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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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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학습격차, 중위권이 없다

53.1% 공부 시간 늘었지만 성적은 떨어져, 상위권은 그대로지만 “한 반 절반이 50점 밑”
등록 2020-09-12 07:37 수정 2020-09-19 01:28
8월28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를 학생들이 걷고 있다. 8월31일부터 모든 학원에선 원격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8월28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를 학생들이 걷고 있다. 8월31일부터 모든 학원에선 원격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대치동에선 아예 (같은 학교) 학생들이 학원에 모여 강사와 함께 학교의 ‘실시간 수업’을 듣는대요. (대입 수시 전형에) 내신이 중요하니까요. 강사가 학교 국어 수업을 들으면서 ‘이번 시험에 이 문제가 나올 것 같다’고 빠르게 학생들에게 콕콕 찍어주면 얼마나 좋겠어요.”

대한민국 최고 학군인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학원가에만 있다는 ‘특별한 수업’을 설명하는 학부모 신준(가명)씨의 목소리에 불안이 묻어났다. 대치동과 함께 최고 학군으로 꼽히는 목동에서 공부해 특수목적고등학교(특목고)에 입학한 아들이 대치동 출신들과의 대입 경쟁에서 뒤처지지는 않을까 하는 초조함인지도 모른다. 코로나19로 공교육이 비상체제로 운영되면서 사교육을 많이 시키는 학부모조차 앞으로 사교육을 고리로 한 ‘학습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고 걱정한다.

대치동은 학원에서 ‘실시간 수업’

불안은 삽시간에 퍼진다. 서울 강북에서 초1, 초5, 초6 아이들을 키우는 고수진(가명)씨는 2020년 2학기 들어 영어와 수학 과외를 알아보고 있다. 예전에 수학·태권도 학원을 보낸 적은 있지만 일대일 과외는 처음이다. “아이들이 하루에 원격수업으로 공부하는 시간은 짧아지고 노는 시간은 길어지다보니” 특단의 조처가 필요했다.

불안을 느낀 학부모들이 직접 혹은 사교육의 힘을 빌려 자녀의 학습 관리에 더 열정을 쏟으면서 학생들의 학업 부담은 더 늘었다. 경기도교육연구원이 7월15~27일 경기도 내 초·중·고교 800곳의 학생·학부모·교사 총 5만5966명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학원·과외 수강 시간이 늘었다’고 한 응답자는 전체의 29.6%였다. 집에서 숙제, 수행평가, 지필평가 준비 등을 하는 공부 시간이 늘었다는 응답도 53.1%나 됐다.(‘코로나19와 교육: 학교 구성원의 생활과 인식을 중심으로’ 보고서)

1학기에 전반적으로 학생들은 공부량을 늘렸는데 성적은 더 떨어졌다. 학생 스스로도 위기의식을 느낄 정도다. 중2 박노아(가명)는 1학기 기말고사에 “완전히 망했”지만 특히 수학이 폭삭 주저앉았다고 했다. 점수는 25점. 중1 때는 자유학기제라 중간·기말고사가 없긴 했지만 ‘연습’ 시험에선 80점 이상을 받았다. 같은 반 김하영(가명)은 과학 점수가 59점으로, 1학년 연습 시험 때보다 30점 정도 떨어졌다.

특히 노아, 하영 같은 중위권 학생들이 1학기 시험에서 거의 ‘소멸’했다고 교사들은 입을 모은다. “한 반의 절반에 가까운 아이들이 50점 밑이다.”(경기도 중학교 사회 교사) “70~80점대가 없다. 중위권이 무너졌다.”(제주 중학교 수학 교사) “상·중·하 학생 비율이 1:5:4에서 1:3:6이 됐다. 하향 평준화다.”(제주 중학교 사회 교사) “낱말을 쓰고 읽는 과정에서 원래도 학습 격차는 있었지만 올해는 더 심각해졌다.”(서울 초1 담임교사)

실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8월5~14일 교사 4010명에게 원격수업의 어려움을 물었더니, 가장 많은 답변이 “학습 격차 심화”(61.8%, 중복 응답)였다. 교사들은 학습 격차가 더 벌어진 이유로 ‘가정환경 차이’(72.3%)를 가장 많이 꼽았다.

