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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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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여자라는 이유로 회원가입을 받지 않을 때

개인과 단체의 자유 앞세워 각종 차별 합리화 안 돼… 균형과 조화 필요
등록 2020-09-08 08:22 수정 2020-09-10 01:25
2006년 2월25일 서울YMCA가 종로구 본관에서 열린 제103차 총회에서 여성 회원의 의결권과 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을 뼈대로 한 헌장 개정안 표결을 강행하자 이에 반대하는 여성계와 시민들이 총회장 입구에서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2006년 2월25일 서울YMCA가 종로구 본관에서 열린 제103차 총회에서 여성 회원의 의결권과 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을 뼈대로 한 헌장 개정안 표결을 강행하자 이에 반대하는 여성계와 시민들이 총회장 입구에서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신문을 끊지 않았는데 어느 날부터 신문이 배달되지 않았다. 치킨을 주문하고 주소를 불러주니 갑자기 닭이 떨어졌다며 전화가 뚝 끊겼다. (…) 누가 갑자기 욕을 하고 손가락질을 하는 건 아닌지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 코로나19는 나았지만 새로운 병이 생겼다. (…) 사회적 낙인은 밝고 활기차던 부부에게 우울감과 공황장애를 안겼다.”

이 글은 식당을 운영하는 부부가 코로나19에 감염됐다가 회복한 뒤 겪은 혐오와 차별의 괴로움을 취재한 기사의 일부이다(<동아일보> 2020년 8월29일). 소설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의 등장은 그가 감옥에서 노역해 번 돈으로 비용을 지급하겠다는데도 죄수였다는 이유로 식당과 여관에서 쫓겨나 거리를 헤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만약 내가 현재는 치유된 병력 때문에 식당에서 나가줄 것을 요구받는다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전세 계약을 거부당한다면? 여성이라는 이유로 회원 가입한 단체에서 시설 사용을 못하게 한다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빵을 살 수 없다면? 특정인, 특정 집단에 음식·주거·시설 제공을 거부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므로, 이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을 긋는 사회가 우리가 소망하는 공동체 모습은 아닐 것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그러한 거부와 배제가 ‘개인의 자유’라 하여 무제한적으로 용인될 수 없고, 평등한 사회를 실현하는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도 부여돼 있다는 확인과 합의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의 자유 vs 차별받지 않을 권리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바꾸기 어려운 속성(성별, 성적 지향, 인종 등)이나 인격을 이루는 중요한 특질(종교, 사상 등) 등을 사유로 들어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적 처우를 하는 것을 금지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한다. 또한 학력이나 전과와 같은 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을 금지함으로써 민주주의 사회 형성의 기초를 보호한다. 헌법 제11조는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데, 차별금지법은 성별과 같은 인간의 속성, 종교와 같은 인격적 특질, 학력이나 전과와 같은 사회적 신분을 더 세밀하게 차별금지 사유로 규정한 것이다.

차별 금지 의무, 즉 평등권 실현 의무는 1차적으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와 같은 공적 주체에 있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은 사적 영역이라 할지라도 고용과 교육, 재화·용역·교통수단·주거시설 등의 공급이나 이용에서 합리적 사유 없는 차별을 금지한다.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유무형 자원에 공동체 구성원이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조처다. 개인의 자유나 사적 자치는 다른 권리와 마찬가지로 무제한으로 인정될 수 없고 헌법 질서와 조화돼야 한다는 점에서, 차별금지법은 사적 영역에 적용될 수 있다. 다만 공적 영역과 달리 사적 영역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어디까지 제한할 것인지의 문제가 있다. 제한되는 개인의 자유는 사안에 따라 결사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 모습을 띠기도 한다. 이러한 개인의 자유와 차별받지 않을 권리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이루어갈 것인가. 몇 가지 사례를 보자.

