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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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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는 여성, 쫓아가는 정부

[여성·성평등] 젠더 폭력에 적극 대응… 여성 권리 제도화는 미흡
등록 2021-03-28 13:42 수정 2021-03-28 23:41
2020년 7월25일 ‘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eNd)가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2020년 7월25일 ‘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eNd)가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2016년 겨울을 하얗게 불태운 촛불 광장에서 울려 퍼진 메아리는 “이게 나라냐”였다. 나라다운 나라를 위해선 먼저 비선 실세 최순실과 함께 국정을 농단한 대통령 박근혜를 권좌에서 끌어내려야 했다. 2017년 5월 탄생한 ‘촛불 정부’의 어깨는 무거웠다. ‘적폐 청산’의 적폐가 박근혜 하나만 가리키는 건 아니었다. 저항과 연대로 타오른 ‘광장의 조증’이 가라앉고 난 뒤 차별과 배제로 가득한 ‘일상의 울증’(사회학자 엄기호)이 오지 않는 사회로의 전환도 문재인 대통령의 어깨에 지워진 짐이었다.
광장의 촛불은 꺼졌다. 이곳저곳에서 “이러려고 촛불 든 게 아니다”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래서 <한겨레21>은 문재인 정부 집권 46개월 동안(2017년 5월~2021년 3월) 한국 사회가 얼마나 진보했는지, 문재인 정부가 촛불 시민들한테 제시한 ‘새 정부 100대 국정과제’(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 2017년 7월 발표)는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전문가들한테 물었다. 2017년 제19대 대선 당시 <한겨레> 대선정책자문단에 참가한 전문가들을 밑돌 삼아 11개 분야, 모두 33명의 전문가에게 전자우편과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의견을 들었다.
전문가들의 평균점수(별점, 5개 만점)는 2.66개(28명 응답). 절반의 성공이다. 다행히 촛불 정부엔 “아직 시간이 1년이나 남았다”.(박원호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_편집자주
여성·성평등 분야 국정과제

실질적 성평등 사회 실현

다양한 가족의 안정적인 삶 지원 및 사회적 차별 해소

아동·청소년의 안전하고 건강한 성장 지원

“기대에 많이 미치지 못했다.” 신경아 한림대 교수(사회학)는 문재인 정부의 여성·성평등 분야 국정과제 달성 여부와 관련해 “최근 새 여성가족부(여가부) 장관 부임 이후 다소 긍정적인 변화가 보인다”면서도 비판에 무게를 실었다.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 설치’ 공약이 지켜지지 않아 ‘부처 간 칸막이’가 그대로 유지됐고, 이 때문에 ‘실질적 성평등 사회 실현’이란 목표가 “책상 위 과제로 남았다”(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자문위원)는 평가도 나왔다. 김은실 이화여대 교수(여성학)는 “강경화 전 외교부장관이나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처럼 엘리트 여성이 가시화됐지만 여가부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정부 차원의 리더십이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전반적으로 호평보단 실망에 가까운 평가다.

‘문재인 정부 4년 평가단’이 긍정적으로 평가한 분야는 주로 젠더 폭력과 관련돼 있다. 임 자문위원은 “문 대통령이 ‘모든 부처가 미투 운동 주무 부처라고 생각하고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해 성차별·성폭력 근절을 국가의 책무로 인식하게 한 것”을 가장 잘한 일로 꼽았다. 다른 두 명도 “디지털 성폭력과 관련해 법과 제도를 정비한 것”(신경아), “디지털 성착취 이슈가 여성 정책에 통합된 것”(김은실)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실제로 아동·청소년 성보호법과 성폭력처벌법 등이 개정돼 성착취 영상물의 제작·배포에 관한 처벌이 강화됐고, 최근엔 ‘온라인 그루밍’을 처벌하는 법안도 국회를 통과했다. 신 교수는 다만 이런 흐름이 “정부가 주도했다기보다 청년 여성의 문제제기에서 시작됐고 정부가 이를 수용한 것”이라고 짚었다. 김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언택트(비대면) 사회’를 구상할 때도 디지털 성범죄가 중요한데, 여가부에 이를 전담하는 국이 만들어지지 못한 것은 문제”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비판받은 지점은 정책과 예산 전반을 성평등한 방향으로 집행하는 ‘성평등 추진 체계’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임 자문위원은 “‘실질적 성평등’은 모든 부처가 성차별을 줄여나갈 수 있도록 통합적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가능한 것”이라며 “부처 이기주의를 넘어야 하기에 성평등위원회 같은 ‘대통령 직속’ 조직의 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가부뿐 아니라 △양질의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보건복지부) △경력단절여성 재취업 지원(고용노동부) △국민안전권 실현을 위한 가칭 안전기본법 제정(행정안전부) 등 여러 부처의 정책을 함께 따져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임 자문위원은 “이런 정책은 젠더 관점에서 정교하게 추진해야 하는 분야인데도 ‘성평등 정책’이란 인식이 부족해 정책 대상에서 여성이 지워지기 일쑤”라고 설명했다. 신 교수도 고용 문제를 짚으며 “기존 시스템의 변화 없이 최소 수준의 정책을 집행했고 그 결과 코로나19 시기 여성의 고용불안정 확대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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