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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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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n] 가장 만연한 성범죄 ‘지인 능욕’

아는 사람의 사진·영상을 성적으로 편집해 게시하는 ‘지인 능욕’
피해규모가 n번방·박사방을 훌쩍 뛰어넘는 가장 문턱이 낮은 성범죄
등록 2020-09-12 00:41 수정 2020-10-13 12:50


2019년 7월 디지털성범죄 취재를 시작한 대학생 두 명이 닿은 곳은 와치맨(구속)이 운영하는 ‘AV스눕’이라는 블로그였다. 이곳엔 텔레그램 ‘고담방’으로 들어가는 링크가 있었다. ‘고담방’은 텔레그램 ‘n번방’으로 들어가는 통로였다. 텔레그램 ‘n번방’에선 성인, 아동 할 것 없이 여성은 성적으로 조롱당하고 착취당했다. 누군가는 알고도 모른 척, 누군가는 별일 아닌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 대학생 두 명은 목격한 뒤 신고하고, 기록하고, 결국엔 법을 바꿔냈다. 추적단 불꽃이다. 디지털성착취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느슨한 지금, 추적단 불꽃이 디지털 내에서 여전히 버젓이 일어나는 성착취를 모니터링한다. 이를 기록해 <한겨레21>에 격주로 싣는다. 디지털성착취가 끝장날 때까지 지켜보겠다는 의미다._편집자주

2020년 3월 이래 박사 조주빈, 갓갓 문형욱이 차례로 잡히면서 공개적인 곳에서 동의 없이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하고 유포하는 ‘디지털성착취’를 감행하는 가해자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반면 ‘지인 능욕’ 범죄는 텔레그램을 비롯한 트위터, 디스코드 등에서 끊이지 않는다. 지인 능욕은 친구나 회사 동료 등 지인의 사진이나 영상을 성적인 사진으로 편집해 게시하는 것을 말하는데 단순히 명예훼손이나 성희롱으로 볼 수 있는 범죄가 아니다.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수치스러워하거나 무서워하기를 바라며 ‘너를 찾아가겠다’ ‘강간하겠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뱉는다. 지인 능욕 피해자 규모는 n번방, 박사방을 훌쩍 뛰어넘는다. 

“희롱당하면 ‘내가 예쁜가보다’ 할 것이지 ××이”

9월에 접속한 텔레그램 지인 능욕 범죄 관련 대화방 중 A방 가해자는 600명에 달했다. 가해자들은 피해자 반응을 종종 퍼날랐다. 피해자에게 성범죄 행위를 전달하는 것도 이들에게는 ‘성적 판타지’를 실현하는 과정 중 하나다. 이들은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끼기를 바라며 성희롱을 이어갔다. 한 가해자는 본인이 자위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과 함께 ‘사랑해, 언젠가는 너를 ××해줄게’라는 메시지를 피해자에게 전송했다고 한다. ‘이제 이딴 거 봐도 타격 없다 ××야’ 피해자는 주저 않고 성적 불쾌감을 드러냈다. 가해자는 본인의 행동을 자랑이라도 하듯, 피해자와의 대화 내용을 지인 능욕 대화방에 올렸다. 참가자들은 “(본인의 피해 사진을) 얼마나 봤으면 아무렇지도 않아하냐ㅋㅋㅋ” “인생 제대로 망가졌네ㅋㅋㅋㅋ” 등의 말을 주고받으며 피해자를 비웃기 바빴다.

이들은 ‘예뻐서 성희롱하는 건데 왜 기분 나빠하느냐’는 식이다. 지인 능욕 가해자들은 자기 기준에 ‘예쁘게 생겼기 때문에 성희롱하는 것’이니, 피해자가 성희롱과 협박을 감수해야 한다는 폭력적인 발언을 내뱉는다. 7월31일 개설된 지인 능욕 대화방 A. 이곳은 이미 5천여 장의 합성사진, 100여 개의 ‘딥페이크’(인공지능 기반 영상 제작 기술로 합성인지 실제인지 구분하기 어렵다)와 ‘불법촬영’ 영상물이 공유되고 있다. 닉네임 ‘Realmaker’ ‘own front’라는 ‘합성 장인’으로 불리는 가해자들이 불특정 다수의 피해자 사진을 합성하고 있었다. 이 방의 피해 여성만 60명 정도 됐다.