학부모들이 자녀를 관리하는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강해졌다 해도, 소득수준이 높은 학부모가 더 많은 사교육을 시킬 수 있다. 목동에서 고3 자녀를 키우는 전수혜(가명)씨는 학교에 가지 않는 원격수업 기간을 또 다른 기회로 활용하는 목동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한다. “(1학기부터) 학교에 안 가는 동안 과외나 팀수업을 많이 했어요. 여력 있는 사람들은 ‘일타’(1등 스타) 강사들에게 과목당 200만원씩 주고 다 (과외) 해요. 600만원만 쓰면 국·영·수는 일타 붙일 수 있죠. 부모 경제력 격차가 아이 학업 역량의 차이를 만드는 거죠.”

상층 가정 학생의 52%는 ‘부모님과 함께’

반면 목동 인근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세 자녀를 키우는 이영현(가명)씨는 7월부터 중1 딸을 영어학원에 보내고 있다. “있는 집 자식과 격차가 더 벌어지지 않도록 세 자식 모두 보내고 싶은 마음”이지만 한 달 학원비 32만5천원(주 2회)을 마련하는 데도 생활비에 지역아동센터 후원금까지 보태야 했다.

게다가 교육열이 높은 학부모들은 일을 안 하거나 덜 하는 방식으로 자녀의 학습을 직접 관리하기도 한다. 등교수업이 없는 평일에 가정형편 기준 상층 가정 학생의 52%는 ‘부모님과 함께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하층 가정에선 부모와 함께 있는 학생이 35%로 더 적었다.

물론 원격수업에선 학생이 스스로 공부할 의지와 방법이 있는지가 대면수업 때보다 더 중요하다. 교사의 관리, 친구에게서 얻는 자극이 덜한 원격수업에선 중·하위권이 쉽게 흔들리지만, 상위권은 변함없이 자기주도로 공부를 이어간다. 특목고에 다니는 고1 강유현(가명)은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할 때처럼 집에서도 ‘아침 8시 조회-오후 4시40분까지 학교 수업-새벽 1~2시까지 과제·공부’를 하려 노력한다.

집에서 학습이 느슨해질 때면 선생님이 다시 긴장감을 불어넣어준다. 선생님이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을 활용한 ‘실시간 쌍방향 수업’ 직후 각종 자료를 바로 삭제해버리니, 유현이는 수업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또 선생님은 시험 결과를 보고 부족한 과목이 있으면 학생들끼리 온라인 스터디그룹을 만들도록 하고 관리도 해준다. “수업과 과제가 (예상보다) 덜 타이트해서 불안해요. 그래도 선생님이 많이 노력해줘서 도움이 돼요.”

그러나 모든 교사가 학생들의 학습 의지를 북돋워주고 공부를 뒷받침해주지는 않는다. 고1 안주선(가명)은 수업이 재미가 없다. 실시간 수업이 아니라 ‘콘텐츠 활용 중심 수업’(학생들이 동영상을 시청하고 교사와 피드백을 주고받는 방식)을 받고 있는데, 교사들이 활용하는 콘텐츠는 EBS 동영상이다. 교사가 직접 만든 동영상은 거의 없다.

물론 실시간 수업이 동영상 수업보다 학생들의 학업 성취에 무조건 효과가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초등학교 발달 단계에 맞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다. 교사의 수업 준비 부담을 높이기도 한다. 그러나 화면 너머라도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바로바로 대화할 수 있다”(중학교 국어 교사)는 장점을 생각해 2학기 들어 실시간 수업을 시작한 교사가 부쩍 늘었다.

원격교육은 죄가 없다?

신나민 동국대 교수(교육학)는 “학습 격차는 ‘학습 성취 격차’가 아니라 ‘학습 동기’의 격차”라고 정의한다. “아이들의 학습 동기가 비슷할 때 부모나 교사가 끌어주면 잘 따라가요. 그런데 지금은 (부모나 사교육 없이) 오로지 교사한테만 의지했던 아이들의 힘이 떨어졌어요. 이럴 땐 부모나 교사가 아이들에게 뭘 가르치려 하지 말고 계속 (공부)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줘야 해요. ‘왜 공부해야 하는가’ ‘왜 일정 시간에 공부해야 하는가’에 대해서요. 어찌 보면 원격교육은 학습 격차 문제에 죄가 없어요”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표지이야기-코로나 시대의 학교
http://h21.hani.co.kr/arti/SERIES/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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