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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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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가 배달료 더 내도 ‘착한 배달’을 쓴다면

[위험한 배달] 배달료 조금 비싸도 라이더 안전, 환경 우선하는 ‘착한 배달’ 제도는
등록 2020-12-25 10:14 수정 2020-12-26 02:04
일러스트레이션 김하영

일러스트레이션 김하영

새해가 와버렸다. 더 강해진 코로나19와 함께. 2021년, 어떻게 살아야 하나. 다짐하자니 막막하고 다짐을 안 하자니 불안하다. 2021년에 크게 기대하는 건 없지만 2020년처럼 살고 싶진 않다.
새해맞이가 부담스러운 이들에게 최소로 행동하고 최대 효과를 볼 수 있는 ‘2021년 가성비 실천’을 제안한다. 2021년에 같이 갈 것은 무엇인가. 컵과 그릇 재사용, 전자제품 사후관리(AS)는 기본이다. 무기력한 자아와 몸도 조금만 고치면 꽤 쓸 만하다. 노력만으로 될 수 없는 실천은 제도로 뒷받침해야 한다. 아픈 가족과 아픈 몸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2021년 ‘뉴트로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기)’는 시시해 보여도 만만하진 않다. 나와 가족, 일상과 미래, 공간과 환경을 바꾸는 첫 단추다. 일단 사흘만 넘겨보자. _편집자주

2020년 2월부터 열 달 넘게 이른바 ‘플랫폼노동자’로 살아오고 있다. 쿠팡에서는 물류센터로 출근해 주문이 들어온 상품을 카트에 골라 담아 포장대에 가져다줬고, 배달의민족(배민)에서는 ‘배민라이더스 맛집’의 음식을 배달하는 ‘커넥터’ 일을 했다. 카카오에서는 대리운전을 했다. 그리고 그 경험을 모아 <뭐든 다 배달합니다>(메디치미디어 펴냄)라는 책을 냈다. 원고 초고를 출판사에 넘길 때까지만 해도 200일 남짓 일했던 터라 ‘쿠팡, 배민, 카카오 200일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붙었는데, 지금은 어느덧 300일을 넘기고 있다.

음식 배달을 오래 하게 한 건 사람

책이 나온 뒤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는 “세 가지 일 중 어떤 일이 가장 낫냐”는 것이다. 글쎄, 이건 아빠가 더 좋냐 엄마가 더 좋냐,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같은 질문에 가깝다. 일하려는 목적, 성향, 환경 등에 따라 장단점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쿠팡 물류센터는 일정한 출퇴근 시간을 지킬 수 있다. 근력이 뒷받침되며 최저임금 수준이지만 안정적 수입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나쁘지 않은 일이다. 물론 온종일 물건으로 가득 찬 숲에서 물건들과 대화할 자신이 있다면 말이다.

대리운전은 한 번 운행할 때 받는 단가가 높은 편이기 때문에 ‘좋은 콜’을 걸러 탈 정도로 숙련도가 쌓이면 제법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항상 밤에 해야 하는 일이고, 낯선 사람을 만나 낯선 차를 운전해 낯선 곳으로 가야 하는 탓에 늘 긴장 속에 일해야 한다. 고된 일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음식 배달은 좀 낫다. 주로 특정한 지역에서 일하기에 노동환경 자체가 익숙하다. 반면 고수익을 기대하기 어렵고 끊임없이 이동하며 일하기 때문에 항상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점을 감수해야 한다. (이 글을 쓰기 며칠 전 김하영 작가는 배달 중에 다쳐서 오른팔이 부러졌다. 왼손으로 힘겹게 자판을 눌러쓴 원고를 넘기자마자 그는 수술실에 들어갔다. _편집자)

