨다꼬 부산에 오라 캤는데 가보니 답답해서 못 있겠더라. 나는 이제 장승포만 가도 답답하다. 우리 고양이 ‘이쁜이’하고 여기서 이렇게 살 거라. 나는 평생 섬을 떠나본 적이 없는데, 이제 와서 나가라고 하면 우짜란 말이고.”

65년을 살아온 삶의 터전에서 내쫓길 위기에 처한 할머니 목소리에 불만이 잔뜩 담겼다.

8월4일 지심도를 찾은 관광객들이 섬을 둘러보고 있다.

8월4일 지심도를 찾은 관광객들이 섬을 둘러보고 있다.


일제가 빼앗은 땅, 해방 뒤 국방부 소유로

지심도는 경상남도 거제시 동쪽에 있는 작은 섬이다. 지세포항, 장승포항에서 배를 타고 15분 남짓 들어가면 될 정도로 육지와 가깝다. 섬 전체를 뒤덮은 동백나무 때문에 ‘동백섬’으로 불리기도 한다. 작은 섬이지만 원시림이 그대로 보존돼 꽃 피는 봄이면 하루 3천 명, 매년 14만 명 넘는 관광객이 찾는다.

불행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 시작됐다. 일본군이 원주민을 모조리 강제이주시킨 뒤 섬을 전쟁을 위한 병참기지로 썼다. 해방 뒤 주민들이 다시 들어와 논밭을 일구며 살기 시작했다. 일본군 것으로 돼 있던 섬 소유권은 1970년 12월 주민이 아닌 국방부로 넘어갔다. 이후 국회 청원 등 끈질긴 반환 노력 끝에 2017년 거제시가 소유권을 돌려받았다. 현재 15가구 33명이 전입신고 돼 있는데, 실제 사는 가구는 절반 정도다. 나머지는 섬에서 절반, 육지에서 절반 생활한다.

“자연 그대로의 원시림을 더욱 잘 보존하고 관리해서 전국 최고의 자연과 생태, 역사와 스토리가 어우러진 명품테마 관광지로 조성해 1천만 관광객 시대를 앞당겨나가겠습니다!”(권민호 당시 거제시장)

2017년 3월9일, 지심도 한가운데 활주로 터에서 열린 ‘지심도 반환 기념식’. 섬 곳곳에 “80여 년 만의 반환! 지심도 거제시민의 품으로 돌아오다”라고 쓰인 펼침막이 걸렸다. 국회의원, 시의회의장, 시청 관계자 등 이 자리에 모인 300여 명의 얼굴엔 희망이 가득했다.

2020년 7월27∼28일 만난 지심도 주민들은 역사적이고도 화려한 이 반환식을 다르게 기억했다. “당시에 몇백 명 불러가지고 행사를 크게 했어예. 그 행사를 치르면서 나이 드신 원주민들(해방 이후 지심도에 들어와 대를 이어 사는 사람들) 하나 초청 안 했다 아입니까. 지심도 주민들이 난민도 아니고, 그런 대접을 받았다 아입니까.”(이상철씨·50대) “거제시로 넘어가고 나니까 더 안 좋다. 국방부 땅일 때는 한 달에 한 번씩 순찰도 했어. 근데 거제시는 한 번도 안 왔다. 우리는 차라리 국방부 땅인 게 낫다 캤어.”(박계아씨)

주민들은 국방부가 땅을 인수한 1970년대부터 임대료를 내며 살아왔다. 땅은 국방부 소유, 건물은 주민 소유다. 주민들은 살고 있는 땅이라도 오래 거주한 사람들에게 ‘불하’(개인에게 판매)해달라고 여러 차례 건의했지만 거절당했다. 바뀐 땅 주인 거제시도 불하를 거부했다. 오히려 2018년 12월 “지심도의 자연환경을 보전하면서 생태관광공원 조성 등 직접 공공용으로 사용하겠다”며 주민들에게 ‘공유재산 사용수익허가 종료 통보’를 했다. 더는 땅을 빌려주지 않을 테니 나가라는 얘기다.

