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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재련 변호사 “박원순 사건 그만두려 했다”

‘박원순 성폭력 의혹’ 피해자 법률대리인 첫 언론 인터뷰
등록 2020-09-11 16:59 수정 2020-09-19 00:56
김재련 변호사가 9월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온세상 사무실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김재련 변호사가 9월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온세상 사무실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한겨레21>은 9월4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업무상 위력 추행 등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 법률대리인 김재련(48) 변호사를 만났다. 그가 언론 인터뷰에 응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온·세상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 자리엔 피해자를 지원하는 한국여성의전화 고미경 대표와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이 동석했다. 2시간30분가량 진행된 대면 인터뷰 뒤에도 여러 차례 서면 인터뷰를 통해 내용을 보충했다. 박 전 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고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날 선 논쟁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건에 대한 조사와 논의가 편견 없이 진행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피해자의 동의를 얻어 고소 전후 사정과 여러 비난의 표적이 된 법률대리인의 입장을 들어봤다. _편집자

“2015년 6월26일 피해자가 서울시장 비서 면접을 본 뒤 친구와 주고받은 문자 내용을 보면 ‘얼굴만 보기 위해 불렀다고 하더라’는 내용이 나온다. 외모를 기준으로 비서를 물색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게 서울시청만의 문제였을까? 수많은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는 다를까?” 

김재련 변호사가 기자에게 되물었다. 그는 “이번 사건이 많은 이슈 중 하나로 휘몰아쳤다가 쓱 가라앉아선 안 되기 때문”에 인터뷰에 응했다고 했다. “박 전 시장 사건은 피해자 한 명의 문제가 아니다.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문제점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여성들이 근로의 주체로 일하며 사람답게 살아가기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가 박 전 시장 고소 전에 겪은 ‘4월 사건’ 당시의 상황과 피해자 입장도 전했다. ‘4월 사건’은 서울시장 비서실 내부에서 발생한 또 다른 성폭력 사건이다. 그동안 피해자는 4월 사건 피해 당사자임을 밝히지 않았다. 서울시의 성폭력 피해 대응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구조적 문제’를 말하기 위해, 피해자가 고심 끝에 또 다른 성폭력 피해까지 드러낸 것이라는 설명이다. 박 전 시장의 성적 괴롭힘과 4월 사건을 거치며 “뭐라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상처를 입은” 피해자가 김 변호사를 찾아간 건 2020년 5월12일이었다.

-5월12일 피해자를 처음 만난 날에 관해 먼저 묻고 싶다.
“피해자가 처음 사무실에 찾아온 날,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지금처럼 코로나19 유행이 심각하지 않았는데, 마스크를 쓴 채 얼굴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굉장히 경계하고 있었다.”

-어떤 경위로 피해자가 김 변호사의 사무실을 찾아온 건가.
“4월 서울시 비서실 직원에 의한 성폭력 사건(4월 사건)이 있었다. 피해자는 그 사건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이 사건에 대한 서울시의 미흡한 조처에 관해 털어놨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서울시도 관리·감독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1시간 상담이 거의 끝나갈 무렵, 피해자가 박 전 시장 이야기를 꺼냈다.”

-피해자는 김 변호사를 누구로부터 소개받았나.
“서울시 젠더특보가 소개해준 정신과 전문의에게 상담받다가 그 선생님이 서지현 검사를 대리했던 나를 소개해줬다고 한다. 피해자는 나에 대한 기사와 댓글까지 모두 검토한 다음 찾아왔다고 말했다.”

-4월 성폭력 사건에서 서울시의 미흡한 조치라는 게 뭔가.
“피해자는 성폭력 피해 당일 바로 가해자를 형사고소했지만, 피해 사실이 알려지는 것은 원치 않았다. 오히려 가해자가 피해 사실을 소문냈고, 당시 비서실장에게까지 성폭력 사건이 보고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피해자는 피해 사실이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직장에 알려지자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시는 마땅한 조처를 하지 않았다. 가해자가 직위해제될 줄 알았는데 다른 부서로 전보 발령이 났다. 그것도 피해자와 업무상 밀접하게 연관된 자리였다.”