자,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어떤 일이 제일 낫냐고? 내 답은 이렇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할 때는 온통 ‘물건’과의 사투였다. 하루에 1천 개 넘게 물건을 날라야 하고 그 물건을 카트에 테트리스 게임 하듯이 쌓아야 하며 카트에 무리가 가지 않게 끌어야 한다. 작업 지시는 사람이 아니라 휴대단말기(PDA)가 하고, 성과 측정도 PDA가 한다. 종일 일하면서 사람과의 대화는 세 마디 넘어가지 않을 때가 많았다. 사람과 대화한다는 것은 무언가 내가 모르는 게 있거나, 다른 작업장에 투입돼야 하거나, 내가 실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음식 배달은 그렇지 않았다. 항상 음식점 사장님이나 직원들이 따뜻하게 맞이해줬고, 음식을 받아서 나올 때마다 “수고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안전하게 운전하세요” 같은 따뜻한 인사말이 붙어다녔다. 음식을 주문한 고객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배달 문화가 많이 바뀌어 ‘음식을 빨리 갖다달라’고 재촉하는 것은 교양 없는 일이 돼버렸다. 대신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같은 인사가 빠지지 않는다.

여기가 서울인가 하노이인가

배달할 때마다 힘들게 일하는 자영업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뿌듯하고, 배고픈 사람에게 따뜻한 음식의 기쁨을 전하는 일이 보람 있게 느껴졌다. 비 오는 날 배달시켜 죄송하다며 비타민 음료를 쥐여주는 분, 아이 재우느라 밤늦게 배달시켜 미안하다는 포스트잇 메모와 함께 작은 젤리 한 봉지를 놔두는 분도 있다. 사람들이 참 착하다. 플랫폼노동자를 하기 전에 기자 일을 하면서 못된 사람을 많이 봐서 그런지, 내겐 모두 새롭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사실 음식 배달은 수익이 많지 않다. 한 건 배달해야 배달수수료가 3천~4천원인데, 매뉴얼 지켜가며 ‘한 집 배달’만 하면 1시간에 최대한 할 수 있는 양은 3~4건이 전부다. 그것도 서울 강남과 같은 직장·주거 동시 밀집 지역이나 그렇다. 배달 나갔다가 콜 하나도 잡지 못한 채 배회하다 들어온 날도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음식 배달 일을 가장 오랫동안 한 건 ‘사람 냄새’가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19로 거의 모든 것이 바뀌고 있다. 처음 배달 일을 시작한 2020년 4월 초에도 코로나19 여파가 있어 문 앞에 음식을 두고 오는 ‘비대면’ 배달 요청이 40%가량 됐는데, 올겨울에는 그 비율이 99%다. 여전히 음식점 사장님들과 인사와 안부를 나누지만, 음식 봉투를 받아들고 환하게 웃는 고객 얼굴은 더 이상 볼 수 없다.

음식점 사장님들 얼굴도 점점 어두워졌다. 장사가 그렇다. 손님이 많고 주문이 밀리면 몸이 고생하지만, 손님도 주문도 없으면 몸은 편해도 마음이 고생한다. 안 그래도 찬 바람이 불면 손님이 줄어드는데, 코로나19로 거리두기 단계가 강화되면서 유동인구가 뚝 떨어졌다.

그냥 손 놓고 있을 수 없으니 포장기계를 들여놓고 안 하던 배달도 하고 배민, 요기요, 쿠팡이츠 다 가입해 주문받는다. 요즘은 음식을 가지러 음식점에 가면 사장님들이 먼저 묻는 게 “배민이요, 쿠팡이츠요?”다. 배달 특수가 벌어지자 아예 테이블 없이 배달만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도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거리에 배달 오토바이가 점점 늘고 있다. 큰길 네거리 정지선 앞에 신호 대기하며 우르르 모여 있는 오토바이들을 두고 “여기가 서울인지 (오토바이 천국인 베트남) 하노이인지 모르겠다”는 사진이 소셜미디어에 돌기도 한다.

