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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여론 구도를 이해하는 두 가지 노하우

고3 수험생 모의고사 점수와 달리, 선거 캠페인을 열심히 한다고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이유
등록 2021-05-29 12:17 수정 2021-07-13 05:26
견고한 지지율은 ‘절대적 지지’에서 나온다. 과거 이른바 ‘3김’(김대중·김영삼·김종필, 오른쪽부터)의 지지율은 쉽게 빠지지 않았다. 연합뉴스

견고한 지지율은 ‘절대적 지지’에서 나온다. 과거 이른바 ‘3김’(김대중·김영삼·김종필, 오른쪽부터)의 지지율은 쉽게 빠지지 않았다. 연합뉴스

대선판 킹메이커는 단연 ‘여론조사 결과’다. 대선 때마다 킹메이커로 불리거나 킹메이커임을 자임하는 인물이 있지만 실제 이들의 영향력은 크지 않다. 여론조사가 대부분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대선 과정에서 여론조사 결과는 그 자체로 강력한 프레임이다. 후보의 됨됨이나 정책 역량에 대한 평가보다, 누가 1위를 달리는지 선두권에 든 인물이 누구인지가 주목받는다. 언론은 이를 토대로 후보들을 서열화하고 정보량을 조절한다. 선두권 후보에 대한 기사량이 많아져 ‘유명하니까 유명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슈 메시지, 언론 노출, 칭찬받는 일을 하면?

여론조사는 대선 과정에 가장 영향력을 발휘하는 요인이자, 주자들의 각축전이 벌어지는 싸움터이기도 하다. 전투가 벌어지는 장소가 벌판인지 계곡인지에 따라 전술이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주자들은 여론조사가 어떤 특성을 지녔는지 알아야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관전자들도 이를 잘 알면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잘못 아는 게 있다. 선거 캠페인을 열심히 하면 지지율이 오른다는 막연한 생각이다. 공약을 발표하고 세력을 모으면 당연히 지지율이 오를 거라고 믿는다. 또 여러 이슈에 대해 메시지를 내고, 언론에 노출되고,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하면 지지율이 오른다고 기대한다.

실제 그런 일은 흔히 생기지 않는다. 후보들의 지지율 총합이 정해졌기 때문이다. ‘모든 주자의 지지율 합은 100%를 넘지 못한다’는 사실은 대선 과정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이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대선 주자의 지지율은 고3 수험생의 모의고사 점수와는 성격이 다르다. 공부에 소홀하던 수험생이 열심히 공부하면 점수를 끌어올릴 수 있다. 60점이 80점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학생들의 점수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대선 주자의 지지율은 그렇지 않다. 누군가의 지지율이 올랐다는 건 누군가의 지지율이 떨어졌다는 말이다. 각 후보의 지지율은 다른 후보들의 지지율과 긴밀히 연결됐다. ‘나 홀로 상승’은 있을 수 없다. 전체 파이가 정해져 있다.

새 주자가 더 나올수록 또는 대선이 다가올수록 전체 합계가 100%에서 120%, 150%로 높아진다면 고3 수험생처럼 저마다 열심히 선거운동을 하는 후보들의 지지율이 모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100% 상한선이 버티는 한 각 주자의 처절한 노력은 배신당하기 일쑤다.

지지율이 견고하다는 것의 의미

따지고 보면 지지율 합은 늘 100%보다 적다. 여론조사에는 ‘모름/무응답’이 있기 때문이다. 조사 방식이나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10~20%포인트의 모름/무응답 비율이 존재한다. 이들은 정치에 관심 없거나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응답자다.

그러면 전체 후보의 지지율 합은 대략 80%로 줄어든다. 이를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이 균형을 이룬다고 가정해 구분하면 40% 대 40%가 된다. 한쪽 후보의 지지율이 40%를 넘기란 불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무리 대단한 후보라고 해도 혼자 40%를 넘어서기는 어렵다. 물론 진보와 보수가 각각 1명의 대표 주자를 내보내 양자 구도가 형성된 경우 또는 선거일이 임박해 무응답층이 줄어드는 경우에는 40%를 상회할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대선이 수개월 남은 상황에서 다자 구도라면 각 진영 후보들의 지지율 합 40% 상한선 룰은 강력하게 작동한다.

이미 몇몇 후보의 지지율 합이 최대치에 도달했다면 앞선 후보들의 결정적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경우 다른 후보들이 선거 캠페인을 잘한다고 해서 의미 있는 지지율을 얻기는 쉽지 않다. 그만큼 후발 주자에게 대선 시장 진입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 들어가기 전 일정 수준으로 대중에게 인식돼야 대선 과정에 명함을 내밀 수 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해당 후보 지지율의 견고성 여부다. 후보들의 지지율은 그저 숫자로서 높고 낮음만 있어 보이지만, 사실 이면에는 튼튼한지 허약한지에 따라 그 의미가 확연히 다르다. 여론조사 해석에서 수치만큼이나 단단함 여부를 파악하는 게 중요한 이유다. 지지율이 아무리 높아도, 설령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더라도 견고하지 못하면, 다시 말해 그 후보에 대한 지지층의 지지 강도가 약하면 경쟁이 치열해지거나 약간의 실수라도 나오면 지지율이 쭉쭉 빠진다. 한때 40%까지 나오던 후보들의 지지율이 대선이 다가올수록 급격히 추락하는 일은 이런 경우에 흔히 나타난다.

지지율이 견고하다면 싸움이 격해지고 악재가 발생하더라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지지율이 견고하다는 건, 지지층의 특성이 해당 후보를 여러 후보 가운데 ‘상대적으로 낫다’고 생각해 지지하는 게 아니라 ‘절대적으로 낫다’고 생각해 지지함을 뜻한다. 다른 이는 싫고 이 사람만 지지한다는 배타적 지지 경향이 강할수록 지지율이 견고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반면 상대적 지지 특성이 크면 당장 지지율이 높아도 더 나아 보이는 인물이 나오면 흔들리기 마련이다.

여론조사가 주도하는 대선 분석의 핵심

과거 지역을 기반으로 절대적 지지층을 보유했던 이른바 ‘3김’(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은 네거티브 공세가 있더라도 지지율이 쉽게 빠지지 않았다. 또 어떤 인물이 직접 자신의 성과나 투쟁을 통해 지지층을 끌어모았다면 견고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일시적 후광에 따른 것이라면 견고성이 낮을 수밖에 없어 안정성과 지속성도 약하다.

‘대선 주자들의 지지율 합은 100%를 넘지 못한다’와 ‘지지율의 높음 못지않게 견고함이 중요하다’는 두 명제는 여론조사가 주도하는 대선 과정을 분석하는 핵심이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번 대선판에 이 명제를 적용해보면 이해가 좀더 쉬울 것이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
*‘윤희웅의 여론 읽기’는 여론조사의 허와 실을 파헤쳐 정확하게 여론 읽는 법을 전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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