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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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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n]어김없이 등장하는 ‘가짜 연대’

피해자 상황 이용해 성폭력 저지르거나 만남 강요
등록 2021-04-12 07:34 수정 2022-05-17 01:37
일러스트레이션 임우정

일러스트레이션 임우정

“안녕하십니까, 딥페이크(Deep Fake) 방지 프로젝팀 딥(DEPP)입니다. 관련 피해 사례나 영상을 제보해주시면 해당 소스를 기반으로 사용된 모델을 추적하여 저의 활동에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래는 저희의 후원 링크입니다.”

딥페이크 피해자 지원 단체 모방해 돈벌이

또 등장했다. 사회적 공분을 사는 성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피해자를 대상으로 추가적인 착취와 폭력을 저지르기 위해 연대의 탈을 쓰고 나타나는 거머리들. 이번에는 <그것이 알고 싶다> ‘보고, 듣고, 의심하라–가짜와의 전쟁, 딥페이크’ 편(2021년 2월27일 방영)에서 다룬 이화여대 ‘딥트’(DEEP’t)팀을 모방했다. 이화여대 딥트는 딥페이크 자동탐지 기술을 만들어낸 팀인데, 트위터에 등장한 ‘프로젝팀 딥’은 자신들이 그 팀과 유사한 활동을 한다며 피해 사례를 수집하고 비트코인으로 후원받는다며 홍보했다. 해당 도메인의 원주인이라는 사람이 나타나면서 계정은 사라졌지만, 이런 수법으로 피해자를 착취하려는 거머리들은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연대활동을 하면서 싸워야 할 대상에는 이런 식으로 피해자를 다시 착취하고 폭력을 저지르는 이들도 포함된다. 이들은 취약한 피해자를 상대로 개인적인 욕구나 욕망을 채우기도 하고, 피해자를 내세워 돈벌이에 나서기도 하며, 자신의 이름을 드높이는 도구로 활용하기도 한다. 이들 대부분은 선의나 연대를 가장해 피해자에게 접근하기 때문에, 외부 도움이 절실한 피해자는 그 손길을 외면하기가 힘들다. 특히 직업 특성상 피해자의 취약성을 전문적으로 이해하고 그들을 조력해야 할 이들마저 피해자를 먹잇감으로 삼는데, 그런 추가적인 피해를 입은 이들은 사람과 사회에 대한 불신을 씻어내기 어렵다.

연대 과정에서 만난 많은 피해자는 1차 성폭력 이후 연인이나 지인, 연대자들로부터 2, 3차 성착취·성폭력 피해를 당한다. 특히 ‘교제폭력’(데이트폭력) 피해 사례가 많은데, 이는 취약한 피해자를 골라 통제하며 착취하는 인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자신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이용해 경제적·성적 착취를 이어가는데 이를 애정으로 포장한다. 연대를 내세워 피해자에게 사적 만남을 강요하는 행태 역시 많이 경험했다. 연대 과정에서 피해자의 피해 경험과 관련 자료를 얻은 연대자가 이를 이용해 피해자에게 접근한다. 연대 원칙 중 하나는 피해자와 사적 관계를 형성하지 않는 것이지만, 일부 연대자는 오히려 자신의 위치를 악용한다. 전문가들에 의한 추가적인 성착취·성폭력 피해 사례도 많다.

연대 과정에서 사적 만남을 원하는 남성 변호사들의 추악한 실태를 많이 접한다. 기혼 남성 변호사가 미혼 피해자를 술자리에 불러내 ‘네가 여자로 보인다’라는 식의 발언을 하면서 피해자에게 끊임없이 술을 권하고 피해자가 취할 때를 기다리다가 본인이 먼저 만취해 계획을 이루지 못한 사례도 있다. 피해자 국선변호인에 의한 강제추행 사건도 있다. 국선변호인이 두 명의 피해자를 대상으로 법률상담을 하면서 재연을 가장해 추행한 사건인데 5월 선고를 앞두고 있다.

‘신뢰’라는 2차 가해자들의 무기

경찰 등 수사관이 수사 과정에서 얻은 피해자 연락처를 이용, 피해자에게 편의를 제공하겠다는 식으로 접근해 내가 직접 나서 차단한 적도 있다. 피해자는 경찰이기 때문에 무조건 신뢰하며 따르려 했다. 직장 내 성폭력 피해를 입고 상담하러 온 이를 추가 성폭력하는 등 상담사나 정신과 의사가 저지르는 성착취·성폭력 피해도 이어진다. 이 전문가들은 모두 성폭력 피해자들의 취약성을 잘 알고 있으며, 피해자 정보도 갖고 있다. 이런 전문가를 신뢰하는 피해자를 탓할 것인가?

연대체를 만들어 피해자들을 착취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2018년 #미투(나도 고발한다) 운동이 한창일 때, ‘미투닷컴’ 등 성폭력 피해자를 돕고 피해 사례를 알리겠다는 공익적 목적을 내세운 사이트들이 등장했다. 피해자와 고발자를 위해 익명으로 운영하고 관련 사례를 자체 검증을 통해 공론화하겠다고 했다. 실제 이 사이트들로 많은 피해자가 몰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운영 방침 등을 보면 사이트 운영진은 어떤 연대활동도 해보지 않은 이들이며, ‘자체 검증’ 역시 피해자 정보 유출 등 위험성이 깔린 방식이었다. 그들은 해당 사이트를 운영하다 비판받고 슬그머니 사라졌다.

디지털성폭력과 관련해서는 피해를 이용해 경제적 수익을 창출하려는 자가 많다. ‘웹하드 카르텔’이라는 표현이 나왔던 이면에는 일부 ‘디지털장의사’의 결탁도 있다. 피해자들에게 수백만~수천만원의 돈을 받고 피해 영상을 삭제해준다고 해놓고는, 웹하드 업체와 결탁해 수개월 뒤 다시 그 영상을 유통하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절박한 피해자들의 상황을 악용해 피해자에게도 돈을 뜯어내고, 웹하드로 또 다른 이익을 창출하는 방식이었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영상을 쫓아다니다 절망한다. 내가 아는 피해자도 그런 과정을 견디다 못해 이 세상을 등졌다.

디지털 세대의 새로운 연대 창구 ‘온라인’

연대활동을 하면서 정보 전달을 위한 트위터 계정 운영과 세미나, 강연을 병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적시에 적절한 정보를 전달하고, 관련 교육을 지속적으로 하면서 정보접근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추가 피해를 막아보려는 의도다. 2월 이화여대 딥트팀을 모방한 ‘프로젝팀 딥’이 등장했을 때 많은 이가 문제제기를 했고, 관련 피해를 입었을 때 연락할 수 있는 공식적인 창구(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소개와 증거 수집법 등을 빠르게 공유했는데, 이는 온라인에서 할 수 있는 연대의 새로운 모습이다. 온라인은 가짜뉴스 등 걸러야 할 오정보도 많지만, 디지털네이티브 세대의 주 활동 무대이기 때문에 그를 이용한 연대 방식을 꾸준히 고민하고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피해자를 착취하려는 이는 끊임없이 나타나지만, 이런 착취범들의 방식이나 전략을 제때 무력화하면서 피해자에게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면 추가적인 피해에 노출되는 피해자가 줄어들 것 이다.

마녀 반성폭력 활동가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는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지원센터(02-735-8994), 여성긴급전화1366으로 연락하면 불법 영상물 삭제, 심층 심리치료, 상담·수사, 무료 법률 지원 등을 받을 수 있다.

*‘너머n’ 아카이브(https://stopn.hani.co.kr/)에서 디지털성범죄를 끝장내기 위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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