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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큐레이터] 제2의 손정우는 징역 29년3개월

등록 2020-09-19 03:58 수정 2020-09-21 01:28
사진공동취재단

사진공동취재단

손정우는 너무나 간단히 풀려났지만, 제2의 손정우는 한동안 감옥에서 풀려나기 어렵게 됐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위원장 김영란)는 전체회의를 열어 이른바 ‘디지털성범죄’군의 양형 기준안을 결정해 9월15일 공개했다. 어떤 범죄를 저질렀을 때 어느 정도 판결을 내려야 하는지에 대한 대법원의 가이드라인이 양형기준이다. 꼭 지켜야 하는 건 아니지만 양형기준을 지키지 않을 때는 왜 그렇게 판결했는지 따로 명시해야 한다. 웬만한 경우 판사들이 양형기준에 따라 형을 정하는 이유다.

양형위원회는 아동·청소년을 이용해 성착취물을 제작하다 적발되면 기본적으로 징역 5년에서 9년을 선고하도록 양형기준을 정했다. 여러 이유로 형을 깎아줄 때도 최저 2년6개월에서 6년을, 가중할 때는 징역 7년에서 13년이 선고되도록 했다. 특히 범행 수법이 불량해 특별히 가중 처벌해야 할 이유가 2개 이상 있을 때는 징역 19년6개월을, 2개 이상 같은 범죄를 저지른 다수범일 때는 최대 징역 29년3개월까지 선고할 수 있게 기준을 만들었다. 그동안 무기 또는 징역 5년 이상 법정형만 정해두었던 것과 비교하면 처벌이 강화된 셈이다.

우리나라의 성범죄 처벌이 약하다는 목소리는 끊임없이 있었다. 불과 30년 전인 1990년대만 해도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가 버젓이 있는 사건에서도, 판사가 피해자 부모에게 ‘이미 버린 몸’을 운운하며 가해자와 피해자를 맺어주라는 발언을 해 공식 기록에 남기도 했다. 변화는 느리게 왔다. 친족 간 성범죄 처벌과 피해자 보호에 대한 내용이 담긴 성폭력특별법은 1994년에야 만들어졌다. 이때만 해도 ‘성희롱’이란 단어 자체가 없었다. 1993년 서울대 신아무개 교수의 조교가 ‘성희롱 피해’를 당했다며 폭로했지만, 그로부터 6년이 지나 1999년에야 법원은 가해자의 ‘성희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은 촘촘히, 그리고 꾸준히 변해왔다. 가해자를 가리키는 손, 피해자의 목소리가 세상에 쩌렁쩌렁 울려왔기 때문이다. 또렷이 던져지는 목소리들이 있는 한, 한국 사회의 성인지 감수성은 더 나은 방향으로 가다듬어질 것이다.

천다민 유튜브 <채널수북> 운영자

관심분야 - 문화, 영화, 부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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