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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가 마약을? “마약은 하루에 28방 맞지 않아요”

국과수 부검에서 거의 같은 시간대, 같은 굵기로, 정맥을 따라 놓인 여러 개의 주사 자국 확인
김성재 어머니와 여자친구가 서로 부검에 반대했다며 훗날 법정 공방
등록 2021-01-23 10:44 수정 2021-03-03 07:47
사망 직전 솔로 데뷔를 앞두고 활발한 언론 인터뷰를 벌이던 1995년 11월 중순의 김성재. 당시 그는 연예인들의 연예인이었고 패피들의 패피였다. 한겨레 자료

사망 직전 솔로 데뷔를 앞두고 활발한 언론 인터뷰를 벌이던 1995년 11월 중순의 김성재. 당시 그는 연예인들의 연예인이었고 패피들의 패피였다. 한겨레 자료

1995년 11월20일 새벽,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인기 댄스그룹 ‘듀스’의 전 멤버 김성재(23)가 숨진 채 발견됐다. 듀스 해체 이후 성공적인 솔로 데뷔 무대를 마친 다음날이었다.
1993년 4월 노래 <나를 돌아봐>로 데뷔한 듀스는 ‘서태지와 아이들’과 함께 1990년대 가요계의 아이콘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적 바탕이 록이었다면, 김성재와 이현도로 이뤄진 듀스는 뉴잭스윙과 솔 등을 기반으로 흑인음악을 일관되게 추구한 뮤지션이었다. 듀스를 한국 힙합의 원조라고 하는 이유다.
그가 떠난 지 올해로 26년이 됐다. 그 무심한 세월 동안, 김성재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은 여전히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김성재 변사 사건이 대한민국 연예계 최대 미제사건으로 불리는 이유다.
경찰은 사회적 이목을 집중시킨 살인, 강도 등 강력사건 가운데 6개월 이상 지났는데도 피의자를 검거하지 못한 사건을 실무상 미제사건으로 본다. 대검찰청의 2019년 범죄통계를 보면, 살인 총 발생 건수 849건(기수·미수 모두 포함) 가운데 808건에서 피의자를 검거했고, 41건은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김성재의 유족은 오늘도 고통 속에 살고 있다. 가장 격이던 큰아들의 느닷없는 죽음으로 가족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범인이 누구인지, 죽음의 이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탓에 온전히 망자를 떠나보낼 수조차 없었다. 한국 사회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당시 수사에 문제점은 없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특히 김성재 변사 사건은 경찰 초동수사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대표적 사례다. 사건을 미궁 속으로 빠뜨린 당시 검시제도의 문제점은 오늘날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전문가 증언을 배척하거나 채택하는 등의 문제 또한 유효하다. 모두 김성재 변사 사건으로 짚어봐야 할 공익적 가치다.
지난 1년6개월여 동안, 그날의 진실을 알기 위해 수사·공판 기록과 당시 신문·잡지 기사 등 3천 쪽 넘는 관련 문서를 검토하고 당시 수사기관·법원 관계자들을 수소문해 인터뷰했다. 유족과 지인들을 만났고 법의학자와 의사들의 조언도 구했다. 살인 용의자로 지목돼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가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가 확정된 김성재 전 여자친구 쪽 변호인들도 수차례 접촉했다. 이제 26년 전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죽음의 진상을 들여다본다. _편집자주
연재 순서

운명의 밤
오른팔의 주사 자국
③ 누가 부검을 반대했나

주요 등장인물
K 김성재 여자친구
육미승 김성재 어머니
오○○ 서울서부경찰서 형사
김광훈 국과수 부검 집도의
정희선 국과수 약독물과장
1995년 11월21일 저녁, 김성재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여의도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무릎을 꿇은 채 오열하는 이현도(사진 왼쪽). 유튜브 화면 갈무리

1995년 11월21일 저녁, 김성재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여의도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무릎을 꿇은 채 오열하는 이현도(사진 왼쪽). 유튜브 화면 갈무리