서울YMCA는 선교, 사회교육 등의 사업을 하는 민간단체로 남성과 여성 모두 회비를 내고 회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 이 단체는 남성 회원에게는 별다른 심사 없이 일정한 연차가 되면 총회원 자격을 부여했다. 총회원은 총회의 의결권과 이사, 감사 등의 선거 및 피선거권을 가진다. 그러나 여성 회원은 원천적으로 총회원 자격 부여를 위한 심사에서 배제했다. 여성 회원들이 수년간 요청해도 총회원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자, 서울YMCA의 차별적 처우가 여성 회원들의 인격을 침해해 위법이라며 2009년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개인의 신분과 재산은 각자 의사에 따라 정한다는 사적 자치의 원칙과 결사의 자유에 비추어볼 때 서울YMCA의 행위가 위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과 대법원은 그러한 차별적 처우가 사회질서에 반하는 위법한 행위로서 서울YMCA는 여성 회원들이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서울YMCA 여성 회원들이 분노한 까닭

항소심과 대법원의 판단은 결국 평등권 보호를 위해 사적 자치 또는 결사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다. 따라서 충돌하는 법익 중 어떤 법익이 더 중대한지 저울질해봐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요소를 평가해야 할까?

첫째, 단체의 성격이 중요하다. 독일에서는 어느 단체가 독점적 지위를 가졌거나 중요한 사회·경제적 지위를 가져 단체 구성원 자격이 그 가입 희망자의 본질적인 이익과 연관된 경우, 단체가 구성원 자격을 임의로 제한하는 것은 공공의 질서와 선량한 풍속에 위반하는 불법행위라고 본다. 미국은 사적 단체가 구성원 자격을 부여하거나 박탈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사적 자치에 맡겨진 것으로 여기지만, 단체에 공공적 성격이 있다면 단체가 누리는 결사의 자유와 사적 자치는 공적 기관과 마찬가지로 공공의 이익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합리적으로 행사돼야 한다는 법리가 있다. 또한 직역 단체의 구성원 자격이 개인에게 경제적으로 필요한 경우, 단체가 멋대로 개인의 가입 신청을 거부할 수 없다는 판례들이 있다.

대법원도 서울YMCA 사건에서 이 단체가 순수하게 사적인 영역에서만 활동하는지, 아니면 공익적 기능도 수행하는지를 따지도록 했다. 후자인 경우 전자보다 사적 자치의 행사에 더 많은 제한을 받고, 따라서 자의적인 차별적 처우는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미국에서는 사적 재산이라 할지라도 공공의 목적을 위해 사용되거나 국가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는 경우, 정당이나 사립대학과 같이 실질적으로 국가나 정부의 기능을 수행하는 경우 직접 헌법 규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둘째, 침해되는 상대방 법익의 중요도와 침해 정도를 평가해야 한다. 예컨대 차별적 처우로 권리 자체가 박탈되면 권리 행사가 일시적으로 제한되는 것보다 침해 정도가 중대하므로 위법하다고 평가될 가능성이 크다. 개인이 사회적·경제적 활동을 위해 필수로 가입해야 하는 독점적 직역 단체와 같이 그 가입 제한이 개인의 중요한 이익을 침해할 때는 단체의 사적 자치는 제한된다. 서울YMCA 사건에서 여성 회원들은 단체 구성원으로 회비를 납부하면서도 성별에 의해 지속해서 총회의결권을 박탈당했는데, 단체 구성원의 중요한 권리인 결의권(회의에 참석해 의사를 밝히고 의결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을 지속적이고 원천적으로 박탈당했다는 점에서 차별적 처우의 위법성이 어렵지 않게 인정될 수 있다.