동시에 거제시는 ‘불법 단속’으로 주민들을 압박했다. 농어촌 민박을 운영하는 것은 합법이지만, 국립공원 지역에서 식당 영업을 하거나 건물 증축을 하는 것은 불법이다. “땅 주인이 거제시로 바뀌면 더 좋아질 줄 알았죠. 땅을 불하해주거나, 이런 판잣집 리모델링도 하게 해주고 민박집 규제 좀 풀어줄 거라 믿었는데 2018년부터는 불법 단속을 하더라고요. 관광객한테 파전이랑 해물라면 팔았다고요. 민박 손님에게 밥해주는 건 괜찮지만 지나가다 들어온 손님한테 파는 건 안 된대요. 이 테이블이 민박 손님을 위해 놔둔 시설이기도 한데, 테이블 수를 세서 벌금을 때리더라고요.”(최문영씨) “판잣집 이거 손님들 좀 편하라고 조금 고치고, 테라스 좀 만들었습니다. 이게 불법 증축이라카면 불법이지예.”(이상철씨)

급기야 거제시는 2019년 6월 강제이주를 요구하며 단전과 도선 운항 중단을 예고했다. 그해 9월까지 네 차례 연 주민 간담회 자료를 보면 “자진 이주하지 않으면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되더라도 전기를 끊고, 도선 운항 중단도 검토한다”고 적혀 있다. 주민이 이에 응하지 않으면 행정대집행에 나서고 그 비용도 주민에게 청구하겠다고 했다. 주민들은 강제이주에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을 전했다. 거제시가 통보한 9월16일까지 강제이주에 동의한 가구는 아무도 없었다.

최은비(8)는 지심도의 유일한 어린이다. 섬에서 나고 자라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아빠, 엄마까지 3대가 함께 사는 은비는 “손안에 다 안 들어올 정도로 많은 반딧불이를 볼 수 있는 지심도가 좋다”고 했다.

최은비(8)는 지심도의 유일한 어린이다. 섬에서 나고 자라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아빠, 엄마까지 3대가 함께 사는 은비는 “손안에 다 안 들어올 정도로 많은 반딧불이를 볼 수 있는 지심도가 좋다”고 했다.

지심도가 고향인 8살 최은비

최은비(8)양은 지심도의 유일한 어린이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섬마을 바다풍경’이라는 민박집을 25년 동안 운영하고, 아빠 최문영(54)씨와 엄마 안주현(46)씨는 ‘해피하우스’ 민박집을 10년째 열고 있다. 섬에서 나고 자란 은비까지 3대가 지심도에 산다.

지심도에 있던 초등학교 분교는 1996년 폐교됐다. 2020년 초등학생이 된 은비는 코로나19 탓에 일주일에 두 번(월·목요일) 배를 타고 거제시 장승포초등학교로 등교한다. “유치원 2년, 어린이집 2년을 은비 업고 배 태워 거제로 보냈어요. 데려다주고 다시 민박집 와서 일하고, 하교 시간 맞춰 또 다녀오면 하루에 네 번, 배를 타야 해요. 초등학교 등교는 더 어려운 일이죠. 8시 반에 배가 뜨기 때문에 학교 도착하면 지각이에요. 그래서 학교 근처에 방 구해서 그 전날 재우고 등교시켜요.”(안주현씨)

넉살 좋은 은비는 민박 손님들과 곧잘 친구가 된다. “태권도랑 무용 배우고 싶은데 학원이 없어요. 그래도 여기서 킥보드 타고 동백씨 주우러 다닐 수 있어요. 부두에 내려가서 아빠랑 같이 물고기도 잡을 수 있고, 돌아다니다보면 도롱뇽도 볼 수 있어요. 반딧불이가 정말 많아요. 두 손 안에 다 안 들어올 정도예요. 학교 가서 선생님한테 반딧불이 보러 지심도 오라고 했어요. 오늘은 비가 와서 반딧불이가 안 오겠지만…. 다음에 다시 보러 오세요.”(최은비양)

대나무숲이 울창하게 펼쳐진 지심도.

대나무숲이 울창하게 펼쳐진 지심도.

갈라진 민심… 섬이 마지막 보루인 사람들

지심도 주민들에게 이 섬은 종착지이자 마지막 보루다. “큰돈은 못 벌어도 곡기 끊는 일은 없게 해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2000년 지심도에 들어온 한혁희(61)씨는 아내와 함께 ‘황토민박’을 꾸리고 있다. 10년 전부터는 섬에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소 소장으로도 일한다. “바깥에 나가면 움직이는 데도 돈이 들잖아. 여기는 자급자족이 된다. 요서는 쌀 사먹을 돈만 벌면 되잖아. 먹을 게 없으면 낚시해서 생선 잡아 배고픔은 해결할 수 있다 아이가. 섬에 사는 이유가 이거라고. 섬사람들은 바깥 생활을 안 해봐서 못 사는데 길바닥에 내뿌면 되나.”(한혁희씨)

최문영씨도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서 음식 장사를 하다 섬으로 들어왔다. 도시에선 경쟁이 심한데다 월세 250만원에 직원 월급을 주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섬에서는 나만 부지런하면 먹고살 수 있어요. 봄엔 톳 따고, 미역 따고, 여름엔 통발 넣어놓으면 문어가 잡히죠. 이렇게 해서 50만원, 100만원은 벌 수 있죠. 또 가을엔 유자 따서 유자청 만들어놓고 그다음 해 봄에 파는데, 입소문이 나서 두 달이면 끝나요. 또 동백씨 주워서 동백기름도 만들어 팔고요.”

