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걸음마에 머문 ‘노동존중 사회’

[노동] ILO 핵심협약 비준, 전교조 합법화… 비정규직 해결 미완
등록 2021-03-25 10:51 수정 2021-03-26 02:01
2020년 7월1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제9차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 결과 브리핑이 열렸다. 연합뉴스

2020년 7월1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제9차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 결과 브리핑이 열렸다. 연합뉴스

2016년 겨울을 하얗게 불태운 촛불 광장에서 울려 퍼진 메아리는 “이게 나라냐”였다. 나라다운 나라를 위해선 먼저 비선 실세 최순실과 함께 국정을 농단한 대통령 박근혜를 권좌에서 끌어내려야 했다. 2017년 5월 탄생한 ‘촛불 정부’의 어깨는 무거웠다. ‘적폐 청산’의 적폐가 박근혜 하나만 가리키는 건 아니었다. 저항과 연대로 타오른 ‘광장의 조증’이 가라앉고 난 뒤 차별과 배제로 가득한 ‘일상의 울증’(사회학자 엄기호)이 오지 않는 사회로의 전환도 문재인 대통령의 어깨에 지워진 짐이었다.
광장의 촛불은 꺼졌다. 이곳저곳에서 “이러려고 촛불 든 게 아니다”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래서 <한겨레21>은 문재인 정부 집권 46개월 동안(2017년 5월~2021년 3월) 한국 사회가 얼마나 진보했는지, 문재인 정부가 촛불 시민들한테 제시한 ‘새 정부 100대 국정과제’(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 2017년 7월 발표)는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전문가들한테 물었다. 2017년 제19대 대선 당시 <한겨레> 대선정책자문단에 참가한 전문가들을 밑돌 삼아 11개 분야, 모두 33명의 전문가에게 전자우편과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의견을 들었다.
전문가들의 평균점수(별점, 5개 만점)는 2.66개(28명 응답). 절반의 성공이다. 다행히 촛불 정부엔 “아직 시간이 1년이나 남았다”.(박원호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_편집자주
노동 분야 국정과제

노동존중 사회 실현

차별 없는 좋은 일터 만들기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좋은 일자리 창출

성별·연령별 맞춤형 일자리 지원 강화

실직과 은퇴에 대비하는 일자리 안전망 강화

휴식 있는 삶을 위한 일·생활의 균형 실현

2017년 5월12일. 취임 사흘째를 맞은 문재인 대통령이 첫 외부 일정으로 인천국제공항을 찾았다. 공항에서 일하는 노동자 1만500여 명 가운데 88%나 차지하는 비정규직 문제를 두고 ‘임기 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다. 노동자와 시민들은 열렬히 환호했다. 문재인 정부 핵심 구호 가운데 하나인 ‘노동존중 사회’를 향한 빛나는 첫발이었다. 국정과제(차별 없는 좋은 일터 만들기)엔 “비정규직 감축을 위한 로드맵 마련을 통해 비정규직 문제 종합적 해소 추진”이라고 적혀 있다. 같은 항목엔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실현 등도 담았다.

임기 4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16.4%(2018년), 10.9%(2019년)로 급가속한 직후 2.87%(2020년), 1.5%(2021년)로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기대가 컸던 만큼 평가는 박하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급격하게 인상률을 높이고 반발이 심각해지니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해 저임금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인상을 막아버리고, 그다음 해의 인상을 포기해버렸다”며 “결과적으로 임금구조도 엉망이 되고, 임금 격차는 더 벌어졌으며, 심지어 최저임금이 올라야 하는 정당성마저 훼손하는 최악의 상황을 낳았다”고 평가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을 비롯해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차별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노동사회학)는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은 시행했으나 정작 민간부문에 대한 정책은 이뤄진 게 없다. 초기 국정과제에서는 기간제 사용 사유 규제, 차별시정제도 전면 개편, 원청 책임 강화, 특수형태근로자 노동기본권 보장 등이 제시됐으나 성사는커녕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주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도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포괄적으로 이뤄지지 못한 것 등의 문제를 들어 “노동시장의 극심한 이중구조 및 격차와 차별 극복을 위한 근본적인 정책의 방향 전환에 실패했다”고 했다. 그 이유로는 “미진한 재벌 개혁 및 중소기업과의 격차 심화 등 왜곡된 경제의 이중구조가 그대로 유지됐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반면 얼마 전 국회를 통과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및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합법화 등 후진적 법제도를 개선할 가능성을 연 대목(이주희 교수)과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김혜진 활동가) 등은 문재인 정부가 노동 분야에서 거둔 일정한 성과로 평가된다. 고용 안전망을 확충한 것도 그렇다. 정이환 교수는 구직급여액 상향, 지급 기간 확대와 함께 “국민취업제도 도입도 (한계가 많으나) 고용 안전망에서의 의미 있는 발전”이라고 평가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