“서울시, 성폭력 가해자 제대로 분리 안해”

직장 내 성폭력이 일어나면 징계 절차가 개시될 때까지 가해자를 직위해제하고 대기발령을 내리는 게 통상적이다. 그러나 서울시는 4월 사건을 인지하고도 가해자를 직위해제하지 않고 전보 발령하면서, 피해자와 가해자를 제대로 분리하지 않았다. 피해자는 4월22일 서울시장 비서실 소속 인사기획비서관과 통화했으나 ‘두 사람(가해자와 피해자)과의 인연이 모두 소중해서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는 취지의 답을 들었다. 당시 피해자는 문자메시지를 통해 가해자 징계를 다시 한 번 명확히 요청했지만 아무 조처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일반 범죄가 아니고 성범죄입니다. 조용히 넘어가고 싶었으나 어쩌면 당연하게도 결국 이렇게 알려지게 되었다면, 내부 징계 또한 확실히 검토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증언이 필요하다면 진술하도록 하겠습니다. 초기의 안일한 대응은 저에게 더 큰 상처가 되고, 정무적으로도 리스크가 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피해자가 보낸 문자메시지, 피해자 동의를 받아 김재련 변호사가 제공했다.)  

4월23일 언론 보도로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고 경찰에서 수사 개시 통보를 받자, 서울시는 그제야 가해자를 대기발령(23일)하고 직위해제(24일)했다. 김태균 행정국장은 24일 "가해자에 대해 보다 신속한 조치가 이뤄지지 못해 죄송하다"고 공식 사과했다. 피해자에게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는 취지의 답을 했다는 인사기획비서관은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피해자는 서울시에 신고하지 않았다. 뒤늦게 (성폭력 사건이) 인지된 상황에서도 본인이 신고해서 조사하거나 본인이 이야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건 관련해 피해자에게 연락하는 것이 2차 피해가 될 수 있다고 해서 피해자 걱정만 한 채 연락을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누구 편을 들려는 의도 없이, 중립적인 입장에서 동료로서 피해자가 걱정되어서 22일 전화했다. (서울시) 성폭력 대응 매뉴얼 프로세스상 피해자가 공식적인 문제제기 절차를 밟지 않은 상황에서 경찰의 수사개시통보가 오기 전에는 직위해제 등 조치를 할 수가 없었고 그런 점을 말해주었다. 나중에 (서울시) 젠더특보가 성폭력 대응 매뉴얼도 보내 준것으로 안다. 성폭력 대응 매뉴얼상 내가 신고를 막아서도 안되고 유도해서도 안된다. (서울시에 신고하려면) 피해자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이후 연락도 안 받고 (피해자가) 직접 신고도 하지 않았다. 2020년 7월에 (피해자의) 신고 없이도 서울시가 인지하면 직위해제할 수 있는 것으로 프로세스가 변경된 것으로 안다.”

가해자를 준강간 혐의로 수사한 경찰은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도 9월10일 여

전히 수사 중이다. 4월 사건에 대한 서울시 차원의 진상 조사나 가해자 징계 조처는 이뤄지지 않았다. 서울시 관계자들은 수사 결과가 나와야 징계 조처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수사 중인 사건이라는 이유로 내부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수사 기간은 한정 없이 길어지고 있다. 피의자의 정상적인 삶과 피해자의 비정상적인 삶의 시간이 연장되고 있다.” 김 변호사가 전한 피해자의 말이다. 서울시는 그동안 성평등·인권친화적 제도를 갖췄다고 홍보해왔다. 

“4년 동안 뼈가 침식됐다. 겉으로는 멀쩡했지만 문제 삼는 게 공무원인 제 안위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아서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4월 (성폭력) 사건 피해를 입었다. 골다공증 상태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김 변호사가 전한 피해자 입장) 

7월13일 서울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재련 변호사가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단

7월13일 서울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재련 변호사가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단

“피해자, 변호사 만나기 전부터 고소 결심”

지속해서 인사 요구를 하는 등 완곡한 거절 의사를 밝히며 박 전 시장의 성적 괴롭힘을 견뎌오다 인사이동됐지만, 그 후에도 박 전 시장에게서 사적인 텔레그램을 받았다. 그리고 4월 사건까지 겪었다. 서울시의 성폭력 피해 구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자 피해자는 ‘성폭력 피해 사실 전반’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기로 마음먹는다. 4월 사건은 이미 고소한 상태였고, 박 전 시장에 대해 추가 고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김 변호사를 만났다는 설명이다.  