가해자들은 ‘합성 장인’에게 의뢰해 피해자 얼굴을 합성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합성 종류로는 나체, 기괴한 표정 등이 있다. 피해자 얼굴을 성관계 영상과 합성해 공유하기도 한다.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다. 가해자들은 합성해준 합성 장인을 칭찬하고, 그들과 친분을 쌓으려고 노력한다. 때로 미숙한 솜씨로 합성한 지인 능욕 사진을 올린 가해자에게는 핀잔을 주며 자신의 합성 노하우를 전수해주기도 한다.

“근친 합성 능욕해드립니다 관심 있으면 갠텔(개인 텔레그램)”

“지인 제보자 신원보호 철저”

“교사 능욕 원하는 사람 초대해준다. 개인 텔레 주세요”

“교사 지인 능욕방, 연예인 능욕방, 관심있으면 갠텔(개인 텔레그램)해”

텔레그램에서 성폭력적인 대화가 오가는 방은 수없이 많다. 그중 지인 능욕은 참가자들에게 가장 문턱이 낮은 성범죄다. 전에는 참여자가 수천 명 되는 지인능욕방이 많았지만 n번방 사건이 공론화한 뒤에는 수십에서 수백 명 수준으로 지인능욕방을 운영한다. 트위터 등에서 지인 능욕 대화방 링크를 공유하는 것으로 보아, 대화방 참여자가 언제 수천 명으로 불어날지 모른다. 지인 능욕이 벌어지는 플랫폼은 텔레그램뿐만이 아니다. 트위터, 텀블러, 인스타그램, 핀터레스트 등 가해자들은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지인 능욕을 자행한다. 텔레그램보다 접근성이 더 낮은 트위터 역시 지인 능욕 범죄가 심각하다.

불법촬영 원본 여러 방식으로 재가공

“나체 합성사진 전문 의뢰시 *******아이디로 문의 주세요.

양식: 대상자(피해자) 사진 2장

이름: ×××

나이: ××

추가 양식은 메시지로 말씀드립니다.”

이와 같은 지인 능욕 의뢰 글을 트위터 검색 몇 번 만에 10개가량 찾아볼 수 있었다. 인스타그램과 핀터레스트도 지인 능욕, 불법촬영 피해 규모가 심각했다. 피해자 사진이 모자이크 처리도 되지 않은 상태로 이름, 나이와 함께 올라와 있기도 했다.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자위한 분비물을 피해자 사진에 뿌리는 모습을 촬영하는 등 가해자들은 지인 능욕을 성범죄가 아닌 ‘성문화’로 인식하는 듯했다. 또한 가해자들은 피해자에게 지인 능욕 범죄 사실을 알려 피해자의 공포를 유발하는 ‘스릴’을 즐겼다.

8월 중순, 제보를 받아 핀터레스트에 올라온 ‘ㄱ중학교 3학년 한수연(가명)’의 불법촬영 사진과 지인 능욕 글을 추적단 불꽃이 경찰에 신고했다. 수사 결과, ㄱ중학교에 한수연은 존재하지 않았다. 불특정 여성을 불법촬영한 사진에 허위 정보를 기재해 유포한 것이었다. 우리가 신고했던 지인 능욕 사례는 보통 실제 피해자의 지인이 가해자였던지라 이런 경우는 예상 밖이었다. ‘지인 능욕’ 글에 쓰인 피해자의 개인정보가 맞지 않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사진 속 여성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누구에 의해 본인의 불법촬영물이 유포됐는지 모르지만, 피해자를 불법촬영한 사진은 온라인상에 만연해 있다. 여성의 신체를 찍은 불법촬영 원본만 있다면 가해자들은 그 원본을 어떤 방식으로든 재가공해 성희롱을 멈추지 않는다.

