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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참 기자들 ‘라떼’ 대신 현장 누비길

기사에서는 ‘세대교체’ 주문하면서 정작 연공서열에 갇힌 언론사 조직문화
등록 2021-07-25 16:41 수정 2021-07-26 01:10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한 장면. 이 영화 속 등장인물의 실제 모델인 미국 일간 〈보스턴글로브〉의 마틴 배런 편집국장은 가톨릭 성직자들의 성폭력 사건을 추적 보도하도록 탐사보도팀에 지시하며 취재를 이끈다. 당시 마틴 배런은 47살이었다.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한 장면. 이 영화 속 등장인물의 실제 모델인 미국 일간 〈보스턴글로브〉의 마틴 배런 편집국장은 가톨릭 성직자들의 성폭력 사건을 추적 보도하도록 탐사보도팀에 지시하며 취재를 이끈다. 당시 마틴 배런은 47살이었다.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90년생이 온다’고 합니다. 말은 무성하지만 정말 오는지, 어디까지 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회 각 분야의 주요한 위치에서 20대는커녕 30대조차 찾아보기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청년세대는 여전히 사회 주변부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준석 돌풍’ 이후 사회 곳곳에서 세대교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세대교체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만능열쇠는 아닙니다. 다만 한 사회나 조직에서 젊은 세대의 잠재력과 에너지를 수렴하는 통로가 구조적으로 차단됐다면, ‘고인 물’이 만들어내는 질곡을 걷어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편집국장은 40대

세대 담론을 주도하는 건 언론입니다. 언론은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를 신기하다는 듯 관찰하고 ‘이대남’(20대 남성)을 기대나 두려움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정치권에 세대교체를 주문하는 것도 늘 언론입니다. 이처럼 ‘세대’라는 화두에 관심 많은 언론 내부의 세대교체는 제대로 이뤄지고 있을까요? 언론사 내에서 청년세대는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을까요?

어느 정도 규모 있는 언론사의 뉴스룸을 들여다보면, 언론사만큼 세대 간 위계와 분업이 확실한 곳도 드물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대다수 언론사는 50대 국장, 40대 부장과 차장, 20~30대 평기자들로 구성됐습니다. 2030이 취재해서 보고하면, 4050이 게재 여부를 판단하고 기사 방향을 결정합니다.

신문과 방송,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언론사에서 주요한 의사결정 권한은 중장년 세대에 집중돼 있습니다. 연공서열의 조직문화 때문입니다. 아무리 일을 잘하고 판단력이 뛰어나도 오래 근무하지 않았다면 편집국장이나 보도국장이 될 수 없습니다.

뉴스 가치를 판단하고 방향을 설정할 때 기자로서 연륜이 필요한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연륜이 꼭 수십 년이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서구 언론은 젊은 편집국장이 뉴스룸을 이끄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캐서린 바이너 편집국장은 2015년 44살에 뉴스룸 리더가 됐습니다. 전임자인 앨런 러스브리저는 42살에 편집국장이 됐지요.

신부들의 아동 성추행과 그 사실을 은폐하는 가톨릭교회를 취재하는 기자들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기억하십니까? 2001년 이 사건을 취재하도록 탐사보도팀에 지시한 <보스턴글로브>의 편집국장 마틴 배런은 당시 47살이었습니다.

아날로그 리더가 디지털 혁명 지휘한다?

연공서열 제도도 나름의 장점이 있습니다. 예측이 가능하고 조직의 안정성을 보장하지요. 한국처럼 장유유서 문화가 있는 사회에선 연장자가 지휘하는 쪽이 서로에게 편합니다. 문제는 이 시스템이 오늘날과 같이 급격히 변화하는 시대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언론은 디지털 시대 이후 미디어 환경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습니다. 리더십의 한계 탓이 큽니다. 평생 종이신문으로 뉴스를 읽고 1면 기사를 고민해온 아날로그 리더들이 디지털 혁명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기성 언론의 디지털 혁신이 눈앞의 작은 수익을 챙기거나 잠깐의 유행에 휘둘리는 근시안적 대책에 그치는 건 노쇠한 리더십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사회의식 변화에 발맞추기도 어렵습니다. 입사 뒤 15년 정도 지나면 기자들은 데스크를 맡게 됩니다. 직접 취재하지 않고 후배에게 지시를 내리는 책상물림이 되는 겁니다. 이렇게 현장을 떠난 지 오래되면 고참 기자들의 현실 인식은 과거에 묶이기 마련입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옛날 관점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거지요.

이러면 뉴스 가치를 판단하는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젠더 불평등, 기후위기, 플랫폼경제 등 새롭게 대두된 이슈의 중요성을 체감하지 못하는 겁니다. 대중의 분노가 터져나오기 전까지 ‘엔(n)번방’ 사건을 대다수 언론이 외면했던 건, 뉴스룸의 의사결정권을 가진 기자들이 ‘디지털 성착취’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언론윤리에 대한 불감증도 문제입니다. MBC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경찰을 사칭한 것과 관련해 기자 출신인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이 “나이 든 기자 출신들에게는 굉장히 흔한 일이었다” “제 나이 또래에서는 한두 번 안 해본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빚었지요. 다소 과장이 있다 하더라도, 김 의원의 말은 아마 사실일 겁니다. 옛날 기자들은 그랬습니다.

이제는 취재윤리 기준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엄격해지고 시민들의 눈높이도 달라졌습니다. ‘기자니까’ 눈감아주던 악습도 사라졌습니다. 김 의원의 발언은, 그가 속한 고참 세대 기자들이 이런 변화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지금처럼 언론에 대한 불신이 만연한 시점에 이들이 뉴스룸 리더 자리에서 ‘라떼’의 윤리관으로 잘못된 지시나 판단을 내린다면 결과는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언론에도 세대교체가 필요합니다. 언론 환경이 젊고 유연한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연공서열보다는 능력 위주 인사로 30~40대 기자가 핵심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자리에 가도록 길을 터놓아야 합니다. 오래 일한 기자를 예우하느라 시간을 낭비하기에는 언론사가 당면한 위기의 파도가 너무 높습니다. 낡은 경험에서 자유로운 세대의 역량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30대 정치부장, 60대 현장기자

선배 기자에겐 서운하게 들릴 수 있는 이야깁니다. ‘고려장’을 하자는 게 아닙니다. 베테랑 기자가 필요한 곳이 있습니다. 기자가 최후까지 있어야 할 곳, 바로 현장입니다. 기자가 꼭 국장이나 부장 같은 보직을 맡아야 성공을 인정받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현장으로 돌아가 활발히 취재하고 글 쓰며 후배들의 귀감이 돼주시기 바랍니다. 고참 기자에게 꼭 나쁜 일만은 아닙니다. 나이 먹어도 현장을 떠날 필요가 없어진다면, 기자의 직업 수명은 지금보다 길어질 수 있습니다.

한국 언론에서도 40대 편집국장, 30대 정치부장을 보고 싶습니다. 관록을 뽐내며 현장을 누비는 60대 평기자를 보고 싶습니다. 나이 많은 현장 기자가 나이 어린 데스크와 함께 일하는 뉴스룸을 기다립니다. 장담하건대, 그런다고 언론이 망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오히려 반대로 천천히 망해가던 언론을 소생시키는 ‘신의 한 수’가 될지 모르는 일입니다.

박영흠 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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