-박 전 시장에 대한 고소에 이르기까지 피해자의 심정은 어땠나.
“피해자는 ‘두 명의 가해자에게 단순히 더하기의 피해를 본 게 아니라, 곱하기의 피해를 봤다’고 말한다. 피해자는 박 전 시장의 지속적인 성적 괴롭힘에 대해서도 법적 책임을 물으려는 의지가 강했다. 피해자는 5월12일 나를 처음 만나 법률 상담을 하기 전, 이미 자신의 휴대전화를 사설 포렌식(복구) 업체에 맡긴 상태였다.”

피해자는 당시 사용하던 휴대전화를 사설 포렌식 업체에 맡기며 본인과 박 전 시장의 대화를 추출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업체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휴대전화를 돌려줬다. 그런데 얼마 뒤 업체가 복원을 다시 해보겠다고 연락했다. 또 필요하면 업체와 연결된 법인과 변호사를 만나게 해주겠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1차 상담(5월12일) 때 피해자로부터 이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피해자와 박 전 시장의) 대화 내용이 뭔지도 모르는데, 그런 얘기를 건네는 게 이상하지 않나. 그래서 2차 상담(5월26일)을 마친 뒤 별도의 포렌식 업체에 휴대전화를 맡겼다.”


-4월 성폭력 사건의 미온적 처리에 대한 복수심 때문에 박 전 시장을 곤경에 처하게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복수심 때문에 서울시장을 모함에 빠뜨린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피해자는 직업공무원이다. 이 사건이 종결되면 다시 공무원 사회에서 근무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 피해가 드러났을 때 사람들의 편견으로 피해자가 어떤 고통 속에 살아야 하는지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그럼에도 피해자는 박 전 시장으로 인한 피해를 증명하기 위해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4월 사건조차 언급하는 것이다.”

피해자는 2019년 6월 인사이동 결정이 있기까지 만 4년 이상 비서실에서 일했다. 임용권자가 정한 직위에 2년 이상 계속 근무한 공무원에 대해서는 본인 희망을 고려해 전보할 수 있다는 서울시 인사규칙과 달리, 피해자는 상급자와 시장의 만류로 부서를 이동하지 못했다고 한다. 2018년 11월 작성된 인사이동검토보고서도 피해자의 거듭된 요청 때문에 작성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해자 직급(8급)에 관해 인사이동검토보고서가 작성되는 건 이례적이다. 그러나 인사 총책임자였던 비서실장 등의 주장은 전혀 다르다. 강제추행 방조 혐의로 경찰에 출석하면서 성희롱·성폭력 관련 고충은 물론 인사 고충도 전해들은 바 없다고 반박한다.

-이른바 ‘6층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성희롱·성추행 사건을 4년 동안 은폐해왔다고 보나.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있다. 강제추행 방조 등의 혐의 수사는 피해자가 아니라, 제3자(보수 유튜브인 가로세로연구소)의 고발로 시작됐다. 피해자가 기자회견을 해서 20명 정도에게 성 고충, 인사 고충을 얘기했다는 건 그 20명이 묵인·은폐·방조·유기의 주범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한 아나운서가 방송에서 ‘왜 4년 동안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나서게 된 건지 궁금하다’고 말하지 않았나. 그게 아니라, 그 4년 동안 너무 힘들어서 주변 동료와 인사 담당자, 상급자에게까지 고충을 털어놨고, 그런 사람이 적어도 20명 정도 된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그 사건에서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피해자가 선량한 20명을 곤경에 처하게 했다’는 식으로 매도하고 있다.”