셋째는 차별의 불가피성, 즉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를 봐야 한다. 예컨대 단체의 정체성 유지를 위해 구성원 자격 제한이 불가피하다면 이는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단체의 정체성은 객관적으로 인식될 수 있어야 하며, 현재 단체의 성격과 활동에 비추어 실질적으로 인정될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남성과 여성이 모두 회원으로 활동하는데 연혁상 남성 단체로 출발했다는 점만으로는 여성 회원에 대한 차별적 처우의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이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적 자치와 평등권 사이의 택일적 결정이 아닌, 여러 요소를 고려하여 사회 구성원이 수긍할 수 있는 균형점을 섬세하게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동성 결혼 지지’ 케이크 제작 거절, 차별일까

각국의 차별 금지 사유 중 ‘성적 지향’이 있다. 2018년 영국 대법원은 ‘Support Gay Marriage’(동성 결혼 지지)라는 제목이 달린 맞춤 케이크를 의뢰한 손님의 주문을 결혼에 대한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거절한 것이 위법한 차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Lee v. Ashers Baking Co. Ltd. [2018] UKSC 49). 케이크 제작자의 거절 행위는 ‘Support Gay Marriage’라는 메시지에 대한 것이고 메신저, 즉 그 케이크를 주문한 손님에 대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차별적 처우란 특정인을 다른 사람들보다 불리하게 취급하는 것인데, 누구든 그런 케이크를 주문했더라도 케이크 제작자는 똑같이 거절했을 것이므로 차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즉 차별이란 사람들을 다르게 취급하는 것인데,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주장에 대한 반대 의사 표시는 특정인 또는 특정 집단을 향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주장을 향한 것이므로 차별이 아니라는 것이 이 대법원 판결의 요지이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사건들이 연방대법원에서 다뤄졌다. 구체적인 사안은 조금씩 다르다. 콜로라도주의 차별금지위원회는 동성 커플의 결혼식에 쓰일 웨딩 케이크 주문을 거절한 케이크 제작자의 행위가 위법한 차별에 해당한다는 결정을 내렸고 주 대법원도 이러한 차별금지위원회의 결정에 하자가 없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은 차별금지위원회의 결정 과정에서 케이크 제작자의 종교적 신념이 손님의 성적 지향에 비해 불리하게 취급됐다며 주대법원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Masterpiece Cakeshop v. Colorado Civil Rights Commission, 138 S. Ct. 1719 (2018)).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과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은 이러한 다수 의견에 반대했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케이크 제작자가 다른 커플에게는 판매했을 웨딩 케이크를 동성 커플 손님에게는 팔지 않은 것이므로,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에 해당한다는 의견이었다. 콜로라도주 차별금지위원회는 비슷한 시기에 “동성애는 혐오스러운 죄악이다”라는 메시지가 달린 성경 모양의 케이크 주문을 거절한 것은 차별 행위가 아니라고 결정한 바 있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두 사건의 차이점을 지적하며 어느 누가 주문했더라도 거절했을 행위는 차별이 아니지만, 웨딩 케이크 주문 거절은 특정 성적 지향을 가진 손님에게만 이루어진 것이므로 차별이라는 논리를 펼쳤다.

이러한 사건들에서는 표현의 자유 혹은 종교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되는 행위의 범주는 어디까지인지, 웨딩 케이크를 판다는 것은 그 결혼을 찬성한다는 표현이 되는지, 이러한 행위를 위법한 차별로 규제하는 것은 종교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일인지 쉽지 않은 판단이 요구된다. 이러한 판단 과정을 시작조차 해보지 못한다면, 구성원의 다양한 법익을 조절하고 균형을 찾아가는 우리 사회의 역량은 늘 제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

모두가 장발장 같은 대접 받으려면

<레미제라블>의 미리엘 주교는 장발장을 초대하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당신이 누구인지를 내게 말하지 않아도 좋았소. (…) 이 집의 문은 들어오는 사람에게 이름을 묻지 않고, 그에게 고통이 있는가 없는가를 물을 뿐이오. 당신은 고통받고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이므로, 잘 오셨소. (…) 어찌 내가 당신의 이름을 알 필요가 있겠소? 더구나 당신이 이름을 말하기 전에 당신에게는 내가 알던 이름 하나가 있소. (…) 당신 이름은 나의 형제요.” 미리엘 주교는 누군가를 맞이하는 데 형제라는 이름 외에 다른 것이 필요치 않았지만, 다양한 구성원이 살아가는 현실 세계에서는 차별금지법이라는 이름의 약속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약속의 의미를 적절히 해석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김태선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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