2020년 5월 개정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 처벌법) 제14조 2항에 따라 지인 능욕을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생겨났다. 그러나 이 법에 해당하는 지인 능욕 사례는 합성, 딥페이크 등뿐이다. 지인 능욕 사례에는 이미지를 조작하지 않은 피해자 사진과 함께 폭력적인 성희롱 발언이나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게시하는 유형도 있다. 하지만 이런 피해를 입더라도 성범죄 피해로 분류되지 않아, 가해자를 성범죄로 처벌하는 것이 어렵다.

이 때문에 프로필 사진과 성희롱 글이 텔레그램과 텀블러에 게시되는 피해를 입은 김아무개씨는, 가해자들을 성폭력 처벌법 위반이 아닌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신고해야 했다. 김씨는 “피해자가 성적으로 ‘음란’한 사람이라는 가해자들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증거자료를 피해자가 직접 제출해야 한다”며 “제출하지 못하면 모욕죄로 신고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는 처벌 수위가 명예훼손보다 훨씬 낮다”고 꼬집었다.

김씨와 유사한 피해를 입어 ‘텔레그램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무료 법률 지원’을 받으려던 박아무개씨는 ‘성범죄 피해자 무료 법률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변호사의 말을 들었다. 박씨를 상담한 변호사는 박씨에게 “성범죄로 보기 애매하다”며 “명예훼손으로 신고해야 하는데, (성범죄 지원이 아니기 때문에) 변호사 선임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추적단 불꽃이 9월에 모니터링한 텔레그램에서 지인 능욕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2차 가해를 우려해 이미지는 채증자료에서 피해자 사진을 제외해 다시 만들었다.

추적단 불꽃이 9월에 모니터링한 텔레그램에서 지인 능욕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2차 가해를 우려해 이미지는 채증자료에서 피해자 사진을 제외해 다시 만들었다.

국가가 없는 연쇄 ‘인권침해’ 현장

민간에서는 자칭 ‘디지털교도소’와 ‘자경단’이 등장했다. 국제적인 수준에서 봤을 때 우리나라는 성폭력 처벌 수위가 낮다보니 개인이 나서서 공익을 표방한 복수가 시작된 것이다.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이 명백한 디지털교도소는 이미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나, 국민 입장은 ‘불법이라도 필요하다’ 대 ‘똑같은 범죄자다’로 확연히 갈려 있다. 그러다 최근 디지털교도소 사이트에 개인정보가 노출된 20대 대학생이 숨진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이트 존폐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국가도 가만히 있는데, 왜 무고한 사람을 죽여?’라는 식의 분노 어린 반응이 대다수다. 동시에 지인 능욕이 어떤 범죄인지 주목하는 눈길이 뜨겁다. 지인 능욕 피해자 목소리가 거셌던 몇 개월 전 반응과 사뭇 온도차가 있다. 어떤 이는 지인 능욕이 뭐가 그리 심각한 성범죄길래 사람을 죽이느냐는 어이없는 인식을 내뱉는다. 지금은 국가가 부재한 상황에서 발생한 연쇄 ‘인권침해’ 현장을 보는 듯하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향은 한 가지뿐이다.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디지털교도소의 등장과 활동을 국민 다수가 왜 지지하는지 헤아리는 것이 절실하다.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의 억울함이 없게끔 가해자를 수사하고 판결해 엄벌해야 한다. 지인 능욕 범죄를 성범죄로 바라보고 가해자를 민간이 아닌, 국가가 적극적으로 추적해야 한다.

여성의 일상을 위협하는 성범죄 유형인 지인 능욕 가해자가 우리 주위에 살고 있다. 여성들의 공포와 무력함을 국가가 파악하려 나서지 않는 한 제2, 제3의 디지털교도소 등장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추적단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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