-언론을 통해 피해자가 비서 업무에 관해 작성한 인수인계서가 공개됐다. “(박 전 시장은) 인품도 능력도 훌륭해 배울 것이 많다” “인생에서 다시없을 특별한 경험”이라 쓰였고, 이 표현을 문제 삼아 주변인들이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의심하지 못했을 거라는 주장도 나온다.
“업무인수인계서는 피해자가 업무를 힘들어하는 후배를 위해 작성·공유한 거다. 공적 문서에 시장의 성적 괴롭힘을 조심하라는 문구를 포함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공직자이자 비서로서의 공적 자체와 소명에 대해 후임자에게 알려주는 것이 선임의 역할이자 의무이기도 하다.”

김재련 변호사가 9월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온세상 사무실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김재련 변호사가 9월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온세상 사무실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공문서에 성적 괴롭힘 암시할 수 있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력 피해생존자 김지은씨가 쓴 책 <김지은입니다>를 보면, 안 전 지사의 측근임에도 진실을 증언한 ‘문 선배’ 이야기가 나온다. 이 사건에서 ‘문 선배’같이 피해자를 위해 증언해줄 사람은 없나.
“가해자 위력을 강화하는 건 관계자들의 침묵과 묵인이다. 가해자가 사퇴하거나, 유죄판결로 교도소에 가거나, 심지어 사망한 경우에도, 가해자와 관계 맺은 사람들은 그 조직 안에 여전히 포진해 있다. 공무원으로서 인사 평정을 받으며 살아가야 할 직원들이 본 사실, 들은 사실을 털어놓는 게 힘들 거라 짐작된다. 특히 비서실장 같은 책임자가 ‘피해자가 인사·성 고충을 토로한 사실이 없다’는 입장을 공개 발표하는 ‘시그널’을 줬다면, 입을 여는 게 더 쉽지 않다. 그럼에도 피해자에게 들은 내용을 증언해준 사람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

김재련 변호사는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6월~2015년 7월 여성가족부 여성권익증진국장을 했고, 2015년 한·일 정부가 맺은 ‘위안부 합의'에 따라 설립된 화해치유재단 이사로도 활동했다. 이러한 이력을 거론하며 피해자의 고소를 정치적 의도가 있는 ‘기획 미투’라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크다. 

-김 변호사도 피해자 대리인을 계속 맡아도 될지 고민했다고 들었다. 
“7월9일 새벽 경찰청에서 고소인 조사를 마치고 그날 아침 여성단체 대표들과 피해자가 처음 만난 자리에서 사건의 본질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면 대리인을 맡지 않겠다고 밝혔다. 안태근 전 검찰국장 사건에서 나에 관한 논쟁으로 문제의 본질이 흐려질까 걱정돼 사임했는데, 이 사건도 (비슷한 논란이) 우려됐다. 그러나 지원단체 쪽에서 함께하자고 말해주셔서 함께하게 됐다.” 

인터뷰 자리에 함께 한 두 단체는 “피해자 선택을 존중했고, 그동안 (김 변호사의) 피해자 지원 경험을 살려 함께 하자고 했다”고 설명했다. 김재련 변호사는 고려대 의대생 성폭행 사건(2011년), 청소년에게 신분증을 확인하지 않은 모텔 주인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2017년), 태권도 미투 사건(2018년) 등을 맡았다. 최근 3년만 해도 2017년 47건, 2018년 49건, 2019년 40건의 성폭력 피해 사건 피해자 조력을 무료로 맡았다고 한다.

여성단체 “피해자 선택 존중해 법률대리 맡긴 것”

-추가 증거를 내놓으라는 요구도 여전하다.
“피해자 진술과 관련 증거는 모두 수사, 조사기관에 냈다. 1차 기자회견에서 ‘호 하면서 무릎에 입술을 접촉했다’는 피해 사실 일부를 공개했다. 몸에 카메라를 장착하고 다니거나, 호 하면 입김 온도라도 측정해둬야 하나. 누군가 내 의사 결정의 자유를 침해해 무릎에 입술을 접촉했다는 걸 증명할 증거는 없다. 더군다나 위력에 둘러싸인 상황에서 어떤 물리적 증거가 가능하다는 말인가. 

 고소사실을 증명할 일부 사진, 텔레그램 복원문자 등은 이미 제출했고, 피해자로부터 그와 같은 사진을 본 사람, 텔레그램 문자를 본 사람들도 수사기관에 출석해서 진술한 것으로 안다."

