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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법관 ‘1호’가 필요하다

법관 탄핵 소추에 공감하는 의원 109명 서명 끌어낸 이탄희 의원 인터뷰
등록 2021-01-28 06:49 수정 2021-01-28 07:13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1년 1월25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1년 1월25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법관 탄핵 논의에 공감한 의원이) 이제 109명이다.”

이탄희 의원(더불어민주당)의 피로한 얼굴에 엷은 미소가 스몄다. 1월25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며칠 제대로 쉬지 못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 의원은 1월22일 강민정(열린민주당), 류호정(정의당), 용혜인(기본소득당) 의원과 함께 국회 소통관에 섰다. 사법농단에 연루된 법관 탄핵을 각 정당에서 논의해달라는 제안에 의원 107명이 서명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다. 탄핵 소추안 정식 발의가 아니라 제안하는 형식을 택했지만, 법관 탄핵에 공감한 의원 수가 소추안 발의 정족수(100명)를 훌쩍 넘겼다는 소식은 국회 안팎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반헌법 행위자’ 판결 받고도 명예롭게 퇴직 

이 의원이 사법농단 연루 판사가 사직한다는 소식을 들은 건 1월 초다. 2015년 12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관련해 ‘세월호 7시간’ 의혹을 제기한 가토 다쓰야 전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명예훼손 재판을 앞두고 임성근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는 재판장인 이동근 부장판사에게 “선고 전 판결 내용을 보고해달라”고 말했다. 임 판사의 ‘빨간펜’을 거쳐 판결문은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아 무죄’(초안)에서 ‘박근혜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은 되지만 비방의 목적이 없어 무죄’라는 취지로 수정됐다.

임성근 판사는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돼 재판받았다. 1심 재판부는 법리상 무죄를 선고했지만, 판결문에 임 판사가 가토 다쓰야 전 지국장의 재판에 관여한 것이 헌법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임 판사는 재임용을 희망하지 않아 2월 말 퇴직할 예정이다. 이동근 판사도 사직서를 냈다. 

판사는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그 신분을 보장받는다(헌법 제106조). 법관징계법에 따른 징계도 최대 정직 1년에 불과하다.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판사를 공직에서 배제하는 유일한 방법은 헌법상 탄핵 제도다.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법관 탄핵을 발의해 과반수 찬성을 얻으면 헌법재판소가 탄핵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탄핵된 판사는 변호사법(제5조)에 따라 변호사 등록도 어렵다. 

“법원이 반헌법 행위자라고 공인했는데도 국회가 탄핵 소추를 하지 않아서 결국 명예롭게 퇴직할 상황이 된 것이다. 이대로라면 이들은 전관변호사로 경제적 이익을 누리면서 퇴직연금을 받게 된다. 공무담임권 제한도 없다. 이제라도 국회의 책무를 다해야 한다.” 이탄희 의원은 1월 초 국회의원 총회에서 사건을 설명하고 탄핵 논의에 공감하는 의원들을 모으는 일에 앞장섰다. 국회라는 기관의 책무는 정당과 정파를 넘어선다. 열린민주당, 정의당, 기본소득당 의원과 협업해 제안서를 작성했다. 그 제안서를 들고 되도록 의원들 얼굴을 맞대어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그렇게 100여 개의 서명 날인이 모였다.

“사법불신은 고질병이 됐다”

그런 이 의원에게 사람들은 묻는다. ‘법관 탄핵, 왜 지금인가?’ 이 질문은 중의적이다. 첫째는 지금껏 뭐 했냐는 힐난이다. 둘째는 갑자기 웬 탄핵이냐는 의문이다. 

이 의원은 “일단 죄송하다”고 했다. 그는 공황 증상을 겪었다. 정신과 전문의에게 진료받고 2개월간 상담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2020년 9월 국회에 복귀했다.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국회는 검찰개혁 이슈에 매몰됐다. 그가 국회를 잠시 떠나지 않았더라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법개혁은 국회에서 늘 후순위였다. 사법농단 문제는 2017년 2월 법원행정처 판사이던 이탄희의 사표로 실마리를 찾았다. 전국 법원 대표들이 모인 전국법관대표회의가 국회에 판사 탄핵 소추를 촉구한 2018년을 지나 2021년이 된 지금까지 매 순간 실기한 건 국회였다. 그사이 사법농단 연루 법관들은 임기가 만료되거나 사직서를 내고 법원을 떠났다. 그는 이어 두 번째 질문에 답했다.   

민주노총,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2021년 1월26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임성근 부장판사 등 사법농단에 관여한 법관들을 국회가 탄핵 소추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민주노총,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2021년 1월26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임성근 부장판사 등 사법농단에 관여한 법관들을 국회가 탄핵 소추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사법 불신은 고질병이 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내) 정경심 (동양대) 교수 사건을 맡은 담당 재판부를 탄핵해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 청원에 40만여 명이 동의했다. 그 청원 자체가 정당하다, 부당하다를 떠나 그 자체가 중요한 현상이다. 반대 진영에 불리한 판결이 나왔을 때도 똑같은 반응이 나올 것이다. 판사에 대한 맹목적 신뢰가 무너지고 재판을 공정하게 하지 않는다는 불신이 누적된 결과다. 사법 불신은 국민 입장에서 큰 고통이다. 판사는 믿을 수 없는데, 어쩔 수 없이 그 판사에게 재판을 받아야 한다. 판사를 고를 수 없으니까. 비유하자면, 믿을 수 없는 의사에게 칼을 쥐여주고 수술대에 올라가는 거다. 사법개혁이 휘발성 있는 이슈는 아니더라도, 반드시 해야 하는 개혁 과제가 된 것만은 틀림없다.”

이 의원은 법관 탄핵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법관 탄핵을 통한 사법 신뢰 회복이 목적이라고 했다. 사법농단 탄핵 법관 1호가 절실한 이유다. 헌정 사상 법관 탄핵은 단 한 차례도 국회 문턱을 넘은 적이 없다. 제12대 국회(1985년 10월) 때 유태흥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 소추 결의안이 부결됐고, 제18대 국회(2009년 11월)에서는 신영철 당시 대법관의 탄핵 소추안이 발의됐지만 처리 시한이 지나 폐기됐다. 신 대법관은 서울중앙지법원장 시절에 미국산 쇠고기 반대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에 대한 이른바 ‘촛불 재판’ 배당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대법원 진상조사단이 “재판 내용과 진행에 관여해 사법행정권을 남용했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신 대법관은 임기를 꼬박 다 채웠다. 그때 국회가 놓아버린 단죄의 기회는 두고두고 법원을 유령처럼 맴돈다. 법관 사회는 더 관료화됐고, 반헌법 행위자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사법 불신이 팽배해졌다.  

반복되는 사법행정권 남용 막아야 

“신 대법관을 탄핵 소추할 때 국회에서 이 정도로 문제 삼았으면 법원도 이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거라는 주장이 있었다. 그게 2009년이다. 10년도 지나지 않아서 같은 일(판사의 사법행정권 남용)이 반복됐다. 탄핵 소추를 거쳐 헌법재판까지 헌법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걸 보여줘야 판사들의 직업윤리를 다시 세울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판사는 신이라는 잘못된 믿음만 강화될 것이다.”

1월27일 오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가 예정돼 있다. 법관 탄핵을 당론으로 채택할지 등을 논의한다. 여당 의석만으로도 탄핵 의결 정족수를 충족하지만, 여당 안에서도 ‘서울시장 선거가 코앞이다’ ‘당내 지도부가 부담스러워한다’는 비관론이 또 고개를 든다. 그래도 이 의원은 말한다. “마지막까지,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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