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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가석방, 과거의 그대에게 물어라

등록 2021-08-14 01:41 수정 2021-08-14 02:09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2019년 삼성디스플레이 아산공장을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2019년 삼성디스플레이 아산공장을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최근엔 잘 안 쓰는 용어라 기억이 가물가물할지 모른다. ‘적폐청산’.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 집권 초 열쇳말이었다.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 중 1번 과제도 “적폐의 철저하고 완전한 청산”이었다. 과제 목표는 “국정농단의 보충 조사 및 재발 방지 대책 수립”이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바로 이 ‘박근혜-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2021년 1월18일 징역 2년6개월을 확정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이로써 이 부회장이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와 최씨에게 86억원의 뇌물을 건넨 사실이 확정됐다. 이 부회장은 문재인 정부가 청산 대상으로 삼았던 적폐에 해당하는 국정농단과 정경유착의 핵심인물이다. 그런 이 부회장에게 문재인 정부가 가석방 요건을 완화하며 ‘이 부회장 맞춤형 특혜’를 베푼 것은 충격적이다.

청와대는 이 부회장 가석방에 대해 “입장이 없다”는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가석방은 청와대가 아닌 법무부 장관 소관 사항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부회장 같은 거물을 청와대와 조율 없이 법무부 장관 뜻대로 가석방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부회장 가석방의 최종 책임이 문 대통령에게 있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재벌 총수 가석방과 관련해 문 대통령은 국회의원이던 시절 “재벌 총수들은 실형을 선고받는 일이 거의 없이 형량에서 특혜를 받고 있는데 가석방 특혜를 또 받는다면 이것은 경제정의에 반하는 것”(2015년 1월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횡령 혐의로 4년 실형을 받고 복역 중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에 대해 여당인 새누리당에서 가석방 주장이 나온 데 대한 비판이었다. 6년 전 야당 문재인 의원이 현재의 문재인 대통령을 반박하는 모양새다.

또 가석방 허가권자인 박범계 법무부 장관에게도 버금가는 책임이 있다. 박 장관은 문재인 정부 초기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 적폐청산에 앞장섰다. 또 2018년 2월 이 부회장 2심 재판부가 1심 판결(징역 5년 선고)을 뒤집고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자, 당시 박범계 의원은 “오로지 이 부회장을 석방시키기 위해 (재판부가) 짜맞춘 법리 구성을 했다. 집행유예를 위해서는 감경 사유가 있어야 하는데 이 부회장에게 반성이 없으니, 강요된 뇌물 피해자라는 해괴망측한 논리를 개발해냈다”(2018년 2월7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며 재판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역시 과거의 박범계 의원이 현재의 박범계 장관을 반박하는 모양새다.

이 부회장 가석방 배경에 대해 박 장관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국가적 경제 상황과 글로벌 경제 환경에 대한 고려 차원에서 이 부회장이 (가석방) 대상에 포함됐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가석방 이전에 이 부회장 ‘사면’이 논의됐다. 2021년 초 이명박·박근혜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사면 논란으로 홍역을 치른 탓에 정부·여당의 애초 사면 기류는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5월21일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심화되는 글로벌 반도체 경쟁 속에 삼성전자의 미국 반도체 투자와 삼성을 통한 코로나19 백신 생산 등이 논의되면서, 한-미 정상회담에 나서는 문 대통령에게 삼성이 힘을 실어줬기 때문이다. 이후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 큰 사면이 아닌, 법무부 장관이 허가하는 가석방으로 ‘톤다운’됐다.

문 대통령은 가석방에 대한 입장을 아직 내놓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공정과 정의에 대한 물음표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게다가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진솔한 설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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