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전교조 대법 판결, 법치주의 원리 재확인한 것”

등록 2020-09-12 07:33 수정 2020-09-14 07:41
전교조 법률대리인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 류우종 기자

전교조 법률대리인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 류우종 기자

“원고(전국교직원노동조합)는 이 사건에서 파업권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단 단결만 하게 해달라는 겁니다. 단결만, 단결만.”

5월2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전교조 노조 아님 통보 취소 소송’ 공개변론에서 전교조를 대리한 신인수(사진) 민주노총 법률원장(변호사)은 이렇게 호소했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원고의 조합원은 현직 교사들이다. 이들이 교실에서 가르치는 건 어려운 사람을 돕고 힘든 일을 겪은 동료를 외면하지 말라는 것이다. (6만 명 조합원 가운데 해직 교원 조합원이 9명 있으므로 규약을 고치라는) 정부의 시정 요구가 왔을 때 조합원들은 총투표를 통해 해직자 9명과 함께한다고 결정했다. 이 사건은 가장 교육적인 사건이다.” 한 대법관이 “준법정신을 가르쳐야 할 현직 교사들이 법률 규정에 위반된 규약을 만들고 시정을 거부하는 것이 교육적이지 않다”는 취지로 말한 데 대한 대답이었다.

이러한 호소가 통했던 것일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9월3일 전교조의 손을 최종적으로 들어줬다. 6년11개월 동안 박근혜 정부의 전교조에 대한 ‘노조 아님 통보’ 처분 관련 1~3심의 본안소송, 가처분 소송, 헌법재판까지 울고 웃었던 신 변호사를 9월9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만났다.

공개변론을 무사히 마무리했음에도 신 변호사는 선고 전날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노조 아님 통보를 정부가 직권 취소하는 것이 적폐 청산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조처는 이뤄지지 않았고 남은 것은 대법원 판결뿐이라 패소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많이 됐다. 노조 아님 통보 이후 해직된 분들이 34명이고, 일부는 정년을 넘겼고 정년을 코앞에 둔 분도 있다. 이분들에게는 금전으로도 보상하기 어려운 피해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회적 교훈을 얻었으면 한다.”

그는 전교조가 해직 교원의 가입을 허용해 위법한 상황을 유지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법치주의는 법률이 없으면 범죄가 없고, 법률이 없으면 행정처분이나 국가의 활동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려면 법률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시행령에서 노조 아님 통보를 허용하면서) 확장해석하면 안 된다. 이번 판결은 법치주의 원리를 재확인한 것”이라고 했다.

사법연수원 29기로 판사로 4년, 일반 로펌에서 3년을 일한 신 변호사는 2010년 민주노총 법률원으로 옮겨 노동자들과 함께 법정에 서고 있다. 그는 전교조 사건 말고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판결을 여럿 맡았다. 공정방송을 요구하며 파업한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사건에서 공영방송 노동자들의 ‘공정방송’ 요구도 노동조건이라는 판례나, 무기계약직에 대한 노동조건 차별이 근로기준법이 금지하는 ‘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에 해당한다는 판례가 대표적이다. 최근엔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수납원들이 도로공사 직원이라는 대법원 판결과, 플랫폼노동자라 불리는 ‘타다 드라이버’가 근로기준법의 노동자에 해당한다는 중앙노동위원회 판정도 그가 맡았다.

그는 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형사법정에 서야 했던 노동자들을 변호할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고 이용마 기자를 비롯한 언론노조 MBC본부 집행부가 이명박 정권 때 공정방송을 요구하는 파업을 했다가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을 국민참여재판으로 새벽 4시30분까지 했는데, 그때 배심원들이 7:1로 무죄라고 선고했다. 엄혹한 시절이었지만 공정방송을 위한 시민의 지지가 법원 판결에 반영될 수 있다는 생각에 감정이 복받쳤다.”

민주노총 상임집행위원이기도 하기에 코로나19 이후 민주노총의 역할에 대해 물었다. 그는 “연대와 책임”을 말했다. “민주노총 내부는 물론이고 노조를 만들 수 없는 미조직 노동자들을 위해 민주노총이 무엇을 할 수 있고, 정부에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 고민과 성찰이 필요하다. 코로나19로 고통받는 비정규직·미조직 노동자와 연대해야 한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