코로나19가 확산하고 밤 9시 이후로 식당 영업이 금지되면서 배달음식 수요도 늘었다. 음식 등을 배달하는 플랫폼 서비스와 관련 업계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가 확산하고 밤 9시 이후로 식당 영업이 금지되면서 배달음식 수요도 늘었다. 음식 등을 배달하는 플랫폼 서비스와 관련 업계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배달노동자 억장 무너지게 하는 말 대신

그리고 사람들이 묻기 시작했다. 이대로 괜찮은 건가. 종종 배달 가는 아파트 단지는 택배기사의 엘리베이터 이용이 금지돼 있다. 그래서 택배기사들이 1층 현관에 택배를 쌓아놓고 가는데, 어떤 날은 사람 다니는 통로가 없을 정도로 택배가 가득 쌓여 있어 헤집고 다녀야 한다. 배달음식의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가 지나친 낭비 아니냐는 자성론도 나온다. 그러나 지금 같은 배달대행 구조에서는 예전 중국음식점 방식의 배달음식 용기 수거는 불가능하다. 배달비가 2배가 될 뿐만 아니라, 설거지 인건비가 플라스틱 용기 값보다 비싸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 몇몇 착한 사람은 “위험하게 일하신다니, 앞으로 배달을 줄이고 직접 포장해 먹어야겠어요” “온라인쇼핑을 줄이고 가급적이면 마트를 이용해야겠어요”라고 한다. 그런데 배달하는 입장에서는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다. 거의 프리랜서 신분인 배달노동자들은 일감이 줄면 바로 수입이 줄어든다. 몸고생보다 힘든 게 마음고생이지 않나.

‘뭐든 다 배달되는’ 시대에 택배든 음식 배달이든 배달업은 계속 커진다. 골목마다 촘촘히 박힌 편의점들이 배달을 시작했고, 카카오와 ‘타다’에 이어 SKT도 대리운전업에 뛰어든다고 한다. 신한은행이 배민처럼 음식 주문 서비스를 한다는 뉴스도 나왔다. 한때 젊은 시절 용돈이나 학비 벌이용 ‘알바’로 취급받던 ‘배달’이 플랫폼 경제의 첨병이 됐고 수십만 명의 생계가 걸린 산업이 됐다. 코로나19가 이런 흐름을 가속했을 뿐 배달산업은 계속 커질 것이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배달 안 시키기’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배달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배달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적 연대와 협력, 또는 압력이 필요하다. 플랫폼노동 자체가 플랫폼산업의 기술 발전으로 탄생했다. 그런데 제도의 발전은 언제나 기술에 뒤처진다. 그러다보니 기술이 발전할수록 제도가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만 넓어진다. 기업이 돈을 벌기 위해 기술을 개발하듯이, 정치인은 ‘표’를 얻기 위해 제도를 개발한다. 그러면 플랫폼노동자가 뭉쳐 정치인에게 압력을 행사해야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플랫폼노동의 가장 큰 특징은 ‘외롭다’는 점이다. 음식 배달이든 대리운전이든 택배든 스마트폰 하나 손에 쥐고 거리로 나서서 홀로 일한다. 결국 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플랫폼 이용자의 사회적 연대가 필수적이다.

묶음배달만 안 해도

가장 중요한 건 안전이다. 한 해에 400명 넘는 사람이 오토바이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라이더가 교통법규를 위반하며 위험한 질주를 하는 것은 그들이 스릴을 즐겨서도 고객이 재촉해서도 아니다. 현재 배달산업 구조에서는 그렇게 달려야 돈을 벌기 때문이다. 이제 소비자가 압력을 넣어야 한다. 라이더를 직접 고용해 교통법규를 준수하는 배달대행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배달료가 조금 더 비싸더라도 묶음배달을 하지 않아 라이더의 안전과 배달 품질을 우선으로 하는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는 등 ‘착한 배달’ 아이디어를 짜낼 때다.

우리는 이미 사회적 연대의 성과를 얻은 적이 있다. 한 피자 회사에서 ‘30분 배달 보증제’를 하는 바람에 배달원의 무리한 주행과 사고를 부른다는 사회적 비난이 일었다. 피자 회사는 결국 2011년 ‘30분 보증제’를 폐지했다. 소비자는 30분 넘어 배달된 공짜 피자보다 배달원의 목숨을 구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다시 한번 사회적 연대를 기대해본다. 어차피 모두 사람이 사람을 위해 하는 일 아닌가.

김하영 <뭐든 다 배달합니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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