-“피해자가 대리인 뒤에 숨었다”는 비난도 있다.
“성폭력 사건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법 규정이 있다. 피해자는 가명으로 조사받을 권리가 있고, 법률대리인을 선임해 법률 조력을 받아 피해 사실을 증명해나갈 수 있다. 그런데 마치 피해자가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은 어떤 권한을 누리는 것처럼 말한다. 피해자가 대리인 뒤에 숨었다고 하는 것 자체가 피해자의 주체성을 부정하고 인격권을 침해하는 표현이다. 이보다 심각한 2차 가해는 없다. 대리인을 통해 피해 사실을 이야기하든, 본인이 직접 이야기하든 그건 피해자 권리다. 이를 숨었다고 표현해선 안 된다.”

김 변호사는 “정치와 진영의 장막을 걷어내면 ‘위력에 의한 성추행’이라는 이 사건의 본질이 드러난다”고 거듭 강조했다. “난 그저 변호사로서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다. 피해자가 상담을 요청하고, 변호사로서 봤을 때 죄가 되고 법적으로 판단받아야 하는 사안이라면 사건을 맡는다. 상대방이 어떤 정치적 진영에 있다는 이유로 못하겠다고 하면 그런 사건은 누가 맡을까. 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에 항의 전화로 업무를 마비시키면 어떤 단체가 이런 사건에 나서 피해자를 도울 수 있겠나. 성폭력 사건은 피해자의 침해된 인격권과 권리를 구제하는 문제이지, 진영과 정치의 문제가 아니다.” 피해자를 지원하는 한국여성의전화와 한국성폭력상담소는 김 변호사가 이사를 맡은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요구했다 당시 김 변호사와 두 단체는 정반대의 입장이었던 셈이다. 

변호사와 지원단체에 쏟아지는 공격을 곧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여기는 피해자는 자신을 ‘여러 번 죽은 목숨’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피해자의 바람은 단순하다. ‘어딘가 있을지 모를 또 다른 피해자에게 같은 피해가 더는 일어나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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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러 번 죽은 목숨’ 이라는 피해자

-현재 박 전 시장은 세상을 떠나 성추행 건에 대해선 ‘공소권 없음’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고, ‘피해 방조’ 혐의로 고발된 비서실 전·현직 관계자들을 조사해 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만 남아 있다.
“범죄행위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것과 그런 범행을 한 사람을 처벌하는 문제는 구분될 수 있다. 박 전 시장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형사처벌은 현실적으로 어려워졌지만, 박 전 시장의 사회적 위치, 이 사건의 사회적 의미 등을 고려하면 그의 부하 직원에 대한 지속적인 성적 괴롭힘이 범죄 사실에 해당하는지는 수사기관이 적극 수사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되새기면서 사회 전반적인 구조를 바꿔야 한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한다고 보나.
“그게 국가인권위원회 직권조사를 요청한 ‘서울시 및 관계자들의 성차별적 직원 채용과 성차별적 업무 강요’ 등 8가지 항목과 연결되는 부분이다. 서울시가 비서를 채용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그게 성적 괴롭힘의 밑자락을 까는 행위일 수 있다. 2015년 6월26일 피해자가 시장실 면접을 본 뒤 친구와 주고받은 문자 내용을 보면 ‘시장 비서실 면접을 봤다, 얼굴만 보기 위해 불렀다고 하더라’는 내용이 나온다. 비서 채용 과정을 보면 근로 주체가 아닌 성적 대상화가 됐던 것으로 보인다. 국가 및 지자체, 공공기관의 비서 채용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 선출직 공무원들의 성폭력은 누가 어떤 방식으로 관리·감독 책임을 질 것인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식견있는 분들 침묵하지 않았으면”

-한국의 여성인권 수준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 같다.
“한국은 ‘야만 사회’라고 생각한다. 아무렇지 않게 피해자의 주체성을 부정하고, 법에 명시된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는 이름으로 퇴행시켰다. ‘네가 피해 입었다면, 우리에게 일단 다 보여봐라’라고 서슴없이 이야기한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식견을 가진 분들이 침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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