시간은 11월21일 화요일 새벽을 향해 가고 있었다. 육미승은 황망했다. 친구 진희가 ‘빈소에 계속 있다가 탈 난다’며 ‘집에 가서 눈 좀 붙이라’고 권했다. 옆에 있던 K가 여기서 자기 집이 가깝다며 가자고 거듭 권했다. 육미승은 한번 K 집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에 따라나섰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K의 아파트 문이 열리자마자 누군가 굵은 소금을 확 뿌렸다. 육미승은 너무 놀랐다. 느닷없는 봉변이었다. ‘세상에 사람에게 예의도 없이.’ 부정 탄다고 K의 유모 할머니가 소금을 뿌린 것이다. “기분 나빠하지 마세요.” K와 유모 할머니가 말했지만 그런 일을 당하고 기분 좋을 리 없었다. ‘아까 전화하더니, 내가 간다고 알린 것이었구나.’ 화가 난 육미승은 ‘참 기분 나쁜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1

K의 방엔 옷과 화장품이 가득했다. 작은방에 잠시 있던 육미승은 상한 기분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새벽 5시쯤 집을 나서면서 K에게 쇼핑백을 하나 달라고 했다. 빈소에는 팬들이 성재에게 주는 편지와 사진 같은 것이 꽤 있었는데 집에서 나올 때 지갑만 달랑 들고나온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훗날 1심 공판에서 K는 이날 육미승이 부조금 챙길 가방을 달라고 해 검은 가방을 줬다고 진술했다.2

K가 양손잡이라고 한 이유

아침 8시쯤 부검 영장이 떨어져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에서 부검해야 한다는 소식이 빈소에 전해졌다. 부검을 둘러싸고 여자친구 K와 육미승의 진술이 엇갈리는 첫 계기였다. 누가 왜 부검에 반대했느냐를 두고 훗날 공판에서 공방이 벌어졌다.

먼저 육미승은 검찰 조사에서 자신이 부검을 받아들인 뒤에도 K가 사람을 두 번 죽일 수 없다며 부검 못하게 하라고 거듭 요구하거나 오른팔의 주사 자국을 두고 성재는 양손잡이라며 거짓말했다고 진술했다.3 그러나 K는 경찰 조사에서 부검을 먼저 반대한 것은 육미승이었고 자신은 애인 된 입장에서 이에 동조했을 뿐이라며 양손잡이라고 한 것은 성재가 오락할 때 모습이 떠올라 그렇게 말했다고 진술했다.4

결국 국과수엔 유족 대표로 육미승과 그의 후배인 신문호가 가기로 했다. K도 따라가겠다고 나서면서 운전자를 포함해 구급차 앞자리에 4명이 앉았다. 여의도성모병원을 출발한 구급차가 서울 양천구 신월동 국과수 법의학과동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0시가 안 됐을 무렵이었다. 법의학과동 부검실은 법의학자가 죽은 자와 만나는 공간이다. 망자가 보내는 억울한 죽음의 신호를 해석하는 이가 법의학자였다. 미세한 증거도 놓치지 않기 위해 부검은 반드시 자연광이 비치는 오전에 한다.

오전 10시20분, 국과수 법의학과 김광훈 의사의 집도로 부검이 시작됐다. 부검을 지시한 서울지검 서부지청 안원식 검사와 서울서부경찰서(서부서) 형사과의 오○○ 경장 등이 입회했고, 유족 대표로는 육미승 대신 신문호가 참관했다. 참관실과 부검실 사이에 투명한 유리창이 있었다. 부검대 위에 변사자가 작은 베개를 베고 누워 있었다.

먼저 외표(외부)검사가 이뤄졌다. 신장 180.0㎝, 체격과 영양 상태는 양호했다. 안검 결막에서 울혈(몸속 장기나 조직에 정맥피가 몰려 있는 증상)이 발견됐다. 김광훈은 흉복부 외표검사상 특기할 손상을 보지 못했다.

이때 오른팔에서 주사 자국 28개(위팔 앞부위 3곳, 팔오금 부위 5곳과 아래팔 전면 부위 20곳)가 발견됐다. 검안 때 발견한 15개보다 13개 늘었다. 주사 자국 분포는 불규칙적이었지만 대체로 정맥을 따라 주사한 흔적처럼 보였다. 피부를 절개해보니 주사 자국 아래 피하조직에서 광범위한 출혈이 발견됐다. 사망 전에 주사된 것을 방증했다. 근육주사 흔적으로 보이는 것은 출혈이 많지 않았고 정맥을 따라 놓으려고 한 주사 부위에 출혈이 많았는데, 정맥을 제대로 찌르지 못하는 과정에서 혈관이 손상돼 출혈이 많았던 것으로 보였다. 주사 부위 출혈 상태를 보면 거의 같은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주사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주사 자국을 봤을 때 같은 굵기의 주삿바늘에 의한 상처로 보였다.5 다리에서 외표검사상 특기할 손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음은 내경(내부)검사였다. 한쪽에 전동톱, 칼, 국자, 가위, 핀셋 등 부검 도구가 놓여 있었다. 먼저 전동톱으로 두개골을 절개해 뇌를 꺼냈다. 뇌에서는 특이사항을 발견할 수 없었다.