강제이주 통보와 불법 단속이 이어지면서 마지막 보루마저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밀려오자, 주민들 사이에 의심이 피어올랐다. 2019년 거제시청엔 지심도의 15가구 중 한 가구가 민박 신고를 하지 않아 고발이 들어왔다. 주민 중 한 사람이 고발한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주민 사이에 불신이 커지고 법적 분쟁까지 생겼다. 지심도에 가장 늦게 들어온 ㄱ씨가 ‘고발자’로 몰리자 억울함을 호소하며 헛소문을 냈다는 이유로 이웃 주민에게 위자료를 청구한 것이다. 민사소송은 조정으로 끝나고, 이 과정에서 실제 고발자가 드러났다. “어느 집은 단속에 걸리고 어느 집은 안 걸리는 게 억울해서 고발했다”는 게 고발자의 주장이었다. 누구든, 어떤 이유에서든 상처만 남았다.

주민들의 교통수단이자 관광객 입도 수단인 도선 세 척의 지분도 편가르기 싸움에서 도화선이 된다. 일부 주민이 도선 지분을 가졌는데, 지분이 많을수록 강제이주에 대한 거부감이 덜하다는 것이다. 3개월 단위로 정산되는 도선 수입으로도 먹고살 만하기 때문이라는 게 이웃들의 해석이다. “누구는 종일 민박집 일하고 장사해도 얼마 못 버는데, 누구는 지분이 있으니까 아무것도 안 해도 살 수 있잖아요. 아무래도 그런 사람들은 섬에서 나가라고 해도 걱정이 없죠.”(ㄴ씨·50대)

다시 압박이 시작됐다

“(지심도는) 불법 증축, 무신고 영업, 산지 전용 허가를 받지 않은 건축 행위, 공유재산 사용 목적 임의변경 등 지심도 내 위법사항이 방대합니다. 관광객 안전, 섬 보존과 직결되는 사항으로 불법행위를 묵인할 수 없습니다.”(변관용 거제시장)

8월3일, 변 시장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법 집행기관으로 인지한 불법에 대해 반드시 개선해나가겠다”며 ‘단호한 대응’을 공언했다. “현재 추진 중인 ‘지심도 개발·운영계획 및 공원계획 연구’ 용역 결과가 (8월 말에) 나오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다수의 이익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방향을 찾겠다. 주민과 협의해 상생 방안을 찾겠다. 이주와 공존,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 거제시 담당자는 “단전, 도선 운항 중단 같은 행정대집행을 고려한 적은 있지만 현재는 아니”라고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모든 가능성 가운데 이주에 무게중심이 쏠려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지심도 주민들은 모든 가능성 가운데 공존을 바란다. 구체적으로는 지심도를 국립공원 내 ‘마을지구’로 지정해달라고 호소한다. 환경부가 마을지구 지역으로 지정하면 영업행위가 가능해진다. 강제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은 “올해가 10년마다 돌아오는 국립공원 구역 조정이 있는 해다. 지심도 역시 구역 조정을 신청해 마을지구 지정을 받으면 주민들은 섬을 떠나지 않고도 합법적인 영업을 하며 살아갈 수 있다. 섬 주민을 쫓아내고 하는 개발이 가장 나쁜 섬 개발”이라고 말했다. “지심도는 동백철엔 하루 2천∼3천 명, 연간 14만 명이 방문하는 관광지라, 오히려 입도 인원을 제한해서 자연환경을 보전할 상황인데 또 개발하겠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새끝할머니 집의 평상에 앉아 섬을 내려다본다. 많은 비가 내려 육지까지 거리는 아득해 보였다. 그러나 울창한 동백나무숲에서 나오는 맑은 기운 때문인지, 세차게 몰아치는 빗소리가 모든 근심을 씻어줄 듯 평화롭게 들렸다. 할머니는 65년간 지켜온 삶의 터전을 지킬 수 있을까. 지심도에서 나고 자란 8살 은비는 고향을 떠나지 않을 수 있을까. 오랜 시간 섬을 지키고 가꿔온 ‘사람’들이 떠나버린 뒤에도 이 섬은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을까.

거제=글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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