위점막 출혈, 액상 내용물 20cc

오장육부 속에 죽음의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칼은 그 길을 가리키고 있었다. 김광훈은 가슴을 열어 심장을 꺼냈다. 심장에서 특기할 만한 소견은 나오지 않았다. 복부를 개복해 장기를 하나씩 꺼냈다. 간·폐·비장·신장에서 고도의 울혈이 발견됐고 장간막 림프샘(포유류가 가진 면역 기관 중 하나로, 림프계를 구성하는 기관. 림프관 중간중간에 있어 생체 내 여러 이물질을 처리함)의 종대(비대) 소견을 보였다. 위점막에 출혈이 보였고 위장에 액상 내용물 20㏄가 들어 있었다. 28개 주사 자국과 함께 눈꺼풀, 간, 폐, 비장, 신장 등에서 나타난 고도의 울혈이 특기할 만한 소견이었다.6

부검은 10시50분에 끝났다. 정확한 사인 규명에 일주일 이상 소요될 것이다. 부검이 끝나자 신문호는 구역질하면서 밖으로 나왔다. 육미승은 부검이 그 정도로 심한 것인지 몰랐다.

이때 K는 유족대기실에서 ‘검사에게 돈을 주면 심장마비로 부검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육미승에게 말했지만, 2심 재판부는 이를 부검에 반대했던 육미승에게 동조한 발언일 뿐이라고 판단했다. 애초 육미승은 21일 오전까지 주사 자국 존재를 모르는 상황에서 자식을 두 번 죽이는 것 같다는 생각에 부검에 반대했다고 했다. 검안 당시 주사 자국 존재를 알았던 경찰은 이를 유족에게 바로 알려주지 않았다.

유명한 가수의 부검이 예정됐으니 약독물 감정을 해달라는 연락을 받은 국과수 약독물과장 정희선(당시 40살)은, 아침 일찍 출근했다. 부검을 마치고 나온 김광훈이 정희선을 보고 ‘사체가 참 이상하더라’라며 의아해했다.

“주사 자국이 한쪽에만 28개가 있는데 이게 다 신선하다고 하는 거예요. 원래 마약 맞는 사람은 하루에 28방을 맞지는 않거든요. 하루 맞고 며칠 뒤에 맞고 약간의 시차를 둬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하루에 다 맞은 것처럼 굉장히 신선하다고 하는 거예요.”7 당시 정희선에게 의뢰된 건 변사자의 히로뽕 등 마약류 투입 여부를 감정해달라는 것이었다. 심장마비가 사인이 아니었는지도 분석 대상이었다.

부검감정서에 편철된 김성재 오른팔 주사 자국 사진. 부검의는 28개나 되는 자국 중 정맥을 따라 놓으려고 한 주사 부위에 출혈이 많은 편이었는데 정맥을 제대로 찌르지 못하는 과정에서 혈관이 손상돼 출혈이 많았던 것으로 봤다. 유족 제공

부검감정서에 편철된 김성재 오른팔 주사 자국 사진. 부검의는 28개나 되는 자국 중 정맥을 따라 놓으려고 한 주사 부위에 출혈이 많은 편이었는데 정맥을 제대로 찌르지 못하는 과정에서 혈관이 손상돼 출혈이 많았던 것으로 봤다. 유족 제공

이현도의 통곡 “성재 이 자식아, 정말 너야?”

한편, 이때 육미승과 K는 구급차를 타고 다시 여의도성모병원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구급차에는 부검을 마친 성재 주검이 놓여 있었다. 훗날 두 사람이 한 각각의 진술을 모두 종합하면, 이때 육미승은 K에게 “경찰이 너와 성재의 관계를 자꾸 물으니 어서 귀가하라”며 “이제 성재 잊고 네 삶을 살라”고 타일렀다. ‘괜찮다’고 빈소에 있겠다던 K는 구급차가 성모병원에 도착하자 병원을 떠났다.

부검을 마친 성재는 다시 영안실에 안치됐다. 육미승은 아들을 들여다봤다. 가슴의 꿰맨 자국이 마치 포대 같았다. “예쁘게 촘촘하게 잘 꿰매달라고 부탁했는데 저렇게 꿰매다니….” 육미승이 말을 잇지 못하자 신문호가 울면서 말했다. “그래도 터지지 않게 잘 꿰매준 거래요.” ‘아, 성재야….’ 육미승은 울어지지 않는 울음을 삼켰다.

이날 서부서는 국과수에서 김성재가 극도의 흥분 상태에서 ‘청장년 급사증후군’으로 사망했다는 1차 소견을 통보받았다. 사체 오른팔에서 숨지기 전 사흘 안에 맞은 것으로 보이는 주사 자국 28개도 확인됐다고 국과수는 전했다. 경찰은 이런 수사 상황을 출입기자들에게 알렸다. 이날 <경향신문>은 김성재의 사인이 약물중독일 가능성도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 부검 결과가 서부서에 통보된 12월5일까지 주요 일간지에서 김성재 기사는 자취를 감췄다. 그의 죽음은 약물중독사로 귀결되는 듯했다.

11월21일 오후 귀국한 이현도는 곧장 여의도성모병원으로 갔다. 빈소는 동료 연예인과 팬들, 취재진으로 어수선했다. 영정 앞에 엎드린 현도는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며 울었다. “성재 정말 너 맞니? 이 자식아, 정말 너야?” 성재 눈동자는 살아서 현도를 보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육미승도 눈물이 났다.

11월22일 수요일, 백댄서팀 흑인 트리키와 니콜이 미국으로 출국했다. 20일 밤 경찰이 신체검사를 벌였지만 두 사람 몸에서 주사 자국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백댄서의 소변, 혈액 등에 대한 마약검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경찰이 두 사람을 출국금지 조처를 하지 않은 것은 두고두고 뒷말을 낳았다.

국과수 부검 때 K를 눈여겨본 형사

11월22일 낮 12시, K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K씨죠? 서부서 형사과인데요. 오후에 서로 잠깐 나와주시죠.” 국과수 부검 때 K를 눈여겨본 형사 오○○이었다.8 이날 처음 여자친구 K를 조사한 경찰은 이튿날인 23일에는 매니저 L을 불러 사건 당일인 20일 벌인 1차 조사에 이어 2차 조사를 했다. 사건 당일 김성재를 최초 발견한 L의 진술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오승훈 <한겨레> 기자 vino@hani.co.kr
공동기획 팩트스토리
리얼리Zoom-듀스 김성재 변사 사건 ④ 진정서와 동물마취제로 이어집니다.

각주
1. 육미승, <말하자면>, 위미디어, 1998
2. K 1심 공판 진술
3. 육미승 검찰 진술
4. K 경찰·1심 공판 진술
5. 김광훈 검찰·1심 공판 진술
6. 국과수, 김성재 부검감정서
7. 정희선,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세바시) 강연, 2018
8. K 경찰 진술
알려왔습니다

오승훈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김성재 여자친구 K의 입장을 청취하려 여러 차례 직간접적으로 인터뷰 또는 서면 취재 요청을 했으나 그동안 답이 없었습니다. 보도 이후 2월17일 K가 변호인을 통해 <한겨레>에 내용증명을 보내왔습니다.

K의 변호인은 내용증명에서 “‘마약은 하루에 28방 맞지 않아요’라는 내용은 어느 논문이나 문헌에도 검증된 적 없다”며 “법원이 (주사기를 이용한 마약의 과다 투여에 따른) 사고사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육미승이 본인의 수필집을 통해 김성재의 살인법으로 위 K를 특정하고 모함하고자 쓴 허구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였다”며 “법원의 판결문에 적시되어 있는 바와 같이, 김성재의 부검을 반대한 사람은 육미승이 먼저였고, K는 그에 동조하였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아울러 “경찰은 댄서팀 흑인 트리키와 니콜이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 신체검사를 벌인 적이 없으며 주사 자국의 유무를 밝힌 적이 없다”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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